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2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2 “하면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상국의 군대를 맞아 싸우셨습니까?” “그것은 중국을 섬기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나라와 사직이 적의 침략으로 누란지경에 처했는데 어찌 싸우지 않을 수 있느냐? 나는 지금도 양제가 군사를 이끌고 온다면 마땅히 나가서 싸울.. 소설방/삼한지 2014.08.24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1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1 며칠 뒤 대전에서 즉위식이 벌어지자 5부 각지의 많은 수령과 방백들이 대궐로 모여들었다. 을지문덕을 비롯한 요동 제성의 성주들도 새로 즉위한 왕을 찾아와 예를 다하였다. 명장 을지문덕이 도성에 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를 구경하려는 백성들로 대궐 .. 소설방/삼한지 2014.08.24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0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0 건무왕은 대원왕에게 후사가 없는 것을 알고 일찍부터 자신이 보위에 오를 날을 부단히 기다리며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동복 아우 대양(大陽)이 있었지만 심약하고 고분고분한 대양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따라서 대원왕이 죽고 나면 왕위는.. 소설방/삼한지 2014.08.20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9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9 수나라는 문제와 양제 양대를 거치며 네 차례에 걸쳐 고구려를 침략했으나 모두 패하였고, 이것이 한때 맹위를 떨치며 거세게 일어나던 수제국(隋帝國)을 단명의 역사로 마감하게 만든 근원이었음은 다시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중국에서 양광이 죽고 당.. 소설방/삼한지 2014.08.20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8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8 그로부터 두 사람은 은밀히 군사를 긁어 모으고 부대를 편성하여 모든 거사 준비를 끝마쳤는데, 이세민은 다만 그 아버지 이연이 허락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한동안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이때 돌궐족이 태원에서 가까운 마읍 지방을 침략하였지만 .. 소설방/삼한지 2014.08.20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7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7 수나라 말년인 병자년(616년) 어름에 양광은 돌궐의 난을 평정하러 갔다가 도리어 시필가한이 이끄는 동돌궐의 군사에게 포위를 당한 일이 있었다. 이때 이세민은 열여덟의 나이로 군사를 모집해 양광을 구원하러 나섰다. 그의 군대는 돌궐군과 대치하고 있던.. 소설방/삼한지 2014.08.20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6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6 그로부터 한두 해가 지나도록 대원왕이 입조하지 않자 양광은 이를 핑계로 또다시 고구려 토벌을 계획하였지만 물론 실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사이에도 수나라 방방곡곡에서는 수만 혹은 수십만에 달하는 무리들이 계속해서 폭동과 반란을 일으키고 있.. 소설방/삼한지 2014.08.20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5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5 사본이 지적한 고구려의 형편은 사실이었다. 거대한 수나라의 대병을 상대하여 번번이 이를 물리쳤다는 뿌듯한 자긍심 때문에 별다른 동요 없이 견디고는 있었지만 피폐하고 곤궁한 백성들의 살림은 수나라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대원왕은 나름.. 소설방/삼한지 2014.08.18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4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4 수나라로 돌아간 양광은 그 후 두 달에 걸쳐 탁군 방면으로 북상 중이던 반란군을 격파하고 그해 8월이 되어서야 간신히 내란을 평정하였다. 하지만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양현감의 반란을 계기로 수나라 각지에서는 나날이 군도가 날뛰고 농민 봉기가 .. 소설방/삼한지 2014.08.18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3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3 그런데 요동에서 한창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수나라 내지에서는 양광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정월, 요동 정벌의 동원령이 내린 직후부터 양광이 요하를 건너 요동성에 당도한 5월 초순간에 걸쳐 요동 정벌의 피해와 부담.. 소설방/삼한지 2014.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