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한국의 野史

13. 長髮의 佳人

오늘의 쉼터 2018. 12. 18. 19:29

[고구려 궁중비사]


13. 長髮의 佳人



동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은 제十二대 중천왕(中川王)이다.

 
왕은 이름을 연불(然弗)이라 했는데 동천왕의 아들이며 일찍이 동천왕 17년에 태자가 되었다.
준수한 외모와 탁월한 지력으로 새 임금의 자격이 충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권의 계승에 따르는 분쟁을 모면할 수 없었다.
 
왕이 즉위한 해 11월 그의 아우 예물(豫物)과 사구(奢句) 등이 불평을 품고 모반했다.
왕은 원래 과단성 있는 임금이었다. 즉시 두 아우를 잡아 죽여 버리고 새 정권을 공고히 했다.
왕의 이와 같은 과단성은 다른 면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유명한 관나부인(貫那夫人)의 이야기가 가장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관나는 얼굴이 아름답고 특히 머리채가 九척이나 되는 장발의 미녀였다.
왕은 그 용모를 사랑하고 장차 소후로 삼으려 했다.
 
왕의 마음이 관나에게로 기울게 되자 누구보다도 투기의 불길을 태운 것은 왕후 연씨(椽氏)였다.
연씨는 일찍이 중천왕이 즉위하던 해 10월에 왕후가 된 몸이었다.
연씨는 여러 가지로 궁리 하던 끝에 왕과 관나를 갈라놓을 한 가지 계책을 세웠다.
 
“지난날 선왕께서는 중국을 잘 섬기지 않았으므로 병화(兵火)를 입고 거의 나라를 잃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지금 대왕께서 그들의 뜻을 맞추신다면 그들은 기뻐하고 다시는
침범하는 일은 없을 줄로 아옵니다.”
 
조용한 틈을 타서 연씨는 이렇게 진언했다.
그 말만 듣는다면 여성답지 않은 정치적인 진언이었다. 
왕은 그 진의를 알 수 없어 물어보았다.
 
“중국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자면 어떠한 방도가 있겠소?”
 
그러니까 연씨는 무슨 대단한 계책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싹 다가앉아 은근히 말했다.
 
“제가 듣기에 지금 위나라에서 긴 머리카락이라면 천금을 아끼지 않고 사들이는
풍습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라 안 여인들의 머리채를 모조리 베어서 위나라에 바치자는 거요?”
 
왕은 약간 비꼬는 투로 되물었다.
그러나 연씨는 절레절레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대왕 그게 어찌 될 일이옵니까?
만일 그런 일을 단행한다면 온 나라가 당장 어지러워질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어려운 방도가 아니라 아주 손쉬운 방법이 있사와요.”
 
“그건 또 어떠한 방법이오?”
 
“관나부인 말씀이에요.”
 
“관나부인?”
 
“관나부인의 머리채는 아홉 자(尺)나 되니 중국에서도 아마 보기 드문 장발미인일 것이요.
죽은 머리만도 천금으로 사는 그 나라의 풍속이온데 장발미인을 산채로 보낸다면
그 나라 임금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이제 연씨의 의도는 완연히 드러난 셈이었다.
왕은 원래 부왕과 백성들이 위나라의 침공을 받고 심한 곤욕(困辱)을 받은 것을 분하게 생각해
온 터였다.
그러므로 위나라에 기회가 있으면 크게 복수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참인데
그 비위를 맞추느라고 사랑하는 여인까지 보내다니 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왕후의 말은 잘 알겠소. 내가 적절히 처리할 것이니 다시 그런 말, 입 밖에도 내지 마오.”
 
이렇게 물리쳤다.
왕후 연씨가 관나부인을 멀리하려고 꾀한다는 소문은 관나의 귀에도 들어갔다.
관나는 연씨 못지않게 잔재주를 잘 부리는 여인이었다.
 
“제가 나를 쫓아버리려 한다구?
어림도 없는 수작이지. 그렇다면 내게두 생각이 있단 말이야.”

관나가 이렇게 벼르고 있는 중에 하루는 왕이 기구(箕丘)로 사냥을 떠나게 되었다.
때는 왔다고 생각한 관나는 거짓 눈물을 흘리며 왕의 소매를 잡았다.
 
“대왕, 대왕께서 멀리 떠나신다면 저는 어찌하옵니까?”
 
“어찌하다니? 조용히 내가 돌아올 때만 기다리면 될 것이 아닌고?”
 
왕은 사랑하는 가인이 잠시의 이별이나마 애석히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이렇게 말했다.
 
“대왕, 그것은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모르는 말이라니?”
 
“대왕이 잠시라도 궁궐을 비우시면 저의 목숨은 아마 당장 없어질 것이에요.”
 
“목숨이 없어지다니? 누가 그대를 해친단 말인고?”
 
왕이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자 관나는 한층 더 흐느껴 울며 말했다.
 
“대왕, 저는 두렵사와요.”
 
“두렵다니? 글쎄 누가 두렵단 말인가?”
 
“왕후마마가 두렵사와요.”
 
“왕후가?”
 
“왕후마마께선 항상 저를 꾸짖으시며, 시골 계집이 어찌 이곳에 있을 수 있느냐,
돌아가지 않는다면 크게 뉘우치게 될 거라고 하시지 않다면 제 몸이 어떻게 되겠사와요?
왕후마마의 손에 죽고 말 것은 환한 일이 아니에요?”
 
그 말을 듣자 왕은 관나에게 동정심이 가기보다도 오히려 지겨운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는 연씨가 관나를 물리치려 하고 이번에는 관나가 연씨를 참소하는 모양이다.
 
‘여자들이란 모두 이런 것일까?’
 
왕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사냥길을 떠났다.
 
며칠 후 왕이 사냥터에서 돌아오자 관나부인은 궁궐문까지 달려 나오며 통곡을 한다.
 
“왜 이리 상스럽지 못하게 울기부터 하는고? 먼 길에서 돌아오는 사람을 반길 줄도 모르는고?”

왕이 꾸짖으니까 관나는 더욱 울음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대왕, 이런 일을 당하고 어떻게 울지 않겠사와요?”
 
“무슨 일이냐?”
 
“글쎄 왕후마마가 저를 바다에 던지려고 하시는군요.
대왕께서는 저를 아끼시는 뜻에서 저의 집으로 돌려보내 주시어요.
이곳에서 대왕을 모시다간 언제 어떻게 죽을는지 알 수 없는 일이옵니다.”

“아니 왕후가 아무리 그대를 싫어하기로 바다에 던질 만치 잔인하지는 않을 텐데…”
 
“못 믿으시겠으면 이것을 보세요. 이 가죽주머니에 저를 넣어서 바다 속에 던지려고 하셨어요.”

왕은 아무래도 관나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궁인들을 불러 추궁해 보니 관나의 말은 전혀 거짓말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왕이 자기를 사랑하는 품으로 보아 눈물로써 호소한다면 자기 말에 속아 넘어가서
왕후를 멀리할 것이라는 얕은 생각에서 꾸민 연극이었다.
 
관나의 미모를 극진히 사랑하던 왕이었지만 한 나라의 국모를 참소하고 기강을
어지럽히려고 하는 것을 버려둘 만치 깊이가 없지는 않았다.
 
“이 요사한 계집아!”
 
왕은 무섭게 꾸짖었다.
 
“네가 그렇듯 물고기의 밥이 되고 싶다면 네 소원대로 바다에 처넣어 주마.”
 
그리고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 연극을 꾸민 가죽주머니 속에 관나를 처넣고 바다로 던져버리게 했다.
중천왕 4년 초여름의 일이었다.
 
중천왕은 그 후 여색에 현혹됨이 없이 나라 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왕후 연씨의 의견을 따라 위나라를 떠받드는 것 같은 허술한 외교정책을 취하지는 않았다.
 
중천왕 20년 위장 위지(魏將尉遲)가 군사를 이끌고 침입하는 일이 일어나자,
왕은 정병 5천을 뽑아 거느리고 양맥곡(梁貊谷)에서 싸워 크게 격파하고 적군 8천여명을 참살했다.
 
이와 같이 안팎으로 나라 일에 힘을 쓰고 왕은 23년 10월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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