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6

오늘의 쉼터 2014. 8. 20. 21:08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26

 

 

 

 그로부터 한두 해가 지나도록 대원왕이 입조하지 않자

양광은 이를 핑계로 또다시 고구려 토벌을 계획하였지만 물론 실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사이에도 수나라 방방곡곡에서는 수만 혹은 수십만에 달하는 무리들이 계속해서

폭동과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초기에는 단순히 떼를 지어 관가를 습격하거나 부잣집의 재물을 약탈하는 산발적인

봉기 수준에 머물렀는데, 시일이 지날수록 강한 무리가 약한 무리를 아우르고

큰 무리가 작은 무리를 통합하여 조직적인 반란군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양광 역시 이 모든 내란의 근원이 세 번에 걸친 요동 정벌의 실패와 그로 빚어진

황실의 권위 추락에 있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가 주장하는 사태 해결의 방법이었다.

양광은 그렇기 때문에 기필코 요동 정벌에 성공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고,

실제로도 그것이 성사만 된다면 자신의 권위가 예전처럼 되살아나서 일시에 내란을

평정할 수 있으리라는 실로 터무니없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동일한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기야 일변 생각하면 이미 일을 거기까지 끌고 온 양광으로서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는 않았다.

을해(615년)에서 무인(618년) 연간을 거치면서 수나라 전토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수많은 폭도와

반란군들로 가히 군웅할거의 격전장을 방불케 했다.

게다가 수나라의 어지러움을 알아차린 북방의 동돌궐마저 종전의 제후국에서 태도를 돌변해

군사를 이끌고 수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때 동돌궐은 계민(啓民)의 지위를 계승한 젊은 시필(始畢)이 가한(可汗:족장)으로 있었다.

내란에 휩싸인 수나라로선 설상가상이요,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자 수나라의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 내부의 반란군과 외부의 침략자들을 한꺼번에 진압하고

그 여세를 몰아 신왕조(新王朝)를 세우려는 야심 찬 세력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수나라 장군이자 태원(太原) 지방의 유수(留守) 벼슬을 지내던 이연(李淵)이라는 자도

바로 그런 야심가 중의 하나였다.

아니 야심으로 치자면 이연보다는 오히려 그의 아들인 이세민(李世民) 쪽이 월등 더했다.

이세민은 수나라 문제 18년(598년) 12월, 이연과 두씨(竇氏) 사이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날 때 용 두 마리가 나타나 문 밖에서 사흘 동안 놀다가 사라진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이연은 기주(岐州)라는 곳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관상을 잘 보는 선비가 이연을 찾아와서,

“공은 귀인의 상을 가졌지만 그보다 더한 복은 공의 아들에게 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자식을 두셨소이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듣자 둘째아이가 태어나던 때의 기이한 일들이 떠올랐다.

“하면 기왕 보는 김에 내 둘째놈의 상도 좀 보아주시오.”

이연의 부탁을 받은 선비가 그를 따라가서 네 살바기 아들을 보고 나더니,

“과연 놀라운 상이오! 이 아이는 용과 봉황의 풍모를 두루 갖추었으니

하늘의 해처럼 귀하고 빛나게 될 게요!

이 아이의 나이가 스무 살이 되면 반드시 어지러운 세상을 구제하고

만백성을 편안하게 할 것이 틀림없소!”

하며 연신 혀를 차댔다.

 

깜짝 놀란 이연은 그 말이 밖으로 새어나가 자신을 위태롭게 할까 두려워

몰래 관상쟁이 선비를 죽이려 하였지만 그는 대문을 나서자 금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뒤 이연은 선비의 예언 가운데 제세안민(濟世安民)의 뜻을 취하여

둘째아들의 이름을 세민(世民)이라 지어 불렀다.

세민은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과 다르고 생각이 깊었으며 어떤 일을 대하든

절차와 과정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으므로 아버지인 이연조차도

아들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는 나이 열다섯에 이르자 나라의 수도인 대흥에서 유학하며 천하 각지에서 모여든

젊은이들과 신분 귀천을 따지지 않고 사귀었다.

그러나 나라가 점점 내란에 휩싸이고 정세가 어지럽게 변하자

낙양을 거쳐 그 아버지가 유수로 있던 북방의 태원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