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백범 어록(語錄) (2) 53. 백범 어록(語錄) (2) 독립 진영의 재편성 이 문제에 대하여는 일전에 비상 국민회의·독촉국민회· 민통 급 각 저당 단체의 제위 동지에게 고하는 글에 이미 진술한 바 있거니와 재작년 8·15 이후의 우리 독립운동은 성취보다 실패가 더 많았다. 공심보다 사심의 표현이 더 컸고 이지(理.. 소설방/백두대간 2013.03.31
52. 백범 어록(語錄) (1) 52. 백범 어록(語錄) (1) 김구는 경교장에 숙소를 정한 다음, 지방시찰을 비롯해 틈틈이 먼저 세상을 떠난 독립열사들이 묘소를 참배했다. 우이동의 의암(義庵) 손병희의 묘소와 당시 아직까지 생존한 오세창 선생(33인의 한사람)을 방문했고, 또 매일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맞아 격려와 훈시 .. 소설방/백두대간 2013.03.31
51. 공산당과 미군정의 대립 51. 공산당과 미군정의 대립 해방 직후 한반도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의지와 열기로 가득 찼다. 제일 먼저 활동을 시작한 것은 사회주의세력이다. 1945년 9월 11일 박헌영 이하 사회주의자들은 조선공산당 재건을 선언했다. 뒤이어 한국민주당(송진우, 김성수), 국민당(안재홍), 인민.. 소설방/백두대간 2013.03.27
50. 해방직후의 사회상 10 50. 해방직후의 사회상 10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 머리기사다. ‘워싱턴 25일발 합동지급보(至急報)’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3국 외상회담을 .. 소설방/백두대간 2013.03.27
49. 나의 소원 9 49. 나의 소원 9 민족국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또「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 소설방/백두대간 2013.03.27
48. 그리운 사람들 8 48. 그리운 사람들 8 김구는 1945년 11월 23일 감격의 귀환을 했다. 그는 11월 24일 귀환에 즈음하여 자신의 귀한 심경과 앞으로의 할 일을 거시적(巨視的)인 입장에서 발표했다. 이 성명은 23일 오후 8시, 엄항섭, 선전부장이 미리 프린트 된 것을 낭독한 것이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조국 1945년 .. 소설방/백두대간 2013.03.27
47. 잘 있거라 상해여! 7 47. 잘 있거라 상해여! 7 1945년의 한여름, 제2차 세계대전은 막바지에 와 있었다. 그해 5월 독일이 항복하고, 독일과의 전쟁을 끝낸 소련은 8월 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미국은 일본에 두 차례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히로시마와 나카사끼 두 도시는 삽시간에 폐허가 돼 버렸다. 천황폐.. 소설방/백두대간 2013.03.17
46. 광복군과 김구 6 46. 광복군과 김구 6 앞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함수관계를 정리했지만, 그것은 김구가 체험한 내용이고, 좀더 개관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논할 필요가 있어서 다소 중복되지만 이들의 관계를 소상히 밝혀 보려고 한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대회.. 소설방/백두대간 2013.03.17
45. 아, 이 참상들! 5 45. 아, 이 참상들! 5 일찍이 이집트에서 파라오에게 종살이하던 히브리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탈출시킨 모세야말로 영웅이 아닐 수 없다. 고난 받고 학대받는 사람들을 이끌고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떠난 지도자들의 이야기는 역사책 여러 곳에 등장한다. 김구가 이야기하는 대가족.. 소설방/백두대간 2013.03.17
44. 중경(重慶)으로 4 44. 중경(重慶)으로 4 중일전쟁이 막바지에 달하고, 점차 중국의 배색이 짙어지자 장사(長沙)에 있던 김구 일행은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장사에는 왜놈들의 공습이 심했다. 밤하늘에 날아드는 왜놈들의 전투기는 도시 곳곳에 기관총 세례를 내렸다. 건물이 하나도 성한 .. 소설방/백두대간 2013.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