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전북기념물

전라북도 기념물 제144호 임실 진구사지

오늘의 쉼터 2023. 5. 1. 21:23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44호
명    칭 임실 진구사지 (任實 珍丘寺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수량/면적 11,055㎡
지 정 일 2020.12.28
소 재 지 전라북도 임실군
시    대 통일신라~조선전기
소 유 자 임실군 
관 리 자 임실군 
 
일반설명

- 임실 진구사(珍丘寺)는 『三國遺事』에 따르면 7세기 중반 고구려 보덕화상(普德和尙)의 제자 적멸(寂滅)과 의융(義融)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三國遺事』 卷三 興法 第三, 卷二十二 高句麗本紀 第十.】

- 보덕화상이 650년(고구려 보장왕 9)경에 반용사(般龍寺)에 머물다가 완산주(完山州) 고달산(高達山) 고달사로 옮겨가서 살았음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초반 경에 진구사가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이 후 진구사가 기록에 등장하는 경우는 893년 건립된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보물 제138호)에 중원에서 득도한 후 돌아온 사람 가운데 ‘珍丘休’라는 인물이 기록되어 있고【‘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홈페이지 제공)】

- 『동문선(東文選)』(1478년 편찬)에는 1312~1313년 진구사 주지인 대선사(大禪師) 혼기(混其)가 수원 만의사(萬義寺) 옛 터에 와서 사찰을 중건했다는 기록이 보인다.【『東文選』卷七十八 記】

- 또한 조선왕조실록 중 『태종실록(太宗實錄)』(태백산 사고본)에는 1407년(태종 7년)에 의정부에서 자복사(資福寺)를 지역의 명찰로 대신해 지정하면서 그 명단에 임실 진구사를 넣었음을 알 수 있다.【『太宗實錄』 14권】

- 그러나 조선시대 전기 『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해 조선후기에 이른 문헌들에는 진구사와 관련된 기록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아 폐사(廢寺)와 관련된 연혁을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다만, 구전으로 섬진강의 범람과 임진왜란 때 소실로 인한 폐사가 전해지고 있다.

 

임실 진구사지 발굴조사 후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