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29. 숨겨진 인물들

오늘의 쉼터 2012. 12. 30. 19:50

29. 숨겨진 인물들

 

강도 주범 김 진사


김구는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았다.
다른 수인들은 감옥생활이 지긋지긋해서 어서 빨리 출옥했으면 하는 심정이었는데 반해
김구는 감옥살이 중에서도 배울 점은 꼭 기록하고, 연구하고, 사귈 사람이 있으면 눈여겨
두었다가 사귀곤 했다.

  김구는 감옥바깥 사회와 감옥안의 사회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특히 인격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감옥안의 특이한 수인들의
행동반경이었다.
사람이란 자신의 수치감을 느끼는 과거의 이야기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하지 않는 법이다.

「내가 옛날에 어느 집에서 강도짓을 했소.」

  또는

「내가 젊은 시절, 순간적인 충동으로 아무 집 처녀를 욕보였소.」

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 법인데 감옥 안에서는 예외였다.
감옥 안에서는 오히려 이런 말들이 자랑거리가 되듯 튀어나온다.

 


「내가 그때 아무개를 죽였소.」

「아무개 집에 가서 불한당 짓(몹쓸 짓)을 했소.」

하며 자신의 과거를 까발린다.

  그 수인이 이야기한 강도질이나 불한당 짓으로 벌을 받는다면 별 문제가 없으나
감춰진 비밀을 서슴없이 꺼내는 것이다.

  김구가 어느 날 가마니 짜는 가마니 공장에서 최명식과 함께 소제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소제부란 가마니를 직접 짜는 역(役)이아니라 가마니 원료(새끼 같은 것)를 수인들에게
돌려주고  뜰을 소제하고 나면, 별다른 일이 없이 그저 수인들이 가마니 짜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왜놈 간수가 한 시간 정도 감시를 하고 있으면 분위기가  경색되지만 조선인 간수가 반시간 정도
 감시를 하면 마치 자유시간이나 되듯 떠들어 댄다.

「떠들지 마라!」

  조선인 간수가 이렇게 외치치지만 실제로는 왜놈 간수에게 잘 감시하고 있다는
신호에 불과하다.

  김구와 최명식은 200여명의 수인들 가운데 쓸만한 인격의 소유자가 있나하고
수인들의 얼굴을 면밀히 조사해봤다.
물론 얼굴이 인격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겠지만 오랜 경험으로 얼굴만 보고도
그 수인들의 과거행적, 또는 학식 같은 것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김구와 최명식은 일하는 수인들 틈으로 한차례씩 돌아보고 번호를 적어 서로 맞춰보았더니
일치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조금 특이하오.」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

 


   그 수인은 나이가 마흔 살은 족히 돼 보이고 눈으로만 살폈기 때문에 몸가짐이나
말투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일복(役衣)을 입었으나 다른 수인과 달리 눈에 정기(精氣)가 들어 있었다.
김구는 그 수인을 찾아가 인사를 청하고 물었다.

「본향이 어디요?」

「충청북도 괴산(槐山)에서 살았소.」

「징역은 얼마나 되시오?」

「강도죄로 5년 형이오. 재작년에 들어왔으니까 이제 3년 남았소.」

  이번엔 그가 김구에게 물었다.

  당신은?」

「안악에 살았고 강도죄로 15년, 작년에 입감했소.」

  그 수인은 탄식을 했다.

  짐이 무겁게 됐소. 초범이오?」

「그렇소.」

  이때 그들의 곁으로 왜놈의 간수가 왔다. 문답이 중단되고, 두 사람은 모른 체 헤어졌다.

  한 수인이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눈여겨보다가 김구에게 물었다.

「56호(김구의 수인번호)는 그 사람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소?」

「몰랐소. 당신은?」

「잘 알고 있소. 남도(南道) 도적치고 그 사람모르는 도적은 없을 거요.」

  김구는 큰 도적이란 말에 흥미가 생겨 수인에게 다시 물었다.

「어떤 사람인데 그렇소?」

「그 사람은 삼남(三南)의 불한당(不汗黨) 괴수 김 진사요. 이 감옥 내에서 그 사람의 도당이 여러 명 있었소.」

 


  진짜 진사가 아니라 큰 도둑에게 붙여진 별호였다.

「아직도 남아 있소?」

「몇 명은 죽었고, 사형을 받고, 방면된 자도 있소.」

하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간수에게 발각당할까 두려워서였다.

  그날 저녁, 김구가 감방에 들어오는데 마침 그 사람(김 진사)이 벌거벗고
김구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부터 노형에게 괴로움을 끼쳐 드리겠소.」

  김구는 큰 도적이 예사 인물이 아닌 것 같아서 반갑게 응대했다.

「이방으로 전방되었소?

「그렇소.」

  김 진사란 사람과 김구는 의복을 입고 점검을 마친 후 수인들에게 부탁 했다.

「간수의 신 끄는 소리가 들리면 알려주시오.」

  그런 다음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김구가 그에게 예를 갖춰 먼저 말을 꺼냈다.
 예를 갖춘다는 건 상대의 인격을 인정해 준다는 뜻이 된다.

「선생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노형께서 방을 옮겨 동거하게 되니 퍽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구가 말하자 김 진사가

「나 역시 동감입니다.」

하고 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김 진사가 마치 예수교 목사가 신자에게 교리 문답하듯이 질문을 했다.

「노형이 강도죄로 15년이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김 진사가 이번엔 김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말로 다시 물었다.

「그러면 계통으로 추설이오, 목단 설이오, 북대요? 행락(行樂)은 얼마동안이오?」

  김구는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김 진사를 쳐다보았다.

  김 진사는 빙긋이 웃었다.

「아마도 노형은 북대인 것 같소.」

  김구는 처음 들어보는 용어라 그저 침묵만 할뿐이었다.

  곁의 수인이 김 진사에게 김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국사범 강도 잡니다. 그런 말씀으로 물으면 대답을 못하지요.」

  감옥 말투로 찰 강도란「진짜」강도를 말하는 것이고, 계통 있는 도적이므로,
김구는 김 진사의 말에 뜻을 몰라 했다.

  김 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구가 생각하기에 무척 심지가 깊은 사람 같아 보였다.
강도짓을 했더라도 그냥 파렴치한 강도가 아니라 의미(?)있는 강도 같아 보였다.

「내가 노형이 강도 15년이라고 할 때, 아래위 살펴보아도 강도 냄새가 나질 않았소.
 그래서 북대인가 했소.」

 


  김구는 양산학교 시절, 여러 교사들과 모여 지낼 때 우리나라에 활빈당(活貧黨)이니
불한당이니 하는 비밀결사가 옛날부터 있어왔다는 것을 교사들로부터 들어서 짐작하고 있었다.

활빈당이란 일종의 의적(義賊)으로서 조직을 갖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긁어모은 졸부나
부패한 관리들의 재산을 털어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도적으로 허균이 쓴
홍길동전에도 등장하고 있다.
김 진사가 말하는 활빈당이란 삼남(三南)을 중심으로 게릴라식 방법으로 활동한 민중
무장집단으로 1900년에서 1904년에 이르는 동안 최고조에 달했다.

  이들은 진(鎭)을 치고 성(城)을 공격, 살인과 약탈을 하고, 신출귀몰하여 정부에서
포교와 군대를 동원해도 그 백리를 뽑지 못했다.
김구는 그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들의 뿌리를 뽑지 못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들에게는 아무도 범접치 못할 규율과 엄격한
훈련이 있을 텐데, 비록 도적의 무리라 할지라도 이들의 속성을 연구해서 앞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할 때 적절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교사들과 연구를 거듭했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사람이란 원래 도적놈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삼일정도 굶으면 누구나 도적질할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마음만 갖고서 도적질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월담해서 남의 재물을 탈취할 수 있으나 이것은 졸도 쪽의 짓이다.
수십 명, 때로는 수백 명의 도적 집단체가 되어 두목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려면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고, 이 통제를 한 사람이란 그만한 능력과 통속력을 갖춘 자라야
가능한 법이다.

  일찍이 장자(莊子)가 말한 성도(聖盜)가 되기 위해선 도둑의 두목에게 범인보다
더 높은 인격과 조직과 그리고 말썽 없는 장물의 분배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것은 관리하는 사람이란 일반관리보다 더 높은 인격자라야만 한다.

 


그래서 김구는 이 단체를 연구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구는 도적질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효율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이들의 조직과 활동 등을 원용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 진사에게 바짝 들러붙어 관심을 갖고 물었다.
김 진사란 자가 과연 자신이 소속한 도적 단체의 실상을 처음 대면하는
김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김구는 자신부터 솔직해지려 했다.
그래서 김구는 자신의 신분부터 알렸다.

「나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귀 단체의 조직 훈련을 연구해보았으나
단서를 얻지 못했습니다.
내 연구의 목적이 귀단 체에게 위해를 가함이 아니고 후일 나라를 바로 잡는데 사용하려하니
자세히 말씀해 주시기 간청 드립니다.」

  김구는 김 진사가 비록 도적 단체의 일원이라지만 상당한 인격자로 생각 들어
극진한 예를 갖추었다.
김 진사의 눈에 자신의 비열한 자로 비추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 진사가 김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마도 김구에게 자신이 소속한 단체의 모든 것을 알려줘도 될만한 인물인가를「
검색」하는 눈초리였다.
그 눈매에 정기가 번뜩였다. 잠시 후 김구를 믿었는지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을 믿고 이야기하겠소. 선생도 아마 짐작은 하고 있을 거요.
우리 비밀결사의 시원과 유래가 여러 백년이 됐는데도 그 내막을 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소.
그것은 기강이 엄격하기 때문이오. 나라가 망함에 따라 예로부터 내려오던 모든 기강이
추락된 오늘날에도 조선에서는 아직도 벌(蜂)의 법과 도적놈의 법은 그대로 남아 있소.
노형은 북대로 생각하고, 알지 못하시는 것을 여러 가지 말로 물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김 진사의 말인즉, 김구를 처음 대면했을 때 강도 15년이라 해서 북대,

즉 무식한 자듯이 뜨내기로 작당하여 민가나 털고 약탈하는 자로 살았다는 것이다.

  김 진사가 침을 한번 삼키고 말을 이어갔다.

「조선시대 이전을 잘 모르겠소.
조선 시대 이후의 도적의 계파와 시원은 이렇습니다.
도적이란 이름부터 명예롭지 못한데 누가 도적질을 좋은 직업으로 알고 행하겠소만,
대개가 불평자의 반동적 심리에서 기인된 것이외다.」

  김 진사는 귀동냥을 많이 했던 들은 풍월에서였건 간에 도적에 대한 역사적인
시원(始原)까지 제법 문자까지 동원해서 김구에게 설명해주었다.

도적이긴 하지만 예사 도적은 아닌 것 같았다.

「고려만 이성계가 신하로서 위화도 회군을 한 것은 노형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위화도에서 돌아온 이성계는 임금을 쳐서 나라를 빼앗았소.
당시에 두문동으로 들어간 선비들이 72명이 있었는데 그 선비들은 절대로 나오질 않았소.
결국 이성계는 그들을 불태워 죽였소.
그러한 지사들이 비밀리에 연락 혹은 집단으로 약한 자를 구제하고 기운 것을 바로 잡고자
하는 선의와 질서를 파괴하고자하는 보복적 대의를 표방하고 은밀한 곳에 동지들을 모았습니다.」

  김 진사는 두문동 72인과 연관되어 오늘의 도적의 생태를 설명했다.
그 역시도적이라지만 배운 자가 갖고 있는 반골적(反骨的) 기질이 있었던 것이다.
도적이란 목적이 순수할 때 그 도적에게 갖다 붙이는 이름이 다양하다.
의적이 될 수도 있고, 무리를 짓는다면 활빈당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재물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도적은 도적의 한계가 있는 법이다.

 


  김 진사가 다시 이야기했다.

「조선의 눈총과 국록을 먹은 자, 백성을 착취하는 소위 양반이라는

졸속과 부유한 자의 재물을 탈취하여 가난한 백성을 구제했는데 나라에서는

도적이란 이름을 붙여 500여 년간 압박, 씨를 말리려 했던 것이오.」

「그럼 추설이나 목란 설은 무슨 의미입니까?」

김구가 물었다.

「이 사람들의 집단이 강원도에 근거를 둔 것을 일컬어 목란설이라고 했고,
삼남에 있는 기관은 추설이라고 했소.
목단설과 추설 두 기관에 속한 사람끼리는 초면에는 말이 통하고 동지로 인정하지만
북대에 대해서는 두 설이 적대시 하는 규율을 정했소.
북대를 만나면 무조건 사형(死刑)시켰소.
북대는 도적은 도적이지만 근본이 없는 도적이고, 아무런 쓸모없는 도적이기 때문이오.」

  김구는 듣고만 있었다. 김 진사의 이야기는 상당히 엄숙했다.
마치 도인이 철학을 설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사지식도 만만치가 않았다.

「목단, 추 양설의 최고 수령은 노 사장(老師丈)이라고 하오. 일종의 총사령관인 셈이오.
그 아래 총무는 유사(有司)라고 하오. 각 지방 주관자도 유사라고 하오. 양설에서 하는
공동대회(큰 도적질)를 큰 장 부른다고 하오. 각기 단독으로 부하를 소집하는 것을 「장」
부른다고 하오.」

  김 진사는 김구에게 도적의 내력과 큰 도적과 작은 도적, 좀도적에 대한 차이, 활동방법,
체계를 고급스런 말로 설명했다.
김 진사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족보 있는 도적의 체계와 활동범위, 방법, 배분, 규율 같은
것들이었다.

               

  일본 같은 경우 야쿠자란 도적이 있고 이탈리아의 경우,
시칠리 섬에서 결성한 마피아란 도적이 있다.
이탈리아가 가톨릭 국가이기 때문에 비록 마피아 단에 속해있는 도적이지만
가톨릭의 신자이고, 마피아의 조직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도덕의 두목은 부하들의
대부(代父)가 돼 주어 가족(패밀리)을 결성한다. 배신자를 배출하지 않게 하기위해서이다.

  김 진사는 한국의 족보 있는 도적을 체계 있게 설명했다.

「큰 장은 종전에는 한 차례씩 불렸으나 요즘에는 재알이(왜놈)가 하도 심하게 구는 탓으로
폐지했소.
종전에는 큰 장을 부른 뒤에는 어느 고을을 털던지, 큰 장을 치는 운동이 생겼소.
큰 장을 부르는 본뜻은 도적질만 하는 거의 아니고 설의 공사(公事)를 처리하는 것인데,
그때에 시위삼아 한차례 하는 것이오.
큰 장을 부르는 통지에서 각 도, 각 지방의 책임자에게 부하 누구누구 몇 명을 파송하라하면
어김없는데 흔히 큰 시장이나 사찰로 부르게 되오. 여기에서 각자의 임무가 부여되오.」

  명령을 받고 출정(도적질)하러 가는 데는 각자가 변장을 한다.
돌림 장수(떠돌이 행상)도, 중으로, 상제, 양반행차로, 등짐장사 등등 신분을 위장해서
목적지는 간다.

  김 진사는 자신의 이야기에 김구가 흥미를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였는지
조금 더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얼마 전에 하동(河童) 화개장(花開場)에서 큰 장을 부르는데 볼만했소.
바로 그 장날을 이용한 것이오.」

  김 진사의 요지는 아래와 같았다.

  화개장날, 여기저기에서 장을 보러오는 장사치로 시장은 활기에 넘쳤다.
거기에 도적들도 물론 섞여있었다. 시장이 한창(中場)일 때 어떤 행상(行喪)이 들어왔다.
상여가 시장 한복판으로 들어온 것이다. 물론 상여꾼들 모두가 도적놈들이었다.

 


상주가 삼 형제이고, 그 뒤에 상복 입은 사람들과 말위에서 초상 하는 사람도 있고,
상여가 비단으로 꾸민 것으로 보아 괜찮은 집의 상여 같았다.
상여꾼들도 모두 소복을 했다. 상여꾼들은 상여를 시장 안 어떤 큰 주점 뜰에 세워놓고,
이어서 상주들이 죽장(竹丈)을 짚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했다.

  이때 어떤 호상객 한명이 주점에서 개장국(狗湯)한 그릇을 사갖고 와서 상주에게 권했다.
상주가 화를 내지 못하고 점잖게,

「그것은 개국 아니오?」

하고 물었다.

「그렇소.」

「이 무슨 무례한 희롱인가! 상제에게 개국을 권하다니.」

  그러나 호상객은 술 취한 음성으로 계속 이사람 저사람 상제들을 찾아다니며 권했다.
사람을 잃은 슬픔에서 웬만하면 참으려고 애썼으나 호상객의 오만무례한 행동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노기를 띠고 일간했다.

「아무리 배워먹지 못한 건달패라 해도 상제더러 개국을 먹으라고 하는 놈이 어디 있나?」

「친구가 권하는 개장국을 먹으면 못쓰는가?」

  호상객은 비켜서지 않고 싸움을 걸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다른 호상인 들과 시장사람들이 이 흥미로운(?) 다툼에 모여들었다.
 개장국을 들고 설치던 호상객은 개장국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상제들이 호상의 멱살을 잡아챘고, 이어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말렸다.
장꾼들이 점점 더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은 말리고 어떤 사람은 낄낄거리며 웃고 할 때 상주 3형제가 갖고 있던
죽장으로 상여를 마구 부쉈다.
그리고 상여위에 얹어있던 관(棺)의 뚜껑을 활짝 열었다. 관속에는 시신은 없고
5연발 장총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때 호상꾼, 상주, 상여꾼, 조금 전에 시비를 걸던 호상인 들이 총 한 자루씩 나눠 갖고,
사방 골목을 지켜 상인들의 출입을 막았다.

  그들은 시장에서 방금 거래돼 받은 돈과 집 금고에 넣어둔 부상(富商)의돈 모두를
자루에 넣어갖고 쌍계사(절)로 들어가 거기서 계산을 끝나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른바 공사(公事)를 마친 것이다.

  김구는 김 진사의 설명에 과연 이런 도적들도 있나싶어 한참동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뜨내기 도적만 있는 줄 알았지 이런 떼도둑의 계획적 범죄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 것이다.
김 진사가 다시 이야기했다.

「김 선생의 황해도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니 아마도 이런 소문을 들었을 줄 압니다.
얼마 전에 청단장(靑丹場)을 치고 곡산(谷山)군수를 죽인 소문 말이오.」

「그런 일이 있었죠.」

  김구가 시인했다.

「그때 말이오. 청단장을 칠 때는 내가 총지휘를 했었소.
나는 어떤 양반의 행차로 가장하고 네 사람이 끄는 사인교(四人轎)를 타고 따르던
하인들을 늘어세워 호기 있게 달려들어 시장사무를 무사히 마쳤소.
그리고 거기서 곡산 군아를 습격했는데 곡산군수집 놈이 하도 백성을 못살게 해서
죽여 버렸소.」

  김 진사는 태연히 말했다.


바깥세상에서는 자신의 범죄를 결코 발설하지 않는 법인데 감옥 안에서는
기소되지 않은 숨은 범죄도 까놓기 마련이다.

 


「노형의 이번 징역이 그 사실 때문이오?」

   김구가 묻자 김 진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만약 그 사실이 탄로 났다면 5년만 받겠습니까?
이미 징역을 면키 어려운 상황에서 적당히 가벼운 사건을 실토했던 것이오.」

「조직 방법이 세밀한데 어떻게 계획하시오?」

「이 감옥에서 일일이 설명할 순 없지만 간단히 이야기하겠소.
노형이 단서를 못 잡았다는데 사실은 그 이유가 있소. 우리 도당은 수효는 적어도
정확한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각도 지방 책임 유사에게 노사장이 매년 각분(分)설에서
자격자 한명씩을 정밀 검사하여 보고케 하오.」

  유능한 도적후보를 엄밀히 추천하여 선발한다는 이야기였다. 오합지졸 도적보다 선발된
도적은 그 능력도 능력이려니와 책임감과 의리에 있어서 남달라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자격이란 것이 있지 않소?」

「물론이오. 눈빛이 굳세고 맑을 것, 아래가 맑고 담력이 강실(强實)하고,
성품이 침착한 자라야 하오. 이런 자격을 갖고 있는 자를 은밀히 보고하면
설의 지도부에서 보고오린 유사도 모르게 비밀조사를 하오.
조사가 서로 맞아떨어질 때 그 설의 책임유사에게 맡겨 합격자를 완전한 도적놈으로 만드오.」

도적의 선발과정이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는 것이다.
뜨내기 강도범이나 절도범, 좀도둑 같은 자들은 해당사항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판매사에도 급이 있듯,
전자제품 종류나 그 외 값이 헐한 옷가지 종류를 파는 판매사원보다 고급물건,
일테면 몇 백, 몇 천 만 원짜리 자동차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 급이 높듯, 도적도
「설」에 속한 도적은 일급인 셈이었다.
도적에 선발된 합격자는 자신의 신상명세,
요즘으로 치면 신원조회를 하는 것을 모르게 벌인다.

 


「책임 유사가 노 사장(총두목)의 분부를 받들어 자격자에게 착수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가 있소.」

  김 진사는 그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자격자의 취미와 성품은 우선 면밀히 조사하오.
사람마다 가치를 보는 눈과 취미가 다양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자격자의 비위에 맞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오. 일테면 계집을 밝히는 자에겐 계집을, 술을 즐겨하는 자는
좋은 술을, 재물을 좋아하는 자는 돈을 줘서 정을 베풀어 환심을 사오.
시간이 지나면 친형제 이상이 돼 이때부터 도적의 훈련을 시키오.」

  그 방법이란 이렇다.
도적훈련 책임자가 도적 후보생을 데리고 술집 같은 곳에 가서 놀다가
어떤 집 문 앞에 이르러 책임자가

「그대가 잠시 동안만 이 문밖에서 기다려 주면 내가 이집에 들어가서 주인을 보고
곧 나오겠다.」

고 한다.
도적 후보생은 그러마하고 기다려 준다. 별것 아닌 부탁이기 때문이다.

  이때 갑자기 안마당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도적이야!」

  이와 때를 같이 해서 포교들이 달려 나오고 하인배들이 몽둥이를 들고 문 앞에 서있던
자격자를 포박한다.
자격자는「망보는」공범이 되는 셈이다.
 이어서 안마당으로 들어갔던 조금 전까지 친밀했던 책임자를 포승에 묶고 깊은
산골로 데리고 가 신문을 한다.

 


  자격자는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고문을 한다.
마치 포도청에서 죄인을 고문하는 것과 똑같이 한다.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자격자의 허벅지를 찌르기도 하고,
고추가로 섞은 물로 눈을 씻기기도 한다.

「네가 도적이지? 바른대로 말하라!」

  이때 자격자가 도적이라고 자백하면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죽여 버리다.
그러나 끝까지 도적이 아니라고 우긴다면, 포승을 풀어주고 요릿집으로 데려가
술과 고기를 실컷 먹이고 입당식을 거행한다.

  입당식은 책임 유사가 높은 자리에 앉고 자격자를 꿇어앉히고 입을 벌리라고 한 후,
 칼을 빼 그 끝을 입안에 넣고 자격자에게

「위아래 이빨로 칼끝을 힘차게 문다!」 고 명령한다.

그리고 다시 칼을 입안에서 빼 칼집에 넣고 자격자에게 맹세하는 서약을 시킨다.

「너는 하늘을 알고 땅을 알고, 사람을 안즉, 확실히 우리의 동지로 인정한다.」

라고 신고한다.

   이와 같은 의식이 끝난 후, 입당자 모두를 인솔하여 예정한 대로 한차례의 강도질을 시킨다.
이를테면 시범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때 빼앗은 장물을 신입당원까지 골고루 분배한다.

김 진사가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김구가 틈새를 이용해 물었다.

「도적이 되면 사방에 흩어져서 움직일 텐데 도적끼리 통하는 표시가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한두 명이라면 몰라도 떼도적일 텐데 만나서 충동을 피하려면 묘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진사가 머리를 끄덕였다.

「잘 말씀해 주었소. 우리의 표별(表別)은 자주 자주,
상황에 맞춰 고치기 때문에 일률적이고 영구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소.
그러나 표별은 있소.」

하며 실례를 들어 설명했다. 언젠간 여관에 대상인(大商人) 몇 명이 속박하고 있음을
눈치 채고 밤중에 도당을 이끌고 침입, 재물을 약탈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낮은 땅에 대고 꿈쩍을 못하는 자 가운데 한 사람이 반벙어리 말로,

「에구 나도 장(醬)담글 때 추렴돈 석 냥 냈는데요.」

했다.

「장 담글 때 추렴 돈 석 냥」이란 것은 이들끼리 통하는 은어인 셈이었다.
눈치를 챌 도적 두목은

「저놈 방자스럽게 무슨 수작인가? 저 놈부터 끌고 가라.」

하고는 이것저것 물었다.
그 결과 확실한 동지가 판명되자 그 동지까지 장물을 분배한다는 것이다.
김구는 도적끼리 혹시 장물(도둑물건)을 분배할 때 싸움이 나니
그 일로 밀고를 하거나해서 체포되는 경우를 말했다.

  김 진사는 이 말에 빙긋이 웃었다.

「그건 붕대(뜨내기 도적)의소 형이오.
 우리 계통 있는 도적은 절대 그런 치사한 일은 벌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김구가 물었다.

「이유가 있소. 우리는 뜨내기 도적처럼 도적질을 자주하는 것이 아니오.
1년에 한 차례지요.
 많아야 두서너 차례하곤 일년을 마감합니다.
장물 나누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의 관리 월급 주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공평합니다.
장물 분배가 공평해야지 분단이 없기 때문이지요.」

하며 그 방법을 설명했다.

 


「장물에 눈독이 심하면 큰 도적의 자격이 없소. 예로부터 정해진 규칙이 있소.
 백분의 몇은 노 사장에게, 그 다음 각 지방의 공용,
몇 분은 도적질하다가 희생당한 유족의 생계비,
이 처럼 공평히 분배한 다음 용감하게 도적질에 앞 장선 자에게 특별 장려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그런 사고가 났소.」

   김 진사는 큰 도적을 재물에 달관해야한다고 했다.
재물을 사유(私有)로 할 생각이 있는지는 대도(大盜)가 되질 못한다는 것이다.
거기엔 또 세 가지 죽을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계율은 철저하고. 도적에게도 수신제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 놓은 것이오.」

  김 진사가 사형 죄에 해당하는 조문을 이야기했다.

  첫째, 동지의 처첩을 간통한 자

  둘째, 체포, 신문 때 자기 동료를 실토한자

  셋째, 도적질할 때 장물을 몰래 은닉한자

  넷째, 동료의 재물을 강탈한 자가 그것이오.」

「그럼 이런 조항에 위반된 자가 도주를 하면 어떻게 하오?」

「그건 부처님의 손바닥에 놓인 손오공신세요.
포교를 피해 도주하면 생명은 건질 수 있으나 우리의 법으로 사형을 받고
우리의 그물을 빠져나가기는 극히 어렵소.」

  김구가 또 물었다.

「만일, 도적질하기가 싫어졌다든가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쇠진해 더 이상 도적질을
감당할 능력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겠소?」

 


  요즘으로 치면 명예토진이나 정년퇴진의 경우를 이야기했다.

「도적질을 하다보면 그 일이 싫증이 나고 죄책감 때문에 쉬고 싶은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이럴 경우 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뭔가요.」

「싫다는 걸 굳이 강요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약조를 합시다. 절대 비밀을 엄수하고,
동지가 급한 경우 숨겨준다는 약속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행락(도적질)을 면해줍니다.」

「행락이 무엇이오?」

「일반적으로 즐거운 놀이라고 하는데 우리야 놀이랄 게 뭐있겠소.
도적질하는 것이 놀이가 아니겠소.」

「행락을 하다가 포교에게 체포되면 살려낼 방법이 없겠소?」

  김구는 점점 더 깊숙이 물었다.

  김 진사가 대답했다.

「김 선생!」

「예.」

  김 진사가 김구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그 눈총에서 빛이 났다. 눈동자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김 선생, 우리라고 잡히는 족족 모두 죽는다면 여러 백 년 동안 내려오면서
우리 같은 도적은 씨가 말랐을 것이요.
 우리 떼설이(떼도적)가 민간에게만 잇지 않소.
포도청과 군대에 골고루 박아 두었소.
포도청과 군대의 요절을 갖고 있게 한 다음,
어느 도에서 도적이 잡힌 후 압송돼 서울로 가서는 판결을 내리게 되오.」

  김 진사의 이야기는 이렇다.

  도적가운데는 글자를 잘 알거나 무예가 있는 자가 많아서 이들을 관리로 만든다는 것이다.
 관리가 목적이 아니라 도적의 비호세력이 되고, 도적을 엄호해서,
도적이 질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마치 이탈리아의 마피아가 패밀리(가족)등을 머리 좋은 자를 공부시녀 변호사와 검사,
경찰관, 관리 등으로 만드는 것과 흡사하다.


도적이 잡혀서 서울로 압송되면 도적이 뿌리부터 판별한다는 것인데 도적에게는 정적(正賊),
즉 진짜「설」과 가짜 도적(假賊), 북대를 판별하여 북대,

즉 뜨내기 도적은 지방 척결에 맡기고, 정적은 서우로 압송,

동료를 고발하거나 실토한 자는 사형케 하고, 자기 죄만 공손한 자는
끝까지 보호해 살려서 옷과 밥을 주고 출옥시켜 준다는 것이다.

김 진사의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김구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국사를 위해 원대한 계획을 품고, 신민회의 한사람이 됐지만,
김 진사와 같은 강도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김구는 도적단에 비하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조직과 훈련을 어린애 장난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옥중에서는 수인들 가운데 강도를 제일로 쳐주었다.
왜놈의 끄나풀이거나 헌병 보조원, 왜놈의 관리를 하다가 수감된 자는

감히 수인들 앞에 머리도 들지 못했다.

  또 사기, 절도, 횡령범들도 강도 앞에서는 꼼짝도 못했다.

 따라서 감옥안의 수인들의 질서는 강도들이 잡고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김구의 동지 가운데 떼도적인 목단설과 추설강도보다 월등한 행동을 한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 가운데의 한사람이 고정화(高貞華)였다.
또 같은 성씨인 고봉수(高鳳洙)가 있었다. 고봉수는 담임간수를 발로 걷어차 고꾸라뜨렸다.

「왜놈 간수가 함부로! 사람을 뭘 로 보는가!」

  그러자 간수는 고봉수를 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관에게 수인에게 욕을 당했다면 질책을 받을까 봐서 였다.
고봉수는 그 일로 인해 상표까지 받았던 것이다.

 


  또 한사람, 도인권이란 수인이 있었다.

  도인권은 평안도 용강 사람으로 노백린, 김희산, 이갑 등 여러 장령(將領)에게
군사학을 배워 정교(正校)의 군진을 가졌다가 왜놈에게 군대가 해산된 후
 향리에게 거주하다 양산학교의 교사가 됐던 사람이다.

  사람이 트이고 활기가 있어 대장부였다.
이 사람이 1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예수교를 믿게 되었다.

  왜놈의 교회사(敎誨師)들이 일요일이면 불상 앞에서 머리를 숙이게 하고
 예불을 하게 하면 도인권은 머리를 까딱하지 않고 노려보았다.

  교회사란 수인들의 교화를 위해 파견된 중이나 덕망 있는 자들을 말한다.
왜놈의 종교는 불교이기 때문에 불교식으로 예불을 들이게 하는 것이 감옥안의 상례였다.
수인들은 불교는 믿지 않지만 간수들의 눈초리가 무서워 믿는 체 했던 것이다.

「네놈은 누구인데 부처님 앞에 예를 표하지 않나?」

  도인권이 똑바로 대답했다.

「나는 예수교인이요. 예수교인은 우상 앞에 절을 하지 않소.」

「아니 이놈이! 우상이라니!」

  왜놈들이 도인권의 머리를 쥐어박고 구타를 했다.
그러나 도인권은 까딱 않았다.

「너희 놈들 법에도 신앙의 자유는 있지 않은가?
감옥 법에도 수인들이 불교만 신앙하라는 조문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이렇게 무례한 짓을 하는 너희 놈들은 사람도 아니다.」

「뭐라고 이놈 봐라?」

  도인권이 침착하게 말했다.

「너희 놈들은 이 도인권이가 죄인이라고 하나 신(神)의 눈에는
너희 놈들이 죄인이 될 수가 있다.」

 


  도인권이 버티는 바람에 결국 왜놈들이 굴복했다. 전옥은

「교화시간에 불상에 절하는 것은 너희들의 자유에 맡긴다.」

하면서 도인권에게 신앙의 자유를 지켰다는 의지가 가상하다고 상표와 상장을 주었다.
그러나 도인권은 이를 물리쳤다.

왜놈들은 신앙의 자유문제는 왜놈들의 통치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또 감옥 내에서 일일이 이것을 간섭하면 오히려 말썽이 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량을 베푼 셈이다.

「나는 수인이 아니다.
상표나 상장은 수인이 개전하는 정이 있을 때 받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죄가 없었다. 있다면 왜놈의 세력이 강하고 우리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도인권은 끝끝내 거절했다.

  그 후에 그는 가출옥의 명이 떨어졌다.
도인권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웬만한 수인들은 가출옥하면 지긋지긋한 감방생활에서 풀려난다는 기쁨으로
허리를 굽히고 갖은 예를 표하지만 도인권은 달랐다.

「가출옥이란 합당하지 않다.
내 죄가 원래 없는데 출옥이면 출옥이지 가출옥이 무엇인가?
기한까지 있다가 나가겠다.」

도인권의 이 같은 의기는 감히 춘설이나 목단설 같은 떼도적이 감히 따를 수 없는 행동이었다.

마치 옛 시의 구절

「온 산의 마른 나무 가운데, 잎사귀하나만 푸르다.」

는 것처럼, 또 불서(佛書)에

「홀로 우뚝 솟아 넓은 도량을 펼치고, 천하를 걸어감에 누가 나를 따르랴」는 구절을
김구는 그를 위해 암송해 주었다.

  김구는 도인권말고도 또 한사람 의병장을 생각했다.

수많은 의병전쟁에서 큰 전과를 올리며 싸우며 왜적의 죄상을 10개조를 격문을 붙이고
농민을 격려 전투하며 순종에게 백년대계를 상소한 의병장 이성용은 재판정에서 끝까지
굴하지 않고 넘치는 기백을 그대로 지키다가 순국했다.

 


  신문을 받을 때 담당관이 첫 번째 물었다.

  “글을 많이 읽었다는데 과연 그런가?”

  “사서삼경이외에 제자백가의 서적도 읽었다.”

  두 번 물었다.

  “재산이 있는가?”

  “빈한한 선비가 어찌 있을 이치가 있느냐”

  세 번째 물었다.

  “무슨 목적으로 감히 폭도 노릇을 했느냐?"

  “너희 일본 놈들은 배격하기 위한 것이다.”

   네 번째 물었다.

  “통솔한 부하가 사백 명이 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냐?”

  “그렇다.”

  다섯 번째 물었다.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이래로 천황의 은덕이 망극하여 일반 신민이 모두 다 즐거워하는데,
너도 역시 충실한 국민이 되고 싶지 않느냐?”

  이석용은 크게 웃음을 웃고 대답했다.

  “차라리 대한의 대와 닭이 될지언정 네 나라 신하되기는 원친 않는다.”

  여섯 번째 물었다.

  “의병이라 자칭하면서 인명을 살해하고, 마을에 불을 놓고, 공금을 강탈하였으니,
이 무슨 불법의 행동이냐?”

  “제 나라를 배반하고 일본 놈들에게 붙는 자는 부득불 죽이고 집을 태울 수밖에 없었으며,
공금에 있어서는 본시 대한제국 국세이다.
임금이 자식이 찾아 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무엇이 불법이란  말이야?”

 


  일곱 번째 물었다.

  “그렇다면 군대를 해산하고 종적을 숨긴 것은 무엇 때문이냐.“

  “시기가 불리하여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잠깐 동안 군사를 휴식하고
기회를 기다리기 위해 그런 것이다.”

  여덟 번째 물었다.

  충신·의사라고 자부하면서 이미 성공 못할 줄을 알았다면 죽음이 있을 따름인데,
하필 구구히 살아남아서 이런 곤욕을 당하느냐?“

  “네놈들이 어찌 내가 죽지 않을 까닭을 알겠느냐?
옛날 제갈공명은 여섯 차례나 기산에 나가서 싸웠고, 강유가 아홉 번째 중원을  친 것도
모두 성공 못할 줄을 알면서도 강행한 것이다.
비록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아도 끝까지 노력하여 죽은 뒤에야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단단한 국사로서 후일에 광복을  계획하지 않고 어찌 스스로 죽을 수 있겠느냐?”

  아홉 번째 물었다.

  “‘창의록(倡義錄)’을 장황하게 서술한 것은 무슨 소용이 있어서 그랬으며, ’
불망록(不忘綠)‘은 무슨 의미가 있어 그렇게 수다하게 적었느냐?”

  “‘창의록’으로 말하면 충분심이 격동하여 그렇게 아니할 수 없었고,
또 그것을 일본 정부에 전달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불망록’으로 말하면 의명을 일으킨 5,6년에 많은 친구의 보조를 받았기 때문에
 뒷날 은혜를 갚고자 해서 그런 것이다.”

  열 번째 물었다.

 


  “사실 신문은 이로써 끝났다.
너도 자신에게 이익 될 말이 있으면 기탄없이 하라.”

  “지금 포로가 되었으니 다만 빨리 죽여주기 바랄 따름이다.
무슨 자신을 유리하게 할 말이 있겠느냐.
비록 그러하나 다만  한 되는 바는 이토가 안중근의 손에 죽었는데,
나는 사이토와 우리나라 오적·칠적을 죽이려다가 못 죽인 것이요.
또 동경, 대판에 불을 지르려다 못한 것이다.”

  재판장이 출석 하면서 기립하라고 청하므로 이석용은 말했다.

  “기립이란 바로 경의를 표하는 것인데,
원수 놈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치가 어디에 있느냐?
이 때문에 전일에도 실행되지 않았던 것인데 어찌 번거롭게 하느냐?”

  왜놈들이 간수들을 시켜 강제로 일으키므로 이석용은 크게 꾸짖었다.

  “네놈들이 강제로 나를 일으키지만 마음이 안 일어나는데 어쩌겠느냐?”

  판사가 사형선고를 분명히 읽고 퇴석하므로 이석용은 태연히 말했다.

  “집안일을 부탁 하고자 하니 내 아들과 면회 시켜 주기를 청한다.”

  왜놈들이 아들을 끌고 와서 이석용 앞에 절을 시켰다.
이석용은  아들에게 다만 효도하고 우애하라는 두어 마디 말을 부탁 했는데,
눈빛이 번쩍여 이채를 띠었다.


김구의 동료 수인 중에 이종근(李種根)이란 20세 된 청년이었다.
이종근은 의병장인 이진룡의 일가 동생뻘 되는 사람이었다. 
이종근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일본어를 잘 했다.
 러, 일 전쟁 때 왜장 아카시(明石)의 통역노릇을 하다가 나중에 헌병보조원이 되었다.

 


그런데 친척형인 이진룡이 의병을 일으켜 종근을 불러와 사형을 집행하려 했다.
 이진룡은 친척 동생을 죽이기에 마음이 아팠으나 대의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할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종근이 이에 답했다.

「제가 나이가 어려 대의를 모르고 왜놈의 졸개가 되었으나 지금이라도 형님을 따라서
의병이 되어 왜병을 섬멸하고 공을 세운다면 어떻겠습니까?」

  이 의사가 그 말에 찬동했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선과 악을 판별하질 못했으나, 이제부터라도
개과천선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이종근은 헌병보조원의 총기를 반납하지 않고 이 의사를 따라 여러 싸움에 참전했다.
그러다가 왜놈에게 생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이종근은 사형선고를 받자
전에 신임 받던 아카시(明石)를 찾아가 용서를 청한 결과 우선으로 감형 받게 되었다.

  이종근은 김구가 있는 감옥으로 이감되었는데
왜놈 간수에게 김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청했다.

「나는 일자무식이오. 56호(김구 수인번호)와 같은 방에서 자게 해주시오.」

「김구와 어떤 관계인가?」

「김구는 학식과 배움이 많아서 그분에게 청하면 문자를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오.」

  이종근의 청이 왜 간수에게 받아들여지자 이종근은 김구의 감방으로 오게 됐다.
김구는 2년여 동안 이종근의 까막눈을 뜨게 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러다가 종근은 가출옥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종근이 출옥하고 아울러 김구에게
보낸 서신은, 안악 가서 김구의 어머니를 찾아뵈었다는 반가운 말이 들어있었다.

 


  어느 날 김구가 출역(出役)하던 중, 수인들을 한곳에 모이게 했다.
간수 놈이 슬픈 어조로 눈물까지 흘리면서 울먹이며 말했다.

「메이지(明治)천황께서 붕어하셨다. 너희들에게 대사면이 내려졌다.」

  천황이나 천황의 비(妃)가 죽으면 대사면령이 내려지게 되는 것은
감옥 법에 정해져있는 일이었다.

  먼저 보안 형은 면형(免刑)되고, 15년 역(役)에는 8년으로 감형되었는데 김구에게는
1년을 더 감해 7년이 되었다. 그 외에 김홍량은 8년, 10년, 7년, 5년들도 차례로 감형되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자 메이지의 처가 또 사망을 했다.
이렇게 돼 김구는 잔기(殘期)의 3분의 1을 감형 받으니 5년여의 가벼운 형이 되었다.
그때 안명근은 형인 안중근 의사의 절개를 생각해서였는지 왜놈간수에게 대들었다.

「나는 감형 받지 않겠다.」

  안명근은 무기에서 20년으로 감형돼 있었다.

「형을 더하면 더 했지 감형은 받지 않겠다.」

  왜놈은 이에 대해

「죄수들에겐 자유가 없다. 감형을 받고 안받고 하는 것은 너희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때 공덕리(孔德里)의 감옥이 준공되었다.
공덕리는 지금의 공덕동, 마포 아파트 자리에 있었다.
명근은 그리로 이감되었고, 출감할 때까지 얼굴을 대하지 못하였다.

 


  안명근의 그 후는 이렇다.

  17년 동안을 감옥에서 지내다가 출옥, 신천의 청계동에서 부인과 같이 1년 남짓 지내다가,
부친과 친형제가 그리워 가족을 이끌고 중국과 러시아 접견지대로 이주했다.

  안명근은 오랜 세월동안 감옥에서 수인의 몸으로 지내다보니
몸의 저항력이 모두 떨어져서인지 그다지 심하지 않은 병으로 중국 파룡현(파龍縣)에서
통분의 한을 품고 세상을 하직했다.

  김구는 3년을 서대문 감옥에서 보냈기 때문에 출옥까지는 2년이 남았다.
이때부터 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형기가 15년으로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자포자기되어 왜놈 간수들에게 분풀이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으나 2년의 형기가 남았기 때문에 출옥해서의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김구는 원래 왜놈이 이름 지어준「뭉우리돌」이었다.
왜놈이 지어준 뭉우리들의 대우를 받은 애국자 가운데 왜놈의 감옥에서 인간으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학대와 욕을 받고 출옥해서는 오히려 왜놈에게 순종하며 남은 여생을
이어가는 자들도 많았다.
세상이라는 바다에 던져지면 타협을 하게 되고 의지가 약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을 가졌다.
김구는 감옥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나는 세상에 나가서도 결코 뭉우리돌이란 이름을 버리지 않겠다.
차라리 감옥 안에서 성결한 정신을 갖고 죽겠다.」

  김구는 애국자들의 변절을 많이 보아왔다. 젊어서는 애국자였다가 늙어서는
왜놈에게 협조와 아부를 하는 더러운 민족반역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동지들에게 결의의 표시로 이름을 구(九)라고 하고 호를 백범(白凡)이라 고쳐서
선포했다.
김구가 구(龜)를 구(九)로 고친 것은 왜놈의 민적(民籍)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민적이란 것은 호적으로서 조선시대의 호적제도를 보완해서 민적법을 시행했고,
일제가 그것을 호적령으로 대체했다. 따라서 일제가 만든 민적에 올리지 않음으로서
김구는 일제에 대한 항거를 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었다.
호(號) 연하(連下)를 백범으로 고친 것은 우리나라의 최하등 사회,
 백정(白丁)의 범부(凡夫)라도 애국심이 김구 정도는 되어야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또 자신은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가장 밑바닥 국민인 백정과 같은 사람으로서
모든 의무를 겸손하게 하겠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김구는 복역 중에 똥을 청소하거나 유리창을 닦고 할 때 하느님에게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도 어느 때 독립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는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窓戶)도 닦을 일을 해보고 죽게 해달라고.」

  김구는 이렇게 겸손한 사람이었다. 겸손하다는 것은 아무런 욕심이 없다는 뜻이다
국민이 평화롭게 살고, 나라가 평안하다면 자신은 아무 일이나 해도 즐겁게 생각하겠다는
 것이었다.
인간이란 어떤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그 반대급부를 생각하게 되고,

반대급부가 신통치 않으면 함께 일해 온 동지들과 싸움판을 벌이기도 하는 추한 할 일에서

김구의 생각을 얼마나 모욕의 마음이었는가,
참으로 그는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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