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20) 껌 같은 사랑-14

오늘의 쉼터 2015. 3. 1. 13:20

(120) 껌 같은 사랑-14

 
 

 

 
 
 
민정이 용준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더니 유미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용준이 밖으로 나갔다.
 
서류를 살펴보던 유미가 말했다.

“술 좀 깼어?”

“네….”

“한 시간 안에 이렇게 완벽하게 서류를 해 오다니.
 
역시 송민정이야.
 
이쁘고 똑똑하고 스펙도 만만찮고. 재색을 겸비하기 쉽지 않은데.”

민정의 얼굴이 환해졌다.

“다만 성질이 좀…. 아냐, 귀여워.”

“아깐 제가 죄송했어요. 술김에 기분이 좀 업돼서….”

“그래. 나한테 불만 있는 건 아니지?”

“그런 거 아니에요.”

“와인 좋아해? 그럼 언제 나랑 와인 한잔할래요? 좋은 데 알고 있는데.”

“좋아요.”

송민정이 밝게 웃었다.

“그때 취하면 나한테 다 얘기해. 근무 중엔 그렇잖아?”

송민정이 한결 고분고분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부족한 점이 많아요. 지적해 주세요. 고칠게요.”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어?”

유미가 너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서 말인데, 여기 작품 임대 시 보험에 대한 구문을 더 구체적으로 하고
 
작품 패킹 날짜를 웬만하면 좀 더 당겨 봐요.
 
그리고 여기 영문철자 오자가 두 개 있네.”

송민정이 혀를 날름 내밀면서 말했다.

“어머, 두 번이나 확인했는데 눈이 정말 날카로우세요.
 
잘 알겠습니다. 다시 완벽하게 해 올게요.”

민정이 방을 나갔다. 같은 여자끼리는 더 어렵지만,
 
자존심 강하고 어린 부하 직원을 잘 감싸 안아야 일이 수월하다.
 
부잣집의 철없는 스물네 살의 송민정을 보며 유미는
 
그 나이 때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땐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이미 한 아이의 엄마, 아내이자 며느리였으며
 
그 신분에서도 졸업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시절이 지나고 나니 아득하게 그립기도 하다.
 
팥쥐 어멈처럼 지독했던 시어머니.
 
그 밑에서 여종처럼 살았던 시집살이.
 
아아, 그러고 보면 난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건가?
 
포항제철에서 상 줘야 하는데….
 
유미는 혼자 웃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나고 박용준이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오후 커피 타임이에요.”

“벌써?”

대학원에서 강의를 할 때도 박용준은 늘 음료 담당이었다.
 
커피나 한 병의 주스는 접근의 빌미가 된다.
 
지금도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송민정이랑 둘이 술 하기로 하셨어요?”

“응. 왜? 뭐 찔려? 걱정하지 마.”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저랑도 술 한잔해요.”

“글쎄, 언제 여유가 되면….”

“참, 이런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요.”

“소문? 무슨 소문?”

“그게 아무래도 헛소문 같은데….”

“쓸데없는 헛소문 같으면 뭐 하러 얘기해?”

“얘기하지 말까요?”

유미가 짜증을 냈다.

“뭐하자는 거야? 그래, 어떤 내용인데?”

용준이 머뭇거렸다.

“박용준씨, 여자 집적대듯이 그럴 거야?
 
말할 거면 화끈하게 남자답게 말해 봐.”

“오 선생님 출신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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