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악인 와타나베 형사
김구는 여러 차례 신물실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다했다.
너무 심한 고문 때문에 혹시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니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번번이 깨어났다.
사람이란 그 계획된 일을 마칠 때까지 신(神)은 기다린다는 말과 같이 죽었다 깨어나길 수차례,
생명의 끈질김에 스스로도 놀랐다.
그러나 기약 없는 앞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처럼 이 말이 실감나는 일이 벌어졌다.
17년 전, 인천 경무청에서 대구 살해사건으로 심문을 당할 때 방청을 한바 있던 와타나베란
순사 놈을 이곳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그 당시 김구가 와타나베를 호령하자 「칙쇼우 칙쇼우」하며 슬금슬금 피했던 그 작자가,
바로 김구 앞에 심문관으로 앉아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는가.
그놈은 여전히 검은 수염을 길러 축 늘어뜨리고, 얼굴은 늙어서 주름이 가득했다.
와타나베가 김구를 보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나는 다른 형사들과 다르다. 내 가슴에는 X광선이 있어서 투시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니 내게 털끝만치도 숨기는 일이 있으면 그 순간에 너는 지옥으로 간다. 알겠나?”
하며 야릇한 미소와 함께 기침을 한두 번 했다.
김구는 얼마 전에 여순 사건(안중근 의거)에 대한 혐의로 해주 검사국에서「
김구」라는 제목이 담긴 책자를 본적이 있었다.
그때 그 책에는 치하포에서 왜놈을 죽인 일과 인천에서의 사형집행정지,
탈옥 도주한 일들이 모조리 기재되었으리라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피의자를 다루는데 있어서 남다른 왜놈경찰이 그 사실을 모른데서야 말이 되는가.
또 그 사건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평상시에도 화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에서는 배일 연설에는 그 사건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와타나베는 이 일을 알고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혹시 와타나베가 늙어서 그때의 그 사실을 이미 기억에서 빠뜨렸을지도 모르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와타나베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함구하기로 했다.
“네가 17년 전 인천 경무청에서 내게 욕설을 퍼붓던 김창수가 아닌가? 이놈.”
하는 말을 듣기 전에는 절대로 입을 열어서는 안된다.
김구는 이런 생각으로 와타나베를 은근히 떠보았다.
“내 일생을 구석진 곳에서 은사(隱士)생활을 한 적이 한번도 없소.
선생노릇을 한 탓으로 내 행동과 말은 모두가 공개가 되어 있소.”
그러나 와타나베는 듣지 않고 사무적으로 묻기만 했다.
“출생지는”
“교육은?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소.”
“직업은?”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무하고 농사짓고 하다가 25~26세에 장련으로 이주하여
종교와 교육계에 종사하게 됐소.”
“지금은?”
“양산학교 교장으로 있소.”
"왜 여기 왔다고 생각하나"
"모르겠소. 당신들이 데리고 왔기 때문에 나 역시 모르겠소."
그러자 와타나베는 버럭 화를 냈다.
늙은이답지 않았다.
왜놈들이란 늙은이나 젊은 놈이나 악(惡)의 씨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이놈아! 종교 교육은 피상적 운동이다.
그 이면에는 불순한 음모가 섞여있다는 것 내가 모를 줄 아는가.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설립해서 훗날 너희나라 이름으로 독립전쟁을 준비하려한 것
내가 모두 알고 있다."
"그건 잘못알고 있는 것이오."
"뭐야!"
와타나베는 김구를 함부로 대했다.
그 자는 김구의 따귀를 한 대 후려갈겼다.
김구는 가만히 보니 이 자가「치하포 사건」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그 일을 연상시키는 사건과는 피해가기로 했다.
“네놈이 안명근과 공모하여 우리 총독각하를 모살하려고 너희 부자 놈들의 금전을
모두 강탈하려한 사실, 우리 결찰이 현미경 들여다보듯 모두 알고 있는데 거짓말인가?”
와타나베의 노기가 등등했다.
김구는 안명근과의 공모관계는 아무래도 치하포 사건보다는 약한 것 같아
이를 적당히 넘어가려 했다.
치하포 사건은 와타나베가 연계시킨다면 김구의 생명은 끝장이었다.
“안명근과는 일절 관계가 없다.”
“사람들을 서간도로 보낸 이유는?”
“서간도는 땅이 넓다. 빈한한 농가를 넓은 땅으로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하려했다.”
김구는 일본 경찰의 허점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혐의에서 벗어나려 했다.
“지방 경차의 시각이 너무 협소하다.
걸핏하면 일본을 배척하느니 뭐니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따라서 교육사업에 방해가 된다.”
그리고 또
“학교 개학시기가 됐다. 속히 내려가 공부에 전념하도록 하게하라.”
와타나베는 김구가 그렇게 주력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고문도 하지 않고 유치장으로 보냈다.
김구의 당시 국모보수사건은 왜놈들이 벌써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각 경찰기관에 김구를 요주의 인물로 내려 보냈고, 그 뒤의 행적을 모두 조사했을 것이다.
와나나베 형사 놈이 김구에게 「X광선 운운」한 이야기도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와타나베 형사가 김구의 행적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발설해 꼼짝 못하게
만드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구가 곰곰이 생각하니 만일 일본인들이 자신의 과거 행적을 모를 경우,
한국인 누구도 밀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가는 망했어도 사람까지 망한 것 같진 않게 생각이 들었다.
김구의 제자로서 형사가 된 김홍식(金弘植)과 같은 학교 직원인 우선 원인상(元仁常)등도
밀고하지 않은 것으로 봐 그들의 가슴에 민족적인 양심이 남아 있음이 틀림없었다.
김구는 가능하면 신문 받을 때 동지들의 죄를 감면시켜주는 말을 해준 것을 생각했다.
특히 김홍량 같은 인물은 자신보다 더 많은 사회활동을 할 것으로 생각돼
그를 이롭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김구는 일곱 번 신문을 당했는데 와타나베 형사만 고문을 하지 않았다.
김구는 고문을 받고 유치장에 돌아올 때마다 동지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내 생명을 뺏을 수는 있으나 내 정신만은 뺏지 못한다.”
하고 동지들에게 말했다.
이때마다 형사 놈은「헤소데 타타쿠」라고 위협했다.
헤소데 타타쿠란 일본말로 「까불면 더 혼내준다」는 말이었다.
여덟 번째 신문이 시작되었다.
신문 때마다 한차례씩 고문을 당했고, 이때마다 기절을 했다.
이번 신문에는 주임 경사 7,8명이 나란히 앉아 김구를 노려보았다.
한 놈이 위협했다.
“네 동지란 놈들은 모두 자백했다. 네놈만 자백을 하지 않으니 어리석다.
네가 아무리 입을 닫고 있어도 여러 놈의 입에서 네 죄가 발설돼,
네가 부인해도 불리하다. 죄를 말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르게 죽여 버리겠다.”
김구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나를 논밭의 자갈들로 알고 파내려하나, 파내어지는 내 고통이 너무 심해 자결해 죽겠다.”
김구는 죽을 작정으로 기둥에 머리를 세차게 들이받았다.
너무나 세차게 들이받아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여러 놈들이 저희들끼리 수군대더니 이번엔 죽은 줄 알고 인공호흡을 시켰다.
그리고 얼굴에 생수를 사정없이 들이부었다. 그러자 다시 정신이 들어왔다.
한 놈이 이번엔 유도신문을 했다.
그놈은 징그럽게 웃기까지 하며 김구를 회유하려했다.
그놈이 다른 놈, 조금 높은 놈에게 건의했다.
“김구란 인물은 조선인 가운데 학식도 많고 지식도 많아 신망을 받는 인물이다.
이같이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하며 김구를 위하는 체 했다.
그러자 높은 놈이 눈짓을 했다.
승낙을 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다 짜고 하는 일이었다.
김구에게 안심을 시키고 마음을 풀어주어 자백을 받게 하려는 고등술책이었다.
그놈은 김구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특별대우를 해주었다.
호칭도 바꿨다.
이놈 저놈에서 깍듯이 선생으로 불렀다.
“김 선생 얼마나 고생이 많소.
사실 나 역시 직책이 형사가 아니고 조선에서 태어났더라면 선생을 존경하고 따랐을 거요.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럽소.”
하며 담배를 권했다.
회유하기위한 수작이었다.
이런 놈은 언제 또 말을 바꿀지 몰랐다.
“내가 황해도에 출장 갔을 때 김 선생의 행적을 조사해 둔 게 있소.
교육사업에 열성적인 급료를 받든 받지 않든 간에 그만한 교육자가 없다는 걸 알고 감격했소.
면민들의 여론도 무척 좋았소.
그런데 총감부에 와서 여러 번 고문도 당하고 마음을 상해서 나 역시 유감이오.
참 안타까운 일이오.”
하며 김구의 입장을 잘 안다는 듯이, 자신은 직책상 그렇지 선량한 사람인 것처럼 구슬렸다.
김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놈들이 신문하는 방법에는 대략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가혹한 고문방법이다.
채찍과 몽둥이로 사정없이 상대가 죽거나 말거나 구타하는 방법이다.
두 손을 등 뒤에 포개놓고, 오랏줄로 결박해서 쇠고리에 끌어올려놓고,
신문자를 둥근 걸상위에 세웠다가 오랏줄 한끝을 한편에 잡아매고 발판을 뽑아 버린다.
그렇게 되면 공중에 매달려 신문자는 숨이 막힌다.
그런 다음 다시 풀어 생수를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한다.
또 하나, 화로에 쇠막대기를 즐비하게 늘어놓아 벌겋게 달군 후 그 쇠막대기로 온몸을 지진다.
손가락 크기의 능목(마름모꼴의 나무)세 개를 세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나무 양끝을 노끈으로 동여맨다.
그런 후 콧구멍이 냉수를 마구 부어넣는다.
둘째, 굶기는 방법이다.
신문할 때 음식을 다른 죄수의 반으로 줄어 겨우 생명만 유지케 하고,
이때 만일 사식(私食)을 청해도 주임 형사 놈이 허락지 않는다.
주임 형사 놈은 원래 인간성을 상실한 냉혹한 놈이라 거짓말을 해도 왜놈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수인(囚人)에게는 사식을 허락하고
그렇지 않은 수인은 절대 사식을 허락지 않는다.
그래서 유치장에는 떠도는 말이 있다.
사식을 받아먹는 자는 밀고자나 고발자이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유화적 수법이다.
좋은 말로 구슬리고, 죄수의 심정을 헤아리는 체하며,
좋은 음식도 대접하고 좋은 방으로 데려가 극진히 공경한다.
너무 인간적으로 대접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실토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실토한 후에 후회를 해봤자 소용이 없다.
여기에 좋은 방이란 의미로 아카시(明石)방이란 말이 나온다.
아카시라는 자는 내정간섭과 쿠데타공작의 명수로서 당시 경무총감이었다.
이 자는 총독 암살모의 사건을 조작해서 애국인사들을 체포, 고문한 잔인한 놈으로서
이자의 방이 화려하게 꾸며져 이런 말이 나왔다.
김구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몇 번의 고문에도 견뎌냈다.
상대 형사 놈이 발악을 하고 잔인하게 고문하면 김구 역시 감정이 발동해 이를 이겨냈다.
뜨거운 쇠는 뜨거운 쇠로 당해는 것이다.
그런데 둘째와 셋째를 참아내기는 여간 힘든 것 같지 않다.
굶주림이란 인간의 무서운 적이었다. 처음엔 밥이라야 껍질 절반, 모래 절반에 반찬은
소금이나 쓰디쓴 장아찌 꽁다리를 준다.
구미가 당기지 않아서 그냥 내보낸다.
그러나 그런 밥이 달게 생각될 때가 있다.
너무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형사 놈은 상대가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사람이 탈을 썼으니 사람이라고 하지 엄밀히 이야기하면 사람이 아니라 잔인한 짐승이나 악귀이다.
김구의 아내는 석 달 동안 김구의 뒷바라지를 했다.
아침저녁으로 사식을 차입시키는 일이었다.
아내는 유치장 앞에서,
“김구의 밥 갖고 왔소. 들여 주시오!”
하고 외치며 왜놈이 흥하고 웃으면서 이를 거부했다.
“김가메(거북(龜)의 일본식 발음) 사식 이제 없소다. 나쁜 말했소다.“
하고 돌려보냈다.
김구가 순순히 자백을 않고 나쁜 말만 늘어놓아서 사식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김구의 몸은 점점 망가져가고 있었다.
그는 인내의 한계가 다가옴을 느꼈다.
고문에 견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태보(朴泰輔)가 담근질 당하는 고문을 받았을 때
「이 쇠가 식었으니 다시 달궈오라」는 말을 생각하고 견뎠다.
김구는 이를 악물었다. 고문에 진다면 자신의 인생도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문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이기로 했다.
고문과 싸우려면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
겨울철이라 형사는 김구의 겉옷만 벗기고 때렸다.
이때 김구가 그 형사 놈에게 지지 않고
“속옷까지 벗겠다. 자 때려라!”
하자, 형사 놈은 코웃음을 치며 속옷을 벗기고 때렸다.
살이 벗겨지고, 살가죽이 벗겨진 그 속에 허연 뼈가 드러났다.
형사는 이런 꼴을 누차 봤는지 아무렇지도 않고 계속 고문을 가했다.
형사의 눈동자는 사람의 눈동자가 아니라 악귀의 그것이었다.
이 때 다른 사람들이 문 앞에서 사식을 먹으면, 그것이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었다.
김구는 사람으로서의 긍지를 지켜보려고 애썼다.
사람이란 동물의 한 종류이다.
동물이란 아픔의 고통과, 배고픔의 고통을 참지 못한다.
그것이 본능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란 동물과 달리 체면이란 것이 있어서 인내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다.
김구는 여러 가지 갈등도 했다.
「남에게 해가 될 말, 고자질해서라도 사식을 챙길까?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김구는 이 생각을 얼른 지워버렸다.
내가 살아온 일생을 치욕으로 만드는 동물적인 생각, 그런 것들이 왜 나를 괴롭힐까?
박영효(朴泳孝)의 부친 박원양(朴元陽)이 아들의 죄에 연루가 되어 감옥에 갇혔을 때
섬거적을 뜯어먹다가 죽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섬거적을 들어먹었을까,
양반의 체통이란 배고픔에 허무하게 허물어진다는 말이 실감났다.
또 전한(前漢)의 명신, 소무(蘇武)란 사람은 흉노족에게 끌려가 감옥살이 할 때
극심한 배고픔으로 옷의 솜털과 풀씨 등으로 연명하다가 귀국했다는 고사(古事)도 생각났다.
「이러다가 인간의 본성을 상실케 되고 결국 후세에 치욕적인 삶을 보여주게 되지 않을까.」
김구는 고민했다.
김구를 따로 불러 신문하던 형사 놈은 김구에게 이렇게 회유했다.
“김 선생도 우리 백성이라고 인정이 되면 즉각 총독에게 보고하겠소.
사실 조선을 통치하기는 꽤 어렵소.
덕망 있는 김 선생 같은 분이 나서야 통치를 할 수가 있소. 다만 한 가지...”
하며 그놈은 안명근 사건과 서간도 사건을 실토하라는 토를 달았다.
“어떻소? 내 이야기가 틀렸소? 나는 김 선생을 존경하고 있소”
그러나 김구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놈은 금방 안색이 변했다.
원래 형사 놈은 모두가 그랬다.
그놈들의 말에 넘어가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그러나 이놈은 구렁이 같은 기질이 있었다.
웬만해서 희로애락을 얼굴에 담아두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구리토모(國友) 경시(警視)였다.
경시란 지금의 총경계급이었다.
그는 다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듯한 얼굴을 했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김 선생, 내가 이런 일을 당했소.”
하며 그는 김구에게 동의를 구했다.
“대만인 범죄자를 신문했는데, 지금 김 선생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소.
결국 검사국(요즘의 검찰청)에 넘어가서 사실을 실토해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소.”
그는 이렇게 말하고 김구의 눈치를 살폈다.
그자의 말인즉, 여기서 자백을 하지 않아도 되니 검사국에 가서는 제발 자백을 하라는 뜻이었다.
그자는 전화로
“여기 김 선생에게 드릴 장국밥에 고기를 많이 넣어 가져와.”
하며 음식을 청했다.
이윽고 음식이 배달됐다.
김구는 그 음식을 보자 더욱 허기가 댕겼다.
그러나 이를 물리치고 말했다.
“당신이 나를 무죄로 인정한다면 나는 이 음식을 먹겠소.
유죄로 인정하면 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소」
그 자는 이 말에 개의치 않았다. 노련한 놈이었다.
“김 선생 그러지 말고 드시오. 나는 김 선생에게 호의를 갖고 있소.
그러니 그냥 부담 없이 드시오.”
김구가 사양하자 그 자는 몇 글자의 한자를 써 보였다.
“군의치독부(君疑置毒否”
즉 군(君)은 음식에 독을 넣었나 의심하느냐는 뜻이다.
군(君)이란 일반적인 호칭이었다.
“이제부터는 사식을 허락하겠소.”
그자가 말했다.
김구가 다소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자의 친절이 어쩐지 계획된 것 같지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음식에 독이 들었나 의심한 것은 아니오.”
하고 김구는 그자의 호의에 답했다.
그날 저녁부터 김구에게 사식이 차입되었다.
김구가 수감된 방에 이종록이란 청년이 있었다.
일가친척이 없기 때문에 사식 넣어준 사람조차 없었다.
김구가 이종록에게 사식을 좀 나눠주고 싶었는데, 사식은 밖에서 따로 먹게 돼 있었다.
김구는 묘안을 생각해 냈다.
바깥에서 밥을 먹고 나서 제일 큰 고기 덩이와 밥 한 덩어리를 입안 가득히 물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걸 도로 꺼내 허기진 이종록에게 먹였다.
마치 어미 제비가 새끼에게 벌레를 물어다 먹이는 형상이었다.
김구는 이종록의 허기진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쓰렸다.
이 사람을 감옥에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사식을 나눠 먹는 일인데
그것이 금지돼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김구는 이곳에서 다시 종로 구치감으로 이송되었다.
구치감은 독방이라서 오히려 편했다.
김구는 구치감에서 왜놈들의 심사를 헤아려 보았다.
왜놈들이 김구에게 형을 매긴다면 「보안법」위반으로 겨우 2년 형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안명근의 강도사건을 꿰어 맞출 생각 같았다.
안명근이 김구를 찾아왔다는 것과 찾아와 황해도의 부자들을 털겠다는
모의를 함께 했다는 것을 맞추면 김구도 공범이 되어 형량이 더욱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 경성 양기탁의 지에서 서간도로 이동녕을 자송하게 한 날짜,
그날 안명근이 안악의 김구집에 와서 안악의 부호를 습격한 날짜와 맞추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구는 그날 경성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그래서 왜놈들은 김구의 조서기록에 안명근과 만나나 날짜는 정확히 기입하고,
경성회이날짜는 이것과는 틀리기 때문에 적당히 모월모일이라 기입했다.
하루에 안악과 경성, 두 군데 참석할 수가 있겠는가.
당시에는 교통이 불편해 안악을 가기위해서는 하루이상 걸려야만 했다.
왜놈들은 안명근과 만났다는 증인을 확보하기 위해 양산학교의 잡부(雜夫)아들인 14살의
이원형이란 학생을 끌어냈다.
김구가 검사에게 신문을 당하고 있을 때 벽 너머 또 다른 신문실에서
이원형의 말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왜놈이 이원형을 구슬렸다.
“너 잘 생각해봐라. 안명근 아저씨가 너희학교에 왔을 때 김구도 그 자리에 있었지?
본 사람이 있어서 묻는 거야.”
그러자 이원형이 펄쩍 뛰었다.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안명근 아저씨요? 나는 그런 사람 본적도 없고, 이름도 몰라요.
또 김구 선생님은 어디가고 없었어요.”
그러자 왜놈들은 이원형에게 겁을 주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하는가하면 팔을 비틀어 보기도 했다.
이때 조선인 순사 놈이 나섰다.
“내가 해보죠.”
조선인 순사 놈은 왜놈에게 아첨하는 더욱 이원형을 심하게 다뤘다.
“이놈아, 안명근이도 김구와 같이 있었다는 말하면 당장 풀려나.
그렇지 않으면 너는 여기서 죽는다.”
하며 때리는 시늉을 했다.
이원형은 조선인 순사 놈이 정말 죽이려는 줄 알고
“아저씨 그렇게 말할테니까 때리지 마세요.”
하고 대답했다.
검사 놈이 이때를 놓칠세라 초인종을 눌렀다.
“원형학생 들어와!”
원형이가 들어와 김구와 대면했다.
원형은 어린 마음에도 김구에게 미안했던지 얼굴을 들지 못했다.
“너희 학교에서 안명근이와 김구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냐?”
“예.”
원형이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됐어. 나가거라.”
원형은 형사 놈에게 끌려가면서 미안한지 뒤를 돌아보았다.
검사 놈이 이번엔 험악한 얼굴로 김구를 노려보았다.
“이놈아! 들었지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데도 부인해?”
김구가 검사 놈에게 한마디 던졌다.
“이놈들! 5백리 떨어진 두 장소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회의에 참석한 나를 만들다니,
재주도 좋구나. 너희 일본 놈들 재주는 알아줘야 한다.”
검사 놈은 김구의 말을 그냥 흘려버렸다. 이것으로 예심 종결이었다.
그 당시 김구가 관련된 사건 말고도 강기동의병장 사건이었다.
의병장 강기동이 항일 무력 투쟁 중 원산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경무총감부에서 같이 취조를 받았는데, 소위 육군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강기동은 사형만은 면키 위해 왜놈에게 귀순, 헌병 보조원(밀대·정보원)이 되어 경성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왜놈들이 의병들을 모두 검거해 수 십 명을 총살시키기도 했다.
강기동이 의병들의 면모를 보니 과거의 동지들이었다.
그는 자기 근무시간에 수감된 의병들을 모두 풀어주고,
사무실에 비치된 총기로 무장하고 탈주했다.
강기동은 강원, 경기, 충청도를 돌아다니면서 수년 동안 항일 유격전을 벌였다.
그 후 그는 원산에서 안기동으로 행세, 일본군에게 검거돼 결국 총살당했다.
이 무렵, 백야(白冶) 김좌진이 북간도에서 군관학교를 설립하기위해
자금을 모으다 체포당해 강도죄로 2년 6개월 동안 투옥된 적도 있었다.
김구가 종로 감옥에 수감돼있을 때 하루는 안악군수 이모씨가 찾아와 면회를 요청했다.
“고생이 많습니다. 김 선생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하며 운을 뗀 그는,
“양산학교의 교사는 원래 관청건물이니 돌려줘야하지 않습니까?
또 교구와 집기도 공립보통학교에 인도해야하는데...”
하며 날인을 해달라고 했다.
김구가 감옥에 있으니, 건물 모두를 빼앗자는 속셈이었다.
“건물이야 어쩔 수 없지만 비품은 안신학교에 기부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자는 학교 모두를 공립보통학교의 소유로 만들었다.
공립보통학교는 왜놈들이 만든 학교였다.
김구는 감옥 안에서 지난날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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