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한국의 野史

16. 公主의 사랑

오늘의 쉼터 2018. 12. 29. 20:25

16. 公主의 사랑



온달은 평원왕(平原王 또는 平岡王이라고도 한다) 때의 사람으로

외모가 매우 어리석고 우둔하게 생겼으므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집안이 몹시 가난해서 떨어진 옷과 낡은 신을 끌고 거리를 다니며 구걸을 해서
홀어머니를 봉양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낮추어 보았다.
어리석은 외모 속에 감추어진 질박한 온정과 강건한 용기를 알아주는 사람이라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이 때 평원왕에겐 한 공주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조금만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있어도
울부짖고 애를 태웠다. 말하자면 몹시 신경이 예민하고 성깔이 강한 소녀였던 모양이다.
공주가 울부짖는 것을 달래기가 귀찮아지면 왕은 곧잘 이런 농담을 했다.
 
“너는 웬 아이가 그렇게 울기만 하느냐? 그러다가는 장차 자라서 점잖은 집으론
시집을 갈 수 없겠으니 저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을 보내야겠다.”
 
왕으로서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어린 공주의 가슴에는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말이 깊이 새겨졌다.
 
울기 잘하던 공주도 어느덧 성장해서 16세의 처녀가 되었다.
그래서 왕은 공주를 상부(上部)의 고씨(高氏)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했다.
공주답게 문벌 좋은 집으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이 그런 뜻을 전하자 공주는 펄쩍 뛰었다.
 
“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어요?
아버님께서는 항상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하셨고, 저도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
온달만이 남편으로 섬길 사람으로 생각해 왔는데 이제 어째 딴 말씀을 하시어요?”
 
공주의 말을 듣자 왕은 껄껄 웃었다.
 
“네가 어려서 하도 울기에 달래느라고 농담을 한 것이지
차마 한 나라의 공주를 구걸을 하고 다니는 바보에게 보낼 수야 있겠느냐?”
 
그러자 공주는 더욱 빡빡하게 대들었다.
 
“제가 배워오기는 한낱 필부도 식언(食言)을 죄로 안다고 합니다.
하물며 가장 존귀하신 어른의 말씀이 어찌 그걸 수 있겠습니까?
비록 아버님이시며 이 나라의 임금이신 분의 분부이긴 합니다만
그릇된 분부는 저는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어려서 농담으로 한 말을 끄집어 이렇게 거역한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빽빽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주의 편에 서서 생각한다면 전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라의 기틀이 잡혀가고 강성해짐에 따라 건국초의 질박하고 강건한 기풍은 날로 퇴폐되어 가고
왕족이나 귀인들은 매사에 형식을 찾기 시작했을 것이며 실력보다도 문벌을 내걸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공주에게는 못마땅했는지 모른다.
혹은 성깔이 강하고 신경이 예민한 공주라 허식과 권모술수로 만사를 처리해 가는
궁중생활에 견딜 수 없는 반발을 느꼈을는지도 모른다.
 
한편 어려서부터 마음에 새겨온 온달이라는 사나이, 세상 사람들이 바보라고 부르는
그 사나이의 동정을 살피고 사람됨을 알아본 결과 전혀 다른 해석을 하게 되었을지도 알 수 없다.
속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 식견과 뛰어난 용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오직 가난하고 문벌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지나치데 겸손하기 때문에
햇볕을 보지 못하고 파묻혀 버리는 옥과 같은 인물이라고 그렇게 해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문벌만 높고 아무런 실력도 없는 귀인에게 시집을 가느니보다
세상의 멸시를 받더라도 참된 사나이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공주가 하도 맞서니까 왕은 크게 노했다.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으니 내 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내 딸이 아닌 이상 함께 살 수 없으니 너 가고 싶은 데로 마음대로 가거라.”
 
홧김에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면 공주가 어쩌나 그 태도를 보고 싶어서 한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왕의 말이 떨어지자 공주는 즉시 금팔찌와 보석목걸이 수십 개를 팔에 감고 궁궐을 나왔다.
온달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온달이 어디서 사는지 알 수가 없어서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 겨우 그 집을 찾아갔다.
 
온달의 집에는 온달은 없고 늙고 눈이 어두운 그의 어머니가 혼자 앉아 있었다.
공주는 늙은 어머니 앞에 꿇어 공손히 절을 했다.
그랬더니 앞 못 보는 늙은 어머니는 눈을 꿈벅꿈벅하며
“온 몸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기 필기 지극히 귀한 분인 것 같구료.
무얼 하러 여길 찾아 왔소?”하고 물었다.
 
“바로 댁의 아드님께 시집 올 여자입니다.”
 
“우리 아들에게 시집을 오다니?”
 
노모는 더듬더듬 공주의 손을 어루만졌다.
 
“솜과 같이 부드러운 손으로 이 움막집에서 가난한 살림을 할 수가 있을라구?”
 
“그런 점도 미리 다 알고 찾아왔습니다.”
 
“당치도 않은 말씀, 우리 아들은 며칠째 굶어서 견디다 못해 느릅나무 잎을 따러 산으로 갔다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저는 이 댁 며느리 노릇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공주는 온달을 찾아 산을 향해 올라갔다.
얼마쯤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려니까
저편에서 느릅나무 잎을 따가지고 내려오는 사나이가 있었다.
온달이었다. 공주는 그 앞으로 달려갔다.
 
“당신께 시집 온 여자입니다.”
 
이 말을 듣자 온달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새파란 처녀의 몸으로 그게 무슨 소리요?
아마 그대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일 거요. 썩 물러가지 못할까!”

온달은 이렇게 꾸짖고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집으로 향했다.
공주는 그 뒤를 따랐다.
공주가 온달의 집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온달이 문을 단단히 잠가버린 뒤였다.
두드려 보기도 하고 소리껏 불러보기도 했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이미 날이 저물었다. 그래도 공주는 그 집 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 지성에 감동했던지 온달은 겨우 문을 열어 주며 물었다.
 
“어디서 오신 분이며, 무슨 까닭으로 나를 이렇게 찾아오신 거요?”
 
공주는 그제야 전후 사실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아도 괴상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공주가 거지에게 시집을 오다니.
 
“그렇지만 한 나라의 공주님으로 호강을 누리시던 분이
이런 구차한 살림을 정말 견디어 내시겠소?”

 
온달의 모친은 물어보았다.
 
“서로 마음만 맞으면 가난한 것쯤이야 어찌 가리겠습니까?”
 
공주의 얼굴에는 지극한 성의와 움직일 수 없는 결의가 서리어 있었다.
그것을 보자 온달 모자는 겨우 마음을 허락하고 냉수를 떠다가 혼례식을 치렀다.
 
혼인한 이튿날이었다. 공주는 온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마다 구걸이나 하고 느릅나무 잎이나 뜯어 먹고 이런 살림을 하다가는
언제까지나 가난을 면치 못할 거예요.”
 
온달은 난처한 듯이 공주를 쳐다보며 힘없이 말했다.
 
“그렇지만 그것밖에 할 일이 있어야지.”
 
“왜 할 일이 없어요? 남들과 같이 논을 갈아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밭을 갈아 채소를 얻고, 소와 돼지를 쳐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하면 되지 않아요?”
 
공주의 말을 듣자 온달은 피식 웃었다.
 
“누가 그걸 모르나? 논과 밭과 소 돼지가 없으니까 그렇지.”
 
“내 팔을 걷어 보세요”하고 공주는 자기 팔을 온달 앞에 쑥 내밀었다.

온달은 영문도 모르고 공주의 팔을 걷어 보았다.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공주의 팔에는 궁궐을 나올 때 가지고 온 황금팔찌와 보석 목걸이가 팔꿈치에서 손목까지 가득 했다.
 
“이걸로 모든 걸 장만하세요.”
 
공주는 목걸이와 팔찌들을 모조리 빼어 놓았다.
온달은 놀라며 그것들을 팔아서 논과 밭과 소 돼지들을 넉넉히 장만했다.
그리고 논밭에 심을 씨앗도 사들였다.
 
그렇게 해서 세월이 흘렀다.
거지꼴을 하고 다닐 때는 구차하고 우스워 보이던 온달도 좋은 옷에 잘 먹고 나니까
늠름한 대장부로 보였다.
이러한 어느 날이었다. 공주는 온달에게 조용히 말했다.
 
“전에 금과 보석을 팔아 논밭을 장만하고 남은 돈이 있지요?”
 
“있구 말구. 아직두 많이 남았지.”
 
“그 돈으로 말을 사오세요.”
 
“말을 사다가 뭘하노?”
 
“글쎄 사오세요. 그런데, 아무거나 살찐 거라고 사오시면 안 돼요.
말랐더라도 나라에서 내다 하는 국마(國馬)를 사오셔야 해요.”
 
온달은 공주의 말대로 장에 가서 국마 한필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몹시 야위기는 했지만 씨는 좋아 보이는 놈이었다.
 
공주는 그 말을 정성껏 먹였다.
과연 얼마 아니 가서 살찌고 기름이 흐르는 날쌘 말이 되었다.
그러자 공주는 온달에게 말을 내주며 이렇게 말했다.
 
“남자가 논밭에서 농사나 짓고 하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이 말을 타고 산에 가서 사냥이나 해보세요.”

온달은 하루도 쉬지 않고 사냥에 골몰했다.
한해가 지나고 두해가 지났다.
꾸준하게 사냥을 하면서 말달리기와 활쏘기를 익힌 온달은
어느덧 누구도 당치 못하는 날랜 장수가 되었다.
말달리기와 활쏘기에는 어느 무사에게도 지지 않게 된 온달을 보자
공주는 무한히 기뻐했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3월 초사흗날이 되면 그때 잡은 사슴이나 산돼지를 제물로 바쳐
산신령에게 제사를 드렸고, 그 해 3월 초사흗날에도 역시 큰 사냥을 하게 되었다.
 
왕은 여러 대신들과 장졸들을 거느리고 말을 달려 활을 쏘며 짐승을 쫓았다.
그런데 왕이 문득 보니 많은 장졸들 틈에 유달리 날쌘 사나이가 있었다.
말을 달려 짐승을 쫓을 때는 늘 앞장을 섰고 활을 당겨 쏠 때에는
한 번도 빗나가는 법이 없이 짐승의 가슴패기를 꿰어 뚫었다.
 
“저 사슴보다도 날래고 산돼지보다도 힘찬 사나이가 누군가?”
 
왕은 좌우 신하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나이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사냥이 끝났다.
그 사나이가 잡은 짐승은 사슴이며 산돼지 같은 값지고 큰 것들뿐이었고
그 수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았다.
 
왕은 심히 가상히 여기어 그 사나이를 가까이 불렀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네 온달이옵니다.”
 
왕은 크게 놀라는 한편 또 대단히 기뻐했다.
 
그런지 얼마 후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대군을 거느리고
요동(遼東) 땅을 쳐들어온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고구려 나라 안은 발칵 뒤집혔다.
평원왕은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적군을 맞아 싸우려고 예산(隸山)이라는 산기슭에 진을 쳤다.
마침내 적군이 당도하여 전투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때 고구려군의 한 장수가 성난 호랑이와도 같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혼자서 적군 수백 명을 무찌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저 호랑이보다 용맹스러운 장수가 누구냐?”
 
왕은 곁에 있는 장수들에게 물어보았다.
 
“바로 지난 삼월 초사흗날 사냥 때 가장 많은 짐승을 잡았던 바로 그 온달입니다.”
 
“저게 바로 온달이라구? 과연 내 사위다!”
 
왕은 마침내 온달에게 대형(大兄)이라는 높은 벼슬을 주었다.
이제 온달은 한낱 거지의 몸으로 공주의 남편이 되었으며 또 높은 벼슬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몇 해가 지나 평원왕이 세상을 떠나고 영양왕( 陽王)이 뒤를 이었다.
 
하루는 온달이 새 임금께 아뢰었다.
 
“신라가 일찍이 우리나라의 한북(漢北) 땅을 빼앗은 탓으로 그 곳 백성들은
갖은 고생을 다하고 있다고 들립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고국을 잊지 못한다고 하오니
대왕께서는 저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십시오.
그러면 신이 비록 변변치 못합니다만 잃어버린 땅을 찾아
대왕의 은혜에 보답하고 불쌍한 백성들을 구해 내겠습니다.”
 
“그대가 그러한 결심이라면 내 어찌 말리겠는가.”
 
임금은 곧 온달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었다.
 
온달은 자기가 자청해서 나선 일이지만 이 일이 쉽지 않은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갑옷을 입고 말에 높이 올라앉은 온달은 공주와 작별 인사를 할 때 비장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번 길엔 어쩐지 무사하지 않을 것 같소.
그러나 내 이미 마음먹은 계립현과 죽령 땅을 도로 찾지 못한다면
차라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오.”
 
온달의 말에 공주도 정색을 하고 격려한다.
 
“옳은 말씀입니다. 사내대장부로 한 번 태어나서 나라 위해
큰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럽습니까?
부디 뒷일은 염려 마시고 마음껏 싸우세요.”
 
군사를 거느린 온달은 마침내 길을 떠나 신라 접경으로 향하였다.
그들이 아차성(阿且城=지금의 광나루 워커 힐 근처) 아래에 당도했을 때
드디어 신라의 대군과 마주쳤다. 전투는 벌여졌다.
양편에서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가고 날아왔다.
 
온달은 여기서도 맨 앞장을 서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눈부시게 적군을 무찔렀다.
눈부신 온달의 활약에 적의 대군도 마침내 힘이 꺾이는 듯 싶었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날아온 화살 하나가 그만 온달의 가슴을 꿰뚫었다.
잃어버린 조국의 땅을 찾으려고 멀리 쳐들어 온 온달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목숨을 거둔 것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고구려 군사들은 온달의 시체를 관에 넣고 장사를 지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힘센 장정들이 여럿이서 온달의 관을 움직이려 하는데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더 늘여 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사들은 대단히 난처했다.
장군의 시체를 객지에 버려둘 수도 없고, 무슨 곡절인지 시체는 움직이지 않고,
하는 수 없이 고국에 있는 공주에게 이 사실을 기별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공주는 당장에 달려왔다.
그리고는 관을 어루만지며 산 사람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이 정한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일, 이제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편안히 돌아가십시오.”

이 말이 끝나자 비로소 온달의 관은 땅에서 떨어져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죽은 후에도 공주의 사랑을 요구하는 절박한 온달의 순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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