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한국의 野史

2. 悲運의 都彌夫妻

오늘의 쉼터 2019. 1. 9. 18:01

2. 悲運의 都彌夫妻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제 四대 개루왕(蓋婁王)은 성품이 공손하고 조행이 단정했다고 하는데

그런 왕이 도미(都彌)라는 백성에게 자행한 잔인한 처사는 자못 흥미 있는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

 
도미(都彌)는 이 때 백제 서울 한산(漢山)에 살고 있었다.
별다른 벼슬도 없는 서민이었지만 농토도 넉넉히 가지고 있었고 종들도 여럿을 거느리고 부유한 층에
속했다.
 
뿐만 아니라 도미는 누구보다도 좋은 아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큰 자랑거리였다.
비길데 없이 어여쁜 용모에 남편을 극진히 섬기는 착한 마음씨, 집안에 티끌 하나 보이지 않게 하는
깔끔한 살림솜씨, 어느 구석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좋은 아내였다.
 
그러한 어느날 왕이 도미를 불렀다.
도미는 까닭을 알 수 없어 궁성으로 달려갔다.
임금은 도미를 극진히 대접했다.
 산해진미(山海珍味)를 차리고 좋은 술을 손수 부어 주었다.
 
그러다가 임금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그런데 도미, 이 세상에 여자처럼 못 믿을 것은 없어.”
 
도미는 어째서 갑자기 저런 소리를 하나 하고 벙벙히 임금의 입만 바라보았다.
 
“무슨 정조가 굳으니, 부덕이 높으니 하면서 잘난 체하는 여자가 많지만,
그런 여자들도 으슥한 곳에서 달콤한 말로 꼬이면 엿이 더운 햇볕에 녹아버리듯
마음이 동하는 법이거든.”
 
마음 깨끗하고 고지식한 도미의 귀에는 임금의 이런 말이 지극히 더럽게 들렸다.
 
“그럴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 여자는 진실로 정숙하지 못한 여자겠지요?”
 
도미는 참다 못해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는 소리 말라. 내가 안 여자들은 모두 다 그렇단 말야.
그대는 여자를 얼마나 알기에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소인이 아는 여자라고는 소인의 처밖에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다른 여자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인의 처만은 그 지조가
무쇠보다도 더 굳다는 것을 소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목숨을 끊으면 끊었지 지조를 굽히지는 않을까 합니다.”
 
도미의 말을 듣자 임금은 비꼬듯 말했다.
 
“자기 처를 굉장히 믿는 사람이로군.”

“비록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 있더라도 소인의 처의 마음만은 굳게 믿습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은 거야. 그대 아내도 여자인 이상 별 수 없지.”
 
이 말을 듣자, 도미는 불덩이 같은 것이 가슴에 치미는 것을 느꼈다.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아내를 더러운 임금 입으로 욕보인 것이 분했다.
 
“대왕께선 저의 아내를 모르시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야 그대 아내의 마음을 내가 알 까닭이 있나?
시험해 보지 않고서는. 내가 그대 아내를 만나서 시험해 볼까?”
 
“시험해 보신들 소용없는 일입니다.”
 
“아냐 꼭 시험을 해봐야지. 그대가 이제 와서 내 말이 옳다고 하면 그대 아내를 욕보이는 것이 되고
내가 이제 와서 그대 말이 옳다고 하면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실없는 말을 한것이 되지 않는가?”
 
도미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임금은 곧 한 신하를 불렀다.
그리고는 그 귀에 대고 무엇인지 속삭였다.
 
얼마 후 임금과 꼭같은 복장을 한 신하가 궁궐을 빠져 나와 도미의 집으로 향한 것을 궁궐 한방에
단단히 갇힌 도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도미의 아내는 남편을 궁궐로 보내 놓고 마음을 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낮이 되고 해가 다 져 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저녁 때가 다 되어서야 갑자기 문밖이 떠들썩했다.
그러더니 한 하녀가 뛰어 들어왔다.
 
“큰일났습니다. 임금께서 오셨습니다.”
 
그 말에 도미의 아내는 새파랗게 질렸다. 급히 뛰어나가 맞아들였다.
 
자리를 정하자 임금이란 자는 넌지시 도미의 아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내가 몸소 예까지 온 것은 다름이 아니야.
그대가 천하일색이란 말을 듣고 그대 남편에게 그대를 물려 달라고 했더니
그대 남편의 말이 그토록 어여쁜 아내를 내놓기는 아깝지만 높은 벼슬을 준다면
응하겠다고 하지 않겠나.
그래서 그대 남편에게 높은 벼슬을 주고 그대는 나의 비(妃)로 삼을 생각으로 이렇게 찾아왔단 말야.”
 
도미의 아내는 이 말을 듣자 그것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도미는 높은 벼슬은 고사하고 임금의 자리일지라도 자기 아내와 바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 그러니 한시라도 속히 서로 아름다운 인연을 맺잔 말야.”
 
임금이란 자는 도미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영리한 도미의 아내는 곧 기묘한 꾀를 생각해 냈다.
 
“나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니 어찌 순종치 않겠습니까?”
 
“자 그럼 어서 말을 들어야지.”
 
“그러합니다만 지금 행색이 누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른 분도 아닌 대왕임을 모시는데 화장도 해야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도미의 아내가 이렇게 간청을 하니 임금이란 자는 그 말을 들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속히 치장을 하고 들어오라.”
 
볼멘 소리를 하며 겨우 놓아 주었다.
다른 방으로 건너간 도미의 아내는 은밀히 몸종 하나를 불러 들였다.
그 몸종은 이 집안에 있는 몸종 중에서 가장 어여쁠 뿐만 아니라 용모나 체격이 안주인과 흡사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은 몸종이 아니라 친동생으로 잘못 볼 지경이었다.
 
“네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나와 똑같이 치장을 하고 나 대신 저 임금이란 사람의 방으로 들어가 다오.”
 
주인의 명령이면 무엇이나 다 듣는 종이었다.
즉시 도미의 아내와 꼭같이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그 방에 들어가거든 한 마디도 말을 하지 말고 그 사람이 하라는 대로만 해라.”
 
도미의 아내는 몸종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
 
임금을 가장한 그 신하는 여자가 말없이 들어오자 자기도 아무 말하지 않고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급히 옷을 벗겼다.
여자는 하는 대로 맡겨 둘 뿐 꼼짝을 않는다. 옷을 다 벗기자
그 신하는 여자의 속옷 한 자락을 집어 들더니 벌떡 일어나서 껄껄 웃는다.
 
“내 임금의 몸으로서 아름다운 인연을 맺는데 훌륭한 궁궐을 두고 어찌 이와 같이 초라한
백성의 집에서 하겠는가? 지금은 그저 그대가 내 말을 듣는가 안 듣는가 시험해 보았을 뿐이다. 
내일 다시 사람을 보낼 테니 몸단장 잘하고 궁궐로 들어오도록 하라.”
 
그리고는 급히 도미의 집을 나갔다.
 
도미 부인의 속옷자락을 그 신하가 가지고 가서 바치자 왕은 흡족한 미소를 띠웠다.
그리고 그것을 도미에게 보였다.
 
“이걸 봐라. 네가 아무리 네 아내의 지조를 자랑하지만 이것은 바로 네 아내의 속옷이란 말야. 
내 신하를 임금으로 가장시켜 네 집에 보냈더니
네 아내는 호락호락 몸을 맡기려 하기에 이렇게 증거물로 속옷을 찢어 왔단 말야.
자, 이래도 네 아내의 지로를 자랑하겠느냐?”

도미는 왕의 말을 듣자 눈 앞이 아득했다.
비록 한 나라 임금의 권세로 위압했다 하더라도 그렇듯 자기만을 사랑하던 아내가 몸을 맡기다니…
도미는 그 속옷자락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그의 두 눈은 환하게 빛났다.
 
“속으셨습니다. 대왕께서 속으셨어요.”
 
미친 듯이 웃어댄다.
 
“아니 속다니?”
 
오히려 왕이 놀라 물으니까 대답했다.
 
“이것은 제 아내의 속옷이 아닙니다.
바로 제 아내가 부리는 몸종의 속옷입니다.
제 아내는 비록 하잘 것 없는 여인이지만
속옷만은 특별히 고운 감으로 해 입는 걸 소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친 감으로 속옷을 해 입지는 않습니다.
저의 집에서 이런 옷감으로 속옷을 해 입는 것은 종들 뿐 이옵니다.”
 
이 말을 듣자 왕은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격분했다.
 
“천한 백성의 몸으로 감히 나라의 임금을 속이고 조롱하다니.”
 
그러나 왕이 격분한 것은 속았다는 사실보다도 자기의 견해가 여지없이 뒤엎어졌다는 점에 있었다.
겉으로 얌전하고 조행이 바른 사람은 대개 마음이 차고 회의적인 경향을 띠우기 쉽다.
 
개루왕이 바로 그런 형의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위해서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는 정렬 같은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로 나타났다. 격분할 밖에 없다.
 
내향적인 사람이 격분하면 음산하고 잔인한 행동을 취하는 수가 많다.
개루왕은 자기의 인생관이 허물어진데 대한 분풀이를 하는데 있어서도 보통 사람과는
다른 방법을 취했다.
 
즉 도미에게 애매한 죄를 씌워 그의 두 눈알을 뽑아 버리고 사람을 시켜 강물에 띄어 버리도록 한 것이다.
 
“대왕, 헛일이오. 나의 눈알을 빼버려도 나의 아내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소.
나는 아내의 아름다움을 얼굴에 달린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깊이 박힌 눈으로 보는 거요.”

끌려 나가면서 이렇게 외치는 도미의 말이 왕의 가슴에 송곳처럼 박혔다.
 
왕의 분은 그곳만으로 풀리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 도미의 아내를 잡아 들였다.
강제라도 범해서 자랑하는 정절을 꺾어버릴 생각이었다.
 
“이제 네 남편은 소경이 되어 멀리 강물 위를 꺼내려가고 있다.
아무리 찾아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단 말야. 자, 이렇게 돼도 내 말을 듣지 않겠느냐?”
 
도미 부인은 왕의 처사가 물어뜯고 싶도록 미웠다.
그리고 그런 왕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소경이 되어 강물 위를 떠내려가고 있다는 남편에 대한 심려였다.
 
자기가 죽는다면 남편을 구하고 돌볼 사람은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을 도망해서 남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도미 부인은 왕을 다시 속이기로 했다.
 
“이미 남편을 잃고 홀몸이 되어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한데 대왕을 모시라고 하신다면
오히려 고맙고 영광스러울 뿐이옵니다.”
 
우선 이렇게 말해 보았다.
그랬더니 왕은 아직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이윽히 건너다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 말을 들어야 할 게 아니냐?

“그러하오나 지금 몸이 더러워 대왕을 모실 수 없사오니 며칠만 기다려 주시기 바라옵니다.”
 
즉 월경 중이니 그것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도미 부인을 놓아 주었다.
 
지난번에 속은 사실로 미루어 도미 부인의 말을 의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것은 왕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도미가 이미 불구자가 되어 멀리 떠났는데도 그의 아내가 남편에게 대한 정절을 지키려고
자기를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인간에겐 정절이나 의리가 없다고 믿는
자기 인생관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곁에 있는 동안은 또 몰라도 이제 멀리 떠나간 이상, 소경이 된 남편을 찾느니 보다
임금의 총애를 받아 호강을 하는 편을 택하겠지. 여자라는 건 원래 그렇게 돼먹은 것이란 말야.’

 
이렇게 중얼거리며 도미 부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도미 부인은 물론 궁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 길로 남편을 찾아 한수(漢水)가로 달려갔다.
 
강가에 이르러 보니 남편을 따라갈 배가 없다.
남편은 조그만 배에 태워 강물에 띄어 보냈다고 하니
남편을 찾자면 배를 타고 하류로 내려가야 할 텐데 그 배가 없다.
 
‘하늘이시여, 어쩌면 이렇게도 무심하시옵니까?’
 
도미 부인이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상류로부터 조각배 하나가 흘러 내려왔다.
하늘이 그 뜻을 가상히 여기어 보낸 것인지 또는 우연히 주인을 잃은 조각배가 떠내려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도미 부인은 그 배를 타고 하류로 내려갔다.
 
한수 하류에 천성도(泉城島)라는 섬이 있었다.
남편을 부르며 거기까지 조각배를 몰고 내려 온 도미 부인은 문득
그 섬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저이가 혹시 남편이 아닐까?’
 
도미 부인은 급히 그리로 배를 댔다.
 
옷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두 눈은 피로 맺혀 있어 지난날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남편 도미였다.
 
부인은 남편을 안고 목 놓아 울었다.
남편도 부인의 등을 어루만지며 반가와 했다.
무엇보다도 도미는 몹시 굶주려 있었다.
부인은 우선 풀뿌리를 캐다가 요기를 시켰다.
 
얼마 후 도미가 기운을 차리자 두 사람은 앞으로 살아갈 일을 의논해 보았다.
고향 땅으로 돌아가면 왕의 핍박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고향 땅뿐 아니라 백제 어느 곳에 숨어 있어도 집요한 왕은
끝내 자기들을 찾아 가지고 해치고야 말 것이다.
 
“차라리 이웃나라 고구려로 갑시다.
그 곳 임금은 어질고 인자해서 백성들은 모두 배를 두드리며 편안히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소.”
 
도미가 이렇게 말하자 아내는 즉시 그 말을 따라 다시 배를 타고 고구려 땅으로 건너갔다.
 
고구려 사람들은 불쌍한 이들 부처를 기꺼이 맞아 주었다.
집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장만해 주어 그들은 마침내 외롭긴 하지만 조용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도미 부처의 망명사건은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렇듯 무도한 임금의 치하에선 살 수 없다고 이웃나라로 도망치는 백성들이 뒤를 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왕은 입맛을 다셨다.
인구가 부족하던 그 당시로서는 백성을 잃는다는 것은 곧 국력의 쇠퇴를 의미하게 된다.
어떻게 해서든지 백성들이 이 이상 도망하는 것을 막아야할 뿐만 아니라
이미 도망간 백성들 대신 이웃나라 백성들이 백제로 모여들도록 해야 나라와 임금의 위선이 설 형편이었다.
 
개루왕은 그 대책을 강구하느라고 여러 가지로 부심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시적인 술책으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을 조리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사건이 생겼다.
 
개루왕 三十八년 十월, 신라의 아찬 길선(阿餐 吉宣)이 모반을 하다가 사실이 발각되어
백제로 망명해 온 일이 있었다.
 
이에 신라 아달라왕(阿達羅王)은 글을 보내어 길선을 돌려 달라고 청해 왔다.
이웃나라의 의리로 볼 때 죄인을 은익 한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기니 하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개루왕은 길선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길선의 인물이 쓸 만해서 두둔한 것도 아니었다.
자기 나라에서 이웃나라로 도망해 가는 백성들만 많았는데,
이유야 어쨌든간에 이웃나라에서 자기 나라로 도망해 온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이 반가왔다.
 
‘제 나라에서 죄를 지은 길선을 그렇듯 두호 한다면 아무런 죄도 짓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후대할 것인가.’
 
이웃나라 백성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대거 망명해 오리라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산이었다.
길선을 두호한다고 뒤를 이러 망명해 오는 사람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신라왕 아달라의 노여움만 샀다.
 
“이웃나라의 정의를 저버리고 역적을 두호한 백제왕에게 우리 신라의 힘을 좀 보여 주어야겠다.”

아달라왕은 즉시 군사를 내어 백제를 침공했다.
뜻밖의 침공을 받은 개루왕은 대경실색했다.
모든 성을 굳게 지키고 소극적은 방어책을 강구할 뿐이었다.
다행히 신라 군사들은 일시적 감정으로 흥분하여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침입한 때문에 얼마 후에 그냥 돌아가기는 했지만 이로부터 신라와의 관계가 대단히 악화되고 말았다.
 
개루왕의 이와 같은 처사에 대해서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길선은 간적(姦賊)이거늘 백제왕은 그를 거두어 감춤으로 이웃나라와 화목을 잃고 백성들로 하여금
 싸움터에서 괴로움을 당하게 했으니 이는 심히 밝지 못함 처사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일로 심한 충격을 받았던지 개루왕은 그 다음 해인 三十九년에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 초고(肖古)가 뒤를 이어 즉위했다.
곧 제 五대 초고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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