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거사의 시작과 끝
(1)
1996년 B월 23일 오후 6시, 김포의 특전사 제2여단의 여단장실.
중앙의 테이블을 둘러싸고 일단의 장교들이 모여 서 있었다. 닷새
동안 계속된 평화 회담은 이제 문구 수정만 남아 있었고 매스컴은 연
일 평화 조약으로 이루게 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서 황금빛 청사진
을 그려 주는 때이다.
전영석 대령이 이윽고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펼쳐
져 있는 서울 시가지 지도 위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얼굴의 표정이
밝다.
"우리는 청와대만 점령한다. 전 속력으로 올림픽 대로를 달려 성
산 대교를 넘어 청와대로 직진하는 거야."
주위에 둘러선 대대장들의 표정이 굳다. 그러나 선뜻 입을 열지
않는 이유는 여단장 장규범이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기 때문이었
다. 이것은 평시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장규범이 호탕한 음성으로 지
304 밤의 대통령 제3부 -111
시하면 전영석은 꼭 필요할 때만 말을 거들었기 때문이다. 전영석이
말을 이었다.
"청와대 경비는 제33연대와 경호실 병력이 이쪽으로 방어망을 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기갑 대대에 당할 수는 없다. "
그러자 마침내 1대대장 방선호 중령이 입을 열었다. 그가 문제의
기라 대대장이다.
"참모장님, 우리가 부대에서 청와대까지 전 속력으로 달린다고 하
더라도 한 시간 반이 걸립니다. 그 동안 청와대는 시흥의 3특전사나
과천의 5사단을 불러들일 수가 있습니다. "
"두 시간은 걸릴 거야."
전영석이 한가로운 소리를 했다.
"새벽 2시에 출발해서 4시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간을 맞출 작정
이야."
"참모장님. "
그러자 장규범이 헛기침을 했으므로 따지려던 방선호가 말을 멈추
었다. 장규범이 입을 열었다.
"이제까지 나나 참모장이 여러분에게 말을 안했는데."
그는 주위의 장교들을 둘러보았다.
"주한 미군이 우리의 거사를 돕기로 했다. "
그러자 상황실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장규범이 말을 이
었다.
"오해하면 안된다, 여러분 미군은 우리의 지원 세력이지 같이 움
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산 대교 입구에 1개 부대를 진출시켜
놓을 것이고 한강 대교와 마포, 원효, 동작, 반포 등 12개의 다리 북
떠 시작과끝 305
단에 병력을 배치시켜 놓기로 했다. 북쪽의 2사단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
"주한 미군이 움직이는데 일일이 한일 연합사의 지시를 받을 필요
가 없지."
"여단장님 "
제2대대장이 나섰다.
"미군의 지원만으로 거사가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군의 동조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
장규범이 머리를 』1덕였다.
"물론이다. 그래서 과천의 」사단이 우리의 출발과 동시에 연합 사
령부를 점령하고 지휘부를 체포한다. "
모두들 눈을 치켜뜨고 장규범을 바라보았다.
"5사단이 말씀입니까?"
침묵을 깨고 방선호가 묻자 이제는 전영석이 말을 받았다.
"5사단의 현금택 소장은 지휘부를 체포함과 동시에 강동진 대장과
고성국 중장, 강한기 소장을 사령부로 복귀시킬 것이다. "
대대장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것은 이제 무모한 돌격이
아니다. 치밀한 계획이 세워진 쿠데타인 것이다. 그래도 아직 믿기지
않는 듯 2대대장이 머리를 들었다
"그럼 참모장님, 아니 여단장님께서는 5사단과 사전에 계획을 세
워 두셨던 겁니까?"
"5사단뿐만이 아니다. "
전영석이 얼굴에 웃음을 띠고 말했다.
306 밤의 대통령 제3부 -llf
"춘천의 1군단과 의정부의 9사단, 동부 전선의 2사단장 변영호 소
장 들과도 모두 연락이 되어 있단 말이야."
"특전 사령관이 우리를 이끌어 주지 못해 유감이지만 우리 여단
만으로도 일을 충분히 성사시킬 수 있어."
"그러면 지휘 통제는 어디서 합니까? 5사단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방선호가 묻자 장규범이 머리를 저었다.
"미군 사령부다. "
장교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친미 쿠데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그들은 일이 끝나면 손을
기로 약속을 했다. =1들의 목적은 일본의 견제이지 일본처럼 한반
도의 장악이 아니야."
"그리고 우리는 대통령을 갈아 치우고 새로운 정권을 세운다는 것
도 아니야. 우리는 당분간 청와대에 주둔하면서 대통령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나머지 일은 강동전 대장이나 다른 고위 장성, 각료들에
게 맡기면 된다. "
장교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풀려
있는 대신 열기가 떠 올랐다.
"작전 개시는 25일 새벽 2시다. "
장규범의 말에 그들은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홍제일 대위는 단정한 양복이 어울리는 30대 초반의 사내였다. 둥
거사의 시작과 끝 307
근 눈이 항상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의 그가 미 육군의 장
교이고 더구나 CIA 요원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민 3세로서 한국어도 완벽했지만 그는 이제 완벽한 미국인이 되어
있었다.
테헤란로의 철튼호텔 커피숍은 저녁 때가 되어서 외국인 손님들
로 붐비고 있었다. 한국에 평화 조짐이 보이면서 며칠 사이에 외국인
방문객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커피잔을 든 그가 잔에 남은 커피를
한모금에 삼켰을 때 커피숍의 입구로 한 사내가 들어섰다.
『중앙 일보』의 이기팔 기자였다. 구겨진 바바리 코트 차림의 그는
곧장 흥제일에게로 다가오더니 앞자리에 앉았다. 넥타이의 매듭이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홍형, 무슨 일이오?"
이기팔이 대뜸 묻자 홍제일이 웃는 얼굴로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부
르더니 커피를 시켰다. 이것으로 세 번째 만나는 사이였지만 그들은
서로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직업적인 관계인 것이다.
"흥, 평화 조약 좋아하네 ."
다시 불쑥 이기팔이 말을 뱉었는데 테이블 위에 놓여진 신문을 보
고 하는 말이다. 일면의 톱기사로 '25일, 평화 조약 선포'라고 씌어
있는 신문은 공교롭게도 『중앙 일보』였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종업원이 돌아가자 홍제일이 그를 향해 상체를
조금 숙였다.
"이형, 원고 마감이 몇 시요?"
"끝났』 ."
그러다가 이기팔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
308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좋은 것 있소?"
"준비해 왔는데,"
"어떤 것이오?"
"큰 거요."
"봅시다. "
손을 내밀었던 이기팔이 흥제일이 웃는 얼굴로 움직이지 않자 손
을 거두었다.
"당신이 날 이용하는 것은 알아. 그러니까 서로 솔직해 집시다. 어
떤 내용이오?"
"서로 이용하는 것이지. 당신도 이용만 당할 사람이 아니니까. 이
건 일본의 대외 정책이오. 극비 서류지."
이기팔이 그를 쏘아본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일본이 곧 이을설에게도 일본군 2개 사단 병력을 파견하게 될 겁
니다. 원산이 일본 해군의 기지가 될 것이고.지금 이을설과회당을
하고 있는 자는 재일 한국인으로 야마다라는 사람이오."
"이제 동해는 한국해가 아니게 되었소. 그들이 주장했던 대로 일
본해가 될 것이오."
"우리의 예상으로는 일본은 곧 김정일에게도 군대를 파견할 겁니
다. 김정일은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고. 고립되면 안되니까."
"그것, 엄청난 기사인데."
이기팔이 넋 나간 사람처럼 혼잣소리를 하다가 퍼뜩 허리를 들었
다.
거사의 시작과 끝 309
"날더러 보도하라는 것 같은데, 그것을."
그는 홍제일이 미국 정부의 요원인 줄은 안다. 며칠 전에 그는 안
기부에 불려갔다가 몇 시간 만에 풀려 나왔다. 어리둥절한 그를 기다
리고 있던 것이 홍제일이었다. 홍제일이 손을 써준 것이었고 그것은
곧 미국 정부가 =1를 빼내 준 것으로 봐도 되었다.
"미국 정부가 일본을 치려는 것이군, 나를 통해서."
이기팔이 찌푸려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본을 견제하려는 것이야, 나를 대리인으로 삼고."
"그건 당신들의 감정과도 맞을텐데, 이 기자,"
"내가, 씨팔, 당신들 꼭두각시야?"
"흥분할 일이 아니야, 이 기자. 잘 생각해 보라구."
흥제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셔졌다.
"우리는 지금 서로 이용해야 된단 말이오. 협조해야 된다는 이야
기도 되지. 일본을 견제시키지 않으면 한반도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
어?"
"우리가 나서 주지 않으면 당신들은 속수무책이야. 그자들의 치밀
한 계산과 빠른 진행 속도를 당할 수가 없어."
"안현식 편집국장이 지금쯤 회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이 원고를 받으려고."
그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이 기사를 내는 데 가로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소, 이 기자. 내 말
을 이해하겠습니까?"
310 밤의 대통령 제3부 -르
"그러고 보면 당신은 행운아요, 이 기자.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
까?"
시바다 겐지는 올림픽 대로를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계 대형
승용차는 승차감도 좋았을 뿐더러 엔진도 강력해서 시속 백 킬로미
터가 넘었는데도 소음도 얼고 진동도 적다. 저녁 8시가 되어 평시에
는 붐빌 시간이었지만 두 시간 후면 통금이다. 대로를 달리는 차량들
은 제각기 속력을 내고 있었다.
시바다가 창에서 시선을 고 옆에 앉은 노무라를 바라보았다.
"노무라, 김원국이는 이곳에 있어. 내 말을 믿어도 돼." '
그러자 노무라가 힐끗 그를 보더니 입맛을 다시면서 다시 앞을 바
라보았다. 그는 정보국의 한국 책임자로 도.5.타 자동차의 한국 대리
점을 운영하고 있다. 40대 초반의 둥근 얼굴과 살찐 몸매의 장사꾼
스타일의 사내였지만 한국어에 능통하고 치밀한 업무 수행으로 혼다
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놈을 프랑스에서 빼낸 것은 CIA야. 우정만의 거처를 알려 준 것
도, 개자식들."
"글쎄,시바다. 놈이 이곳에 온 것이 어쨌단 말이야?고향으로돌
아온 것 아닌가?일 끝내고."
노무라가 말하자 이번에는 시바다가 입맛을 다셨다. 노무라가 나
이는 조금 위지만 직급은 같다. 그는 추진력이 떨어지는 노무라를 조
금 얕보는 경향이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을 놈이 아니야, 김원국이는."
거사의 시작과 끝 311
"그럼 뭘 하73나?그자가 거리에 나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봤
어? 곧 평화 조약을 맺는 북한놈들이 길길이 뛸 것이고, 스위스, 프
랑스 정부도 가만히 있을 것 같f? 놈은 여기에서 할 일이 없어."
노무라의 열떤 말에 눌렸는지 시바다는 팔짱을 낀 채 대담하지 않
았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다케무라가 힐끗 백미러를 올려다보았지
만 조수석이어서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CIA 놈들이 김칠성이를 치료해 주었어. 시체도 서울로 보내 주
었고. "
다시 시바다가 말하자 길게 숨을 내쉰 노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국 대사관 직원 전용 병원인 소르본 병원에서 정보가 흘러나온
것은 김칠성이 사망한 날 저녁이었다. 정보가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어서 시체가 서울로 보내진 것도 확인할 수 있
었다. 그것은 미국측의 대단한 호의였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타산 없
는 호의는 베풀지 않는 것이다.
혼다의 허락을 받은 시바다가 서울로 날아온 것은 시체가 도착한
다음날인 이틀 전이었다.
"도대체 미국놈들이 왜 그자를 이곳으로 보냈을까?"
시바다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그자를 이곳에서 필요로 한 것은 누구일까?"
"없어 ,"
노무라가 뱉듯이 말했다.
"국민들한테 인기는 있겠지만 정부 쪽에서 그자를 감싸 줄 자들은
이제 아무도 없네."
"집념이 강한 놈이야. 김칠성을 죽인 복수를 하려고 들지도 몰
312 밤의 대통령 제3부 -I[1
라."
"복수는 했어. 우정만이 머리가 한바퀴 돌려 졌다면서."
"우정만이가 꼭두각시였다는 것도 알아, 그자는."
"미우라를 납치했지 않나?"
"살려 주었지. 신문 기딘거리만 뱉게 해놓고."
그러자 노무라가 시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럼 자넨가?그자가 자넬 찾아 이곳에 왔단 말이야?"
시바다가 머리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어. 다른 할 일이 있을 거야."
승용차는 한남 대교에 다다르자 우측으로 꺾어져 들어갔다. 강남
대로로 들어서려는 것이다.
칼튼 호텔의 818호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자 고동규가 문으로 다가갔다.
"누구요?"
"흥제일입니다. "
문이 열리고 홍제일이 들어섰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
안쪽의 의자에 앉아 있는 김원국을 향해 깎듯이 인사를 하고 난
그는 앞쪽 자리에 앉았다. '
"방금 『중앙 일보』의 이기팔 기자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
"이을설과 일본의 관계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자료는 충분합리다. 야마다 씨가 일본으로 통화한
내용도 녹음한 것이 있거든요."
거사의 시작과 끝 313
"대단하군."
김원국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일본 입장이 난처해지겠어, 한국에서."
"하지만 호락호락하지가 않습니다. 한일 방위 조약이 다급한 때
맺어진 것이라 한반도의 평화시까지 일본군이 주둔한다고 되어 있어
서."
"미국은 일본군이 철수했을 때의 방'간이 있습니까?"
김원국이 묻자 홍제일은 한쪽 머리를 기울였다.
"김 선생님, 어떤 방안 말씀입니까?"
"지난번처럼 북한이 침공해 온다던가 할 적에."
"그거야."
홍제일이 둥근 눈을 기울이며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당연히 한국을 방위 해야지요. 하지만 지난번 같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
"그렇군. 세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어느 한 쪽이 쉽게 움직일
수 없겠군."
그러자 흥제일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금 한국 내의 여론은 평화조약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퇴색해
져 있습니다, 김 선생님. 그걸 알고 계시겠지요?"
홍제일의 옆자리에 앉은 고동규가 의아한 듯 눈을 장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연합 사령부 지휘관들과 안기부장을
명령 불복종과 월권 행위 등의 죄명으로 체포한 일이지요."
314 밤의 대통령 제3부 -lH
"그리고 김 선생이 폭로한 기사라든가, 또한 엊그제의 태국산 쌀
을 북한에 공급하기로 김정일과 비밀 거래를 한 사실을 국민 대부분
이 알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나도 한몫을 한 셈인가?"
김원국이 웃었지만 흥제일은 따라 웃지 않았다.
"대통령은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미일 양국군이 한반도에 주둔해
있는 것이 안정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한국인의 정서는 일본을
거부하고 있지요."
"일본군은 방위 조약 때문만이 아니라 북한의 남침을 저지시킨 공
적이 있습니다. 물러가지 않을 겁니다. "
"공적은 일본군에게 있는 것이 아니오."
고동규가 그의 말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최광과 이을설이 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고
우리 형님과 사령부의 강 소장이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오. 일본군이
아니었더라도 동부 전선의 어떤 한국군이라도 해내었을 일이오."
"그것도 국민들이 이제 알고 있습니다. "
그러자 김원국이 흥제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홍 대위, 나에게 바라는 것이 뭐요?"
"대통령을 도와 주셔야겠다는 겁니다. "
"한반도의 미래와도 관련된 일이고, 한미 관계의 증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
(2)
"요점만 말해,흥 대위 ."
김원국이 차갑게 말하자 흥제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곧 결
심한 듯이 가슴을 폈다.
"내일 성명을 발표해 주십시오."
"일본의 배신 행위에 대해서.그리고 돌아가신 김칠성 선생의 한
을 풀어 드리는 의미로."
"닥쳐 ."
김원국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동규가 벌떡 일어섰다.
"이런 개새끼가 감히 누구 이름을 아무데나 둘러 붙이는 거야? 네
놈이 뭔데 한풀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쌍놈의 새끼 같으니."
"진정하시오, 고 선생."
흥제일의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랐다.
"실언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씨근거리던 고동규가 한동안 서 있다가자리에 앉았다. 김원국이
입을 열었다.
"내 성명 발표가 대통령을 도와 줄 것이란 말이지."
"국민들은 김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믿을 겁니다. "
"그 성명서 내용도 당신들이 준비해 놓았Tf지?"
"준비했습니다. "
"내용은 보지 않아도 뻔하군. 이 일을 대통령도 알고 있겠지?"
"저는 잘 모릅니다. "
"참, 그렇군. 당신은 미국의 CIA 요원이야."
316 밤의 대통령 제3부 -I[l
"Cl킬가 주도해서 한국 대통령의 신뢰감을 회복시켜 준다. 그것은
눈물겨운 일이야. 설마 당신은 내가 그걸 믿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
니」afl?"
"물론입니다. "
여유를 찾은 듯 홍제일의 눈이 다시 웃는 모양이 되었다.
"그것은 물론 미국의 이익을 위해섭니다, 김 선생님. 미국 정부는
최소한도 1월 이전의 한미 관계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
밤 1 1시, 영동의 아파트 안.
김원국과 조웅남,고동규가 응접실에 모여 앉아 있었다. 통금 시간
이 되어 아래 쪽의 차도는 조용했고 아파트 안에서의 소음도 없다.
며칠 전까지는 등화 관제 때문에 칠흑같이 어두웠던 아파트 단지는
평화 회담 이후로 등화 관제가 해제되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응접실 안은 조금 전부터 싸늘한 분위기로 덮여지고 있었다. 열기
가 식어 가면서 그 싸늘함은 더욱 강도 높게 느껴졌다.
이윽고 고동규가 머리를 들고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형님, 부탁 드릴 것이 있습니다. "
"말해라."
"저는 공무원입니다. 지금은 직위 해제가 되었지만 제 자신은 여
전히 공무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저, 오늘부터 그만두31습니다. 그리고 형님을 따르겠습니
다. "
"넌 내 동생이야."
거사의 시작과 끝 317
그러자 고동규가 머리를 숙여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형님 ,"
"웅남이 동생이다. "
"예, 형님 ."
조웅남이 헛기침을 했다. 오늘은 술기운이 없어서 약간 파리하게
보이는 얼굴이다.
"형님 , 돌아감시다. "
"그, 만탄 섬인가 그곳으로."
"지긋지긋해요, 여그가."
"더 지긋지긋하기 전에 돌아갑시다. "
소파에 둥을 기댄 김원국이 잠자코 앞에 앉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조웅남과 마찬가지로 고동규도 가족을 찾지 않았는데 얼굴 보기는
커녕 전화도 하지 않은 이유를 김원국은 알고 있었다.
김칠성의 부인인 한세라와 서울에 있던 동생들에 의해서 김칠성의
장례식이 치러졌지만 이 방의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우려했던 조
웅남은 아예 내색도 하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아서 오히려 김원국이
더 신경을 썼던 것이다.
갑자기 조웅남이 손을 뻗쳐 탁자 위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는 한가로운 목소리로 서류를 읽었다.
"자, 이냐,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씸이라. 좋네, 대통령 특별
성명 같고만."
318 밤의 대통령 제길근 -템
"시끄럽다. "
김원국이 말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대통령 각하의 간절현 지시를 받고 취리히에 갔습니다.
좋다, 잘 갔지."
"회담에 어뜨케든 참석해서 대한민국의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지
시를 받고.흠,허지만 본의 아니게 불상사를 초래혔는디 이것은 전
적으로 본인의 책임입니다. 좋다, 씨발놈아. 죄는 우리가 짓고 너는
훈장 타그라."
서류를 내던진 조웅남이 길게 숨을 내쉬고는 고동규를 돌아보았
다.
"동규야."
"예, 형님."
"저그 앞에 앉어 계신 우리 형님은 저걸 읽으실 거다. 나는저 양
반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이여."
"그렁게 니가 백날 야기혔자 아무 쇠용 없다. 내버려 두그라."
‥‥‥‥‥
"저 양반 순 똥폼만 남은 양반여. 저걸 읽고 행여 장관 자리 하나
줄랑가 허고 기대리고 있을 거여."
"형님 ."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동규가 부르자 조웅남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흔들거리는 걸음으로 옆쪽 방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았
다.
거사의 시작과 끝 319
온돌방에 익숙지 않은 지희은이 자주 몸을 뒤척이더니 두 팔굽을
요 위에 짚고는 엎드렸다.
"자요?"
"아니 . "
박은채가 몸을 굴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이 오지 않아요?"
"응. "
스물여섯으로 나이는 동갑이지만 아직 그들은 말을 놓지 않았다.
서로 존대말을 했다가 반말로 내리는데 그것을 의식하면서도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다.
지희은이 머리맡에 놓인 담배갑을 집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성명서 읽었어요?"
연기를 내뿜으며 묻자 박은채가 머리를 』1덕였다. 탁자 위를 치부
면서 대충 읽었는데 지희은도 읽은 모양이었다.
"김 선생님은 발표하실 모양이던데."
지희은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나 같으면 안해."
박은채가 잠자코 대답하지 않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게 조국이이?돌아와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돼?이렇게 숨어
서."
"우리가 모르는 사정들이 있을 거야."
"사정은 무슨,우린 끝까지 이용당하는 거라구요."
"바보같이, 알면서도 따른다는 건 이해할 수가 없어 "
320 밤의 대통령 제3부 -르
눈을 깜박이며 그녀를 바라보던 박은채가 입을 열었다.
"지희은 씨, 김 선생님 좋아해요?"
"그래요."
지희은이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박은채를 향해 웃
어 보였다.
"사랑해_e.."
"소름이 끼치도록 그가 좋아요."
"비행기에서 무슨 이야기 했어요?서울로 올 적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솔직히 난 버려졌다고 믿었거든요."
"박은채 씨도 김 선생님 좋아하죠?"
"당신 눈을 보면 알아요. 당신이 나를 읽었듯이 "
"그래요?"
턱을 고인 머리를 돌려 이번에는 밖은채가 횐 이를 드러내며 웃었
다.
"언제는 소름이 끼치도록 싫다더니."
"비슷한가 봐요, 애증의 감정이."
그리고는 둘은 한동안 말없이 엎드려 있었다. 집안은 조용했지만
응접실에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었다. 사내들은 고향에 돌아왔어도
외국에 있을 때처럼 긴장을 풀지 않는 것이다.
거사의 시작과 끝 321
"우린 이제 어떻게 될까요?"
지희은이 방안의 침묵을 깨었다.
"난 이곳에 아무도 없어요. 그냥 김 선생님만 따라왔는데 ‥‥‥‥
"답답해."
그러면서 지희은이 몸을 돌려 누웠으므로 박은채도 몸을 누였다.
그러다가 다시 몸을 세우고는 재떨이에서 덜 꺼진 담배 꽁초를 잡아
비벼 끄고는 다시 누웠다.
2월 24일 아침 9시, 김포의 특전사 제2여단의 여단장실.
참모장 전영석 대령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장규범 준장이 머리를 들었다.
"여단장님, 다녀왔습니다. "
"그래, 수고했어."
그들은 소파에 마주앉았다.
긴장한 장규범의 시선을 받자 전영석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어젯밤에 미군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
장규범이 머리를 」1덕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월슨 대장은 거사가 성공하면 나타나기로 했습니다.
계획에 차질은 없습니다, 여단장님."
"청와대에 미군이 진입하면 안된다고 분명히 말해 주었지?"
"물론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더라도 경계만 하기로 다짐을 받았습니다. "
서울 근교 주둔 부대의 지휘관 동향은 보안사에 의해 철저히 체크가 되었으므로
어젯밤의 전영석은 연합군 사령부에 들어가 미군의 연락 장교를 만나고 온 것이다.
미행자가 있었더라도 의심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5사단장은 어때? 어제 우연히 들었는데 사령부로 전속될 것 같다던데 ."
"염려 없습니다. 홍 대위가 어제도 현 소장을 만났다고 합니다.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현종택 소장이 그런 배짱을 내다니 놀람단 말이야."
이제 장규범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육사 띠 선배였는데 샌님이었거든.내가 잘 알아,근무도 같이 해서 ."
"전시에는 달라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사령부를 장악하면 돼. 청와대는 우리가 책임질테니까. "
"그리고 참 "
전영석이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흥 대위한테 들었습니다만 오늘 오후 4시에 김원국 씨가 특별 성명을 발표한다고 하더군요.
TV, 라디오의 전 채널로 한다고 했습니다. "
"그 사람이 서울에 왔나?"
장규범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굉장하겠군 그 성명은 어떤 내용이야?"
"자세히 모릅니다. 다만 내일 거사의 기폭제 역할이 될 성명이라고 하더군요."
(3)
"계속 일이 터지는군. 아침에는 일본이 이을설에게 물자 공급을
한 사건이 터지더니."
비상 각료 회의를 마치고 복도를 걸어 집무실로 향하던 이영만 대
통령이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안기부장 박종환이 다가오고
있었다. 복도에 깔린 붉은색 양탄자를 걷어 치운 때문에 대리석 바닥
을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다.
"각하,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
회의 때 말하지 않은 것이니 극비 정보일 것이어서 대통령은 잠자
코 머리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들은 집무실에 들어가 마주앉았다. 1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
다. 대통령이 허리를 곧게 편 채 박종환을 바라보았다.
"뭔가?"
"아침에 일본의 혼다 정보국장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
대통령이 잠자코 있자 그가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의 신문 보도에 대해서 유감이라고 하더군요. 이을설에
게 물자를 공급해 주는 것은 한국의 안정을 위해서인데 그것이 거꾸
로 해석이 된 악의에 찬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
"글쎄, 그것도 해석하기 나름이겠지. "
"한국 정부가 사전에 보도를 통제할 수 있지 않았느냐고 해서 그
것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
예상하고 있었던 듯 대통령이 머리를 끄덕이자 박종환이 긴장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각하,흔다는 김원국의 성명 발표에 대해서 내용을 알고 싶어했
324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습니다. "
"궁금하겠군."
"김원국이 어떻게 한국에 들어와 성명까지 발표할 수 있느냐고 묻
길래 우리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만."
"믿지 않73군."
"예, 각하. 그들은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
"할 수 없는 일이야."
"혼다는 성명 발표를 중지시켜 달라고‥‥‥‥
대통령이 혀를 찼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나?"
"시민들이 모두 김원국이 온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
"흠, 그래?그것도 괜찮은 답변이군."
"정부가 개입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소문이 퍼져서 막을수가 없
다고. "
"잘했어."
"하지만 흔다는 김원국을 체포해서 살인 및 납치 혐의로 넘겨 달
라는 요청을‥‥‥‥
' "건방진 놈."
"파리 주재에 일본 대사관원 오자괴 요시오의 살인과 미우라 게이
스케의 납치에 대한."
"미국도 가만 있는데, "
대통령이 눈을 치켜떴다.
"이놈들이 우릴 협박하는 거야, 뭐이?"
거사의 시작과 끝 325
"우리 허락도 없이 남한에 1개 사단 병력을 더 들여 놓고. 이을설
이하고는 곧 방위 조약을 체결한다면서?"
"안돼. 그럴수록 그렇게는 못해. "
"각하, 동부 전선에 일본군이 3개 사단이나 주둔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말씀대로 이을설과 방위 조약을 맺고 일본군이 동부 전선의 북쪽
에 들어오면."
"예상했던 일이 아닌가?"
대통령이 지친 듯 머리를 소파에 기대었다.
"그러니까 더욱 급하단 말이야, 박 부장. 이제 이 땅에서 그놈들을
몰아내야 돼 최소한도 남쪽에서만은."
같은 시간, 시청 앞 플라자 호텔의 커피숍
시바다 겐지와 다케무라 한죠가 창가에 앉아 시청 앞 광장을 내다
보고 있었다. 더러운 색깔의 비둘기몌가 물이 끊긴 분수대 위를 떠돌
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바다가 창에서 시선을 었다.
"기자도 백 명으로 제한하고 출입증이 있어야 입장을 시킨다니.
이것은 한국 정부가 잔 각본이야, 미국하고."
찌푸린 얼굴로 커피숍의 출입구를 바라보고 난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틀림없이 반일 선동이야. 빈 몰을 죽인 김원
국이를 한국으로 곱게 데려온 미국놈들의 속셈이 이제 드러났다구."
"조장님, 김원국이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그놈이 어떤 내용을
326 밤의 대통령 제3부 -lfl
발표할지는 모르지만 파문이 클 것 같습니다. "
다케무라가 주위를 둘러보며 낮게 말했다.
이영만 대통령을 도와 일본군이 연합군의 지휘부를 교체한 것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당위성을 극력 해명했던 관계로 일본군에 대
한 비판은 적었다. 그러나 김원국이 AP 통신을 통해 발표한 내용이
AFKN으로 방영되고 나서 반일 감정이 분출될 상황인 데다 오늘 아
침의 『중앙 일보』에 이을설에게 물자를 공급한다는 보도가 실린 것
이다.
"빌어먹을 김원국이 놈."
시바다가 잇사이로 말을 뱉었다. 김원국이 다시 무엇인가를 터뜨
리면 야단이었다. 더욱이 놈은 한국 정부의 비호를 받고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이고 있다.
그러자 커피숍의 입구로 점퍼 차림의 노무라가 뒤뚱거리며 들어서
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쪽을 발견하고는 곧장 다가왔다.
"휴우, 땀 뺐어."
자리에 털썩 앉으며 노무라가 말했다. 그리고는 점퍼의 주머니를
손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얻었어, 두 장."
그는 임페리얼 호텔 1누층 라운지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을 구해
온 것이다. 라운지에서는 저녁 1시에 김원국의 성명 발표가 있을 예
정이었다.
김원국·은 한동안 그를 향해 번쩍이는 카메라의 플래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거사의 시작과 끝 327
그의 정면으로 세 대의 TV카베라가세워져 있었고 좌우에도 한
대씩이 더 있다. 백 명의 기자로 제한한다고 했지만 주최하는 『중앙
일보』측에서 10여 명의 기자를 추가로 넣은 데다가 TV카메라에
딸린 인원은 별도였다. 2백 명 가까운 기자들에 얼핏 보아도 기관원
으로 보이는 수십 명까지 합쳐 라운지는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사회자의 소개가 끝났으므로 김원국이 이제 성명을 발표할 차례이
다. 그가 잠자코 서 있었으므로 웅성이던 소리들이 사그라들기 시작
하면서 금방 조용해졌다.
김원국은 연탁 위에 내려놓은 원고를 내려다보았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생방송이었지만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저는 이제까지 저와 제 동생들이 해온 일들을 보고하려고 이 자
리에 섰습니다. "
그러자 김원국의 머리에 조민섭 대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머리 위
에 백열 전등이 켜져 있었으므로 열이 뻗쳐 나왔고 라운지는 가득 찬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저는 대통령 각하의 지시를 받고 취리히로 떠났습니다. "
이기팔은 앞줄의 중앙에 앉아 있었는데 김원국의 표정이 가라앉아
있는 것을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다. 도무지 생기를 띠지 않는 것이
그의 본래의 모습인가도 생각했지만 가끔씩 번뜩이는 눈빛을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기팔은 발표 직전에 프린트해서 나눠 준 성명서 내용을 내려다
보았다. 김원국은 이것을 읽는 것이다. 그가 성명서에 밑줄을 쳐 요
약한 내용은 금방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읽고는 부들부들 떨었고 지금
328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은 외우다시피 했지만 다시 내려다보자 여전히 가슴이 뛰었다.
1. 대통령의 지시로 취리히 잠입
2. 미국 대표단과의 긴밀한 연락으로 상황을 본국으로 전달했고
3.북한 공작원들의 방해와 극복 .
4. 취리히와 파리 난동은 독자적인 행동이었으며 일본 정보 요원
과 밀착하였으나
5. 회담 결렬 후 도피시에 일본 정보국의 배신
6. 일본 정보국 요원에게서 얻은 한반도 강점 계획
이것에는 자세한 설명이 이어져 있었다
1. 견제 :즉 3국으로 나누어진 현상태가 현재로서는 바람직하고 3
국과 균등하게 군사, 외교 관계를 맺는다. 특히 이을설의 동부 한국
에 입지를 강화하고 남한에는 반미 감정을 부추김과 동시에 김정일
과 이을설의 압력을 수시로 받게 하여 주한 일본군의 비중을 높인다.
2. 분할:즉 견제의 다음 단계로 목표는 남한과 김정일의 서부 북
한이다. 남한은 상황이 안정이 되면 경상,전라,충청의 3국으로 나
누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촉진시키도록 자치권 간의 경쟁을 유
발시켜 폭동이나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분열시키고 주한 일본군이
정부의 위임을 받아 진압한다. 그 동안 이을설과 김정일로 하여금 남
한을 압박하게 하여 일본군의 의존도를 더욱 높이고 남한을 3국으로
분할, 각 지역에 일본군을 둔다. 같은 방법으로 김정일의 북한을 최
소한 이등분한다.
거사의 시작과 끝 329
3. 합병 :전 세계적으로 국가 개념이 없어져 가는 시기이므로 자연
합병을 추구한다.
이기팔은 다시 머리를 들었다. 김원국이 원고의 내용을 또박또박
읽어 나가고 있었으나 머리를 들지는 않았다.
"야단났다. "
노무라가 시바다에게 귓속말로 말했지만 시바다는 굳어진 얼굴로
김원국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거 어서 보고를 "
노무라가 다시 말하면서 시바다의 어깨를 밀었으나 그는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국민들은 흥분으로 폭동을 일으킬 것 같았다. TV를 때려 부수거
나 아파트 창 밖으로 던져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리를 지르며
책상이나 술상을 주먹으로 내려치는 사람도 있다. 길거리로 뛰쳐나
가 악을 쓰다가 살기 띤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30대에 얼굴을 붉
힌 채 흐느껴 우는 20대도 있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가던 승용차 운전사는 앞차를 받아 버렸고 악에
받쳐 있던 앞차의 운전사와 길 복판에서 사생결단을 하듯이 굴며
싸운다.
퇴근 길에 전파상 앞에 모여 TY를 보던 행인들이 일제히 악을 쓰
고 일어났지만 갈 곳은 없다. 누군가가 돌을 던져 전파상의 큰 유리
를 부됐지만 주인은 어디 갔는지 나오지도 않았다.
김원국의 성명 발표가 끝나자 시가지는 점쓸려 다니며 일본놈을
330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몰아내자, 죽이자는 고함을 치는 무리로 덮였는데 무리에 쉽쓸리지
않은 사람들도 여차하면 살인이라도 해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곧 통금 시간이 된다. 외침과 절규와 화풀이가 모두 부질
없는 일이었고 열기가 식자 아직도 겨울의 밤은 차갑게 피부에 와 닿
는다. 제각기 집으로 향하거나 하던 일을 시작했지만 국민 모두의 가
슴에는 응어리가 맺혔다.
"때가 왔다. "
아직도 상기된 얼굴의 장규범이 잇사이로 말했다. 아직 시간은 여
섯 시간이나 남았지만 방금 TV를 끄고 나서 뱉은 말이다.
그의 주위에 둘러앉은 장교들은 그보다 10년 가깝게 차이가 난다.
그들의 피가 더 생생하고 심장의 박동이 더 세찰 것은 말할 것도 없
고 느낌도 더욱 강하게 받았을 것이었다. 장규범은 거사의 성공을 확
신할 수 있었다.
"좇 까는 소리여."
조웅남이 툭 내던지듯 말하며 소파에 길게 누웠다. 그러자 지희은
과 박은채가 일제히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으므로 그가 얼른 말
을 이었다.
"아니, 우리 형님 말고."
그래도 그녀들이 꼼짝하지 않자 답답해진 그가 다시 말했다.
"저거 쓴 농한티 허는 소리여, 좇 간다고 헌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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