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전북기념물 161

경상북도 기념물 제177호 경주부 관아건물

종 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177호 명 칭 경주부 관아건물 (慶州府 官衙建物)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관아 수량/면적 3동 지 정 일 2020.02.17 소 재 지 경상북도 경주시 동부동 195 외3 시 대 조선시대 (중기~후기) 소 유 자 기획재정부 관 리 자 기획재정부 일반설명 조선 정조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읍내전도’와 경주의 과거기록을 개편 증보한 ‘동경통지’를 통해 경주읍성내의 관아를 파악할 수 있다. 그 중에서 현재 관아의 내아에 해당하는 부지가 원형대로 잘 남아 있고 여기에는 관아관련건물이었던 내아가 자리잡고 있고, 양무당과 부사는 이곳으로 이축되어 잘 보존되고 있다. 현재 경주문화원이 이를 활용하고 있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160호) 불우헌 정극인 묘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60호) 명 칭 불우헌 정극인 묘 (不憂軒 丁克仁 墓)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수량/면적 문화재구역 715㎡, 보호구역 4,596㎡ 지 정 일 2023.02.24 소 재 지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정ㅁㅁ 관 리 자 정읍시 문화재설명 ​ 불우헌 정극인(1401∼1481)은 1453년 과거에 합격, 1469년 사간원정언 이후 정읍 칠보로 내려와 후진 양성 및 학문에 정진하면서 1475년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마련하고 고현동향약(古縣洞鄕約)을 시행함. 국내 최초의 가사문학작품인 의 저자이며, 사후 무성서원에 배향됨. ​ 정극인 묘역은 무성리 은석마을 산 중턱에 위치하며, 묘 위쪽으로 부인묘가 자리함. 묘역은 주산(主山)과 안..

전라북도 기념물 (제159호) 임실 가덕리 하가 구석기유적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59호) 명 칭 임실 가덕리 하가 구석기유적 (任實 加德里 下加 舊石器遺蹟) 분 류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 육상유물산포지 / 선사유물 수량/면적 지정구역 61필지 32,191㎡, 보호구역 40필지 63,726㎡ 지 정 일 2023.01.20 소 재 지 전라북도 임실군 신평면 가덕리 687-23번지 일대​ 시 대 후기구석기시대 소 유 자 임실군 관 리 자 임실군 문화재설명 ​ - 하가 유적은 해발 300∼400m의 고원분지에 속하는 용요산에서 뻗어내린 긴 능선의 완만한 끝자락에 자리하며, 섬진강(신평천)이 ‘S’자를 그리면서 흐르고 있다. 구석기 유존지역은 대략 10만㎡로 구릉지역에 넓게 자리한다. 2000년 후기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후 2006년부터 2011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158호) 완주 남계리유적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58호) 명 칭 완주 남계리유적 (完州 南溪里遺蹟)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수량/면적 610㎡,(묘 3기 포함) 지 정 일 2023.01.20 소 재 지 전라북도 완주군 ​ 이서면 남계리 169-65번지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전주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관 리 자 전주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문화재설명 ​ - 2021년 천주교 전주교구 주관으로 무연고 무덤을 이장하던 중 3기에서 유물 및 유해가 확인된 곳으로 . 조사결과 피장자는 1791년 신해박해 때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과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유지헌(윤지충의 동생)이다. 출토유물은 윤지충 묘에서 백자사발지석 1점. 권상연 묘에서 백자사발지석 1점. 윤지헌 묘에서 백자접씨 2점이 확인 되었으며...

전라북도 기념물 (제157호) 완주 상운리 고분군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57호) 명 칭 완주 상운리 고분군 (完州 上雲里 古墳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분구묘 수량/면적 18,303㎡ 지 정 일 2022.09.16 소 재 지 전라북도 완주군 시 대 마한 소 유 자 완주군 관 리 자 완주군 일반설명 - 상운리고분군은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 위치하며, 만경강 유역 일대의 조망권이 탁월한 곳에 입지한다. 2002년 시굴조사와 2003∼2006년 발굴조사 결과 마한의 분구묘(墳丘墓) 총 30여기가 확인되어 높은 밀집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장기간 조성된 무덤유적으로 마한사회의 변화상을 계기적으로 설명하는 표지유적으로 평가된다. - 마한전통이 응축된 분구묘와 철제 무구류, 장신구류, 마구류 등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단일유적 최다 단야..

전라북도 기념물 (제156호) 임실 월평리 산성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56호) 명 칭 임실 월평리 산성 (任實 月坪里 山城)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20,772㎡ 지 정 일 2022.08.12 소 재 지 전라북도 임실군 시 대 삼국시대 소 유 자 임실군 관 리 자 임실군 일반설명 월평리 산성은 임실 성수면 월평리 성밑 마을 북쪽 해발 250m 내외의 산 상에 위치하며 둘레 590m 내외의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3개소의 문지가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삼국∼조선시대에 걸쳐 운영되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특히 백제 때 초축 성벽의 축성기법과 건물지 및 추정집수지, 후삼국시대 건물지와 배수로 등이 조사되었다. 성벽은 내측과 외측을 모두 쌓은 협축식이며, 할석으로 허튼층 쌓기 방식이 채택되는 등 배제 산성의 특징적인 요소를..

전라북도 기념물 (제155호) 남원 사석리 고분군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55호) 명 칭 남원 사석리 고분군 (南原 沙石里 古墳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수량/면적 5,914㎡ 지 정 일 2022.08.12 소 재 지 전라북도 남원시 시 대 삼국시대 소 유 자 남원시 관 리 자 남원시 일반설명 사석리 고분군은 모두 10기의 고분으로 이루어졌으며, 2기(3호분, 8호분)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3호분은 마한의 전통 묘제 중의 하나인 주구가 봉토 둘레에 남아 있으며, 8호분은 봉토의 규모가 직경 12m 내외로 석실은 할석 및 괴석을 사용하여 네벽조임식으로 축조한 횡혈식석실분이며 관대시설이 확인되었다. 사석리고분군 중 3호분은 마한 분구묘의 전통이 백제 고분으로 흡수되는 과정이 확인되며, 8호분은 문틀식 현문, 중앙 연도를 통해..

전라북도 기념물 (제154호) 장수 오성리 봉화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54호) 명 칭 장수 오성리 봉화 (長水 五聖里 峰火) 분 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통신 / 봉수 수량/면적 4500㎡ 지 정 일 2022.06.10 소 재 지 전라북도 장수군 오성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장수군 관 리 자 장수군 일반설명 장수 오성리 봉화는 돌을 쌓아 올린 석축형 봉화로 평면의 형태가 방형(네모반듯한 모양)으로 긴 쪽이 8m 내외, 짧은 쪽이 6m 내외, 높이는 3m 정도의 규모이다. 장수군 일원에 자리한 봉화 중 그 외형이 가장 잘 보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봉화가 자리한 곳에서 북쪽으로 50m 지점에 봉화꾼(봉화군)이 주거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과 불씨 보관장소가 함께 확인돼 이목을 집중시켰다. 불씨 보관장소에서는 석영(차돌)이 뭉쳐져 ..

전라북도 기념물 (제153호) 남원향교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53호) 명 칭 남원향교 (南原鄕校)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향교 수량/면적 3,473.7㎡ 지 정 일 2022.05.20 소 재 지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길 43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남원향교 관 리 자 남원시 일반설명 남원향교는 1407년 전국 향교설치령에 따라 1410년(태종 10)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색(李穡, 1328∼1396)이 쓴 「남원부신치제용재기(南原府新置濟用財記)」에 보면 고려 말인 1359년에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1410년에 남원부 서쪽인 대곡산 기슭에 창건된 후 1428년 덕음봉 아래로 이전, 1443년 다시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9년에 명륜당을 재건하였지만 화재에 의해 소..

전라북도 기념물 (제152호)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52호) 명 칭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 (高敞 盤岩里 靑瓷窯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 요업 / 도자기가마 수량/면적 2,827㎡ 지 정 일 2022.01.14 소 재 지 전라북도 고창군 시 대 후백제~고려 소 유 자 고창군 관 리 자 고창군 일반설명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는 초기청자가마로써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10C 후반경부터 11C 후반경까지 운영됐고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의 변화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형 건물지까지 확인되는 등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유적으로 고고·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우수한것으로 평가됐다. 유적은 현재까지 발굴조사 결과, 크게 3기의 퇴적구릉과 벽돌가마 1기, 진흙가마 6기, 건물지 5기, 수혈 2기 등이 중첩돼 존재함이 밝혀졌다.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