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다-2
목적지에 도착하니 창고 같은 건물이 늘어서 있다.
호기심으로라도 조두식이 사는 집에 한번쯤 오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기분이 꺼림칙했다.
유미가 조두식에게 전화를 거니 그가 데리러 나오겠다고 했다.
길모퉁이에서 조두식을 발견하고 유미는 조두식을 따라 건물의 지하로 따라 들어갔다.
“여기가 내 아지트야. 내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지.”
지하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주 낡고 음산한 실내가 나타났다.
“천국처럼 낯선데요.”
“여기저기 다녀도 오래된 여기가 고향의 내 집 같거든.”
조두식이 유미를 보며 웃었다.
둘러보니 전형적인 창고건물인 거 같은데 안쪽에 작은 방이 있었다.
“여기가 오래된 내 방이야. 호화로운 호텔이나 감옥이나 다 가봤지만 여기가 제일 편해.
네 엄마 일기장도 찾아보면 여기 어디 있을 거야.”
“그래요? 제게 보여줄 수 있죠?”
“그럼, 얌전하게 굴면. 흐흐….”
조두식이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가 방에 들어가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네가 원하는 게 이거냐?”
그건 예전에 한번 본 적 있는 엄마의 일기장이었다.
그가 유미의 눈앞에서 그것의 페이지를 후루룩 넘기며 보여주었다.
두툼하지만 낡은 그 노트엔 엄마의 필체로 잔뜩 써놓은 일기가 보였다.
유미가 얼른 손을 내밀어 잡으려 하자
조두식이 웃으며 일기장을 거둬 갔다.
“얘야, 이건 공짜로 보여줄 수가 없는 거야.”
“왜 우리 엄마 일기장을 아저씨가 갖고 있는데요?
제게 넘기세요. 뭘 원하세요? 돈이요? 얼마죠?”
유미가 가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세상에 돈이 다가 아니더구나. 돈보다 더 귀한 게 있더구나.”
“그게 뭐죠?”
“그게, 그게 말이다. 사람의 목숨 아니냐.”
조두식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뭐 그건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고 일단 우리 좌정하고 얘기하자꾸나.”
조두식이 오래된 통나무 식탁으로 안내하며 통나무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식탁에 엄마의 일기장을 던져놓았다.
“공짜는 아니지만, 내가 너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선심 좀 쓰마.
일단 맛보기로 좀 보고 있어라.”
유미가 얼른 일기장을 집었다.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유미의 등 뒤에서 조두식이 물었다.
“차는 뭘로 할래?”
“아무거나요.”
유미는 일기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1972년 11월20일 토요일 맑음.
아아, 이 오인숙의 인생에도 해 뜰 날이 있으려나 보다.
아무렴 그렇지! 내가 자갈치 시장에서 매운탕과 회접시만 나르고 인생 종 치면 안 되지.
서울이란 곳은 원래 물이 좋은가? 어쩌면 서울 여자들은 이렇게도 때깔이 좋을까?
서울의 여대생들은 어쩌면 이렇게도 고울까! 이제 서울 온 지 얼마 되지 않지만,
나도 서울물 좀 먹어서 그런가?
아침마다 거울 볼 때면 얼굴이 더 예뻐진 거 같다.
그렇지 않아도 유병수 의원 아저씨가 날 보고 얼굴이 훤해졌다고 하신다.
작년에 그가 부산에 첫 선거 유세차 내려왔을 때 우리 식당에서 처음 만나고 나는
그 아저씨가 왠지 좋았다.
왠지 내 인생이 그와 연결될 거 같은 뜬금없는 예감이 들었다.
그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바쁜 그가 내게 가끔 편지를 보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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