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8)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는다-4
“벌레처럼 살고 싶지 않았어요.
밟으면 꿈틀이라도 하며 살고 싶었어요.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라도 보내며 살고 싶었어요.”
유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목이 메어 말했다.
“아저씨, 윤 회장에게 손 떼고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리겠다고 전해 주세요.
대신 제게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아저씨가 윤 회장에게 다시 한 번 전해 주세요,
네? 아저씨가 단 한 점의 양심이 있다면 딸 같은 저에게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그러게. 그런데 너무 늦은 거 같아. 그 인간 꼴통이야.
피도 눈물도 없어. 대신 마지막으로 네가 알고 싶은 진실은 나한테 물어봐.
마지막 자비를 이 조두식이라도 베풀어 줄 테니. 흐흐흐….”
조두식이 징그럽게 웃었다.
눈에서는 이상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그때 유미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의 벨이 울렸다.
그러나 유미는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조두식의 눈이 번뜩였다.
그가 다가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누구야? 고수익? 고수익이 누구냐?”
아! 이제야 수익이 전화를 해 오다니.
그런데 조두식은 고수익을 모르는 걸까? 왜일까?
“여보세요.”
조두식이 전화를 받았다.
유미는 이때다 싶어 소리를 질렀다.
“수익씨! 수익씨! 나 좀 살려 줘!”
그런데 조두식이 곧 투덜거렸다.
“뭐야? 쌔끼! 전화를 바로 끊어 버리네.”
유미는 기운이 쑥 빠져 버렸다.
조두식이 다가왔다.
“너 안 되겠다. 조둥아리를 함부로 놀려서.”
조두식은 수건을 뭉쳐 유미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조두식은 유미의 휴대폰을 이리저리 검사했다.
메시지나 문자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유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수익에게 주소를 찍어 보냈던 문자를 삭제했었다.
조두식은 별다른 게 나오지 않자 휴대폰을 꺼서 식탁 한쪽으로 밀쳐 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그래. 언제 오냐? 술이 좀 모자란다.
올 때 좀 가져와. 난 발렌타인이 좋더라.
기분이 찜찜해서 오늘 죽을 만큼 마셔야겠어.”
조두식이 어딘가에서 양주병을 가져와 병째로 나발을 불었다.
“아, 씨발. 오늘 밤에 쫑 내나 보다.
인간들의 대를 이은 애정사, 아니 애증사 말이지. 흐흐흐.
인간들은 왜 그리 복잡해. 야, 너 진실, 진실 하는데 진실은 더럽고 위험한 거다.
네가 불쌍해서 한마디 해 준다만, 유 의원이나 윤 회장에겐 네가 저주의 씨였지.
둘 다 나쁜 놈이야. 물론 나도 그에 못지않지만. 흐흐흐.
세상은 말이야. 악한 놈이 강자야.”
조두식은 술을 마시자 말이 많아졌다.
“그래. 오늘 밤은 나도 알고 있는 진실을 얘기해 볼까.
네가 이제 하늘나라에서 엄마 만날 시간도 얼마 안 남았을 텐데,
거짓말하면 뽀록날 테고, ㅋㅋㅋ….
네 엄마, 불쌍한 여자지. 남자들의 희생양이라 할 수 있지.
간단히 말하면 유 의원과 윤 회장은 조상 때부터 출신 성분이 다른 사람들이야.
유 의원 집에 윤 회장네가 오래전부터 머슴으로 살았단 말이야.
이게 묘하게 두 사람 간에 알력으로 작용했지.
그 한과 열등감으로 윤 회장이 맨손으로 온갖 짓을 해서 돈을 벌었고,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된 귀공자인 유병수와 겉으론 친형제처럼 지내지.
그 뭐냐, 정경유착. 달면 삼키고, 그러다가 쓰면 뱉어 내고.
묘한 애증 관계지. 어쩌다 그 사이에 네 엄마가 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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