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7. 3국 분할

오늘의 쉼터 2015. 1. 1. 13:32

7. 3국 분할

 

 

(1) 


차에서 내린 미우라 게이스케는 열쇠를 꽃으면서 맨션의 로비를 바라보았다.

3층 맨션의 로비는 비어 있었지만 창가에 서 있던 사내가 =

아래를 향해 한 손을 들었다.

오자키 요시오였다.
   미우라는 계단을 올라 맨션의 로비로 들어섰다.
   "오자키, 수고가 많군 "
   "천만에요, 미우라 선배님."
   오자키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서 올라가십시오. 늦었습니다. "
   머리를 끄덕인 미우라는 계단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숙소는 2층 이었고 층타리 맨션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지헤 교대 시간이 다 되는군 그래."
   "모리가 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
   그들은 여덟 시간씩 하루 삼교대를 하는데 밤 12시 교대 시간이 된 것이다.

2층 맨션은 방 세 개짜리의 고급 주택이었지만 지금은 비어 있었다.

아내와 두 딸을 지난달에 오사카로 보랬기 때문이다.
   집안으로 들어선 미우라는 저고리를 벗어 던지고는 가슴에 찬 권총 집을 떼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온몸에 나른한 피로가 몰려왔으므로 그는 소파에 몸을 던지듯이 앉았다.
   파리 주재 일본 정보국의 간부로 파리 생활만 15년째 해왔지만

즘처럼 바쁜 적이 없다.

본국은 지금 한국에 군대를 파견하여 전쟁을 치르는 중인었고

이곳은 김원국의 테러 사건으로 전쟁이나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미우라가 넥타이를 벗으며 소파에서 일어섰을 때 문에서 벨 소리가 났다.
   "누구야?오자뤼 군인가?"
   문으로 다가서며 그가 묻는 순간에 육중한 나무 문이 안으로 부서지면서 열렸다.

그리고는 두 명의 사내가 덮쳐 들어왔는데 앞장선 사내는 스모 선수 같은 거인이다.
   미우라는 두 걸음쯤 뒤로 물러섰다가 탁자에 등이 걸리면서 거인에게 어깨를 잡혔다.

손을 뒤로 뻗어 놓았던 권총을 더듬는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 퉁겨 나오는 것을 보면서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러나 무의식중에 손을 휘저어 상대의 어딘가를 치자

다시 관자놀이를 해머로 치는 것 같은 충격이 왔다.
   미우라가 깨어난 곳은 다른 장소였다.

두 눈은 떴지만 시야가 흐린 데다가 초점도 잡히지 않았다.

머리를 흔들면서 눈을 껌벅였지만 맨션은 아니다.

냄새도 달랐고 빛도 다르다.

그러자 앞쪽에서 웅얼거리는 듯한 말소리가 들렸다.
    "깨어났구만, 미우라 씨." .
    영어다. 아직 시야는 흐렸으나 미우라는 발음이 강한 이 영어의
주인공이 영어권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이봐, 내가 보이나?"
    사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사내의 윤곽이 점점 뚜렷하게 보였다.
KCIA의 파리 주재원인 박남호였다.
    "당신은 박남호."
    "그래, 나야."
    그와는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고 며칠 전에는 식당에서 차도 같이 마셨다.

그리고 한반도의 정세 이야기를 하면서 돈독한 분위기를 서로 느줬던 것이다.
   "미우라 씨, 이렇게 데려와서 미안해."
   박남호÷가 다시 말했고 그제야 시야가 밝아진 미우라에게 방안이 보였다.

응접실이다.
자신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벽에는 유화가 걸려 있다.

그리고 박남호의 옆자리에는 김원국이 앉아 있었다.

미우라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박남호;가 다시 물었다.
   "미우라 씨, 당신은 이곳에 끌려온 이유를 알고 있겠지?"
   "내가 윌 안단 말이야?"
   미우라가 소리치듯 물었다.
   "당신,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시치미 떼지 말어, 이 자식아."
   "당신, 실수하는 거야."
그러자 박남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웃었다.
   "당신, 언제부터 맨션에 삼교대의 경비원을 세워 두고 있지?"
   "여기 계신 김 선생님을 습격한 것이 누구야?시 바다인가?"
   "난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그랬을 리는 없어."
   "시바다와 다케무라가 행방을 감추었어 어디 간 거야?"
  "난 모른다. "
잠자코 듣고 있던 김원국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미우라 씨, 난 당신한테 알려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겠지만 강요 하지도 않겠소."
미우라가 눈을 깜박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난 모릅니다. 나도 최광 씨가 살해당한 것을 신문에서 보곳 놀랐습니다. "
    "계획적인 습격이었소. 난 그들 중 한 명의 얼굴은 보았습니다.

리가 쏘아 죽인 사내였는데 복면이 벗겨져 있었소.

놈들은 동양인이었소, 미우라 씨."
    "북한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김 선생,"
   "글쎄, 그런데 그들이 우리의 거처를 알 리가 없단 말이오. 당신들 외에는."
   조웅남은 손바닥 안에 놓인 스미스 앤 웨슨을 내려다보았다.

은빛 색깔의 권총은 아담했고 위력도 세었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권총의 총구에 소음기를 끼워 넣고는 단단히 돌려 조였

차 안은 엔진도 꺼놓은 상태여서 그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고 싸늘한 냉기에 덮여 있었다.
    새벽 2시가 지나자 거리의 인적은 끊겼고 오가는 차량도 없다.

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의 부연 빛발에 길가에 세워진 차량들의 윤곽은 희미하게 드러났지만

보도 건너편의 주택가는 짙은 어둠에 묻혀있었다.
    "북한과 평화 조약이 체결되겠군요."
   고동규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그는 임병섭의 해임 소식을 듣고 나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다.

하루 온종일 굳은 얼굴로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두 손을 핸들 위에 올려놓은 그가 앞쪽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형님, 저도 이제 임무 해제가 되었습니다. "
   "무슨 말이여?"
   낮은 목소리로 조웅남이 묻자 그가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부장이 갈렸으니 제 임무도 없어졌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
   조웅남이 머리를 끄덕였다.
   "잘 생각혔다 그깐 놈의 회사보다는 우리가 월급을 열 배도 더 줄 것이다. "
   "인자는 니 앞에서 대통령 시키 욕을 혀도 괜찮겄고만.인지까지는 쬐께 니가 걸려서 삼가혔는디."
"그 씨발놈은 대통령 감이 아니다. 누구 덕으로 전쟁이 안 일어났는디

김정일이허고 붙어덕는단 말이여?

저그, 천안의 나이트콜럽 사장을 대통령 자리에 앉혀 놔도 그런 의리는 지킬 것이여."
   "그 씨발놈은 지 생색 탤라고 그러는 거여. 국민을 위헌다고?

까지 말라고 혀라.지가 안 위혀도 우리는 밥 잘 먹고 똥 잘 싼다. "
   파리 주재 북한 대사 현만식은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방금 평양과의 통화를 끝낸 것이다. 옆에 앉은 김동선이 힐끗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

머리를 돌렸다.

승용차 안에는 한동안 가벼운 엔진 소리만 들려 올 뿐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현만식은 직업 외교관으로 북한에서 열 명 안되는프랑스유학파였다.

따라서 프랑스에 지인도 많았고 평판도 왜 좋았으므로 김정일이 이례적으로

5년이 넘게 프랑스 대사로 앉혀 놓은 인물이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내일 아침에 한국 대사관에 가야 될테니까 부대사 동무도 준비를 해요."
   "한국 대사관에 말입니까?"
    김동선이 몸을 굳히고 물었다. 앞자리의 운전수와 경호원도 몸은 돌리지 않았지만

    온 신경을 뒤쪽으로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대사 동지,무슨 일로."
    "평화조약이 맺어진 기념 방문이오.이건 수령 동지의 지시요."
    "남조선측도 반대하지는 않을 거요.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니까."

 

 

(2)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언론사에게 알려 주도록 해요. 쫴 떠들썩한 뉴스가 될테니까."
   "알겠습니다, 대사 동지."
   어깨를 늘어뜨린 김동선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그는 3년 전
제네바의 북미 회담에 실무자로 참가했다가 단숨에 세 계단을 승진
하여 부대사가 된 인물이다.
   현만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본과 미국 대사에게는 내가 직접 연락하겠소."
     "모두 수령님의 명령이오, 동무."
    =1들이 탄 차는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새벽 2시가 지난 시간이어
 서 두 대의 승용차는 빠른 속력으로 비어 있는 이차선 도로를 달려나
 갔다. 길가의 주택들은 대부분 불을 꺼 어두웠고 보도에도 인적이 끊
겨 있었다.
    "이제 전쟁은 끝이 났군, "
    현만식이 혼잣소리처럼 말하자 김동선이 머리를 』1덕였다.
    "모두 수령님의 뛰어나신 지략 덕분입니다. 대사 동지."
   앞을 달리던 경호차가 붉은 브레이크 등을 껌벅이면서 속력을 늦
추었다. 현만식의 저택이 가까워진 것이다. 이윽고 경호차가 인도에
바짝 붙으면서 멈춰 섰고 캐딜락도 뒤에서 멈추었다. 앞차에서 내린
경호원들이 서둘러 이쪽으로 다가왔다.
   현만식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차에서 내려섰다.
   "동무, 그럼 내일 아침에 봅시다. "
   그가 김동선을 향해 말했다.
238 밤의 대통령 제3부 -llf
   "편히 쉬십시오, 대사 동지."
   차에서 내려선 김동선이 그의 뒷모습을 향해 머리를 숙였을 때 어
디선가 몽둥이로 모래 자루를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 왔다. 번쩍
머리를 든 김동선은 저택의 계단을 올라서던 두어 명의 경호원들이
두 팔을 휘저으며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습격이다.
   저도 모르게 차의 문 손잡이를 움켜쥔 그는 머리부터 차안으로 밀
어 넣었다. 그 순간 바로 옆쪽에 서 있던 경호원의 몸이 부딪쳐 왔으
므로 김동선은 차체에 머리를 찧으면서 안으로 쑤셔박히듯 들어갔
다.
   다시 소음기를 긴 권총의 발사음이 여러 발 들렸고 그 다음 순간
밤하늘에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경호원의 고함 소리도 났다.
   김동선은 문의 손잡이를 잡고는 뒷좌석에 납작 업드려 있었다. 다
시 한 발의 총성과 고함 소리가 났는데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시 사방
은 조용해졌다. 어느 집의 개 한 마리가 세차게 짖기 시작했다.
   김동선은 어금니를 물고는 머리를 들었다. 대사의 저택은 불이 환
하게 켜져 있었지만 육중한 철문은 아직 열려지지 않았다. 철문 앞쪽
의 돌계단에 는 서너 명의 경호원들이 쓰러져 있었는데 그들의 가운
데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은 현만식이다.
   놀란 김동선이 숨을 들여 마셨을 때 그가 움츠리고 있는 차의 바로
뒤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것은 큰 덩치의 사내였고 한걸음에 계단
을 뛰어오른 사내는 현만식의 팔을 끌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야, 너, 이리 나와."
   갑자기 들리는 한국말에 김동선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머리를 돌
렸다. 차도 쪽의 운전석 문에서 한 사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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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리 서두르란 말이다, 이 자식아."
    김동선은 차에 기대어 쓰러져 있는 경호원을 밟으면서 서둘러 밖
으로 나왔다.
    현만식을 끌고 이쪽으로 다가온 거인이 힐끗 김동선을 바라보았
다.
   "뛰어, 이 새끼야."
   권총의 총구로 등을 찔리자 김동선은 휘청거리며 앞으로 뛰었다.
옆쪽에서 현만식이 뛰고 있었지만 그를 돌아볼 생각은 나지 않았다.
    안톤 모리스가 비틀거리며 카운터로 다가가자 발몽이턱으로 옆
쪽의 전화기를 가리켰다.
    "누론"
    안톤이 물었으나 그는 못 들은 척 몸을 돌리고는 앞에 앉은 사내
의 잔에 짐빔을채운다. 전화기를 귀에 댄 안톤은 우선 트림부터 했
다.
   그의 단골 클럽인 '블루 선즈'는 술값이 싼 반면에 분위기는 엉망
이었다. 손님의 대부분이 언론사 직원이어서 패 수준 높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텐데도 말이다. 이제까지 시치미를 떼고 있었던 것처
럼 점잖을 던 놈들도 이곳에 와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술
을 뿌린다. 하긴 그런 재미로 이곳에 오는지도 몰랐다.
   "여보세요."
   안톤이 말하자 저쪽도 무어라고 말했는데 들리지가 않았다. 이쪽
이 너무 시끄러운 탓이다. 짜증이 난 그가 한쪽 귀를 손으로 막으면
서 다시 소리치자 저쪽의 말이 겨우 들렸다.
240 밤의 대통령 제길근 -템
     "난 김원국 씨의 부하 고동규라고 합니다. "
     "누구라고?"
     알아듣기는 했지만 안톤이 다시 소리쳐 물었다. 그의 허리는 이제
 반듯하게 세워져 있었다.
     "김원국 씨의 부하, 고동규요. 당신이 안톤 모리스인가?"
     "그렇소, 내가 안톤 모리스요."
    이제 안톤의 말소리도 또렷해졌고 두 눈의 초점도 분명해졌다. 발
 음이 힐끗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가 여기 았는 것은 어떻게 알고. 도대체 무슨 일이오?"
    서두르듯 그가 묻자 고동규의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려 왔다.
    "큰형님의 지시로 당신을 찾았소. 당신에게 특종 기사를 드리려
 고."
    안톤이 침을 삼키고는 전화기를 귀 안으로 밀어 넣듯이 붙였다.
 고동규가 말을 이었다.
    "안톤 씨, 그곳에서 나오시오."
    "나가지요, 그런데 어디로?"
    한 시간 후 안톤은 파리 서쪽 말메종의 시가지로 들어서고 있었
다. 그가 운전하는 차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고동규이다.
   그들은 아직도 깊은 잠에 타져 있는 조용한 전원 도시를 가로질러
한적한 교외의 주택 앞에서 멈추었다.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지만 낮은 언덕 밑에 세워진 단층 벽돌집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도로에서 안쪽의 숲으로 2백 미터쯤 들어
간 곳인 데다가 가까운 민가는 5백 미터도 더 떨어져 있다. 은신하기
에는 알맞은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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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마당에 차를 세우고 집안으로 들어서자웅접실에 있던 박
남호가 안톤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서 오시오, 안톤 씨. 기다리고 있었소."
   "당신은 낯이 익습니다. 지난번 크리용 호텔에서 한국측의 경호
책임자였지요?"
   안톤이 묻자 박남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웃었다.
   "이거 기자는 못 당하겠군 어느 사이에 얼굴이 찍혔어."
   그들이 응접실의 소파에 앉자 10대 후반의 소녀가주방 쪽에서 상
반신을 내어 밀었다.
   "커피 드릴까요?"
   안톤이 머리를 』1덕이자몸은 들어갔지만 그녀의 얼굴 모습은 머
리에 남는다. 전형적인 프랑스 처녀였다.
   "이집 주인 딸이오."
   박남호가 말했다.
    "식구는 주인 부부와 저 딸 세 식구인데 보다시피 방이 여러 개에
다 창고도 있어서 우리가 생활하기에 알맞은 곳이오. 더욱이 위치가
시내에서 가깜기도 하고."
   그가 손을 들어 집안을 가리켜 보였다.
    "우연히 발견한 집이오. 주인과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사흘이 될지 열흘이 될지는 모르지만 10만 달러를 주고 같이 지
내기로 합의를 했지요. 이들에게 손해나는 거래는 아닐 겁니다. "
    10만 달러면 집을 사고도 남을 돈이다. 머리를 끄덕인 안톤이 물
었다.
242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나에게 보여 준다는 건 어디 있소?"
   "조금만 기다리시오."
   커피잔을 받쳐 든 소녀가 활기찬 걸음으로 다가왔으므로 그들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새벽 4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모두 피로한
기색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대사 동지는 알지 모르지만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믿어 주시
오."
    김동선은 손바닥으로 이마에 배어 나온 진땀을 닦았다.
   "우정만 동지는 해외 공작반 소속으로 평양에서 직접 지령을 받아
움직였습니다. 대사관의 우리와는 그저 아는 척만 하는 사이였소."
   창고 안이어서 이곳 저곳에 상자 더미와 농기구 등이 쌓여 있었으
나 주인은 정갈한 성격의 사람인 모양이었다. 바닥의 판자는 윤이 났
고 벽에는 연장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김동선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우정만 동지의 거처를 알 수도 없었고 알려고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정말입니다. "
   한동안 김동선을 바라보던 조웅남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면서 하품
을 했다. 몸이 뒤로 젖혀졌으므로 하마터면 나무 의자가 뒤로 넘어질
뻔하다가 바로 잡혔다.
   "잘 알았다. 모른다는디 헐 수 없는 일이지 니가 알면서도 모른다
고 허겄냐?"
   손등으로 눈을 닦으면서 그가 흔잣조리를 했다. 의자에서 일어난
조웅남은 옆에 내려놓았던 로프를 집어 들고는 김동선의 몸을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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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함께 묶었다
    "멘 시간 후먼 느그덜허고 평화 조약인가 지랄인가를 헐 모양인디
나는 못헌다. "
   로프는 길었으므로 조웅남은 몇 번이고 김동선의 몸을 감고는 매
듭을 지었다.
   "알었냐? 나허고 너허고는 웬수 사이란 말이여, 이 시키야."
   그러자 창고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형님, 준비되었습니까?"
   고동규가 들어섰고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은 안톤 모리스였다. 그는
놀란 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이만허먼 되었을 거여."
   조웅남이 김동선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자 안톤이 목에 걸고 있
던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플래시가 번쩍였고 물을 만난 고기처럼 안
톤은 생기있게 움직였다.
   "그럼 현 대사는 어느 방에 있습니까?"
   카메라를 눈에서 뗀 안톤이 고동규에게 물었다.
   "그 사람도 사진을 찍게 해줘야 됩니다, 고 선생 "
   처음에 어리둥절하던 김동선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안톤
은 그런 그의 표정에 더욱 열중하여 셔터를 눌러 대었다.
   저택 앞에 세워 둔 차로 돌아간 구베르는 조르주가 건네 주는 전
화기를 받아 들었다.
   "전화 바긴습니다. "
   "구베르, 나, 레지에야."
244 밤의 대통령 제3부 -111
   짜증 난 내무 장관의 목소리에 그도 이맛살을 찌푸렸다. 새벽 4시
였으니 짜증이 날 만도 했고 더구나 이것은 그가 몸서리를 치는 한국
관계의 일이었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레지에에게는 똑같은 코리연인
것이다.
   "말씀하십시오, 장관님 ."
   구베르가 말하자 레지에가 대뜸 물었다.
   "사건 윤곽은 잡혔나?"
   "아직 모릅니다,장관님.목격자도 없이 모두 죽었으니까요."
   차량 두 대의 운전사를 포함해서 여섯 명의 경호원이 몰살당한 대
형 사건이다. 그리고 북한의 대사와 부대사가 납치당한 것이다.
   "사건이 2시경에 일어났고 이쪽도 총을 쏘며 저항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누구인지, 몇 명이었는지는 아직."
   "뻔하잖아? 김원국의 일당이야. 놈들 아니면 북한측에 그런 일을
할 놈이 없어."
   "저도 그렇게 추측은 합니다. "
   "놈은 이제 한국 정부에도 반발하는 거야. 놈은 제거된 한국군 지
휘부와 전안기부장 임병섭과 맥을 통했던 놈이었으니까."
   "그런데 북한 대사를 데리고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할까?"
   구베르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한국과 북한의 평화 회담이
몇 시간 후에 시작된다는 데 생각이 미쳤지만 이것과 연결되지는 않
는다.
   "구베르, 내일 아침이면 또 세계가 떠들씩해질 거야. 놈들이 무슨
꿍꿍이 수작을 부리려는지는 모르지만 지난번처럼 당할 수는 없어."

(3)  


  크리용 호텔의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사람은 구베르였다 레지에
는 언론의 화살을 교묘하게 현장 책임자인 구베르에게 집중시켰던
것이다.
   "구베르, 수시로 사건 진행 상황을 보고해 주게. 나도 수상에게 보
고할 참이니까."
   구베르는 끊긴 전화를 조르주에게 건네 주었다.
   "김원국의 일당이 맞을까요?"
   조르주가 묻자 구베르는 저택으로 몸을 돌린 채 잠자코 서 있었
다. 이제 경찰차들도 대부분 떠났고 서너 대만이 남아 현장을 정리하
고 있는 중이다.
   신문 기자 대여섯 명이 남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지만 그
들은 이미 막차를 탄 부류여서 특종은 놓친 상태다. 운 좋은 경찰청
출입 기자 서너 명이 경찰과 함께 이곳에 도착하여 생생한 현장 사진
을 찍어 갔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첫자쿡뿐인 것이다.
   생마르템 거리의 '마르스'바 앞에 검정색 르노가멈춰 선 것은 5
시 5분전이었다. 그러자 바의 입구에 서 있던 사내 한 명이 르노로
다가갔다.
   거리는 한산해서 그의 발자국 소리가 울렸고 르노의 머플러에서는
횐 김이 뿜어나오고 있다.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그가 차
안을 들여다보려는 듯 허리를 숙이자 유리창이 소리 없이 아래로 내
려졌다.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우정만이다
   "저기 앞쪽 차에 계십니다. "
   사내가 눈으로 가리킨 곳은 르노의 앞쪽 길가에 세워진 자주색 캐
246 밤의 대통령 제3부 -111
딜락이다. 우정만은 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나머지
문이 일제히 열리면서 세 명의 부하가 따라나온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 "
   그들에게 말하고 난 우정만은 20미터쯤 앞의 캐딜락으로 다가갔
다. 차도에는 드물게 차량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인도는 행인들이 보
이지 않는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그가 캐딜락의 문을 열고 들어가
앉자 안쪽에 있던 사내가 1를 바라보았다.
    "연락 온 것 없습니까?"
    시바다 겐지가 대뜸 묻자 우정만이 머리를 저었다.
    "아직 없어요. 연락이 온다면 대사관으로 올 것이지 나는 아니
요. "
    "아니, 목표는 당신인 것 같은데."
    시바다의 말에 우정만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내 비중이 그렇게 크다니, 영광이군. 그런데 당신은 이것이 김원
국의 짓이라고 확신합니까?"
    "김원국이밖에는 없소, 우 선생."
    "혹시 한국 안기부의 공작이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소. 안기부 요원들의 동향은 우리가 샅샅이 파악하
고 있었으니까. 다만 한 놈이 행방을 감추었지만 안기부의 짓은 아니
요."
   ". ..
    "이제 대사를 잡아 갔으니 대사가 놈에게 실토할 것은 틀림없는
일이고. 릴에서 습격한 것은 당신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Tf
71. "
                                                  3국 분할 247
   "그리고 당신들이 정보를 준 것도 말이오."
   그러자 시바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우정만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어, 우 선생. 다케무라의 이야기를 들
으면 담도 없는 집에 경비는 한 놈뿐이었다는 거요.그런데 당신들
은."
   "우리가 기습을 당했다고 하지 않았소?다케무라의 정보가 틀렸었
소. 경비는 앞쪽에 없었고 우리는 헛간에 있던 놈에게 기습을 당했던
거요. "
   "어쩠든 최광이를 죽였으니 목적은 달성한 거요."
   "김원국이를 살려 둔 게 화근이었어. 놈은 우리에게 복수하러 돌
아온 거야."
   "그렇다면 왜 우리만 습격해서."
   "우리도 습격당했소. 당신들보다 먼저 ."
   그러자 우정만이 입을 다물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시바다가 말을
이었다.
   "파리 주재 행정관이 납치당했고 경호원 한 명이 살해되었어요.
어젯밤 자정 무렵이었소."
   "우리는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사고사로 위장했소. 그리고 납
치 사건은 비밀에 부치고 있어요."
   "놈들은 우리가 김칠성이를 데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
군."
   우정만이 혼잣소리처럼 말하자 시바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248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최광과 최성산의 시체만 발견되었으니 그렇게 의심할 만도 하지.
하지만 아직 누가 데리고 있는지는 모르는 것 같소."
   "그렇다면 대사와 교환하자는 속셈인가?"
   "두고 봅시다, 그것은."
   시바다가 답답한지 창문을 조금 열었다.
   "김원국이는 지금 일본과 북한을 동시에 상대하려고 합니다. 그런
데다가 놈은 한국 정부와도 인연을 끊은 것 같소. 따라서 놈은 고립
무원의 입장이오."
   "수하에 몇 놈 없을덴데."
   "김원국과 조웅남, 고동규의 셋이었는데 이번에 박남호가 놈에게
합류한 것 같소. 행방불명이 된 것을 보면."
   "여자가 하나 있지 않소?"
   "그렇군. 모두 합해서 다섯이오."
   한동안 차 안에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그것을 우정만이 깨었다.
   "김 칠성이는 배와 가슴에 총을 맞아서 오래 가지 못해요. 그렇다
고 병원에 데려다 줄 수는 없고."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 대사와 교환하는 것이 낫겠는데, 쓸
모가 있을 때 말이야."
   "뭐 0 안톤."
   침대에 누운 채 전화기를 든 제리 도노반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반쯤 눈을 감은 채였지만 창문이 어둑한 것은 보인다. 아직
해가 뜨려면 시간이 남은 이른 아침이었다.
                                                  3국 분할 249
   안톤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 나왔다.
   "제리, 일어나. 자빠져 있을 때가 아니야."
   "너처럼 새벽에 자빠져서 오후에 일어나란 말이냐?"
   "이 뚱보 녀석, 어젯밤에 대형 사건이 터졌단 말이다. "
   그러자 제리는 전화기를 고쳐 쥐었지만 아직 일어나지는 않는다.
   "무슨 사건인데?"
   "김원국의 테러 사건."
   제리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비스듬히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
다. 옆에 누운 마리아가 중얼거리며 시트를 감고 돌아누웠으므로 알
몸의 상반신이 샐렁해졌다.
   "김원국의 테러?또 일어났어?"
   "그래, 파리에서. 여섯 명의 북한 경호원이 사살되었고 대사와 부
대사가 납치된 사건이야."
   "이야,그것 큰데.김원국이 떠난줄 알았는데 파리를 잊지 못했
군."
   마리아가 끌고 간 시트를 힘들여 잡아당긴 그는 겨우 드러난 배를
덮고 비스듬한 자세로 다시 물었다.
   "지금이 6시 반인데 석간에 내면 되겠다. 그래, 사진은 찍었겠지?
지금 현장에 있나?"
   "현장에 갈 필요가 없었어, 제리 ."
   "갈 필요가 없었다니,이 빌어먹을 놈 안톤.또 '블루 선즈'에서
뉴스를 술과 바긴구나."
   "난 김원국 씨와 같이 있거든, 이 뚱보 놈아."
   안톤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으므로 제리는 잠시 눈을
250 밤의 대통령 제3부 -lU
점벅이며 누워 있었다.
   "안톤, 너 뭐라고 했어?"
   그가 다시 물었다.
   "김원국미와 같이 있다구?"
   "그래, 제리. 난 잡혀 있는 북한 대사와 부대사의 사진도 찍고 인
터뷰도 했어. 너에게 필름과 데이프, 그리고 기사를 보냈으니 곧 도
착할 』야."
    제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기를 들고는 옆쪽의 의자에 앉
 았다. 벌거숭이의 몸이지만 이젠 추위를 잊었다.
    "네가 어떻게, 안톤, 응?"
    "그들께게 불려 왔어."
    "잡혔단 말이냐?"
    "아냐, 이 멍청아.1들에게 내가 필요했기 때문이야."
    제리가 만족한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그들과 계속 붙어 다닐 수 있겠구나, 안톤."
    "글, 두고 봐야지 ."
    "지금 어디이?"
     "바보 같은 질문 하지 말어, 이 멍청아."
     "그렇군. 어쨌든 넌 축복을 받은 놈이야, 안톤. 필름을 보냈다구?"
     "테이프와 내가쓴 기사와 같이 보템단 말이다,제리."
     "꼼짝 않고 기다리지."
     "내 기사의 단어 한 자라도 고쳤다가는 다음 기사는 CNN의 헤스
 에게 보낼테니까 명심해."
     "네 기사에는 모두 금박을 입혀 젝어 내라고 할테니까 걱정하지
                                                    3국 분할 251
말어, 안톤."
   전화기를 내려놓은 제리는 서둘러 바지를 례만다. 벗으나 입으나
기다리는 데는 상관이 없었지만 가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더니 지희은이 쟁반 위에 우유잔을 받쳐 들고 들어섰다.
아직 얼굴색은 창백했지만 어제보다는 나아진 모습이었다. 탁자 위
에 우유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잠시 주춤거리더니 김원국을 바라보았
다.
    "이제 나았어요."
    김원국이 머리를 들자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다행이야. 하지만 며칠 더 쉬어야 될 것 같은데 "
    지희은이 머리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일을 주세요."
   그녀에게서 시선을 텐 김원국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집안을 감시해라. 가족들이야 매수해 놓았지만 인질이
세 명이나 있으니까."
   우유잔을 든 김원국이 한모금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는 아직도 앞에 서 있는 지희은에게 앞쪽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eE이rr."
   집안은 조용했다. 아침 5시가되어 있었지만 어젯밤 제대로 잠을
잔 사람은 없다. 마외 씨 부부와 딸인 카트린도 들락이는 사람들 때
문에 잠을 설쳤는지 지금은 깊은 잠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우릴 습격한 것은 북한의 공작원이었다. "
   김원국이 입을 열었다.
252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북한 대사가 자백했어. 북한 공작원들은 일본 정보국의 정보를
받고 우리를 습격한 거야. 목적은 최광 씨와 우리를 제거하는 것이
77. "
   "대통령이 김정일과 평화 조약을 맺기로 했거든. 따라서 최광 씨
가 한국에 은다면 정투 입장이 아주 난처해져."
   "더구나 이을설과 연합하여 김정일을 치려는 군 지휘부를 모두 교
체시킨 참이야. 최광 씨는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어."
   "그럼 우리도."
   지회은의 말에 김원국이 머리를 」I덕였다.
   "그래, 우리도 이제 한국 정부에게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다. "
   "왜? 두려운가?"
   머리를 든 지회은은 김원국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라 있는 것을
보았다. 1녀는 머리를 저었다.
   "두렵진 않아요. 하지만."
   "하지만 무어?"
   "화가 나요."
   그러자 김원국이 다시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난 동생들을 여럿 잃었다. "
   "동생들은 기꺼이 목숨을 바쳐 일을 해주었다. 그런데 배신을 당
하다니."
                                                 3국 분할 253
    "어떤 큰일을 위해 우리를 희생시켰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승복 못
한다. "
    머리를 든 지희은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려다가 다
시 닫고는 침을 끌어모아 삼켰다.
대통령이 파리의 소식을 들은 것은 오후 1시경으로 파리 시간으로
새벽 』시경이 되었다.
마악 점심을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와 녹차를 마시는데 이번에 안
                                                             는
기부장이 된 박종환이 들어와 보고를 한 것이다.
   "그래, 자넨 점심이나 먹었나?"
   보고를 마친 박종환에게 대통령이 물었다. 조금도 놀람지가 않다
는 표정이어서 긴장이 풀린 박종환의 어깨가 늘어졌다.
   "예, 각하. 오는 길에 먹었습니다. "
   청와대로 들어오는 차 안에서 먹었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머리를
끄덕였다.
   "식사 거르지 말고 꼬박꼬박 하게."
   "예 , 각fl."
   "그 소식, 아마 김정일이한테도 보고가 되었겠지?"
   "물론입니다, 각하. 아마 즉각 보고가 되었을 것입니다. "
   다시 머리를 끄덕인 대통령이 물었다.
   "김원국이가 했다는 증거는 있나?"
   "아직 파리는 새벽이어서 그런 발표는 없습니다만, 일본 정보국이
나 미국측예서는 그가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
254 밤의 대통령 제길근 -템
   "회담에 장애는 없73지?"
   "북한 대표들이 회의장에 모여 있습니다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
니다. " .
   대통령이 힐끗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회답은 이제 한 시간도 남
지 않았다.
   광화문의 프레스 센터에는 이미 남북한의 대표들과 미, 일의 참관
단들이 모두 도착해 있었다.
   남한의 김창덕 총리를 단장으로 외무 장관 장영식과 연합 사령관
이영규의 세 명이 남한측대표단이었고 북한은 이번에 수상으로 임
명된 김달현을 단장으로 무력 부장이 된 김강환, 외교 부장 흥진무의
세 명이다.
   "그리고, 태국 문제 말인데."
   대통령이 녹차잔을 내려놓으며 앞에 앉은 박종환을 바라보았다.
   "그 일은 철저히 관리하도록. 알겠나?"
   "알고 있습니다, 각하."
   박종환이 머리를 숙였다.
   "우선 열흘 후에 쌀 5만 톤이 남포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리고 20
일 후에는 나머지 15만 톤이 하역됩니다. "
   "북한 대표단에게 그 내용을 합의서에 포함시키면 안된다고 주의
시켰지?"
   "예,각하.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
   평화 조약의 합의서 내용과는 별도로 북한측에 게 백만 톤의 쌀을
일년 동한 공급해 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것은 어제 오후에 김정일
과 대통령과의 직접 통화에서 결정된 사항이었다.

 

 

(4)  


    "각하, 일본이 이을설에게 물자를 공급해 주고 있다는 것을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습니다. "
    박종환이 말하자 대통령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국 언론에서 새어 나갔단 말인가?"
    "아닙니다. 일본의 신문 하나가 보도한 것을 NHK에서 방송을 했
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소문이 퍼져서."
   "일본 정부가 흘린 모양히구만."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각하. 그들은 그 사실을 굳이 비밀로 감
출 필요가 없습니다. "
   "하긴 우리 체면을 봐줄 이유도 없지 "
   "이을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정부와의 공식 관계
로 체제를 인정받는 모양히 되니까요."
   "한국 정부에게 상의하지도 않고 이을설에게 물자를 공급시켜 주
는 것도 오만한 행동입니다, 각하."
    "군의 소장 장교들 중에서 일본군의 행동에 불만을 가진 장교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럴데지. 그래야 군인이지."
   이번에는 박종환이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강동진이 시령관으로 있을 때보다 일본군의 발언권이 강해진 것
도 알고 있어."
256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이을설이 움직일 때 하시모토 수상이 나에게 연락을 해왔어.그
가조정해 보겠다고 해서 승낙했었어."
   놀란 박종환이 눈을 치켜떴다. 대통령은 사전에 일본 수상과 협의
를 해놓은 것이다.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놀라운 일이 아니야, 일본이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 그들
은 앞으로 한국과 김정일, 이을설의 세 체제를 모두 조종하여 약한
곳을 들겠지."
   "그렇습니다, 각하."
   박종환이 입을 열었다.
   "각하께서 미국을 끌어들이 신 것은 잘하신 겁니다. 일본은 싫겠지
만 어쨀 수가 없겠지요."
   "각하께서 최선을 다하신 겁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선 그 이상
의 방법이 없습니다. "
   그러자 대통령이 회미하게 웃었다.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네, 박 부장, "
   "평화 조약이라는 것도 우리가 위기 '상황이 되었을 때 한 장의 휴
지 조각이 될 수가 있지. 이산 가족이 왕래하고 남북한 국민의 통행
이 허용되고 정상적인 통상이 이루어진다고 금방 통일이 되는 건 아
닐테니까."
   박종환이 머리를 」1덕이자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남북으로 나누어져서 사느냐 죽느냐,두 가지의 선택만을 가지고
있느니보다 동서남의 세 조각이 되어서 서로 강한 놈을 견제하고 사
                                                  3국 분할 257
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 지금은, "
"어쪘든 전쟁은 피할 수 있지 않는가, 박 부장?"
대통령이 다시 주름살을 만들며 웃었다.
    회담장이다.
    프레스 센터 10층의 회담장은 기자 회견장을 개조한 곳이서 넓었
 다. 삼면이 유리벽으로 된 회담장은 정시긱헝의 구조였는데 그 중심
 부에 세 개씩의 테이블이 역시 정사긱헝으로 놓여 있었다.
    유리벽 쪽이 상이고 문쪽을 하로 구분한다면 상하에 남북이, 좌우
 에 일본과 미국의 대표단이 각각 셋씩 앉아 있었으므로 합이 열둘이
 다. 4개국의 대표 됫줄에는 여러 줄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
은 실무자들의 자리였다. 남북은 실무자들의 제한을 두지 않았던 관
 계로 북한은 50여 명의 수행원이,한국은 백여 명의 실무자들이 10
층도 모자라 9층까지를 점유하고 있었다.
    회담이 시작된 지 한 시간 가량이 지난 지금은 남북이 각각 지참
해 온 합의서의 내용에 대한 검토에 들어가 있었다. 이미 대통령과
김정일이 말을 맞춰 놓은 상황이라 양쪽의 내용은 별로 다른 것이 없
었지만 세부 사항은 이곳에서 만들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크게 분류해서 평화 조약은 네 가지 항목으로 구분되었는데 그것
은 이미 양국 정상이 합의한 사항이었다. 그리고 시기와 절차 등 까
다로운 문제들도 결정되어 있었으므로 양국은 조약이 준수되도록 철
저한 세부 지침으로 밑받침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조약의 내용은 크게 분류해서 다음의 네 가지였다.
258 밤의 대통령 제3부 -lB
   첫째, 남북한의 철군 및 감군과 불가침 선언.
   둘째, 이산 가족의 남북한 방문.
   셋째, 남북한 주민의 자유 왕래.
   넷째, 상호 통상 및 산업 활동의 개방을 위한 행정청 설치.
   한국측 수석 대표인 김창덕 총리는 북한측이 건네 준 조약 합의서
를 실 무진들이 검토하는 동안에 앞에 앉은 김달현을 향해 입을 열었
다. 그쪽도 그와 마찬가지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중으로 대강의 합의서 내용이 결정될 수가 있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김달현도 웃는 얼굴로 머리를 끄
덕였다.
   "그렇습니다. 현재로서는 장애물이 없습니다. "
   "장애물이라."
    김창덕도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있습니까? 양국의 정상이 이미 합의한 사항
들인데."
    그때 좌측 테이블의 로젠스턴이 옆자리의 월슨 대장에게로 몸을
숙였다. 무료한 듯 두 눈이 풀려 있다.
    "장군, 저자들도 파리의 사건을 알고 있TR지요?"
    "알고 있을 겁니다,장관."
    월슨이 힐끗 앞쪽을 바라보았다.
    "회담에 방해가 될까 봐 모른 척하고 있는 겁니다. "
    "다른 때 같았으면 전쟁이 일어날 일인데 북한도 급했군."
    "한국측도 속을 색고 있을 겁니다. 김원국이 제멋대로 노는 바람
                                                  3국 분할 259
fl ."
    "말도 마시오.놈이 다행히 파리에 있었기 망정이지 서울에 있었
다면 난 클린트가 자리를 바러 준다고 해도 안 왔을 거요."
    그러자 뒤쪽에 앉은 실무자와 머리를 맞대고 있던 주한 미국 대사
마이클 그리피스가 다가왔다. 그가 로젠스턴과 월슨의 의자 사이로
몸을 들이밀고 허리를 숙이자 두 사람의 머리가 그를 향해 기울어진
다.
    마이클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장관, 김원국이 파리에서 한국과 북한,일본의 공작을 폭로했습
니다. 그것도 증인들의 육성 테이프로."
   "한국과 북한, 일본의 공작이라고?"
    놀란 로젠스턴이 묻자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고와 최광을 습격한 것은 일렬 정보국의 사주를 받은 북한 공작
원들이라는 증언과 한국이 그 일에 가담했다는 증언의 두 부분이
오."
   로젠스턴의 시선이 퍼뜩 삼면의 대표단들을 훌고 지나갔다.
   한국의 김 총리와 김달현의 환담에 일본의 무라야마 외상도 끼여
들어 있었다. 무엇이 우스운지 무라야마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치
며 웃었다. 화기애애한 회담장이었다.
   마이클이 다시 말했다.
   "AP 통신으로 세계로 뉴스가 전달되었지만 한국은 통제 때문에
막혔어요. 하지만 기자들은 알 겁니다. "
   "월슨. "
   로젠스턴이 월슨을 바라보았다.
260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손해볼 건 없소. AFK러으로 그 뉴스를 방영해요.내가 클린트에
게는 나중에 보고할테니 까."
   그러자 월슨이 머리를 11덕였다.
   "대통령도 반대 안할 겁니다, 장관."
   "그는 모르는 게 좋아요.책임은 내가 질테니까."
   "무슨 소리. 내가 주한 미군 사령관이오. AFKN도 내 소관이고.
내가 책임을 집니다. "
   자리에서 일어난 월슨이 뒤쪽으로 옮겨가자 로젠스턴이 마이클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이제 생기를 띠고 있었다.
   "씨발, 이럴 수가 있나?"
   이기팔 기자는 외신으로 들어온 팩스 용지를 펼치고 혼잣소리처림
말했다.
   "이건 사기다. 협잡이야."
   둘러선 동료들은 잠자코 영문으로 된 AP통신의 기사를 읽었다.
   기사는 북한 대사 현만식이 폭로한 내용부터 적혀 있었다. 북한의
공작원들이 』월 14일 릴의 교외에서 최광을 살해한 것은 일본 정보
국과 한국의 묵인하에 저질러진 일이라고 현만식은 폭로했다. 그는
그 증거로 공작반 책임자인 우정만이 일본 정보국의 시바다 겐지를
어디에서 몇 번 접촉했다는 것까지 상세히 밝혔다. 일본 정보국은 현
장에까지 북한 공작원들을 안내해 주는 것으로 임무를 끝냈는데 결
론적으로 북한은 반밖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원국이 도주했
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일본 정보국의 미우라 게이스케의 차례였다. 그는 시바
                                                  3국 분할 261
다 겐지가 북한 공작원 책임자인 우정만에 게 김원국의 거처를 알려
준 것을 확인해 주었다. 시 바다한테서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원국의 도주 후에 한국에서 파견된 안기부 요원들과 일본 정보국
요원들이 합동으로 김원국을 찾고 있다는 것도 폭로했다. 보는 즉시
사살하도록 그들은 명령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기부 보좌관인 박남호가 말한 내용이다. 그는 한국
안기부 요원들이 김원국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고 말했는데
현만식과 미우라의 폭로 내용을 확인해 주는 역할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김원국에게 잡혀 있다는 거야.그런 상황에서의
폭로나 증언은 가치가 없어 ."
    어느 사이에 끼여들어 있었는지 편집국장 안현식이 떠들썩한 목소
리로 말했다.
    "설령 이 내용이 사실이라도 말이야."
    그러자 이기팔이 머리를 저었다.
    "안톤 모리스는 허위 사실을 뉴스로 보낼 사람이 아니오,국장
님."
   "어쨌든 그자도 김원국과 같이 있지 않느냔 말이야."
    "프랑스와 영국, 미국은 톱기사로 실렸습니다. "
   다른 기자 하나가 끼여들었다.
   "이걸 묵혀 두는 나라는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의 세 나라뿐일
겁니다. "
   이웅태 당비서의 보고가 끝나자 김정일은 한동안 잠자코 앉아 있
었다. 그의 좌우에 앉은 백학림과 안용준 등 원로 군인들은 모두 시
262 밤의 대통령 제3부-템
치미를 뗀 얼굴로 그와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벽시계가 천
천히 네 번을 쳤다. 서울의 회담이 시작된 지 두 시간이 지난 것이다.
   이윽고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상관없어. 그간 일로 회담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테니까 말이오."
   "당연합니다, 수령 동지."
   이응태가 즉각 말을 받았다. 그는 이번에 최고 사령부 정치국 부
국장에서 당비서로 파격적인 승진이 되었다. 그것은 김정일이 신임
하는 김장환 최고 사령부 부시정관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령 동지."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일본놈들이야. 이을설에게 양곡을 대주어서
사기를 올려 주고 있단 말이오."
   그러자 백학림이 헛기침를 했다.
   "수령 동지, 이번 파리 사건의 내용을 보더라도 남조선과 일본은
사전에 묵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조선이 양곡을 보내는 것
도 일본과 상의했을 겁니다. "
   "당연히 그랬겠지요, 총국장 동무. 그들은 동맹국이니까."
   "어느 한쪽만 힘을 보태 주지는 않습니다, 남조선이나 일본놈들
은."
   백학림이 주름진 얼굴을 들어 김정일을 바라보았다.
   "놈들은 우리 공화국과 이을설을 현상태에서 고착시키려는 의도
가 보입니다. "
   집무실 안은 잠시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고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백학림의 말과 같이 한반도가 공화국과 남조선,그리고 이을
설의 동부 지역으로 세 조각이 나서 고착된다면 그 일차적인 책임은
                                                  3국 분할 263
김정일에게 있는 것이다.
    남침을 선언한 것은 군부 세력의 완전 장악과 권력 집중,그리고
인민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한 방책이었다.
    김정일은 선전을 포고하면 남조선은 한달 안에 스스로 무너진고,
그렇지 않더라도 침공 열흘이면 제주도까지 장악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미국은 참전을 기피했다. 그들은 오
히려 시간을 끌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일이 끝났으면 하는 눈치까지
보였다.
   그러나 의외로 남조선 인민들은 빠르게 현실에 적응해 나갔고 결
집되어 갔다. 조 대사의 분사와 김원국의 활동이 그들에게 자긍심과
투지를 일깨워 준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침공 하루 전에 회담을 한다는 것에 방심하다가 남조선과 일
본의 연합군에 허를 찔렸고 그 동안 음모를 꾸며 왔던 이을설에게도
때맞추어 배신을 당하게 되었다.
   이윽고 김정일이 머리를 들었다. 굳어진 얼굴이었다.
   "난 인민이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따뜻한 잠자리에 드는 것만 보
면 됩니다. 더 이상의 욕심은 없소."
   남조선에서 올 백만들의 양곡은 서부 북한의 인민들에게 충분히
배급될 것이었다.
   오후 1시, 특전사 제2여단장 장규범 준장은 장교들이 여단장실로
들어서자 앞쪽의 의자를 가리켰다.
   "모두 앉아."
   참모장과 네 명의 대대장,그리고 부관 이근욱 소령이 그의 앞에
264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나란히 앉았다.
     장규범은 어깨를 편 자세로 앞을 바라본 채 한동안 입을 열지 않
 았다. 올해로 나이 쉰이 되었지만 햇볕에 탄 피부는 윤기가 났고 언
 제나 치켜뜬 듯이 눈꼬리가 올라간 얼굴에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우람한 체격은 전형적인 군인이다. 그가 입을 열었다.
    "AFKN본 사람 있나?"
    그러자 몇 초쯤 지난 후에 왼쪽에 앉은 중령이 번쩍 머리를 들었
 다.
    "제가 보았습니다, 여단장님."
    "자네 하나뿐이 이?"
    "저도 보았습니다. "
    가운데에 앉은 중령이다. 머리를 끄덕인 장규범이 나머지 장교들
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자네들은 이야기라도 들었겠지?
    "예, 여단장님 , "
   "감상이 어펐어?"
   여섯 명 모두에게 묻는 것이다.
   "AFKN의 파리 사건 말이야. 어때?"
   "분했습니다. "
   제일 먼저 보았다고 말한 중령이다. 다부진 모습의 그가 말을 이
었다.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장규범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는 그가 얼마 전에
사령부로 진입해서 강한기 소장을 잡으라는 명령을 듣지 않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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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다른 지휘관, 아니 군인들 모두가 그런 생각
할 것이다. "

    장규범이 말하자 모두 긴장했다.
    "이제야 대통령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이다.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
척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낱 정상배라는 것
이 드러났다. 국민의 희생이 있으면 안된다면서 일본놈의 손을 잡은
것은 한말의 역적들이 한 짓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
   장규범의 말소리는 점점 열기를 띠어 갔다.
   "그자는 군에 의해 권력이 나눠지는 것이 두렸웠을 뿐이다. 통일
이 눈앞에 와 있었는데도 겁을 먹고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는 군 지
휘관들을 체포하고 김정일이와 말뿐인 평화 조약을 맺는다면서 국민
들을 호도하고 있다. "
   "군대를 휴전선 밑으로 백 킬로 후퇴시키고, 150억 달러의 보상금
과 매년 20억 달러의 조공을 준다는 항복 문서에 사인하려 했던 자
다,그자는.나라가 어떤 꼴이 되건 제 자리만 지키려고 했던 놈이
야. "
   "그런데 이번에 파리에서 생긴 사건을 봐라.일본놈,북한놈들과
같이 연합해서 애국자를 말살하려고 했어."
   "저희도 분합니다.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
   대대장 한 명이 격한 어조로 말하자 참모장 전영석이 머리를 들었
다. 횐 얼굴에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장규범과는 대조적인 용모였는
266 밤의 대통령 제3부 -르
데 성격도 꼼꼼하고 차분해서 호흡이 잘 맞는 사이였다.
   "여단장님, 저희들은 잠간 밖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일 여단
장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신다면 모두 따를 것입니다. "
   그러자 장규범의 시선이 퍼뜩 그에게로 옮겨졌다. 그러나 선뜻 입
을 열지는 않는다. 전영석이 말을 이었다.
   "여단장님, 우리는 군인입니다. 군인답게 살다가 죽을 각오가 되
어 있습니다. "
   "계란으로 바위 치는 짓이라도 흔적은 남을 것입니다. 한국군의
기백은 전해질 것입니다, 여단장님."
   "말씀해 주십시오, 여단장님."
   대대장 한 명이 거들었고 나머지 장교들도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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