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52. 백범 어록(語錄) (1)

오늘의 쉼터 2013. 3. 31. 07:51

52. 백범 어록(語錄) (1)

 

김구는 경교장에 숙소를 정한 다음,

지방시찰을 비롯해 틈틈이 먼저 세상을 떠난 독립열사들이 묘소를 참배했다.

우이동의 의암(義庵) 손병희의 묘소와 당시 아직까지 생존한 오세창 선생(33인의 한사람)을

방문했고, 또 매일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맞아 격려와 훈시 등을 통해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었다.

아래의 글들은 경교장에서 행한 연설과 신문지상에 발표한 것들이다.

모두가 중요한 것들이지만 특히 기억에 남을 몇 가지를 간추려 게재함으로써

그의 나라사랑과 민족애가 어떠했는가를 알아보도록 한다.

 

건국의 영웅 되라

-1945년 12월 3일,〈서울신문〉

나의 71평생을 두고 본 바에 의하면 어느 국가이고 사회이고

또 개인이고 간에 그 청년시기의 생장가치 여부가 결정의 성패를 차(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에 있어 청년이 중견으로서 힘을 상실하고 방황한다면 그 국가는 쇠망한다는 것은 여러분도 역사와 신문을 통하여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청년시기에 있어서도 청년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추진력을 가지기에

힘썼는데, 어느 정도로 싸웠는지는 나 역시 알 수 없으나 상해에서부터

지금까지 독립운동 선상에 있어서만은 청년과 접촉하였고 이 청년들을

애지중지하여 왔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이봉창(李奉昌) 의사와 윤봉길 의사도 청년이었다.

윤봉길군은 시간 있을 적마다 나를 찾아 주었고, 어느 날은 나에게

“선생님, 윤봉길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몸이니 국사(國事)를 위하여

영광스럽게 죽게 해 달라.”고 울며 탄원하여 나를 울리었다.

  또 어느 날은 나에게 자주 다니던 청년이 찾아와 권총을 내놓고 통곡하기를

일본 영사관에서 김구는 고약한 놈이니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지금까지

기회를 엿보았는데 선생님과 한번 두 번 대하고 말씀을 들어 보니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내 손으로 선생을 죽일 수는 없노라 하며 왜놈이

준 권총을 선생에게 바치고 남양으로 가니 이 총을 가지고 왜놈을 죽여 달라고 울며 말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학력도 없는 사람이나 항상 나는 청년들을 소중히 알고 사랑하여 왔다.  오늘 나를 찾아온 여러분은 청년층의 대표 격인 줄 안다.

저 노골인 김구가 우리 청년들을 토대로 지표로 신임하고 지금껏 싸워왔구나

하는 생각 아래 나를 집장(執杖)삼아 각기 건국의 영웅이 되어 주기 바란다.

앞으로 목숨이 붙어있는 날까지 여러분을 돕고 여러분을 지팡이 삼아 여생을

건국에 바칠까 한다.


  청년인 여러분들이 앞으로 내가 일해 나가는 길에 있어 직접 간접으로 면담을, 혹은 서신으로 행신(行信)을 알려주면 나는 그것을 참고해서 싸워 나가겠으니 나를 도와주기 바란다.



*경교장으로 백범을 방문한 청년 대표에게 한 격려사이다. 임시정부 요인의

환국을 계기로 통일 건국 태세가 최후단계에 도달하려는 이때에 거대한 추진력으로서 진보적인 45개 청년단체가 결집된 전국 청년단체총연맹의 서울시 연맹남녀 백여 명도 죽첨장(경교장) 숙시로 김구 선생을 방문해서 깊은 회견을 했다.


자주·평등 ·행복의 신한국

-1945년 12월 20일, <동아일보>



  친애하는 동포 제군! 나는 오늘 이 성대한 환영을 받을 때에 무엇보다도 먼저 임시정부를 대표해서 오랫동안 왜적의 통치 하에서 갖은 고난을 당하여 온 국내 동포 형제에게 가장 친절한 위문을 드립니다. 나와 임시정부 동인(同人)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 동포들의 이와 같은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될 때에 과연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이 있고 흥분이 있습니다.

  수십 년간 해외에서 유리전패(流離顚沛)하던 우리들로서 그립던 조국의 땅을 밟게 되고 사랑하는 동포들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은 참으로 무상한 영광이외다.

  여러분은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임시정부는 3·1 대혁명의 민족적 대 유혈 투쟁 중에서 산출한 유일무이한 정부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전민족의 총의(總意)로 조직된 정부이었고 동시에 왜적의 조선통치에 대한 유일한 적대적 존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임시정부는 과거 27년간 일대 혁명의 정신을 계승하여 전 민족 총 단결의 입장과 민주주의 원칙을 일관하게 고수하여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임시정부는 결코 모 일 계급 모 일파의 정부가 아니라 전 민족 각 계급 각 당파의 공동한 이해입장에 입각한 민주 단결의 정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의 유일한 목적은 오직  전 민족이 총 단결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한국에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건립하자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분투한 결과는 즉시 완전한 독립을 취득하지 못하고 소위 상당시기의 독립을 보증한다는 동맹국의 일지(一紙) 성명서를 얻어가지고 입국하였습니다. 이것은 실로 유감천만인 동시에 금일 우리가 이 성대한 환영을 받기에 너무도 부끄러운 점이외다.

  사랑하는 동포제군!

  금차(今次) 반파시즘 세계대전의 승리의 결과로 우리의 국토와 인민은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방은 무수한 동맹국 인민과 전사들의 보귀 한 피와 땀이 대가로 된 것이며, 또 망국 이래 수십 년간 우리 독립운동자들의 계산할 수 없는 유혈 희생의 대가로 된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지금 우리는 국토와 인민이 해방된 이 기초위에서 우리의 독립주권을 창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급하고 중대한 임무이외다. 우리들이 임무를 달성하자면 오직 3 ·1 대혁명의 민주단결정신을 계속 발양(發陽)해야 됩니다. 남북 조선의 동포가 단결해야하고, 좌파 우파가 단결해야 하고, 남녀노소가 단결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 개개인의 혈관 속에는 다 같이 단군 성조의 성혈(聖血)이 흐르고 있습니다.


극소의 친일파 민족 반도(叛徒)를 제한 외에 무릇 한국동포는 마치 한사람같이 단결해야 합니다. 오직 이러한 단결이 있은 후에야 우리의 독립주권을 창조할 수 있고 소위 38도선을 물리쳐 없앨 수 있고 친일파 민족 반도들을 숙청할 수 있습니다.

  나는 확신 불의(不疑)합니다. 유구한 문화 역사를 가진 우수한 우리민족은 이 시기에 있어서 반드시 단결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몇 정부 동인들은 보다 더 많은 자신과 용기를 가지고 전 민족 각계 당파의 철 같은 단결을 완성하기 위하여 분투하려 합니다.

  친애하는 동포 제군!

  지금 우리 국토를 구분 점령하고 있는 미·소 양국 군대는 우리  민족을 해방하여 준 은혜 깊은 우군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잘 협조 하여 왜적의 잔 세력을 철저히 숙청하는 동시에 그들이 회국(回國)하는 날까지 모든 편리와 수요를 제공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미·소·중·영·불 등 동맹국과의 다 같은 친밀한 관계를 세워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중·미·소 3국의 밀절(密切) 합작 기초위에서만 우리의 자유 독립을 신속히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 민족 내부가 철같이 단결될 때에 동맹 각국은 다 같이 우리 독립주권을 승인하여 줄 것이며, 우리의 신생국가 건설을 위하여 적극 원조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포 형제자매들이여!

  우리 국가의 즉시 완전한 독립은 정히 이 때입니다.우리 동포들은 3·1 대혁명의 전 민족 총 단결 총궐기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발양해서 우리의 독립주권을 찾고 자주 평등 행복의 신한국을 건설합시다. 이것으로 나의 답사는 그칩니다.



*1945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운동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선 환영식에서의 답사이다.

 

 

국중(國中)에 우국지사가 얼마나 있는가.

-1946년 7월 7일,「동아일보」



  입국 이래에 모든 관점을 일관하여 한번 소감을 발표코자 하였으나 종횡으로 오는 외래의 정세에 포니(抱泥)되고, 상하로 다단한 국정에 비추어 자못 자중하고 침묵을 지켜왔으나 점차로 국론은 옥석을 구분치 못하고 정국은 날로 암흑한 장막에 가리어 일발(一髮)을 난용(難容)할 위기에 직면하였다.

  무엇보다도 ‘애국자니 반역자니 좌니 우니’ 하는데 있어서 먼저 말하고자 한다. 과연 무엇을 가리켜 좌라고 우라하며 또 누구를 가리켜 애국자라 하고 반역자라 하는가? 좌우 운운하는데 있어서는 연합군이 남북에 할거(割據)하여 강장(彊場)에 획분 되었고 반탁과 찬탁의 기치가 엄연히 대립하여 양대 진영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나의 흉중에는 좌니 우니 하는 것은 개념조차 없다. 오직 조국의 독립과 동포의 행복을 위하여 분투할 것이며 일보를 전진하여 우리 동포는 세계 인류와 같이 형이상하(形而上下)의 번영과 익이 좌우(翼而左右)의 생존을 위하여 풍야 노력할 뿐이다.


  건국 강령의 요소에 있어서는 좌니 우니 하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할 것이 이미 국제 공약에서 약속된 것이다. 인류 오천년 역사를 통하여 봉건적 악폐에 시달려 온 우리로서야 누가 또 다시 압박자와 착취자와의 집단체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동경하고 구가할 것이냐?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동포의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서는 삼천만이 단결하여 일로(一路) 매진할 뿐이다.

  좌니 우니 하는 것은 민족 자멸의 근원이 될지니 생각할수록 오중이 찢어질 듯하다. 중류(中流)의 풍파는 오월(吳越)도 합작하였거늘 하물며 사위(四圍)에 고립하여 독립을 절규하는 우리로서야 차마 동족 분열을 요연(要然) 자행할 배랴.

삼천만 민중의 절대 희구는 오직 독립과 해방뿐이다. 어느 나라의 식민지나 어느 나라의 연방은 요(要)치 않는다. 나는 사천년 역사의 존엄을 장)하고, 삼천만 민중의 기대에 응하고, 광복을 위하여 적에게 장의취사(杖義就死)한 선열의 유지를 받들어 자주 독립을 절대의 전제로 투쟁할 뿐이다.

  애국자니 반역자니 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삼천만 민중이 먼저 치밀한 분석과 엄격한 비판이 있을 줄로 믿는 바이다.

  내가 일찍이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만 리 이역에서 풍진천석(風塵天石)을 무릅쓰고 동서에 구치(驅馳)하고 남북에 유락(流落)한 것이 어언 30여년이요, 천령(賤齡)이 칠십유일세(七十有一歲)이다. 조모(朝暮)의 여생을 모르는 나로서 어찌 삼천만의 중망(衆望)을 저버리고 일생의 고절(孤節)을 버릴 배냐?

  7월 1일 공산당 서기국에서 ‘조선인민보(朝鮮人民報)’를 통하여 ‘분단 책임자를 추방하라’는 제하에 나를 도리어 테러의 괴수라 하였으니, 나는 이것을 볼 때에 과연 국중(國中)에 우국의 지사와 혁명의 투사가 얼마나 있는가를 십분 생각하여 보았다.


  적이 납항(納降)하던 전석(前夕)까지 적의 진두에 서서 성전(聖戰)이라고 찬양하고, 적의 전승을 위하여 충(忠)을 맹서하고, 청년학도를 일으켜 전지(戰地)로 내몰고, 적의 주구(走狗)가 되며 적의 기관에 암약하여 적을 위하고 동포를 고압(高壓)하던 자와 적이 납항하고 연합군이 진주할 때까지 적의통치 기관인 총독부에 출입한 자는 모두가 애국자이며 사상가이며 정치가이다.

  나를 테러의 괴수라 하였으니 이것은 자신이 부정치 않는다.

  금월 6일 우리 민족 전체가 경의를 다하여 봉장(奉藏)케 된 3열사에 윤(尹), 이(李) 양 의사(義士)의 거의(擧義)에 있어서는 김구가 사주하였다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공표된 것이다. 나는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서는 이 이상의 방법이라도 취하였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우리나라의 독립에 일분(一分)이라도 불리한 조건이 된다면 나는 오늘이라도 단(檀)에 내리어 동포 앞에 솔직히 사의를 표하려고 한다.

  친애하는 동포여!

  절역(絶域)에서 전전 할 때에 고국의 산하를 바라보면서 그리운 동포를 연상할 때에 어찌 오늘과 같은 경우를 뜻하였으랴? 동포여 반성할지어다, 동포여 단결할지어다.



*백범의 탁치 반대를 민족분열이라고 보는 데 대한 백범의 눈물겨운 반격. 다음 기사가 본문 앞에 있다.



  반성하고 단결하자

  입국 후 김 총리 최초 성명

  동포에게 고(告)함

  민주의원 총리 김구 씨는 입국 이래 아무 공식적 견해를 표명하지 않고 다만 침묵을 지켜오던 바, 지난 4일 ‘동포에게 고(告)함’이라고 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성명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동(同)씨가 금후 적극적 태도로 나올 전제로 보여 금후가 주목되는 바이다.



자력으로 조국 찾자

-1946년 8월 16일, 「동아일보」



  나는 27년 동안 망명객으로서, 이 자리를 국내 삼천만 동포와 같이 하게 된 것은 실로 감개무량하다. 장시간을 충염취좌(衝炎聚坐)한 여러분을 대할 때 심금에 찬 감회는 넘치나 장황한 번설을 피하고 이 자리에서 느낀 바의 일단을 간단히 피력하겠다.

   나의 심경은 방령(方令) 김구 일신을 세분하여 삼천만 동포의 심중을 심방(尋訪)하여 보았다. 홀방(忽訪)한 김구 삼천만은 금일의 기념행사를 남의 집 연회에 춤추는 격이니 지난 일 년이 허무하며 독립은 타력에 의지하여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력으로써 자주성을 갖춘 독립이라야 비로소 민족의 안도와 국가의 영원한 번영을 재래할 것이다. 라는 말을 한 이 사람 역시 동감이다. 부탁하노니 동포여, 미군정에 아유(阿諛)의 신경과 모리를 일삼는다든가 사리와 이욕에 눈이 현혹한다든가 하여 자립과 민족의 복리에 배반한다면 우리에게 공약된 독립은 안전에서 만 리 외 창해 밖으로 달음질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조국을 저버리고 조국을 이 강호(江湖) 외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토 내에 있는 듯하다 이는 모두 우리의 독립을 방해하는 장벽일 것이다.

  명분과 의리에 어그러진 바를 청산하고 단결하며 독립완수에 매진할 것이며 만일 부모형제 일지라도 독립에 방해하는 바 있다면 단연 일보(一步)도 불사하여 있는 피를 마음껏 쏟아서 독립전선에 돌진하여야 할 것이며 서슴지 않고 정의의 발검(拔劍)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해방 후 처음 맞는 8·15 축사이다.




삼천만 동포에게 경고함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내가 입국한 지도 벌써 14개월이 지났다. 천질(天質)이 노둔(魯鈍)하고 재덕(才德)이 부족한 나는 이 긴 동안에 있어 여러분의 열렬한 애호와 다정한 격려를 추호도 보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동안에 기구한 객관적 정세의 발전은 외(外)로 국제 관계에 별 호전이 없고, 내(內)로 인민이 도탄에서 신음하고 있게 되었다. 가슴을 부둥켜안고 통곡을 한들 시원할 것이 무엇이랴 마는 노안(老眼)에서 열루(熱淚)가 방타(滂?)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열루만이 우리를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직 과거를 엄정하게 비판하여서 전 민족이 일심일덕(一心一德)으로 정확한 전로(前路)를 개척하기에 공동 분투함에서만 우리의 생존발전은 있을 것이다. 나도 자기의 과거를 검토하면서 뉘우치는 바가 하도 많다. 그러나 지폭(紙幅)관계로 일일이 제기하여 여러분에게 사(謝)하지 못함은 유감이다.


  이 점에 대하여는 여러분의 관서(寬恕)를 청(請)하는 바이다. 나는 앞으로 분골쇄신을 할지라도 잔명(殘命)을 조국에 바치어 장공속죄(將功贖罪)를 하기로 결심하고 우선 오점(五點)을 들어 여러분께 협력을 간구한다.

  공명(共鳴)함이 계시거든 간단없이 현명한 고견과 탄백(坦白)한 책려를 주시는 동시에 공동 노력함을 아끼지 아니하시기를 절망(切望)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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