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재편되는 연합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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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편되는 연합 전선
:틴 14일 오후 2시 린뿐, 연합군 사령부의 상황실,
작전 지도를 펴놓은 테이블에는 10여 명의 군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유진영 중장이 찌푸린 얼굴로 머꼴를 저었다.
"경계 태세를 강화하도록. 하지만 도발하면 안된다. 각하의 명령이다. "
"하지만 15전차 사단은 51보병 사단과 함께 215고지의 전방으로
압박해 오고 있습니다,참모장님."
대령 계급장을 붙인 참모가 지도 위의 한 점을 손가락 끝으로 짚었다.
"위성 관측에 의하면 제18전차사단은 이 지점으로 지동하고 있습니다.
215고지의 78기갑 여단과 2사단 병력으로는 방어하기가 벅찹니다. "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채일주 중장이 입맛을 다셨다.
그는시령관의 특별 보좌관이었는데,
그것은 대통령에 의해 이번에 새로 신설된 보직이었다.
그의 임무는 작전의 확인과 감독으로 인민국 조직의 군 정치 국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봐, 김 대령. 움직이면 공격이고 가만히 있으면 방어라는 사고방식은 버려.
놈들이 평화 조약 체결 때문에 예민해져 있는 것은 사실일테지만 우릴 공격하지는 못한다. "
육중한 체구의 채일주는 생긴 대로 목소리도 우렁찼다.
"이을설은 서쪽과 납쪽의 연합군을 한꺼번에 상대할 만큼 만용을 부릴 자가 아니야."
"보좌관님,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라도."
"만약의 경우에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러자 대령은 주춤 입을 다물었다. 만약의 경우란 인민군의 공격
이고 그것에 대한 이쪽의 적극적인 대비는 선제 공격이 될 것이다.
그러자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이영규가 입을 열었다.
"물론 적의 공격시에는 즉각 반격한다. 그것에는 이론이 없다. 따
라서 동부 전선의 각 부대들은 반격 준비를 갖추고 있도록."
이제는 동부 전선으로 긴장 상태가 옮겨진 것이다. 참모들은 잠자
코 그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시소의 한쪽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
니다. 이제까지 중부와 서부 전선을 긴장시 켰는데 그것을 잠간 동안
에 동부 전선으로 옮긴다는 것을 아무리 전투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다손치더라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말이 반격이지 선제 공격을 받는 쪽이 치명적인 피해가 나
는 것이 정상이어서 이쪽의 반격은 효과를 잃는다. 그것은 일주일 전
196 밤의 대통령 제3부 -방
의 이쪽의 공격에서 사실로 입증되었다. 이을설의 제1군 미사일 부
대들은 미처 손을 쓰지도 봇하고 아군의 미사일 공격에 궤멸되었던 것이다.
이영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군을 비상 대기 시키고 대통령 각하께도 보고하도록. 그리고."
그의 시선이 가토에게서 멈추었다.
"장군은 하실 말이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다만."
가도가 몸을 바로 세우고는 말을 이었다.
"정치적인 개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직 조약 체결 전이지만
김정일을 시켜 동쪽을 압박시킨다든지."
"보고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각하께서 결전하실 일이오."
머리를 끄덕인 가토가 입을 다물자 유진영이 손바닥으로 지도를
두드렸다. 동쪽과 서쪽의 북한을 두드리는 것이다.
"이제까지 김정일과 이을설은 서로 견제하면서 전면전을 피하려
는 기미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김정일이 이을설을 치는 기회
가 될 수도 있」f습니다. "
이영규가 머리를 」1덕였으나 밝은 표정은 아니다. 동쪽이 남쪽을
치면 그 기회에 서쪽이 동쪽을 친다는 말이었고 그때에는 한반도가
모조리 전쟁에 휘말리는 상태로 변할 것이다.
대통령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벽을 쏘아보았다. 이윽고 그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이을설이 우리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당연해.
하지만는 그렇게 무모한 짓을 벌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각하."
전화기의 목소리 주인은 이영규 대장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각하, 저는 전군에 비상 경계령과 함께 적의 공격에 즉각
반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
그것은 이미 대통령의 명령으로 내려졌던 것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각하, 참모들은 각하께서 김정일에게 연락을 하셔서 이을설을 압
박하도록 하는 것을 건의해 보라고 했습니다만."
"내가 말이오? 김정일이에게?"
"예, 각하. 조약 체결도 내일이니만치."
대통령이 입맛을 다시고는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는 외무 장관
장영식을 바라보았다.
"이봐요, 사령관. 이을설이가 공격해 올 가능성은 얼마나 있소?"
"각하,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방법입니다. 가토 중장도 그런 의견
을 내었습니다만."
"남한이 이을설의 침공 위협을 받고 있으니 도와 달라고 하란 말
이오?"
"지금 김정일이 어떤 조건으로 우리와 조약을 맺으려는지 사령관
도 잘 알지요?"
"알고 있습니다, 각하."
"민족의 숙원인 평화가 오고, 이산 가족이 조약 체결과 동시에 남
북으로 왕래하게 된단 말이오. 석 달 후에는 통행증만 가지면 남북의
198 밤의 대통령 제3부 -토
국민들이 휴전선을 통과할 수 있고."
"내가 그콜 제의를 한다면 김정일이가 어떻게 나을 것 같소?"
"틀림없이 뭔가를 조건으로 내놓을 거요. 지금은 그자가 궁지에
몰려 있는 때이니만치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면 안된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각하."
"우리 군은 만약의 경우에도 충분히 반격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각하."
"내가 클린트 대통령과 하시모토 수상에게는 연락을 하겠소.
이을 설의 위협에 대해서 말이오."
전화기를 내려놓은 대통령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이을설이로 바뀌었나?"
1 시간에 다궤다 소장은 21 』고지의 지하 벙커에서 한국군 제2사
단장인 변영호 소장과 마주앉아 있었다. 철근 시멘트로 급조된 벙커
는 완공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탓에 벽에서는 비린 듯한 시멘트
냄새가 났지만 넓은 벙커였다. 한국의 건설 기술과 빠른 공기가 유감
없이 발휘된 건물이었다.
"인민군 15전차 사단은 소련식으로 편제가 되어 있어서 3개 연대,
약 350대의 T -62 탱크가 주력입니다. "
벙커를 둘러보던 다케다가 입을 열었다.
"전투 병력은 약만 명,장갑차를 포함해서 지원 차량이 2천 5백
대 가깜게 되는 기계화 부대지요."
변영호가 머리를 』1덕였다.
"우리 사단의 대전차 부대를 전진 배치 시켰습니다. 놈들의 진입
로를 차단시키는 동안에 공군과 포병의 폭격이 있을 겁니다 "
"그 다음이 우리 차례로군.한국전 최대 규모의 탱크전이 되겠는 07. "
"염려하지 마시오, 다케다 장군. 우리도 한몫을 단단히 할테니까."
변영호의 말에 다케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피아간에 손실이 클 겁니다. 보병 부대가 더욱. 이곳은 지형이 완
만해서 은폐할 곳도 마땅치 않은 데다가 토질이 약합니다. "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오. 하지만 우리는 빨리 움직일테니까 놈
들의 고정 표적이 되지는 않을 것이오."
i15고지는 둥글고 밋밋한 능선으로 남쪽을 바라보는 시야는 좋았
지만 북쪽에서 보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묘지였다. 다궤
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럼 건투를 빌겠소, 변 장군."
"끝나고 술이나 한잔 합시다. "
악수를 마친 다케다가 상황실을 나가자 변영호의 옆으로 대령 계
급장을 어깨에 붙인 참모가 다가왔다.
"사단장님, 사령부의 전화입니다. "
그는 대령이 건네 주는 무선 전화기를 귀에 대었다.
"사단장 변영호입니다. "
"나, 유진영이오."
"예, 참모장님 , "
"상황은 어떻소?"
"놈들은 공격 대형으로 다가옵니다. 거리는 3킬로 가깜게 되었습니다. "
"15전차 사단의 뒤를 따라서 51사단이 이동하고 있고 후방에는
18전차 사단이 있습니다. 참고로 하시오."
"공격해 온다면 우린 진격해 갑니다. 이곳은 방어할 만한 조건이 안됩니다. "
"알고 있어요. 78기갑 여단과 호흡을 잘 맞추어야 할 거요."
"방금 다케다 소장하고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참모장님. 지원이나 잘해 주십시오."
78기갑 여단은 15전차 사단과, 그리고 그의 2사단은 인민군 51사단과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변영호는 숨을 들여 마시고는 어깨를 폈다. 적의 선제 공격으로 다소 피해를 입겠지만
한국군과 인민군의 보병 사단이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부딪치는 것이다.
그는 78기갑 여단이 15전차 사단만 맡아준다면 해볼 만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 시간의 주석궁, 김정일의 지하 집무실 안.
소파에 앓은 김정일이 머리를 』1덕이며 김강환을 바라보았다.
며칠 사이에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안경알 속의 두 눈에서는 생기가 났다.
"이을설이 남조선을 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령 동지.
그가 운용할 수 있는 부대는 제 1군단의 3, 4개 사단밖에 되지 않습니다. "
앞자리에 앉은 김강환이 말을 이었다.
"따라서 남조선의 대응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영만의
성격으로 보아도 동부 전선에 있는 군단 병력을 모두 투입해서 북으
로 밀고 들어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스커트나 이을설이 가지고 있는 노동 1호로 서울을 때려도 좋은
데.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이영만이도 가지고 있는 미사일로 이을설이
를 칠텐데 말이야."
"그때는 공군이 날아가겠지 요. 남조선과 일본의 공군이 본격 투입
되면 전면전이 됩니다, 수령 동지."
김정일이 손가락 끝으로 소파의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리다가 멈추었다.
"이을설과 남조선의 전쟁이 시작되면 평화 조약은 보류되어야겠군."
"당연한 일입니다, 수령 동지. 서둘러서 내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
"다행이야, 남조선의 군 지휘부가 바뀌어서. 그것으로 우리가 기회를 얻게 되었어."
"남조선은 기회를 잃었지요. 모두 수령 동지께서 놈들의 의표를
찌르는 평화 조약을 제의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
"어쨌든 두 놈들이 치고 받는 것을 두고 보면서 기회를 보기로 한
다. 우린 손해 볼 것이 없으니까."
그러자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호위총국 소속의 대좌가 무선
전화기를 들고 들어왔다.
"수령 동지, 이을설 차수입니다 "
김정일이 눈을 치켜뜨고는 대좌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선이 김강
202 밤의 대통령 제갈근 -템
환에게로 옮겨졌다. 김강환의 목울대가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올라
왔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그도 이을설이 전화를 해오리라고
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잠자코 손을 내밀어 전화기를 받아 쥔 김정일이 숨을 들여 마셨다.
"여보세요."
"동무, 나, 이을설이오."
동무는 대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김정일이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동무가 웬일이오?"
"나는 다섯 개 군단에 일곱 개의 미사일 기지,그리고 네 개의 비
행단과 동해 함대의 거의 전부를 장악하고 있소, 김정일 동무."
앞에 앉은 김강환이 크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을설이 말을 이었다.
"동무와 나는 서로 치명상을 입을 일은 하지 않고 있었소. 그렇지 않소?"
"이 반동분자 같으니."
낮은 목소리로 김정일이 말했다.
"용건을 말해라."
"동맹을 맺을 것을 제의하오, 김정일 동무."
"남북이 아닌 동서 동맹이오."
"미친 놈."
"잘 생각해 보시오, 김정일 동무. 흥분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란
말이오.한쪽이 강할 때에는 다른 두 쪽이 연합했던 것이 1천 5백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해왔던 처신이었어."
"불행하게도 북쪽이 동서로 쪼개 졌지만 서쪽만으로 남쪽과 대항
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일이야.
그렇다고 남쪽과 연합하기에는 합병 당할 가능성이 높고."
"우리 한반도는 삼국으로 나누어졌을 때가 가장 진취적이었고 문
화의 성장도.발랐소, 김정일 동지. 긴장 상황에서 서로 경쟁을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영웅도 많이 배출시 켰지."
"헛소리 그만해. "
"당분간 동서의 동맹을 맺고 남쪽을 견제합시다, 남쪽 정권을 전복시킬 때까지.
그 다음에 동서가 패권을 다투어도 동무에게는 이득이오. 나보다 20년은 젊으니까. "
인민 공화국 제 15전차 사단의 1연대장 장성무 대좌는 T -62 전차의 해치에 서서
망원경으로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T -62는 115밀리 활강포를 장착한 중전
차로 포구경이 일본의 74식 전차의 105밀리보다 컸고 철갑탄은 사
정 거리 2천 미터에서 3백 밀리 장갑을 관통할수 있는위력을가지고 있다.
탱크 연대는 땅을 울리면서 전진해 나아갔다. 캐터필러에 잔 나무가 이겨지면서
깔려 들어갔고 조그만 돌들은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흐트러진다.
제15전차사단의 3개 전차 연대 모두가산야에 펼쳐져 있는 위용은 장관이었다.
정면에 횡대로 늘어선 것은 그의 제1연대와 2연대의 2백 대 가까운 전차단이었고
그것이 돌격 대형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제3연대는중심 부근에서 5백 미터즘후방으로쳐져 있었는 데
예비대로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선봉대가 될 수도 있는 대형이었다.
1개 전차 연대는 95대의 전차와 전투 장갑차 10여 대가 주력이다.
그리고 지원 부대는 기갑 정찰, 기갑 보병, 대전차, 기갑 포병을 실은
장갑차 5백여 대가뒤를 따르고 때 보병 대대가배속되어 있는 것이다.
제15전차 사단은 역삼긱헝의 대형을 이루면서 천천히 215고지로
접근해 나아갔다. 산야는 340여 대의 T-62전차와 2천여 대의 장
갑차로 가득 메워져 있는 것이다.
장성무는 해치의 손잡이를 쥐고는 어깨를 폈다. 215고지와의 거리
는 이제 2킬로미터로 좁혀지고 있었다. 그러자 헬멧의 리시버에서
잡음과 함께 사단장인 이경산 중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1, 2연대 정지히rl."
탱크대가 진격을 멈추자 자욱한 먼지 바람이 연막처럼 템크대를
덮어 씌웠다. 이경산이 다시 말했다.
"사단, 정지하라."
먼지 바람이 가시면서 전방의 215고지가 오후의 하늘 아래 선명
하게 드러났다. 및밋한능선에 개미집처럼 흩어져 있는 벙커가육안
으로도 보였고 능선 위에는 짙은 구름덩이가 한가하게 떠 있었파.
장성무는 해치를 닫고 전차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이제 곧 전쟁
이다. 후방의 포병들이 215고지를 때리는 것으로 전쟁이 시작될 것이었고
그 시간은 3시 정각이다.
다시 장성무는 손목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시계는 2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변영호 사단장은 벙커 안에서 앞쪽을 바라보는 자세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고지의 2부 능선에 있는그의 벙커에서는 아래쪽의 아군벙커들과 멀리 산기슭을 돌아 나와
구릉과 골짜기를 새까맣게 덮고 있는 탱크들도 보였다.
부연 먼지가 템크대 위를 덮고 있어서 검은 덩치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고
가끔씩 햇빛에 반사된 유리가 이쪽 저쪽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은 흐렸지만 해는 커다란 해무리를 만들면서 능선 위를 덮어주고 있었다.
천둥이 울리는 것 같은 탱크의 소음은 아직도 그치지 않았지만 조금 전보다는 줄어든 것 같았다.
. "기다려라, 조금만 더."
옆에 선 참모장 이필원 준장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의 이마는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변영호는 망원경을 내리고 이필원을 바라보았다.
토우(Tow)미사일 중대는 고지의 8부 능선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미 적의 전차사단은사정 거리 내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사정 거리가 3,750미터인 토우용 BGM71A 미사일은 길이가 1미터가 조금 넘을 뿐이지만
장갑 관통력은 50센티미터가 된다.
"전차와의 거리는 얼마야?"
변영호가 묻자 이필원 옆에 서 있던 중령이 대답했다.
206 밤의 대통령 제3부 -111
"18연대 대전차 중대와 1킬로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
18연대 대전차 중대는 아군의 최전방 부대로 215고지의 아래쪽
벌판에 참호를 파고 들어가 있었다 대전차 중대의 장비인 무반동포
는유효사정 거리가 4백 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놈들은 정지했다. "
다시 앞을 바라본 변영호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자욱하게 하늘
로 치솟아오르던 구름 같은 먼지도 걷혀 가고 있었다. 그들은 산야를
가득 덮고 있는 검은 전차 집단을 바라본 채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변영호의 목소리가 무거운 분위기를 깨었다.
"포병 단에게 연락을. 적 전차가 움직이면 포격하라."
"예, 사단장림 ."
뒤쪽의 누군가가 힘차게 대답했고 변영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전투 개시다. "
"예 , 사단장님 ."
참모들이 무전기를 귀에 대고는 고함치듯 그의 명령을 전달하고
있을 때 참모 향 명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소령 계급장을 붙인 그가 얼빠진 표정을 짓는 것을 본 변영호는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월남전에 맹호 부대 소대장으로 참전하였다
가 중대장이 되어서 돌아온 변영호였다.
그는 적전에서 겁에 질린 얼굴을 구분할 수 있었다.
"뭐야? 소령!"
기합을 넣듯이 변영호가 소리치자 소령은 부동 잘세가 되었다.
"예, 사단장님. 일본군의 대전차 부대가‥‥‥‥
"어쨌단 말인가?"
"후퇴하고 있습니다. "
그 순간 벙커 안은 순식간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 졌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참모들은 우르르 총안 쪽으로 몰려갔다.
변영호도 총안의 우측 아래에 있는 일본군 대전차 부대 쪽을 바라보았다.
6부 능선쯤의 위치에 제 17연대의 대전차 부대가 있는 쪽에 그들의 진지가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17연대를 바러라!"
그가 소리쳐 말하자 소령은 준비하고 있었던 듯 무전기를 건네 주었다.
"나, 사단장이야 거기 누군가?"
때려 붙이듯이 그가 묻자 참모들이 옆으로 모여들었다.
"예, 17연대 참모 박병태 중령입니다. "
"일본군이 어쨌다구?"
"지금 철수해 올라가고 있습니다, 사단장님."
"철수해?"
"예, 다케다 소장의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
그러자 밖을 내다보고 있던 참모 하나가 소리쳤다.
"저기다, 저기 올라오고 있다. "
무전기를 귀에 댄 채 변영호도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열 횡대
로 올라오고 있는 일단의 군인들이 보였다. 그들이 어깨에 메고 있는
것은 칼구스타프대전차포로사정 거리가 7백에서 1천 미터 가량이
되고 장갑 관통력fl 40센티미터나 되는 강력한 무기였다.
"사단장' 잡을까요?"
두 눈을 부릅뜬 이필원이 소리치듯 말하자 변영호가 맞받아 소리쳤다.
"다케다를 바러라, 어서 "
그러면서 그는 머리를 돌려 전방을 바라보았다 T-62 전차 사단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눈을 부릅뜬 유진영이 소리치자 이케다가 가슴을 펴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진정하시오, 장군'. 제 15전차 사단은 공격해 오지 않을테니까."
"무엇이?"
둘러서 있던 한일 양국의 참모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영규 대장은 어금니를 문 채 이케다를 바라보았고 가토 중 장은 턱을 세워 들고는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이을설과우리가 합의를 했소. 215고지에서 예전의 비무장지대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말이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합의가 바로 조금 전에 되었기 때문이오."
"내 말은 왜 그런 일을 우리에게 상의하지 않고 일본군 단독으로 진행했느냔 거요!"
"이을설이 당신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소."
"무엇이라구?"
"장군,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생각해 보시오."
두 손으로 테블을 짚은 이케다가 말하자 한국군 참모들 사이에서 투덜거리며
불평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2)
유진영이 낮으나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전에서 배신 행위를 한 것과 같소, 당신 일본군들은."
"배신이라니. 말을 삼가시오, 유 장군."
그러자 이영규가 헛기침을 하고는 이케다를 바라보았다.
"이을설과의 합의가 끝나자마자 78기갑 여단에게 연락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
"그렇다면 왜 나에게 알리지 않았소?"
"알려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바로 조금 전에 이을설측으로부터 통보받은 일이라서."
"이을설이 우리를 믿지 않기 때문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요."
"사령관님, 그것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니오. 우리 일본 정부에서 접촉한 것입니다. "
대답한 것은 가토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정부는 이을설과 김정일의 통화 내용을 위성을 통해 알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을설과 접촉한 것이오."
"당신 정부도 그렇지."
유진영이 가토를 쏘아보았다.
"어떤 내용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우리에게 알려 주었어야 했어요."
"이을설이 김정일과 동맹을 맺자는 내용이었소.
그것을 당신들에게 알려 주었다고 해서 도움이 되었을까요?"
가토가 말을 받았다. 어깨를 편 그의 마른 몸이 커 보였다.
210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우릴 따라 철수하기를 요청합니다, 사령관. 은폐물도 제대로 없
는 능선 위에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내면서까지 버티고 있을 명분도,
실리도 없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보고를 했느니 안했느니 하고 따지는 일부터가 적
전 분열이오, 사령관."
끝 쪽에 서 있던 참모 중의 한 명인 민정구 대령은 어금니를 문 채
길게 숨을 내쉬었다. 사령관과 유진영 참모장의 원칙도 맞는 말이었
고 가토와 이케다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이쪽은 아직도 이을설이 전
면전을 하리라고 생각지 않아서 소극적인 방어 태세만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215고지에 있는 2만 명 가까운 병력은 애
꿎은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많았는데 그것은 후퇴의 명분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드디어 침묵을 깨고 이영규가 입을 열었다.
"2사단을 철수시켜라."
참모들이 말없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의 등뒤에서 가
토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남방 한계선의 예전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야.그렇게 지시하도
록."
그 순간 민정구는 자신의 가슴이 가라앉아 있는 이유를 알 수 있
었다. 그것은 이제 상황실 안의 연합군이 일본군에 의해 지배되고 있
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능선 위쪽으로 일단의 군인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개
재편되는 연합 전선 211
미가 행군하는 것처럼 긴 줄을 만들고 있다. 이경산은 해치 위에서
몸을 틀어 다른 쪽으로 망원경의 조준을 맞추었다.
그쪽에서도 대여섯 개의 줄이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그가 보고
있는 사이에도 개미집에서 나온 개미들처럼 구멍 속에서 기어나온
검은 점들은 위쪽으로 새로운 줄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헬멧
의 스위치를 켰다.
"각 연대 들어라. 엔진을 끄고 현위치에서 대기할 것."
전방의 연대들은 능선 위의 상황을 그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것
이다. 그는 허리에 찬 무전기를 꺼내어 스위치를 켰다. 사령부와의
직통 무전기였다.
"사령부, 여기는 15전차 사단."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가 무전을 받는다.
"여기는 사령부 말하라."
"난 이경산 중장이다. 참모장을 바러라 "
숨을 두어 번 뱉고 나자 무전기가 울렸다.
"참모장이오."
"참모장 동지, 남조선 군은 퇴각합니다. "
"당연하지. 어쨌든 피 한방을 흘리지 않은 승리요."
"질서 있게 능선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참모장 동지. 시간이 왜 걸리겠습니다. "
"기다리시오. 서두를 것 없으니까."
"시간이 길수록 저희들 전리품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까?"
"일본군은 진지에 여단의 1개월분 식량과 기름을 남겨 놓는다고 했소.
천천히 가도 접수할 수 있을 거요."
212 밤의 대통령 제3부 -템
이경산은 가슴이 뛰었다. 식량과 기름보다 더 기쁜 전리품은 없다.
이제 전사들과 탱크는 배를 채우게 되었다.
"아마 한국군도 식량은 두고 갔을 거요, 사단장. 이건 추측이지
만. "
그에게는 강백진의 말소리도 조금 들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
전기의 스위치를 끈 이경산은 다시 망원경을 들어 능선을 바라보았
다. 이제 능선은 새까맣게 병사들로 덮여 있었다. 능선의 윗부분으로
대여섯 대의 헬리콥터가 날아오더니 내려앉았다. 이제 본격적인 후
퇴가 시작되는 것이다.
다케다는 해치에 서서 남쪽으로 진군해 가는 전차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제78기라 여단은 지난천의 공격에서 21대의 전차가 파손되
었지만 아직도 백여 대의 74식 전차가 위용을 자랑하듯 뒤를 따르고
있다. 그는 허리를 숙여 안에 있는 전차장으로부터 무전기를 받아 들
었다. 사령부에서의 연락이다.
"다케다 소장이오."
"다케다 소장, 나, 가도야."
"아, 사령관님 . 지금 철수중입니다. "
엔진의 소음이 컸으므로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군사 분계선 부근을 넘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
"한국군이 보이나?"
다케다는 몸을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전차태가 따르고 있어서 215고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령관님."
재편되는 연합 전선 213
"그들도 철수하고 있어, 다케다 "
"그렇습니까? 잘 되었군요."
"사단장이 고집을 피워서 사령부에서 패 애를 먹었어 "
다궤다가 흰 이를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것은 쓸데없는
만용이다. 보병 사단만으로는 전차 사단과 그 뒤를 따르는 기계화 보
병 사단을 당해내지 못한다
"기름과 식량은 남겨 두었지?"
"예, 사령관님. 고스란히 남겨 두었습니다. "
"그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야."
가토의 목소리가 밝았으므로 다케다의 기분도 가벼워졌다. 무전기
를 내려놓은 다케다는 해치에 버티고 서서 앞쪽을 바라보았다.
한반도의 원정군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그가 세운 첫째 목표는 기
값 여단의 실전 참여로써 전투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이었고, 둘째는
일본군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었다. 솔직히 한반도가 삼국으로 나누
어지건 육국으로 되건 그것은 그에게는 관심 밖의 일인 것이다.
2월 14일 오후 3시 5e랄의 주석궁.
전화기를 귀에 댄 김정일이 상석에 앉아 있고 그의 좌우에 앉아
있는 것은 백학림과 김강환이다.
"놀랍습니다. 하시모토 수상님 . 일본이 이을설과 남조선의 전쟁을
막았다니 말입니다. 한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
김정일이 말하자 통역이 열심히 말하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 왔
다 귀에 리시버를 끼고 있던 백학림과 김강환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는 하시모토가 말글 차례여서 그의 느린 일본말이 흘러나왔고
214 밤의 대통령 제3부 -llf
곧 통역이 된다.
"우리가 한반도에 자위대를 파견한 것도 전쟁을 막으려는 의도였
고 지난번의 기갑 여단 진출도 수령께서도 아시다시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을딘 씨와 최광 씨의 협조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한반도의 남북 전쟁은 보류되었지 않습니까?"
"결론은 그렇게 되었군요, 수상."
"그래서 내일의 평화 조약에서도 우리 일간은 남북한 양국의 조정
자로서 힘껏 도하 드릴 생각입니다. "
"고맙습니다, 수상."
"일본이 남한과 방위 동맹을 맺고 일본군을 파견한 목적도 전쟁을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일본은 남북한 양국과 예전처럼 균형
있는 관계를 맺고 싶은 겁니다, 수령."
"그렇습니까?"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일본이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
"동지들과 상의해서 연락 드리지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
김정일이 전화기를 내려놓자 백학림과 깅강환도 리시버를 벗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하시모토÷가 전화를 해온 것
은 뜻밖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백학림이 머리를 들었다. 그는 이을설, 최광 등과 같이 노
장 빨치산 세대로 일본군에 대항하여 독립 투쟁을 한 사람이다.
재편되는 연합 전선 215
"남조선 군이 몇 명 안되는 일본군에게 휘둘리는 모양입니다, 수령동지 ."
잠지:코 그를 바라보는 김정일을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이대로 두면 남조선은 일본의 꼭두각시가 되겠습니다. 일본은 우
리와 이을설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남조선을 압박할테니까요."
"구한말에도 비슷했지요. 이런 무력은 없었지만 우유부단한 왕과
러시아, 중쿡, 일본을 등에 업은 매국노들. 결국 일본은 몇만 명 안되
는 군대를 한반도에 진주시켜 나라를 빼앗았지요.
지금 남조선이 그 꼴이구만."
김강환이 헛기침을 하였지만 노장의 눈치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을설이는 일본의 속셈을 알고 있는 놈이라 어쩌면 일본 기잡
여단 앞으로 전차 사단을 들이대고 시위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놈들은 쓸데없는 손해를 보지는 않을테니 까요."
"그렇다면 우리도 당분간은 일본놈들을 이용해야겠구만."
김정일의 말에 백학링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야 됩니다. 하시모토가 우리에게 저러는 것은 남조선이 일단
은 우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우리가 우세했을 때는 놈들은 남
조선에 군대를 파견해서 륜형을 맞추었지요. 이제 놈들은 우리를 도
울 겁니다, 수령 동지."
2월 14일 오후 4시, 인민군 제 1군단 작전 지역만 강원도 고성 근
처의 바닷가.
216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구팔만 소좌는 구형 무전기를 바위 위로 내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
을 애써 참으며 귀에 대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부관과 무전병이 초
조한 표정으로 그와 바다 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서 있다.
"이 쌍놈의."
마침내 구팔만이 버럭 고함을 지르며 무전기를 무전병에게 던지듯
이 건네 주었다. 무전기가 불통인 것은 아니다. 소련제 TR -426 송
수신기는 고정간의 통신 거리가 150킬로미터였지만 흐린 날이나 전
파 방해를 받았을 때는 원산 아래쪽에 있는 동해 함대 사령부와의 교
신도 안될 때가 많다 그리고 지금이 그런 경우였다. 하필이면 위급
한 상황이 되었을 때 또 불통이 된 것이'다.
"포대장 동지, 일간 전투함입니다 미국은 아닙니다. "
아래쪽에 있던 부하 한 명이 커다랗게 소리치자 그는 앞에 놓인
망원경에 눈을 대었다. 이제 배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네 척의 함대
로 날카로운 선수 양쪽으로 횐 물결이 갈라지는 것도 보인다. 그리고
앞장선 것은 유도 구축함이 틀림없었다.
"동무! 함대 사령부를 날래 바꾸라우!"
그가 다시 악을 쌨다.
"그게 안되면 회양의 시령부로 해!"
지시를 받아야지 무조건 미사일을 쏘아 제치고는 몰사 죽음을 할
수는 없다. 앞장선 두 척은 일본 해군의 대형 전투함이었다. 5천 톤
이 럼는 미사일 함대이다. 일본 해군은 대형 전투함 위주의 전단이어
서 잠수함이나 어뢰정, 상룩정 둥 경비함과 해안 전투함으로 구성된
북한 해군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구팔만은 어금니를 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앞바다를 지나던 소
재편되는 연합 전선 217
주급 유도탄정들은 오늘따라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스틱스 미사
일 4기를 장착한 그놈들이 라도 앞바다에 있었다면 마음이 조금은 놓
였을 것이다.
"아직도 안돼?"
그가 버럭 소리를 치자 무전병은 대답이 없다. 그도 대책이 없어
답답한 모양이었다.
"전투 준비!"
그가 부관에게 말하자 부관이 복창을 하며 몸을 돌렸다. 곧 낮고
짧은 경보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래쪽에서 병사들이 제각기
위치로 뛰어 들어갔고 금방 주위는 조용해지면서 사이렌 소리도 멈
추었다.
30킬로미터 앞해상을 항진하던 네 척의 일본 군함이 이쪽으로 다
가오기 시작한 것은 20분 전이었다. 레이더에 잡힌 네 척의 함대가
해안으로 다가오자 포대는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일본과 한국 해군은 서너 척씩 또는 대여섯 척씩 공해상을 시위하
듯 떠다녔지만 이제까지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동해 함대 사
령부가 이을설의 세력과 합류된 것과 함께 동해안이 거의 이을설의
세력권에 들게 되자 구팔만의 포대도 자연히 동군이 되었다.
그렇게 되고 나니 남조선과 일본의 연합군은 우군이 된 분위기였
고 그들 함대도 스쳐 지나가는 북한의 소형 함대를 소 닭 보듯이 하
기는 했지만 적의를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구팔만은 제1군단이 휴전선 아래로 밀고
내려간다는 것을 알았고 함대 사령부로부터도 한일 연합군을 특별
경계 하라는 지시도 받았던 터였다.
218 밤의 대통령 제3부 -lg
아래쪽의 미사일 발사 장치 부근에서 어지럽게 발사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바닷가의 암반 위에 시멘트를 입혀 만든 포대는
단단하기는 했지만 바다에서 보면 훤히 노출되어 있는 것이 흠이다.
그의 포대가 보유하고 있는 실크됨 미사일은 모두 10기였는데 발
사 가능한 것은 1기였다. 실크웜은 사정 거리가 95킬로미터였으므로
10킬로미터 전방의 군함들은 사정 거리 안이다.
그러나 이쪽에서 미사일이 날아가자마자 일본 군함에서 수십 발의
미사일이 날아을 것이고 그것으로 끝장날 것이다. 아마 바다 위에서
격추되지 않은 미사일이 운 좋게 일본 군함에 맞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이쪽은 가루가 되어 버릴지도 몰랐다.
그때 무전병이 펄쩍 뛰어오르듯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포대장 동지, 회양의 군단 시령부입니다. 참모장 동지가 나왔습니다. "
그 시간에 이영만 대통령은 연합군 사령부의 사령관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가 청와대를 떠나 과천의 연합군 사령부에 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열해 선 의장병도, 대통령을 위한 공식 행
사도 없는 썰렁한 분위기였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사령부의 첫 방문이 말해 주다시피 이제 그는 북쪽의 위협에서 벗
어났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했는데, 그것은 어느 정
도 사실이었다. 내일 오후에는 북한의 대표단이 서울에서 평화 조약
에 서명을 할 것이고 한 시간 전에 북동의 새로운 적인 이을설은 배
신감으로 날뛰면서 금방이라도 남쪽으로 내려을 것처럼 하더니 215
고지에 쌓아 놓은 식량과 기름을 받아 안고 조용해졌다. 그가 만족할
재편되는 연합 전선 219
만도 한 성징이었다.
그가 테이블의 상석에 앉자 연합사령관인 이영규가 옆자리에 앉
았고 유진영, 채일주가 따라 앉았다. 일본측은 가토와 이케다가 사령
관설로 들어와 있었는데 또 한 사람의 장군이 있다. 그는 청와대에서
부터 대통령을 따라온 주한 미군 사령관인 월슨 대장이었다.
대통령이 밝은 표정으로 이영규를 바라보았다.
"2사단 장병들에게 포상을 해주고 싶은데, 사령관이 생각해 보시
오."
"예, 각하."
이영규가 앉은 채로 머리를 조금 숙였다.
"제가 조치하겠습니다. "
"그리고 그쪽도."
대통령이 가토 중장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그는 이번엔 일본말을 썼다.
"78기갑 여단이 처음부터 혁혁한 공을 세웠어요. 여단장에게 훈장을 주고 싶소."
"영광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각하."
가토가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연락이 늦게 되어서 한일 양국군의 철수에 다소 차질이 있었습니다,각하."
대통령이 운는 얼굴로 손을 저었다.
"이야기를 들었소. 하지만 모두 잘 되라고 한 일이니 그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맙시다. "
"감사합니다, 각하."
220 밤의 대통령 제3부 -lfl
"내가 이곳에 온 이윤는 양국군의 결속과 사기 진작에 도움을 주
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오."
모두 잠자코 대통령의 얼굴을 딴라보았다. 215고지 철수 문제로
양군 지휘부의 충돌을 듣고 난 그가 격려하고 무마시키기 위해서 찾
아왔다는 말이었다.
"자, 그럼 이왕 이곳에 왔으니 내일 평화 조약에 들어갈 군사적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
대통령의 시선이 한국군과 일본군 지휘부의 얼굴을 훌다가 월슨에
게서 멈추었다.
"그것에 대해서 월슨 대장도 주한 미군 사령관으로서 하실 말씀이
있을 것이오, 여러분."
월슨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는데 그를 바라보는 한일 양군 지휘부
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모두 처신에 있어서는 백전 노장이었기
때문이다.
유진영은 대통령의 다음 말을 기다리면서 소리 죽여 숨을 천천히
뱉어내었다.
이영만 대통령은 이제 일본군을 견제하려고 미군을 끌어들이고 있
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기득권을 가진 일본군이 견제를 당할지,
아직도 영향력이 막강한 미국이 밀려 나갈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붉은 휘장이 늘어진 접견실의 중앙에 앉은 장자량 주석은 찻잔을
내려놓고 진위 수상을 바라보았다.
진한 향냄새가 거대한 접견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항이 공기를
재편되는 연합 전선 221
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장자량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수상, 김정일이 이영만과 평화 조약을 맺을 모양인데.
양국이 불가침 선언을 하고, 또 뭐라더라‥‥‥‥
"저도 들었습니다. 거 어린애 장난 같은 수작들이지요
(3)
진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조그만 땅덩이가 한시도 조용해질 때가 없군요. 부』1러운 줄
도 모르는 족속입니다. "
"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반도인의 운명이야.지리적인 문제도 있어요. "
"주석, 이대로 내버려두어도 되겠습니까?
일본은 이을설에게 지금 물자를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
"글쎄, 상무 위원들은 뭐라고 합디까?"
"양광 같은 노인은 그거야 잘된 일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
"그 영감은 아직도 이을설을 옛날 공산군 시절의 부하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군 "
"방간개는 연길에 있는 제8군을 이을설에게 보내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만."
그러자 장자량이 머리를 저었다.
"김정일이 오해할 소지가 있어요. 8군을 지원군으로 여길 게요."
"그래서 통화에 있는제16군을 같이 김정일에게로보내자고하더
군요.그러면 공평하지 않느냐고."
"방간개는 아직 젊어. 나이 예순이 넘었으면 조금 진중해져야지."
그는 허리를 펴고 진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등소평 사후에 장자량과 진위는 권력을 나누어 갖게 되었지만 그
222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래도 군 상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자량의 권한이 강한 편이었다.
장자량은 지방의 행정은 각 성에서 자치하도록 맡겨 둔 반면에 군
의 지휘부는 하나씩 자신의 세력으로 포섭해 나아갔다. 이제 그의 권
력 기반이 굳혀지고 있었다. 행정의 수반격인 진위 또한 영리한 사내
였다. 재빠르게 권력이 흐름을 감지한 그는 장자량의 수족이 되어 가
는 중이다.
장지량이 입을 열었다.
"이제 곧 한반도에서 미국과 일본 간의 세력 다툼이 일어날 거요.
일본의 세력 확장을 내버려 둘 미국이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일본군이 진주해 있는 마당이라 이제는 한반도에 적극
개입할 것입니다. "
"남한이나 북한, 이을설도 제각기 머리들을 쓰겠지.
모두 미일 양국과 관계를 맺는 것이 자국의 존속을 보장받는 것으로 느낄테니까. "
"그렇지요. 우선 받아들이고 보겠군요."
"약소국들의 전형적인 국가 보존 수단이지."
진위가 머리를 끄덕이자 장자량이 말을 이었다. 웃음 띤 얼굴이다.
"그들은 제각기 자신의 영토에서 미일 간의 세력 균형을 맞추도록
애를 쓸 거요. 균형이 깨어지면 나라가 흔들리니까 미일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력 투구를 할 것이고."
"볼만하겠습니다, 주석 ,"
"그 피투성이의 싸움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라든지, 아니면 한쪽이
주도권을 잡았을 때 우리가 개입하여도 늦지 않소. 구한말의 러, 일,
중의 관계를 되풀이하게 될텐데 상대와 상황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
재편되는 연합 전선 223
at . "
머리를 끄덕인 진위가 탁자 위에 내려놓은 서류를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에 자신이 주재한 정치국 상무 위원회의 회의 내용이 적힌 서류였다.
"주석, 아침의 회의 결과는‥‥‥‥
진위가 입을 열자 장자량이 손을 저었다.
"알고 있소. 당분간 두고 보기로 했다는 것. 내 생각도 같소."
상무 위원 내의 그의 측근인 화인봉이나 이봉 등이 나서서 맺은 결과였다.
장자량이 다시 찻잔을 들며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내버려 두고 보면 가관이 될 것이오. 동, 서, 남의 세 나라로 나누어진 반도에
일본과 미국이 제각기 세력을 뻗치려고 들 것이고,
이것은 얼른 결판이 나지 않는 긴 싸움이 될 것이오."
이쪽에는 하등 피해가 없는 일이었으므로 진위도 의자에 등을 붙이고는 편한 자세가 되었다.
장자량이 말을 이었다
"그 긴 싸움에 지치고 익속해치면 아마 남쪽이 또 세 나라로 쪼개질 가능성도 있어요.
쪽은 동,중,서라고 할까?"
"그러면 모두 다섯 조각입니까?"
"글쎄, 그런가? 하도 조각이 많아서."
그들은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일본 외무성의 장관실 .
무라야마 외상은 앞자리에 앉아 있는 혼다 국장의 잔에 엽차를 따라 주었다.
혼다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것이지만 그들 사이에 그런
224 밤의 대통령 제3부 -111
일은 자주 있었고 요즘은 이것저것 따질 상황도 아니다.
"이영만이 연합군 사령부에 월슨을 데리고 갔어."
혼다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병신 같은 월슨은 얼씨구나 하고 따라나섰고."
그러자 무라야마가 입술로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영만의 스타일로는.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야."
"하지만 너무 속이 들여다보인단 말이야. 너무 서둘러, 그자는."
"전형적인 조센징이지. 자네도 조선 말기의 역사를 찬찬히 읽어
보게나. 요즘 사태와 비슷한 일들이 많을테니까. "
무라야마가 소파에 등을 기대고는 느긋한 얼굴을 하자 혼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앞으로 우리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주해 있을테니까 그런 상황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지."
"그런데 혼다, 이을설에게 보낼 사람은 결정해 놓았나?"
"결정했어 이을설과 친분이 있는조총련계 거물이야.작년에 김정일과 사이가 틀어져서
은둔하고 있는 파칭코 업계의 대부지, 야마다라고. 한국 이름은 박 아무개 "
"그자는 나도 알아. 야쿠자의 자금줄이기도 하지, 아마?"
혼다가 머리를 」1덕이며 찻잔을 쥐었다.
"야마다는 자친하고 있어 원산에 일본 해군 기지를 두는 것과 육상 자위대 2개 사단쯤을
동부 지역에 받아들이게 할 자신이 있다는 거야."
"이을설로서도 일본군의 주둔이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이 될테니까 그럴 만도 하지.
아마 이영만보다도 더 절실할지도 몰라 "
재편되는 연합 전선 225
"그리고 야마다는 이을설의 동부 지역이 한반도의 삼국 중에서 발
전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거야. 관광 자원과 노동력, 그것에다 일본
식의 기업 경영을 합하면 "
그리고는 혼다가 자리를 고쳐 앉았다.
"무라야마, 문제는 미국이야. 클린트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우리들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 놈들을 경계해야 돼 "
"그자들은 전에도 우리가 음식 다 만들어 놓았을 때 간섭하다가 꽁무니를 빼었지.
내가 그들과 오랫동안 상대한.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강하게 부딪친다는 거야.
그렇게 했다가 실속 없는 일이라는 판단이 서면 쉽게 그 일에서 손을 떼지."
"이영만이 미국을 끌어들이고 있어, 우리의 견제 세력으로."
그러자 무라야마가 코웃음을 쳤다.
"이제 일한 상위 조약이 한미 방위 조약좌다우선이야.일한 방위
조약에 의해서 일본군이 진주하면서 미군은 자동적으로 제3의 세력으로 밀려났다구.
미군 기지의 사용권도 이제 우리에게 있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미국은
이번 한반도의 사태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거지.
그것은 세계가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것이 중요해 "
두 척의 수송선이 이쪽에 측면을 보이면서 나란히 멈추어 섰을 때
부관이 구팔만에게로 다가왔다.
"포대장 동지, 상륙정에서 10분 후에 도착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
"다섯 척 맞나?"
"예, 포대장 동지 "
226 밤의 대통령 제3부 -lH
구팔만은 수송선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일본 해군들을 바라보았다.
거리는 2백 미터 정도여서 망원경을 쓰지 않아도 한눈에 보인다.
전투함 두 척도 수송선 뒤쪽의 바다에 가지런히 정박해 있었다.
아래쪽에서 병사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제 1군단 사령부에서 보내 온
수십 대의 트럭이 백사장에서 하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저기 보입니다, 포대장 동지."
부관이 손을 들어 북쪽의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검은 점같이 보이지만 해군의 상록정이었다.
그러자 아래쪽에서 무전병이 올라왔다.
무거운 무전기를 등에 메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활기가 있다.
"포대장 동지, 사령부의 참모장 동지입니다. "
구팔만은 송수화기를 받아 쥐었다.
"포대장입니다, 참모장 동지."
"화물은 내리고 있나?"
강백진의 목소리도 활기에 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상륙정이 도착했습니다, 포대장 동지."
"쌀 1천 톤이 일차로 도착한 것이야.
앞으로 화물은 그곳으로 운반될테니까 동무의 책임이 크다. "
"예, 참모장 동지."
"일주일 후에는 3천 톤의 각종 화물이 도착할 것이다.
일개 중대의 지원 병력을 보낼테니 하역장 관리를 책임지도록."
"예, 참모장 동지."
구팔만은 송수화기를 건네 주고는 앞쪽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상
재편되는 연합 전선 227
특정은 곧장 수송선으로 다가가고 있었고 수송선의 크레인에는 이미
집채만한 덩어리의 하물이 매달려 있었다.
"포대장 동지, 51사단은 남조선군이 남겨 놓고 간 식량을 서른 트
럭분이나 수거했다고 할니다. "
엮에 서 있던 부관이 말했다.
"15전차 사단은 일본군이 남긴 기름과 식량을 가졌다는데 사단의
두 달분 공급량이랍니다 "
"내려가 보자우."
구팔만이 권총 혁띠를 바로 잡으며 말했다. 일본군이 값자기 왜
식량과 기름을 이쪽으로 날라다 주는지는 말단 지휘관인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고 알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힘이
나는 일이었으므로 그는 부관과 함께 백사장을 향해 시멘트 계단을
기운차게 내려갔다
이을설은 잡곡이 3할쯤 섞인 밥을 떠 입에 넣었다. 식탁 위에 놓인
반찬은 무말랭이에 김치, 고등어 한 토막과 배추국이다.
그의 앞에 앉아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 사내는 함흥의 7군단 사
령관인 송연철 대장이었다. 그는 얼굴이 주름살 투성이의 예순이 넘
은 군인이었지만 이을설보다는 10년이나 아래였다.
"다음 수송선이 오면 그 반의 물량은 직접 함흥으로 보내도록 하
겠소. 아마 쌀이 2천 톤에다 다른 양곡이 천 톤쯤 될 거야."
입 안의 것을 삼키고서 이을설이 말하자 송연철이 크게 머리를 끄
덕였다.
"그게 낫습니다,총참모장 동지 고성에서 육로로 올라오면 오히
228 밤의 대통령 제3부 -쁘
려 시간이 더 먹힙니다. "
그는 이번에 회양에서 3백 톤의 쌀을 가지고 함흥으로 올라갈 것
이다. 이제까지 자신의 참모장이었던 강백진을 이을설에게 보내고는
움직이지 않았던 송연철이다. 그러나 그는 저녁 무렵이 되자 회양으
로 오겠다는 전문을 치고는 헬리콥터로 날아왔다.
이을설은 자신의 앞에서 승전 인사를 늘어놓는 송연철이 무엇 때
문에 왔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평양에서의 집중 지원이 끊겨 각 부대 단위로 저장하고 있던 식량
이 바닥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215고지에서 수백 톤의 식량을 수거
했다는 소문을 그가 듣지 못했을 리가 없고, 떼맞추어 고성 앞바다에
도착한 일본 수송선에 대한 정보도 모두 그의 귀에 들어갔을 터였다.
"동무가 함흥에서 북부 지역의 물자 배분을 책임져 줘야 되겠소.
앞으로도 계속 공급이 될테니까."
이을설의 말에 그는 서둘러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배추국이 입가
로 조금 흘러내렸다.
"책임지겠습니다, 총참모장 동지 ."
"전사들의 식량 배급을 두 배로 늘리시오. 잡곡은 1할만 섞어도
충분합니다. "
그러자 송연철이 자신의 깨끗이 비워진 밥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잡곡이 1할만섞인 식사는 이제까지 부하들에게 먹여 본 적이 없다.
목이 메인 그가 잠자코 있었으므로 이을설도 가슴이 벅차 올라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송연철이 헛기침을 했다.
"총참모장 동지, 만일에 말입니다만, 일주일 후에 함홍에 배가 들
재편되는 연합 전선 229
어오면 제 10군단 지역의 일부 부대에 몇 트럭쯤 양곡을 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10군단은 자강도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후방 부대이다. 자강
도의 중심 도시인 강계에는 미사일 공장이 있어서 주변의 몇몇 부대
는 대우와 급식이 좋았지만 나머지 부대들의 사정은 형편없었다.
이을설이 머리를 』I덕였다.
"좋은 생각이오. 동무가 알아서 하시오."
"7꾸타단 같으면 우리 쪽으로 흡수시킬 수도 있습니다,총참모장
동지 ."
제7딘라단은 함경남도의 국경 근처에 있는 부대로 지금 지휘관들
이 동서 양쪽으로 나누어져서 격렬한 내분에 휘말려 있다. 이런 상황
에서 송연철의 양곡 지급은 그들에게 어떤 기폭제 역할을 할 수도 있
었다.
식탁에서 일어난 그들이 복도를 걸어 사령관실로 들어서자 기다리
고 있던 강백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고 드릴 일이 있습니다. "
"말하게 "
그러자 굳은 얼굴의 강백진이 입을 열었다.
"무력 부장 동지께서 프랑스 국경 근처의 시골에서 돌아가셨습니
다. "
"숲속의 헛간에서 발견되었는데 사인은 총상입니다. "
"김원국이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을설이 묻자 강백진이 머리를 저었다.
230 밤의 대통령 제3부 -lH
"행방불명입니다, 총참모장 동지."
"1☞킬로쯤 떨어진 들판의 저택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흔적이 있었
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성산 대좌의 시체도 발견되었습니다. "
"최성산이?"
"예, 지난번 취리히에서 실종되었던 호위총국 소속의 해외 공작반
원입니다. "
"도대체 어느 놈이."
그렇게 말한 것은 송연철이다. 그러나 그는 이을설의 얼굴을 훔쳐
보고는 곧 입을 닫았다. 나무껍질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있던 이을설
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두 눈은 크게 뜨고 있었지만 초점은 없다.
"부장 동지는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그렇지 않나?"
"외국의 헛간에서 죽다니,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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