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싹트는 骨肉相殘 3. 싹트는 骨肉相殘 개루왕이 신라와의 관계를 악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 뒤를 이은 초고왕 때에는 두 나라 사이의 분쟁이 그칠 사이가 없었다. 초고왕 二년 七월에는 선왕의 유환을 갚는다는 뜻에서 백제측에서 몰래 군사를 일으켜 신라 서쪽 변경 두 성을 습격하고, 남녀 一천명을 사.. 소설방/한국의 野史 2019.01.09
2. 悲運의 都彌夫妻 2. 悲運의 都彌夫妻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제 四대 개루왕(蓋婁王)은 성품이 공손하고 조행이 단정했다고 하는데 그런 왕이 도미(都彌)라는 백성에게 자행한 잔인한 처사는 자못 흥미 있는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 도미(都彌)는 이 때 백제 서울 한산(漢山)에 살고 있었다. .. 소설방/한국의 野史 2019.01.09
[백제 궁중비사] 1. 沸流와 溫祚 [백제 궁중비사] 1. 沸流와 溫祚 백제(百濟)의 건국은 왕자들의 암투가 빚어낸 결과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고구려(高句麗) 시조 고주몽(高朱蒙)은 북부여(北扶餘)에 있을 때 맞이한 예씨부인(禮氏夫人)의 몸에서 유리(類利)라는 아들을 낳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주몽이 북부여를 .. 소설방/한국의 野史 2019.01.08
19. 强者의 아들들 19. 强者의 아들들 연개소문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장자인 남생이 그의 뒤를 이어 막리지가 되었다. 그는 일찍이 나이 아홉 살 때에 그 부친의 소임인 선인(先人)이 되었다가 중리소형(中裏小兄)이 되었다가 다시 중리대형(中裏大兄)으로 국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남생은 또 그 성품이 순.. 소설방/한국의 野史 2019.01.08
18. 快傑 淵蓋蘇文 18. 快傑 淵蓋蘇文 고구려의 국세는 영양왕 때가 큰 고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양왕 二十九년 九월, 왕이 승하하자 그의 이복 아우인 건무(建武)가 즉위했는데 그가 곧 제 二十七대 영류왕이다. 고비에 다다른 고구려의 국운도 영류왕대에 이르자 비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소설방/한국의 野史 2019.01.08
17. 名將 乙支文德 17. 名將 乙支文德 이 무렵부터 고구려는 전성기를 한 고개 넘긴 셈이었다. 남으로는 신라가 국력을 길러 북상할 기세를 보였고 그에 따라 백제 역시 자주 침공하여 괴롭히고 있는데 한편 서쪽으로는 수(隋)라는 강대한 세력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중국 대륙은 삼국(三國), 위(魏), 진(晋) .. 소설방/한국의 野史 2019.01.08
16. 公主의 사랑 16. 公主의 사랑 온달은 평원왕(平原王 또는 平岡王이라고도 한다) 때의 사람으로 외모가 매우 어리석고 우둔하게 생겼으므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집안이 몹시 가난해서 떨어진 옷과 낡은 신을 끌고 거리를 다니며 구걸을 해서 홀어머니를 봉양했으므로 사람들은 .. 소설방/한국의 野史 2018.12.29
15. 小國의 君主 15. 小國의 君主 고국원왕은 어느 의미로 보면 부왕이 지나치게 판도를 벌린 뒷수습을 하다가 희생된 비극의 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은 즉위하자 부왕이 지나치게 자극해 놓은 이웃나라들과 화친을 맺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므로 10년에는 세자를 연왕(燕王)에게 보내어 그 비위.. 소설방/한국의 野史 2018.12.29
14. 幸運의 王孫 [고구려 궁중비사] 14. 幸運의 王孫 중천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이는 제13대 서천왕(西川王)이다. 서천왕은 이름을 약로(藥盧)라고 했는데 중천왕의 둘째 아들로서 성품이 어질고 총명하므로 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를 경애하여 마지않았다. 그는 나라 안으로는 백성들을 극진히 사랑하고 밖.. 소설방/한국의 野史 2018.12.18
13. 長髮의 佳人 [고구려 궁중비사] 13. 長髮의 佳人 동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은 제十二대 중천왕(中川王)이다. 왕은 이름을 연불(然弗)이라 했는데 동천왕의 아들이며 일찍이 동천왕 17년에 태자가 되었다. 준수한 외모와 탁월한 지력으로 새 임금의 자격이 충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 소설방/한국의 野史 2018.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