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요하(遼河) 5 회 제13장 요하(遼河) 5 회 “네 이눔! 네 감히 뉘한테 대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문덕은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양눈을 부릅뜨고 노가를 크게 꾸짖었다. 그리곤 내처 어디론가 갔다가 칼을 들고 달려와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만 노가의 목을 내리쳤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잘린 노가.. 소설방/삼한지 2014.07.21
제13장 요하(遼河) 4 회 제13장 요하(遼河) 4 회 요동 지역의 성주들은 대개가 남달리 용맹하거나 문무를 겸전한 지장들로, 이는 을지문덕이 앞으로 있을 대전에 대비하여 적임자를 유심히 물색한 결과였다. 그들 가운데 신성의 추범동과 오골성의 우민은 문덕의 휘하에 있던 장수들이었는데, 문덕이 부임한 뒤 먼.. 소설방/삼한지 2014.07.21
제13장 요하(遼河) 3 회 제13장 요하(遼河) 3 회 본래 요서와 요동 지역에는 구루(성곽)라 불리던 크고 작은 성의 숫자가 무려 70여 개나 되었다. 170여 고구려 전체 성곽 가운데 대략 3분의 1 이상이 이곳에 밀집해 있었던 것이다. 개중에는 요서의 무려라(武견邏)처럼 성이 아니라 ‘라(邏)’로 불리던 오늘날의 초소.. 소설방/삼한지 2014.07.21
제13장 요하(遼河) 2 회 제13장 요하(遼河) 2 회 과하마는 몸집은 작으나 힘이 세고 평지뿐 아니라 산지에서도 비호처럼 달리는 명마 중의 명마로, 중국에서 천리마라 부르는 것이 바로 이 고구려말 과하마였다. 고구려에서는 거의 모든 군마(軍馬)가 과하마였는데 이를 지극히 소중하게 여겼으므로 만일 군마를 .. 소설방/삼한지 2014.07.21
제13장 요하(遼河) 1 회 제13장 요하(遼河) 1 회 양제가 수백만의 인원을 동원하여 요동 정벌에 나섰다는 소식은 즉각 평양의 장안성에 전해졌다. 고구려왕 대원(大元:영양왕)은 사색이 되어 황급히 대신들을 불러모았다. “양제(煬帝)가 드디어 군사를 내었다. 그것도 무기를 든 병졸들의 숫자만 1백만이 넘고 군.. 소설방/삼한지 2014.07.21
제12장 가잠성(椵岑城) 10 회 제12장 가잠성(椵岑城) 10 한편 탁군의 임삭궁에 머물며 나라 전역에서 군사를 징발한 수나라 양광은 신년인 임신년(612년) 정월에 마침내 다음과 같은 고구려 정벌의 조서를 내렸다. 고구려의 미물들은 어리석고 불손하여 발해와 갈석(碣石)의 사이에서 무리를 모아 요동과 예맥의 땅.. 소설방/삼한지 2014.07.20
제12장 가잠성(椵岑城) 9 회 제12장 가잠성(椵岑城) 9 이때부터 용화향도는 출신과 근본에 구애됨이 없이 청년들을 새로이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입도 승낙을 얻어내기까지 거쳐야 하는 시험과 관문이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워서 열에 아홉은 낙방하거나 스스로 포기하여 돌아갈 정도였다. 대부분의 무리들이 무.. 소설방/삼한지 2014.07.20
제12장 가잠성(椵岑城) 8 회 제12장 가잠성(椵岑城) 8 용화라는 이름이 가야국 망국민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면서 비슷한 처지와 또래의 젊은 청년들이 하나씩 둘씩 용화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용화보다 두 살이 많은 비녕자(丕寧子)는 금관국에서 사간 벼슬을 지내던 이의 장손.. 소설방/삼한지 2014.07.20
제12장 가잠성(椵岑城) 7 회 제12장 가잠성(椵岑城) 7 그런데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서현을 찾아 만노군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날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찾아오는 이들이 시초에는 대개 금관국의 후손들이었는데, 시일이 흐르면서 다른 가야국 출신들까지 가세하여 서현이 거처하는 태수 관저가 연일 억울하거.. 소설방/삼한지 2014.07.20
제12장 가잠성(椵岑城) 6 회 제12장 가잠성(椵岑城) 6 해론은 그즈음 신라의 화랑도 사이에서 차차 두각을 나타내던 용화향도(龍華香徒)의 일원이었다. 언제부턴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용화향도는 그 성원이 모두 합해야 일흔 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 소수의 무리였다. 통상 수백에 달하는 낭도들이 적지 않은 판.. 소설방/삼한지 201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