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다-5
조두식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네 엄마가 젊을 때 아주 이뻤어. 유 의원이 네 엄마를 갈매기식당에서 보고 반해서
부산 내려갈 때마다 들르곤 했지. 물론 네 엄마도 유 의원을 아주 좋아했지.
급기야 공부를 시킨다는 명목으로 네 엄마를 서울에 데려다 놓고 있었는데
뭐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겠지.
그런데 당시 건설업을 시작하려고 설치던 윤규섭이 네 엄마를 또 건드렸던 게지.
그러다 결국 네가 덜컥 들어선 거고. 어린 나이였지만 네 엄마 오인숙이 보통은 아니었나봐.
누구씨인 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 의원을 좋아했던 네 엄마는 무조건 아이를 가졌다며
낳겠다고 우겼어. 하지만 청렴한 젊은 엘리트 이미지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야심찬 유 의원이
그걸 허락할 리가 없었지.
네 엄마를 달래다가 안 먹히니까 윤규섭에게 의논했던 거야.
윤규섭은 유병수의 여자를 몰래 따먹어 놓고도 시침을 떼면서 자기가 처리할 테니
걱정 말라며 큰소리를 쳤지.
윤규섭이 꾸민 그 일이라는 게…거 참, 내 입으로 말하기도 그렇고….”
조두식이 다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가 술을 마시다가 유미를 쳐다보더니 다가갔다.
“그래. 내 입으로 말하는 거보다 네가 궁금해하는 걸 대답하는 게 낫겠다.”
그가 유미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줬다.
유미는 입이 얼어 붙은 듯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어이구, 얘 긴장한 것 좀 봐. 불쌍한 것. 너도 술 한 모금 주랴?”
조두식이 다가와 유미의 입에 양주를 병째로 부었다.
절반은 입가로 흘러내리고 절반은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갔다.
목줄이 불 붙는 도화선처럼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금방 온몸이 폭발할 것 같은 긴장과 불안으로 유미는 몸을 떨었다.
그래도 술이 들어가니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궁금한 거 물어봐라.”
유미는 머릿속이 지진이 난 것처럼 뒤죽박죽이었지만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윤 회장이 꾸민 일이 뭐죠?”
“그때부터 나와 그 사람들과 인연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지.
네 엄마와의 인연도 그때 시작되었고.
날 보고 네 엄마를 처리해 달라 그랬다.”
“처리요? 죽이라고 했나요?”
“아, 그건 네 엄마 일기장 어디에 나오는데,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다.
아무튼 결국은 두 인간이 네 엄마의 인생을 짓이기고 파멸로 이끌길 원했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말이야. 제일 나쁜 놈은 윤규섭이야.
아니 그보다 더 나쁜 놈은 유병수고. 어찌 보면 두 사람보다 더 나쁜 놈은 조두식이고
그보다 더 나쁜 놈, 아니 년은 오인숙인지 모른다.”
조두식이 이죽거리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엄마를 모욕하지 말아요. 짐승 같은 놈들!”
유미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을 뱉어냈다.
자신들의 출세와 명예를 위해서 아이를 가진 엄마를 철저하게 버리고
부인한 인간들에게 혐오감이 들었다.
“그래. 사내놈들은 짐승이야.
그런데 대가리 굴려 봤자 애 가진 계집한테는 못 당하지.
특히나 잃을 게 많은 놈들은.”
“엄마는 왜 죽었어요?
아저씨는 엄마의 마지막을 알고 있잖아요.”
“넌 항상 나를 의심하는데, 네 엄마는 누가 뭐래도 자살한 거야.
네 엄마는 나랑 살면서도 간혹 유병수를 만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유미의 결혼식 때 유 의원이 엄마와 식장에서 인사를 나눴던 게 생각났다.
그럼 엄마는 그 무렵 유 의원을 만나고 있었던 걸까?
“나도 네 엄마를 사랑했지. 난 두 사람 하는 짓이 가증스러웠다. 그날 부부싸움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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