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3장 요하(遼河) 1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1. 12:53

제13장 요하(遼河) 1 회

 

 

 

양제가 수백만의 인원을 동원하여 요동 정벌에 나섰다는 소식은 즉각 평양의 장안성에 전해졌다.

 

고구려왕 대원(大元:영양왕)은 사색이 되어 황급히 대신들을 불러모았다.

“양제(煬帝)가 드디어 군사를 내었다.

 

그것도 무기를 든 병졸들의 숫자만 1백만이 넘고 군량을 운반하고 잡일을 거드는 역부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무릇 얼마인지 모르나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모두 합친 우리나라 백성 수보다도

 

많다고 한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에게는 기껏 30만의 군사가 있을 뿐이다.

 

이 난리를 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경들은 궁리와 지략을 짜내고 묘책을 말하라!”

왕의 옥음은 이미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심하게 떨렸지만 북화남벌(北和南伐)을 주장해왔던

 

대부분의 중신들 역시 당황하기로는 왕과 매일반이었다.

 

어전은 한동안 찬물을 끼얹은 듯 숙연하고 잠잠했다.

 

왕은 비로소 귀유의 빈자리가 큰 것을 깨닫고 그를 죽여 없앤 일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참으로 안타깝도다! 지내놓고 보니 귀유가 생전에 했던 말이 어느 하나도 그른 것이 없구나!

 

더 깊이 알아보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 실로 천추에 남을 한이다!

 

어찌하여 화가 목전에 이르도록 앞일을 제대로 헤아릴 줄 아는 신하가 없으며,

 

더욱이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경들 중에는 이렇다 할 계책을 내놓는 사람조차 없단 말인가!”

왕이 손으로 가슴을 치며 탄식하자 귀유를 죽이는 데 앞장섰던 대로(對盧) 사본(司本)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송구함을 무릅쓰고 신이 한말씀 아뢰옵니다.”

“말하라!”

“이번에 양제가 군사를 낸 것은 지난 정묘에 주괴가 계민의 막사에서 받아온 교지를

 

전하께서 무시하고 따르지 아니한 까닭이올습니다.

 

그때 양제는 이듬해인 무진(戊辰)에 탁군으로 갈 것을 미리 말하고 입조할 것을 명하면서

 

만일 이를 거역하면 기필코 군사를 내겠다고 공언한 바가 있사옵니다.”

“하면 너는 과인이 목숨을 내놓고 탁군으로 가야 했더란 말이냐?”

왕은 용안을 찡그리며 따지듯이 물었다.

“그런 뜻이 아니오라 신이 아뢰는 것은 일의 사단을 가려 방비와 대책을 세우자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왕이 여전히 마뜩치 못한 낯으로 다그쳤다.

“전하께서도 방금 말씀하셨듯이 지금 양제가 동원한 수군의 숫자는

 

우리나라 백성들을 남녀노소 모두 합한 것보다도 오히려 많고,

 

이전 문제(文帝)의 30만 대병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신은 고금의 어떤 전쟁에서도 이와 같은 대병이 움직였다는 말을 아직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어느 장수가 있어 감히 이들과 교전할 것이며, 어느 책사가 이들을 계책으로 물리치오리까?

 

그런데 옛 병서에 이르기를 싸우지 않고도 적을 물리치는 것은 싸움에 임하여

 

만 가지 지략과 책략을 쓰는 것보다 상책이라 하였으니 전하께서는 지금이라도 양제에게

 

사신을 보내어 조회할 뜻이 있음을 밝히고 군사를 되돌리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사본의 말을 들은 대원왕은 크게 노했다.

 

당장 두 눈에 핏발이 서서,

“그것이 지금 계책이라고 주둥이를 놀리는가!”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이내 좌우를 돌아보며,

“여봐라! 저놈을 당장 끌어내어 목을 쳐서 임금과 나라에 불충한 죄를 묻도록 하라!”

하고 길길이 날뛰었다.

 

태대형에 좌장군을 맡고 있던 상장군 건무(高建武)가 황급히 부복하여 아뢰었다.

“고정하옵소서, 전하! 방금 사본의 말은 신이 듣기에도 죽어 마땅한 것이오나

 

이는 전하께 진정으로 입조를 권하는 뜻이 아니라 우선 임기응변으로 수군을

 

되돌리도록 하는 계책을 아뢰었을 뿐입니다.

 

군사가 많으면 마땅히 나가 싸우고 군사가 적으면 안으로 지키며 꾀로 회유하는 것은

 

병가의 상식이니 사본의 말을 너무 고깝게 듣지 마소서.”

그 뒤를 이어 내평 금태(錦台)와 외평 시명개(侍明介)도,

“사본은 지모와 책략이 무궁한 사람입니다.

 

결코 불충의 뜻으로 아뢴 말씀이 아닐 것이니 다시 헤아려줍소서.”

“사정이 이와 같은 때에 나라의 중신을 죽이는 것은 국익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통촉합시오.”

하고 간청하여 가까스로 왕의 노여움을 달랜 끝에 건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군(隋軍)이 탁군을 이제 출발하였으므로 이들이 요하에 이르자면 내달 중순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약간의 여유가 있으니 전하께서는 북평양(北平壤)의 각 성들을 방비하라고 보낸

 

을지문덕(乙支文德)을 불러 대책을 물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가 요동으로 떠난 지도 수삼 년이 흘렀으니

 

그쪽의 사정을 그만큼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요,

 

이 사람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무슨 복안이 없겠나이까.

 

여기서는 다만 내주에서 건너오는 수군(水軍)에 대비할 뿐,

 

어차피 요하를 넘어오는 군사는 요동에서 꾀를 내어 막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왕이 새파란 을지문덕에게 막중대임을 맡긴 데 대한 남진파들의 은근한 강샘이기도 했고,

 

양제의 교지를 받고도 줄곧 입조를 미뤄온 왕의 소심함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수나라와 어떻게든 화친하여 지내는 것을 만사의 으뜸으로 여겨오던 남진파들이었다.

 

불충의 대죄를 받을까 두려워 차마 내놓고 왕에게 수나라로 가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어도

 

더러 기미상합한 자들끼리 술상 앞에 앉아서는 나라의 안위보다

 

자신의 목숨을 더 염려하는 듯한 대원왕의 태도를 성토하기 일쑤였고,

 

특히 건무는 만일 자신이 왕이라면 몇 번이라도 수나라 조정에 입조하여 복종했을 거라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내막이야 어쨌든 왕은 을지문덕을 불러 물어보라는 건무의 말을 옳다고 여겨

 

곧 요동으로 사람을 보냈다.

 

연락을 받은 을지문덕은 반나절에 천리를 달리는 쌍창워라에 올라

 

압록수 북방의 산길 천 수백 리와 다시 압록수 이남의 천여릿길을 닷새 만에 주파해

 

장안성에 입궐했다.

 

쌍창워라는 본래 압록수 이남의 토종마인 과하마(果下馬)의 일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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