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그녀의 시간표

그녀의 시간표 28

오늘의 쉼터 2015. 6. 12. 00:01

그녀의 시간표 28 

 

 

 

지배인이 쓰윽 시계를 보았다.

나 역시 시간을 재고 있었고, 내가 씨익 웃어주었더니,

지배인이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곧 이야기를 이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야쿠자 보스가 사람을 보내 거지가 된 홍지연에게 자신의 열두 번째 첩이 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왔어요.

그녀는 한참을 고심하다가 먹을 갈아 장문의 편지를 적어 인편으로 보냈죠.

대표한테 전해 듣기로 독도와 역사교과서 신사참배 등 민감한 문제들이 거론됐으며,

민족감정이 좋지 못한 이때에 가당치 못한 제안이고, 그러니 딱 잘라 거절하겠으니

그리 알라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미네르바는 부도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절반이 넘는 직원들을 정리해고 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외자유치와 국내 큰손들의 투자를 설득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그때부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강도 높은 자구책이 실행되었다.

이면지 사용과 수돗물 전기 전화세 절약은 필수적인 실천과제였고,

비싼 양주에 값싼 양주 섞기나 물타기, 술 취한 손님에게 바가지 씌우기 등

비인간적이고 반(反)비즈니스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한두 달 지나면서 직원들도

그렇지만 세 사람 역시 지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원탁회의를 열었다.

그들은 원탁에 소주병을 쌓아놓고 밤새 난상토론을 벌였다.

여러 사안에 대한 반성과 분석, 그리고 제안이 간간이 제시되었다.

그중에서 대표와 홍지연의 발언은 꽤나 심도가 깊었다.

술기운 탓에 발음이 불분명한 것이 흠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분석은 썩 괜찮았다.

 

“문제는 홍보비였어요.

정상적인 영업이익 창출을 위해선 다수의 삐끼 확보,

다양한 종류의 홍보물을 아낌없이 뿌려줘야 하는데,

어려운 회사사정으로 집행이 원활하지 못했던 거죠.

그럼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는가?

그건 홍지연이 모범답안을 말하더군요.

한방… 한방이면 다 해결된다고.

그 한방이 무엇인지 굳이 떠벌리지 않아도 우린 느낌만으로 알 수 있었죠.”

 

그날부터 그들은 미륵불을 기다리듯 오로지 ‘한방’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미네르바에 그 사람이 찾아왔다.

 

“처음 본 순간 하마터면 눈이 멀 뻔했어요.

얼마나 눈이 부시던지 제대로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더라고요.”

 

아하. 그 사람이 누구인지 단박에 짐작이 갔다.

나도 얼마 전 같은 경험을 했었다.

 

“우린 그를 금씨라고 불렀는데, 홍지연의 영화에 감동받았다며 그녀에게 꽤나 정성을 기울이더군요.

금씨는 홍지연을 내연녀로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했는데,

협박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금씨는 글쎄, 자기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영화를 인터넷에 띄우겠다고 협박했다더군요.

세상에 그런 엄청난 협박을 할 수 있다니!

절망한 홍지연이 어찌나 슬피 울던지,

대표님하고 난 그녀를 위로하느라 꼬박 밤을 지새워야 했어요.”

 

대표와 지배인의 위로방법은 조금 독특했다.

핵폭탄보다 언론사보다 대통령보다 더 힘세고 무서운 게 뭔지 아느냐,

다름 아닌 인터넷인데, 거기에 영화가 돌게 되면 그날로 네 인생은 끝장이다!

사실 두 사람은 홍지연을 설득해주면 영화투자액 전부를 보상해주겠다는

제안을 따로 금사장에게 받은 상태였다.

두 사람의 위로가 통했는지, 다음날 홍지연은 금사장 행(行)을 결심했다.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정확히 3년 후에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유가 뭐죠,라고 질문하려는데, 곧 지배인이 뒷말을 이었다.

 

 

'소설방 > 그녀의 시간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의 시간표 30   (0) 2015.06.12
그녀의 시간표 29   (0) 2015.06.12
그녀의 시간표 27   (0) 2015.06.11
그녀의 시간표 26   (0) 2015.06.11
그녀의 시간표 25   (0) 201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