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2

오늘의 쉼터 2014. 8. 24. 08:47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2

 

 

 

“하면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상국의 군대를 맞아 싸우셨습니까?”

“그것은 중국을 섬기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나라와 사직이 적의 침략으로 누란지경에 처했는데 어찌 싸우지 않을 수 있느냐?

나는 지금도 양제가 군사를 이끌고 온다면 마땅히 나가서 싸울 것이다.

하지만 수나라는 망하고 양제는 죽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당나라가 들어섰다. 아직 당나라의 뜻은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먼저 사신을 보내 조공하는 것은 상국을 섬기는 소국의 예를 다하는 것이다.”

“전하께서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요, 모든 문물이 그곳에서 비롯됐다고 하였사오나

신 등이 알기로 대륙의 무리는 팔방의 온갖 족속들이 함부로 뒤섞인 구구하고 잡박한

정체불명의 것들로서 한결같이 과장이 심하고 의심이 많으며 무지하고 탐욕스럽지 않은 자가 드뭅니다. 거기 비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추모대왕(고주몽)의 백성들로

그 근본이 맑은 물처럼 투명하옵고, 사람마다 태학과 경당에서 경전을 배우고 무예를 익혀

생각의 곧고 바른 것과 행동의 날쌔고 용맹스러운 것이 만국 만족 가운데 으뜸이올시다.

게다가 과하마를 타고 장창과 맥궁, 환도로 무장한 우리의 기마 군단은 가히 천하의 무적이라

대략 이삼십 기만 대오를 갖춰 달려나가도 적군 수만의 무리가 갈라지는 것이 흡사 대쪽과 같습니다.

전하께서는 넉 달 만에 북방 6천 리의 대평원을 달리며 후연(後燕)을 짓밟고 남연(南燕)을 복종시켰던

호태대왕의 위용을 본받으소서. 호태대왕께서는 옛조선(고조선)의 구토를 회복하시고

북방과 서방을 두루 경략하셨을 뿐 아니라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쓰시어 대제국의 위엄을

사해에 떨치셨나이다.

 어찌 그런 날이 다시 오지 않으리이까!”

노신 연태조가 옛일을 들어 눈물로 충간하자

왕은 대꾸가 궁하여 잠시 무춤거렸다. 하지만 이내,

“북방과 서방을 경략한 호태대왕의 위용을 내 어찌 모르겠소.

그러나 그것은 2백 년이나 지난 옛날의 일로 오늘과는 사뭇 형편이 다르오.

하물며 지금 백성들은 지쳐 있고 창고는 비었으며 사람마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곤란을 겪고 있지 않소? 어찌 이런 형편으로 또다시 군사를 일으켜 싸움을 벌인단 말이오?”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왕은 북진파의 젊은 신하들을 둘러보며 비웃듯이 말을 보탰다.

“몇 차례 양제의 대병을 물리친 것이 수많은 자의 눈과 귀를 멀게 하였구나.

중국으로 군사를 내면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과인이 소수의 군사를 가지고 해포와 외성에서 수병(水兵)을 무찌른 것이나

을지문덕이 육로에서 적병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싸움터가 모다 내지여서

산곡간의 지형 지세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문덕의 경우에는 천우신조의 요행까지 겹쳐 마침 비가 내려주었기에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게다.

하지만 군사를 이끌고 낯선 남의 땅으로 들어가는 일은 이와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너희는 을지문덕이 무슨 신이라도 되는 양 믿고 있는 모양이다만,

그가 제아무리 항우의 힘과 제갈량의 지략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30만도 못 되는 군사로 무엇을 어떻게 한단 말이냐?

본래 공격하는 쪽과 이를 방어하는 쪽에는 군사를 부리고 병법을 쓰는 데 천양지차가 있게 마련이다.

양제가 백만의 대군으로 우리에게 패하는 것을 보고도 그러는가?

중국을 치자는 너희의 얘기는 실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어불성설이다.

다시 이같은 말로 내 귀를 어지럽히는 자가 있다면 용서치 않으리라.

그런 줄 알고 다들 물러가라.”

부드럽고 조용조용했지만 어떤 위협까지도 느껴지는 말투였다.

결국 연태조 일행은 소득 없이 어전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을지 장군의 수고로움과 백성들의 고단함이 진실로 헛되게 생겼구나.

아, 피를 뿌리며 대적을 막아놓고는 어찌하여 보잘것없는 소적들에게 다시 조공을 바친단 말인가!”

연태조는 대궐 밖에 서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