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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가잠성(椵岑城) 9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0. 23:23

제12장 가잠성(椵岑城) 9

 

 

 

 

이때부터 용화향도는 출신과 근본에 구애됨이 없이 청년들을 새로이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입도 승낙을 얻어내기까지 거쳐야 하는 시험과 관문이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워서

 

열에 아홉은 낙방하거나 스스로 포기하여 돌아갈 정도였다.

 

대부분의 무리들이 무예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만 연마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가람이나 산수를 찾아다니며 한가로운 놀이에 열중하는 데 반해 이들은 사냥을 하거나

 

맨몸으로 고봉 준령을 타고 오르며 놀았고, 일부러 위급한 상황을 만들어

 

그 처신하고 행동하는 바를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타는 햇볕 속에 앉아 온종일 글을 읽고 겨울에는 강물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

 

몇 시간씩 좌선 고행을 했으며, 이름난 스승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반드시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하였다.

 

또 수시로 편을 갈라 무예를 겨루고 패하는 쪽에는 가혹하다 싶을 만큼 엄혹한 벌칙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지나치게 자신만을 생각한다거나,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자 하는 자는

 

비록 제아무리 자질이 우수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왕의 무리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입도를 허락하지 않는 것도

 

용화향도만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한번 엄격한 관문을 통과하여 향도의 일원이 된 사람은

 

그의 일이 곧 무리 전체의 일이라, 어려움이 생기면 전체가 나서고 경사나 조사가 생기면

 

모두가 팔을 걷고 도우며 보살피는 것이 흡사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론도 뒤에 용화향도를 찾아왔다가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어 황권에 이름을 올린 경우였다.

 

그때 해론과 함께 입도를 청한 청년들은 근 마흔여 명이나 되었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해론과 설계두, 그리고 대내마 도비의 아들 눌최(訥催)가 있었을 뿐이었다.

 

계두는 아찬 문보의 아들이요, 눌최는 대내마 도비의 아들이니

 

이들은 모두 신라 토박이 명문가의 자손들이었다.

평소 자신이 용화향도의 일원임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던 해론은 내기군(奈己郡)과

 

압독군의 산악을 두루 돌며 겨울 수련을 마치고 다시 저자에 내려와서야

 

가잠성이 침략당한 줄을 알았다.

 

비보를 들은 해론은 급히 우두머리인 용화(龍華)에게 가서,

“가잠성은 저의 아버지가 성주로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서적(西敵)의 침략을 당했다고 하니 이만 돌아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하자 용화가 깜짝 놀라며,

“같이 가보자!”

하고는 그 길로 낭도들을 이끌고 가잠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성이 함락된 뒤였다.

 

해론은 분한 마음을 억누르며 금산 접경에서 서편으로 아득히 바라뵈는 가잠성 성루 위에

 

나부끼는 백제국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화랑의 무리들이 금산 사람들에게 성이 함락될 때의 사정과 성주 찬덕의 소식을 두루 물으니

 

대답하는 자들마다 이구동성 말하기를,

“원군이라고 온 것들은 저 살기에 바빠 모두 그대로 돌아갔고, 성은 근 석 달을 버티다가

 

얼마 전에야 무너졌는데, 가잠성 성주의 마지막이 되우 장렬하였다고 합니다.”

하며 찬덕의 최후를 칭찬하였다.

 

해론이 비분강개하여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닭똥 같은 눈물을 쏟자 낭도들이

 

그의 주위에 둘러서서 모두 위로하였는데, 오직 낭도의 우두머리인 용화만이

 

입술을 꾹 다문 채 오래 말이 없다가,

“구적(寇賊)을 토평하지 않는 한 해론이 당한 것과 같은 일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하고서 문득 어금니를 깨물며,

“공산 중악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곳으로 내 이제 해론과 더불어 그곳으로 들어가

 

하늘의 뜻을 알아보아야겠다.

 

만일 하늘의 뜻이 우리 신라에 있다면 반드시 무슨 감응이 있을 것이니

 

너희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힘써 심신을 단련하고 기다리다가

 

내가 천명을 얻어 부를 때 다시 모이라.

 

어디를 가든 용화향도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니 따르던 낭도들이 일제히 그 말에 복종하였다.

신라에는 본래 5악(五岳)이 있었으니 동악은 토함, 서악은 속리(통일 이후에는 계룡산으로 바뀌었다),

 

남악은 지리, 북악은 태백이었다.

 

중악은 압독군(대구)의 공산(公山:팔공산)을 일컫는 말로 금성의 남산과 더불어 나랏사람들이

 

특히 신성하게 여겨 부악(父岳:아버지 산)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뜻을 세운 이가 들어가서 정성껏 치성을 올리면 감응하는 일이 잦았다.

 

용화는 그 길로 해론과 함께 중악 공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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