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22) 껌 같은 사랑-16

오늘의 쉼터 2015. 3. 1. 13:27

(122) 껌 같은 사랑-16

 

 

 


 

용준이 자세를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예, 잘 알겠어요.”

 

“그럼 그 쓸데없는 소문의 진원지나 잘 막아.
 
용준씨도 더 이상 그 소문을 중계방송하지 말고.”

 

“예.”

 

“박 팀장! 본사에서 할 예정인 피티(PT) 준비는 잘되고 있지?”

 

“그럼요.”

 

“그래. 나가 봐.”

 

용준이 돌아섰다.

 

“박 팀장! 참, 나랑 술 한잔 하고 싶다고 했나? 날짜 한번 잡아 봐.”

 

“옙!”

 

용준이 목례를 하고 나갔다.

 

아아, 오늘은 왜 이리 피곤한 날이냐.
 
유미는 다 식어버린 커피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 소문이란 게 전에 윤 이사가 말한 음해성 문건과 관련 있는 걸까?
 
그것이 빌미가 되어 소문이 된 것인가.
 
아니면 사라진 비디오테이프가 문제를 일으킨 걸까.
 
근거가 없는 소문이라 해도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법이다.
 
박용준까지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 어디까지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 걸까.
 
추측건대, 박용준은 아마 송민정에게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의 간부들은 알음알음으로 알고 있는 걸까?
 
그럼 윤 이사는?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조두식은 또 무엇인가.
 
그가 뜬금없이 한 말들은 또 무엇인가.
 
그가 던졌던 말들이 두서 없이 떠올랐다.

 

“참, YB그룹 총수는 만나봤냐? 윤 회장 말이다.”

 

“네가 윤 회장 아들을 만나다니. 재밌다.”

 

“네가 나한테 하는 거 봐서 재밌는 얘기 많이 해주지.”

 

“명심해라. 모름지기 독을 잘 쓰면 명약이 되는 법.”

 

그는 마치 YB그룹의 윤 회장을 잘 아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조두식이 모르는 것이 있다.
 
그는 유미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미의 과거는 더더욱.
 
유미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걸 단순하게 생각하자.
 
여태까지 유미가 버텨온 것은 어쩌면 다양한 생존전략보다도 필요할 때면
 
백지처럼 단순해지는 편리한 성격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고문하는 짓이다.
 
아직은 아무도, 어떤 것도 속단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그리고 닥치면 또 해결책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이 걱정하는 일은 사실 확률적으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니까 대부분 불안에서 오는 기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모래성처럼 어느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게 또한 인생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한번에 훅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인생은 반석 위에 세운 타워팰리스라면,
 
누군가의 인생은 모래밭에 세운 오두막일 수도 있다.
 
아니 타워팰리스라 할지라도 모래밭에 세운 거라면 언제 붕괴할지 모른다.
 
돈도 백도 가문의 영광도 없는 모래밭에 유미는 꿈의 궁전을 지으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주식시장의 장세 그래프처럼 파란만장하고 변화무쌍하게 궤적을 그려온 인생이지만
 
언제부턴가 상승세를 타고 있어 뿌듯하기조차 했는데….
 
곧 상한가를 치게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있는데 왠지 예감이 좀 좋지 않다.
 
내가 과거에 창녀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박용준은 말했다.
 
글쎄, 어떤 의미에서 나는 창녀일까?
 
창녀는 최고로 오래된 여자의 직업.
 
예나 지금이나 난 몸을 준 대가는 언제든 톡톡히 쳐서 받고 있다.
 
그게 꼭 돈이 아니라도.
 
그런 의미에서라면 클레오파트라도 창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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