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497)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다-3

오늘의 쉼터 2015. 4. 22. 17:29

  (497)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다-3

 

 

 

 

 

유미는 눈을 떼지 못하고 엄마의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그 젊은 나이에 초선의원에 당선된 건 훤한 인물 덕만은 아니다.

 

그분은 신의가 있는 분이다.

 

내가 서울에서 성악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 분은 약속했다.

 

언젠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서울로 초대하겠다고. 드디어 아저씨는 여자대학 앞에

 

방을 얻어주시며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공부를 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친구인 윤사장님의 작은 회사에 취직도 시켜주셨다.

 

물론 전화를 받고 사환처럼 심부름을 하며 사무실을 지키는

 

단순한 일이지만 월급도 준다고 했다.

 

한 일년 착실하게 돈을 벌면 내 힘으로 틈틈이 대입공부도 할 수 있을 거 같고

 

음악학원 같은 데 갈 수도 있겠지.

그런데 유 의원 아저씨는 요즘 많이 바쁜지 통 만날 수가 없다.

 

윤 사장님 말로는 내년 초에 국회의원선거가 있다고 한다.

 

나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대통령이 10월 유신이란 걸 발표한 이후

 

유 의원 아저씨에게도 무슨 큰 변화가 있는 듯했다.

 

윤 사장님 사무실에는 가끔 노가다와 힘쓰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에

 

거칠고 무서운 분위기가 될 때도 있다….’

조두식이 주스 한 잔을 내밀었다.

 

유미는 긴장 때문에 목이 탔다.

 

급히 주스를 쭉 들이켜며 일기장을 넘겼다.

“네가 그걸 다 읽으면 좋겠다만 다 읽을 시간이 될라나 모르겠다.”

“시간이라니요?”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거 같다.”

“……?”

유미가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왠지 시야가 흐려지며 맥없이 눈이 감겨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흔드는 기척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몸이 의자에 묶여 있는 걸 느꼈다.

 

조두식이 미묘한 표정으로 유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미는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뭐죠?”

조두식은 대답 대신 맞은편 의자로 가서 앉았다.

 

테이블 위의 종이에서 무언가 흰가루를 짧은 빨대에 넣더니 코로 흡입했다.

 

유미는 그게 영화에서나 보던 마약흡입이란 걸 알았다.

“나도 인간인지라 맨 정신으로는 좀 거시기해서 말이지.

 

윤 회장 부탁으로 널 처리해야 할 거 같은데….”

“처리라뇨?”

“그 인간 방식이 좀 그래. 나야 뭐 명령대로 해야지.”

갑자기 소름이 끼치며 유미가 몸을 비틀었다.

 

통나무 의자에 묶인 몸은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아저씨, 돈 얼마 받고 이러시는 거예요?

 

그 돈 내가 줄게요. 나 좀 풀어줘요,

 

아저씨! 생각 안 나세요? 전에 약속했잖아요.

 

만약 내가 무슨 큰 고난에 처해 있을 때면 나를 한 번 정도는 구해주겠다고.”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어쩌냐.

 

여기까지가 내 임무고 널 처리할 놈이 곧 올 텐데.

 

아마 빠져나갈 수 없을 거야. 윤 회장이 그러더라.

 

너를 딸로 알고 여태까지 참았는데, 이것도 부족하다고.

 

이젠 딸도 뭣도 아니니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하고 싶은 게지.” 

 

조두식이 코를 벌름거리며 짐승처럼 흰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럼 나와 협상을 하면 될 텐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

유미가 머리를 흔들며 애원했다.

 

하지만 조두식은 유미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유미의 턱을 잡고 야비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왜냐고? 깨끗하게 진실을 묻어버리고 싶을 테니까!

 

더 이상 실마리를 남겨두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러게 너 왜 그렇게 독사처럼 머리를 꼿꼿이 들고 살았냐.

 

밟으면 밟혀 죽은 듯이 살아야지.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