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김구의 겸손 33. 김구의 겸손 김구는 이동녕, 김홍서, 서병호 등 옛 동지들을 만나 앞으로 할 일을 의논했다. 그때 임시정부가 조직 되여 있었다. 김구는 내무위원으로 피선되고, 안창호는 미주에서 상해로 건너와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김구는 안창호에게 정부의 수위를 요청했다. 「내무위원이란 .. 소설방/백두대간 2013.01.04
32. 2천만 동포야, 궐기하자 32. 2천만 동포야, 궐기하자 김구의 나이44세, 농촌생활에 한껏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 나라에 중대사가 발생했다. 기미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사태는 점점 심각하게 진행돼가고 있었다. 1919년 기미년 3월 1일 정오 무렵, 탑골공원이 있는 종로 거리는 수만 명의 군중으로 가득 메워졌다... 소설방/백두대간 2013.01.04
31. 망명자(亡命者)의 노래 31. 망명자(亡命者)의 노래 김구가 출옥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잔 형이 2년여 남짓 남았기에 감형이 되리라는 생각을 가끔 가져 보았는데 마침내 그 날이 온 것이다. 7월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감옥 방송으로 수인들은 모두 교회당(敎誨堂)으로 나오라 했다. 김.. 소설방/백두대간 2013.01.03
30. 가출옥, 석방 30. 가출옥, 석방 김구가 경성 감옥에서 인천감옥으로 이감되었다. 그 원인은 과장인 왜놈과 싸운 일 때문이었다. 그놈은 김구에 대한 감정으로, 김구를 고역이 심한 인천 항구를 축성하는 곳으로 보낸 것이다. 서대문 감옥에서는 김구의 동지들이 많아서 서로 위로도 하고 말벗도 되기도 .. 소설방/백두대간 2012.12.30
29. 숨겨진 인물들 29. 숨겨진 인물들 강도 주범 김 진사 김구는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았다. 다른 수인들은 감옥생활이 지긋지긋해서 어서 빨리 출옥했으면 하는 심정이었는데 반해 김구는 감옥살이 중에서도 배울 점은 꼭 기록하고, 연구하고, 사귈 사람이 있으면 눈여겨 두었다.. 소설방/백두대간 2012.12.30
28. 기약 없는 감옥생활 28. 기약 없는 감옥생활 김구와 동지들은 며칠 후에 경성감옥으로 이감되었다. 40여명이 넘는 동지들이 한꺼번에 들어가니, 썰렁하던 감옥이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지옥에 가서도 아는 사람이 많으면 지옥이 아니란 말도 있듯, 지옥보다 더 나은 것도 없는 경성감옥에 동지들의 얼굴을 .. 소설방/백두대간 2012.12.30
27. 추억의 저편에서 27. 추억의 저편에서 양산학교에서 근무했을 때 김구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학생으로 손두환(孫斗煥)이란 중학생이 있었다. 김구가 장련읍에서 봉양학교(鳳陽學校)에 근무할 때 그는 초립동이였다. 그의 부친 손창렴(孫昌濂)이 늦게 아들을 두니 품속에 넣고 기르다보니 버르장머.. 소설방/백두대간 2012.12.30
26. 악인 와타나베 형사 26. 악인 와타나베 형사 김구는 여러 차례 신물실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다했다. 너무 심한 고문 때문에 혹시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니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번번이 깨어났다. 사람이란 그 계획된 일을 마칠 때까지 신(神)은 기다린다는 말과 같이 죽었다 깨어나길 수차례, .. 소설방/백두대간 2012.12.30
25. 불은 꺼지고 25. 불은 꺼지고 예로부터 나라가 망하거나 위기에 처할 때는 많은 지사와 협객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춘추(春秋)시대의 군왕(君王)들과 군왕을 사이를 오간 지사와 협객이 하나둘이 아니었거늘, 그들은 하나같이 군왕을 중심으로 자신의 포부를 펴본 적이 있던 반면에, 우리의 경우 나라.. 소설방/백두대간 2012.12.29
24. 별들은 말한다. 24. 별들은 말한다. 내가 탁기세(卓基世) 노인을 다시 만난 것은 정말 우연히도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대한민국 독립선열 유족회」사무실에서였다. 다소 긴 이름의 이 단체는 35년 전에 독립운동을 한 분들 중 국가로부터 훈장이나 포상을 받은 독립투사의 후손으로 조직된 단체로 독.. 소설방/백두대간 2012.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