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53. 백범 어록(語錄) (2)

오늘의 쉼터 2013. 3. 31. 08:15

53. 백범 어록(語錄) (2)

 

독립 진영의 재편성

 

이 문제에 대하여는 일전에 비상 국민회의·독촉국민회· 민통 급 각 저당 단체의 제위 동지에게

고하는 글에 이미 진술한 바 있거니와 재작년 8·15 이후의 우리 독립운동은 성취보다 실패가

더 많았다. 공심보다 사심의 표현이 더 컸고 이지(理智)보다 기분의 충동이 더 강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 현상을 계속하면 결국 민중과 격리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위기에

임하여도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못하고 독립진영을 재편성하지 아니하면 즉각에 우리는

수습할 수 없는 국면에 봉착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급히 수천 년래의 독립운동의 법통을 계승한 비상 국민회의에 독촉국민호와

민통을 합류하게 하여서 독립 진영의 최고 기구로 삼는 동시에 각 정당과 단체의 권위 있는

대표를 참가하게 하여서 그 기구를 확대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기구는 명칭을 무엇이라고

하든지 독립운동의 최고 방략을 정하며 그것을 운영하기 위하여 독립운동을 위한 각 정당과 각

부문 단체들을 지휘 명령할 수 있는 권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구 산하에서 움직이고 있는 각 집단은 그 명령에 의하여 신속히 민중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 그들에게 선전하고 그들을 훈련하고 그들을 조직하여서 독립 진영을 민중의 기초 위에 확립 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합작위원회



  우리는 전 민족 통일을 수요(需要)하는 것이다.

전 민족 통일을 수요하므로 좌우 합작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립하는데 내부 통일이 절대 필요하지만 정치 이념이 부동(不同)한 양 개국에게 분단 점령을 당한 금일에 있어서 우리의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는 데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좌(左)만도 독립을 완성하기는 곤란한 것이며, 우(右)만도 독립을 완성하기는 곤란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시에 있어서 민주의원에서 합작위원을 소환한 진의는 결단코 좌우 합작을 불필요로 인정한다든가 혹은 단념하는 까닭이 아니다. 다만 합작위원회가 그 임무 수행 중간에 있어서 돌연히 좌익의 배반을 입어 그 목적을 달성할 희망이 없게 되었고 또 해회(該會)에서 발표한 7원칙 중에서 반탁에 관한 조항이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하지 중장의 작년 12월 24일 서한의 내용과 본월 5일 성명에 의하여 수포가 되고 만 까닭이다.

  그러나 해회(該會)를 취소한다 하여서 합작 공작을 위하여 진심으로 노력한 몇 분에 대한 우리의 경의는 감(減)할 바 아니어늘 일시 감정상 충동으로 그들에게 모욕을 가하는 것은 천만부당한 것이다.


더구나 해회(該會)를 영도하는 김규식 박사는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생을 희생하였고 탁치 반대자로는 누구보다도 철저한 터인데 그를 찬탁자(贊託者)로 몰아넣으려 하는 것은 일종의 공심(公心)을 떠난 모략으로밖에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각별히 이런 점에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부언할 것은 근일에 세간에서 운위하는바 중간노선은 정치 이상(理想)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을 이상으로 하는 중간당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좌우 합작의 사명을 가지고 노력하던 합작 위원들이 좌도 버리고 우도 버리고 중간만을 취한다면 그것은 당을 하나 더 만들어 내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자기들의 사명을 저버리는 분파 행동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현존한 합위(合委)는 해체하고 좌우 합작의 도경(途經)을 별개로 강구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다.



신탁



  우리에게 독립을 약속하고 신탁을 실시하려는 것은 마치 약 주고 병 주는 셈이다. 본래 우리나라에 신탁을 적용하려는 것은 금차(今次) 대전)의 목적에도 위반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나라에게 모욕되는 구실을 만들어 견강부회(牽强附會)하려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신탁을 적용할 임무를 가지고 제일선에 선 미 ·소 양국도 그 불합리한 점을 잘 요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해설도 불일(不一)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먼저 소련 측은 신탁을 후견(後見)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국제연맹 규약에 의하면 신탁통치와 후견은 동일하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 중장은 신탁이 무엇인지는 자기도 모르나 신탁이 원조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기왕 원조할 바에는 자기도 모르고 우리도 원하지 아니하는 신탁으로만 원조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니냐? 말이 이에 이르면 삼척동자라도 그 중에 명랑치 못한 무엇이 잠재한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최군 소지(蘇紙)에 논 한 바 “미국이 태평양 도서(島嶼)를 신탁 관리한다는 것은 합병과 같다.”고 한 단언에 의하면 한국에 대한 4대국 신탁관리는 4국 공동합병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말 것이다. 그러면 신탁을 반대하는 자가 의인이며 애국자가 될지언정 독립 방해자나 반동분자가 될 이유가 어디 있으랴. 이것이야말로 신일진회(新一進會)를 산출할 가능을 가진 위험한 논법이다.

  그러므로 신탁설이 전해 온 최초의 반향은 우리 전국 전 민족이 총궐기하여 생명을 도(睹)함으로써 일치하게 반대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수 인사가 북쪽으로부터 오는 괴류(怪流)에 휩싸여 3일 만에 돌연히 표변(豹變)하여 반탁을 반대한 것뿐이다. 신탁이 좋다고 감히 정면으로 찬성한자는 하나도 없었다. 이 정황을 목도한 아놀드 장군은 귀국하는 즉시로 화성동(華盛頓, 워싱턴)에서 ‘한국 인민은 절대 다수가 탁치를 반대한다.’고 언명하였다. 그런 뒤 수삭(數朔)이 못되어 윌리엄 씨가 ‘한국민 중에는 탁치를 좋은 것으로 이해하는 자가 일증(日增)한다’고 한 것은 한인을 격분시킬 뿐 아니라 세계를 현혹케 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동포 중 일부인사가 실망적 상태에서 신탁정부라도 성립되었으면 민생문제가 다소 해결되리라는 막연한 관념을 가지는 경향도 아주 없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구갈(口渴)을 풀기 위하여 독약이라도 마시려는 위험한 착각이다.


  우리 생존은 ‘자주 독립’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화성돈 위싱톤 선생도 자유가 아니면 죽음이라. 고 고함을 친 것이다. 그러므로 비율빈(필리핀의 취음)도, 면전(緬甸, 버마)도 월남(越南)도, 인도네시아도, 인도도 모두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고 있나니 어찌 한국만이 예외 될 수가 있으랴. 자주 독립을 위하여 영국과도 감히 전쟁을 한 미국은 누구보다도 우리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또 일부 인사 중에는 본심으로 신탁을 반대하면서도 그것이 국제적으로 규정된 기정사실이므로 약한 우리로서는 반대한다 하더라도 도리어 역효과밖에 내지 못하리라는 착오 인식을 가지고 오직 복종으로써 그들의 호의를 획득하여서 약속한 5년 후에나 틀림없이 독립을 주기를 애걸하자고 주장하는 듯 하다.

  그러나 다른 약소국들은 자기의 손으로 조인해 놓은 국제조약도 억굴(抑屈)한 것이면 불평등 조약 취소를 세계에 호소하여서 필경 목적을 관철하거늘, 우리만이 우리의 사정을 세계에 호소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으랴.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도 상고(上告)할 자유가 있거든 우리를 원조하는 맹우(盟友)들이 우리의 독립을 위하여 정하였다는 방법이 우리의 원하는 바가 아닐진대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호소도 하며 반대도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랴. 하물며 당사자인 우리는 알지도 못하게 자기네끼리 정한 것이니 그들도 양심상으로는 우리에게 동정할 것이다.

 

구하는 자에게 복이 오고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리나니 우리는 가장 냉정하고 평화로운 수단으로써 정치와 진리에 호소하여 신탁을 반대하자.


흑노해방(黑奴解放)이라는 정의를 위하여서는 동족전쟁(同族戰爭)까지 일으킨 미국의 자녀와 10월 혁명 이래 연합군의 시베리아 출병을 반대하며 그 외에도 누차의 외국 간섭을 피하기 위하여 투쟁하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소련의 자녀들이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사(如斯)히 양개우방의 인민이 우리에 대한 이해와 동정이 일증월가(日增月加)하면 양국의 정책도 자연 호전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소 공위가 그 사명을 이행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3상회의 결정까지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상, 우리가 우리 문제를 유엔에 또는 3월 10일에 모스크바에서 열릴 4상회의(四相會議)에 호소하여서 정당한 해결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 회의에 참가할 영· 불 양국은 미·소 양국과 같은 우리의 우방이며 또 사상회의 후 조만간 중국이 참가하는 사상(四相)혹은 오상회의(五相會議)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 우리에게 동정할 것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거니와 현시에 면전(緬甸)과 인도에 독립을 허(許)하려는 영국도 반드시 우리에게 동정할 것이다. 그리고 불란서도 중·영에 못지않게 동정할 것이다. 불국(佛國)은 3· 1운동 이후 우리 독립운동에 특별 동정하여 우리 임시정부가 10여 년간 상해 불조계(佛祖界)에서 안전히 활동하도록 보호하여 주었으며 또 서력(西曆) 1945년 1월에는 불국 정부가 우리 임시정부와 사실상의 외교관계를 건립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설령 국제 관계가 악렬(惡劣)하더라도 우리의 독립운동은 잠시를 정지할 수 없거늘 이와 같이 절호한 기회를 앞에 놓고 어찌 노력하지 아니하랴. 전도(前途) 희망이 뚜렷하니 오직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신탁을 끝까지 반대하자. 우리의 생존은 독립에서 오는 것이요, 우리의 독립은 반탁에서 오는 것이다.



38선



  대전이 종료된 지도 벌써 18개월, 세계는 영구한 평화의 수립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이때 우리나라에서는 우리의 적을 적으로 하던 양개(兩個) 우방 군대가 분산 점령을 하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되는 일이랴.

  더구나 화성돈(華盛頓, 워싱턴)방면으로 오는 외전(外電)에 의하며 권위 있는 문무 관원들이 언명하기를 아국(我國)과 일(日)?독(獨)에 군대를 주둔하는 것은 세계 평화 유지에 필요하다고 하였다. 일·독에 군대 주둔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겠으나 아국에 군대 주둔이 필요하다는 것은 해설을 요하는 바이다. 한국 자신이 일·독과 같이 평화에 위협을 준다는 것은 누구나 믿을 수 없는 것인즉, 문제는 우리 본신(本身)에 있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군대 주둔 자체가 도리어 평화에 위협을 줄 것 밖에 없다. 만일 이것을 부정하고 계속 주둔시킨다면 이로 인하여 생기는 결과로 말미암아 한국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불행이 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 있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에게 독립을 약속한 우방도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소 양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독립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요, 실로 세계 평화건설을 위해서도 큰 공헌이 있는 것이다. 일부 인사가 무슨 형식의정부든지 한국에서 성립되는 즉시, 38선이 철폐되리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나 이것은 일종의 희망일 뿐이다.


  38선을 즉시 철폐시키는 유일한 도경(途經)도 자주 독립정부를 수립하는데 에만 있는 것이니 우리는 남북통일과 자주 독립을 위하여 미·소 양군의 즉시 철퇴를 요구할 것이며 미·소 양군의 철퇴로써 남북통일과 자주 독립을 완성하기에 일치 노력하여야 하겠다.



국제관계



  한국도 국제의 일환인 만큼 국제 관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국제도 이 환절(環節)을 무시하고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유명한 정치가는 말하기를 ‘국제간에는 영원한 우인(友人)도 없고 영원한 적인(敵人)도 없다’고 하였지만 우리가 앞으로 영구한 평화를 수립하려면 피차간에 영원한 우인이 됨에 있어서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시에 있어서도 우리는 모두 우리의 우방에 대하여 똑같이 친선을 도모할 것뿐이다. 그런데 호상우인(互相友人)되는 요결(要訣)은 역(力)의 강약, 물(物)의 빈부(貧富), 또는 색(色) 여하에 구애됨이 없이 절대 평등한 지위에서 호상동정, 양해, 협조함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국제간의 내왕과 유무상통(有無相通)을 환영하며 또 우방에서 우리를 협조하기 위하여 각 방면에 있어서 기술을 제공하며 고문(顧問)이 되어 주는 것을 요구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절대로 거절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히 절망하지 아니할 때까지는 우리의 투쟁은 평화적이며 이지적(理智的)이며 거족적(擧族的)이어야 할 것이다. 평화적임에서 동정을 박득(博得)할 수 있을 것이며 이지적임에서 주밀(周密)한 계획을 가질 수 있으며 거족적임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전 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유리한 국제관계는 차(此)에 순응하여서 완전 파악할 것이며 불리한 국제 관계는 진리로써 투쟁하며 화기(和氣)롭게 유도하여서 호전시켜야 할 것이다.



*1947년 2얼 11일자「조선일보」등 일간지에는 그 요지가 실려 있다.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泣告)함

-1948년 2월 13일,「독립신문」



  친애하는 삼천만 자매 형제여! 우리를 싸고 움직이는 국내 정세는 위기에 임하였다. 제2차 대전에 있어서 동맹국은 민주와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천만의 생령(生靈)을 희생하여서 최후의 승리를 전취(戰取)하였다.

  그러나 그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 세계는 다시 두 개로 갈리어졌다. 이로 인하여 제3차 전쟁은 성양(醒釀)되고 있다.

  보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을 다시 만난 아내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을 다시 만난 어머니는, 그 남편과 그 아들을 또 다시 전장으로 보내지 아니하면 아니 될 위험이 닥쳐오고 있지 아니한가. 인류의 양심을 가진 자라면 누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바랄 것이냐? 과거에 있어서 전쟁을 애호한 자는 ‘파시스트’ 강도군(强盜群)밖에 없었다.


  지금에 있어서도 전쟁이 폭발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자는 ‘파시스트’강도 일본뿐일 것이다.

그것은 그놈들이 전쟁만 나면 저희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남북에서 외력에 아부하는 자만은 혹왈(或曰), 남정(南征), 혹왈 북벌하면서 막연하게 전쟁을 희망하고 있지마는 실지에 있어서는 아직 그 실현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폭발된다 하여도 그 결과는 세계의 평화를 파괴하는 동시에 동족의 피를 흘려서 왜적을 살릴 것밖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새 상전들의 암지(闇志)를 부를 것이요, 옛 상전의 귀염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이 난다 할지라도 저희들의 자질만은 징병도 징용도 면제될 것으로 믿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왜정 하에서도 그들에게는 그러한 은전이 있었던 까닭이다.

  한국은 일본과 수십 년 동안 계속하여 혈투하였다. 그러므로 일본과 전쟁하는 동맹국이 승리할 때에 우리도 자유롭고 행복스러운 날을 보낼 줄 알았다.

그러나 왜인은 도리어 환소 중에 유쾌히 날을 보내고 있으되 우리 한인은 공포 중에서 죄인같이 날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말이라면 우리를 배은망덕 하는 자라고 질책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 신문기자 리처드씨의 입에서 나온 데야 어찌 공정한 말이라 아니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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