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서울유형문화재 598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42호) 임인진연도 병풍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42호) 명 칭 임인진연도 병풍 (壬寅進宴圖 屛風) 분 류 유물 / 일반회화 / 기록화 수량/면적 1점 지 정 일 2022.12.0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시 대 대한제국(1902년)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국립고궁박물관 문화재설명 ​ 은 1902년(광무 6년, 임인년) 고종 황제가 51세로 망륙(望六)이 되자, 숙종과 영조의 뒤를 이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게 되었고, 황태자(순종)의 간청에 의해 진연(進宴)이 거행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것이다. 처음 다섯 폭은 기로소와 관련된 것이고 다음 네 폭은 경운궁(현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에서 열린 진연을 시간 순서에 따라 배치했다. 3월 27일과 28일에 행한 기로소 입소를 제1폭에서 제5폭까지, 4월 2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41호) 임인진연도 병풍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41호) 명 칭 임인진연도 병풍 (壬寅進宴圖 屛風) 분 류 유물 / 일반회화 / 기록화 수량/면적 1점 지 정 일 2022.12.0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 시 대 대한제국(1902년)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국립국악원 문화재설명 ​ 은 1902년(광무 6년, 임인년) 고종 황제가 51세로 망륙(望六)이 되자, 숙종과 영조의 뒤를 이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게 되었고, 황태자(순종)의 간청에 의해 진연(進宴)이 거행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것이다. 처음 다섯 폭은 기로소와 관련된 것이고 다음 네 폭은 경운궁(현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에서 열린 진연을 시간 순서에 따라 배치했다. 3월 27일과 28일에 행한 기로소 입소를 제1폭에서 제5폭까..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40호) 백련사 융경삼년명 동종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40호) 명 칭 백련사 융경삼년명 동종 (白蓮寺 隆慶三年銘 銅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 의식법구 수량/면적 1점 지 정 일 2022.12.0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시 대 1569년 소 유 자 백련사 관 리 자 백련사 문화재설명 ​ 은 서울 백련사 약사전에 봉안된 조선시대 동종으로, 크기는 높이 65㎝, 입지름 57.1㎝에 이른다(도1, 2). 종의 몸체에는 두 종류의 명문이 남아 있다. 먼저 하단에는 “隆慶三年己巳四月日鑄鐘…”으로 시작하는 點刻으로 새긴 명문이 있어, 융경 3년 즉 1569년(宣祖 2)에 조성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상단의 범자문 아래로 ‘…大鍾二百斤’이 포함된 내용이 점각되어, 청동 2백근의 재료로 완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9호) 청자 표형 주자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9호) 명 칭 청자 표형 주자 (靑磁瓢形注子)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청자 수량/면적 1점 지 정 일 2022.12.0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시 대 고려시대 소 유 자 금ㅁㅁ 관 리 자 금ㅁㅁ 문화재설명 ​ 는 조롱박 모양의 몸체에 주구(注口)와 손잡이를 부착한 주자(注子)다. 몸체는 아랫부분의 양감을 풍부하게 만들어 안정감을 주었고, 윗부분은 작은 계란형으로 전체 형태가 무거워 보이지 않게 균형을 맞춘 모습이다. 주구는 주전자를 적당히 기울여도 내용물을 따르기 쉬운 높이에 부착하였고, 손잡이는 두 줄의 띠를 나란히 붙인 형태로 아랫부분은 능화형(菱花形)으로 장식하였다. 뚜껑의 꼭지와 손잡이 윗부분에 고리가 부착되어 있는데, 뚜껑이 떨어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8호) 청자 퇴화 능화문 매병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8호) 명 칭 청자 퇴화 능화문 매병 (靑磁堆花菱花文梅甁)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수량/면적 1점 지 정 일 2022.12.0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만리재옛길23 시 대 고려시대 소 유 자 금성문화재단 관 리 자 금성문화재단 문화재설명 ​ 은 백토니(白土泥)와 자토니(赭土泥)로 문양을 그려 장식한 매병(梅甁)이다. 조사대상처럼 짙은 농도의 진흙(백토니, 자토니)을 사용해 장식할 경우 문양이 그릇의 표면보다 도드라지는데, 이런 장식기법을 ‘퇴화(堆花)’라 한다. 주둥이는 사선으로 벌어진 납작하고 작은 원반 모양으로, 어깨와 몸체의 윗부분이 공처럼 둥글고 아래쪽으로 가며 폭이 급격하게 좁아지다 바닥 근처에서 살짝 벌어진 안정감 있는 형태다. ​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7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6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7호) 명 칭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6 (阿毘達磨大毗婆沙論 卷16)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수량/면적 1책(24장) 지 정 일 2022.12.0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시 대 고려 말 소 유 자 성균관대학교 관 리 자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문화재설명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소장 은 재조(再造) 대장경의 인함(仁函)에서 일함(逸函)에 편입된 『아비달마대비바사론』으로 전체 200권 중에 권16에 해당하는 목판본 불경 1권이다. ​ 이 불경은 기원전 2세기 무렵 인도 쿠샨왕조의 카니시카왕이 5백명의 아라한을 모아 결집한 경전으로 656-659년 사이에 당나라 현장이 200권으로 한역한 논서다. 이 경은 설일체유부의 대표적인 논서인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6호) 미타사 정수암 현왕도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6호) 명 칭 미타사 정수암 현왕도 (彌陀寺 淨水庵 現王圖) 분 류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수량/면적 1점 지 정 일 2022.12.0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성동구 시 대 조선시대(1844년) 소 유 자 미타사 정수암 관 리 자 미타사 정수암 문화재설명 ​ 미타사 정수암에 봉안된 는 염라대왕상을 주존으로 그린 불화로 비단 바탕에 조성되었다. 그림의 전체 크기는 세로 125㎝×가로 91㎝이며, 화면 크기는 세로 118㎝×가로 84㎝이다. 나무로 틀을 만들어 판넬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뒷면에는 네 귀퉁이에 주사(朱砂)로 다라니를 기록하였다. ​ 미타사 정수암 는 양식 표현 부분 및 화기가 잘 남아 있어 1844년의 조성연대가 분명함은 물론, 19세기 전반기 ~ 20세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5호) 금강반야바라밀다경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5호) 명 칭 금강반야바라밀다경 (金剛般若波羅蜜多經)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수량/면적 1책(32장) 지 정 일 2022.10.13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시 대 1410년 소 유 자 종로도서관 관 리 자 종로도서관 문화재설명 ​ 종로도서관 소장의 조사 대상본은 후진의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이 한역한 금강경에 천로가 송(頌)을 부친 으로 1410년에 전라도 고창의 문수사에서 고려본(1387년) 을 저본으로 번각한 자료로 추정된다. 이와 동일본이 불갑사에만 유일하게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 현존본이 매우 희귀한 실정이다. 다만 불갑사본과 비교하여 권말의 발원문 반엽이 결락되어 있는 점은 결점으로 보이나, 동일본과 비교하여 자체에 완결이 없이 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4호) 석천암 지장시왕도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4호) 명 칭 석천암 지장시왕도 (石泉庵 地藏十王圖) 분 류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수량/면적 1점 지 정 일 2022.10.13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시 대 1848년 소 유 자 석천암 관 리 자 석천암 문화재설명 ​ 의 바탕재료는 비단 네 폭을 가로로 잇대어 만들었으며 세로 폭이 약간 넓어진 장방형의 화면으로 그림 크기는 세로154.8㎝×가로148㎝이다. ​ 19세기 지장시왕도에서 많이 표현된 사천왕상, 선악동자상 등의 도상은 묘사되어 있지 않아서 비교적 단순한 구도와 구성을 보여준다. 본존인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권속들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본존상을 에워싸고 있는 구도로 중앙부의 지장삼존(地藏三尊)을 중심으로 십대왕(十大王)과 판관(判官) 및 사자(使者..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3호) 척화비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3호) 명 칭 척화비 (斥和碑) 분 류 기록유산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2022.10.13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시 대 19세기 소 유 자 한국순교복자수녀회 관 리 자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문화재설명 ​ 척화비(斥和碑)는 1866년 병인양요(프랑스가 조선 침략)가 일어나자 대원군이 “서양 오랑캐가 침입해 오는데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며, 그들과 교역하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내용의 글을 전국에 반포하여 통상수교 거부정책으로 삼았다. 1871년 미국이 침략한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미군이 퇴각한 4월 25일 대원군은 서울 종로 네거리, 경기도 강화, 경상도 동래군·함양군·경주·부산진 등 전국 각지에 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