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13. 거인 탄생(1)

오늘의 쉼터 2014. 10. 9. 09:49

713. 거인 탄생(1)

 

 

(2008)거인 탄생-1

 

 

 

신영선의 아파트는 연립주택 2층이었는데 좁고 베란다 앞이 옆쪽 건물 벽이어서

 

답답했지만 깔끔했다.

 

마치 신영선의 분위기 같았다. 깨끗한 벽에는 시계도 걸려 있지 않은데다

 

손바닥만한 거실에는 소파도 없다.

 

돗자리 방석이 두개 나란히 놓여 있을 뿐이다.

 

냉장고 하나에 TV, 다만 한쪽 벽에 천장까지 닿은 책장이 있고 책이 가득 꽂혀 있다.

 

벽에 등을 붙이고 책상다리로 앉은 조철봉 앞에 보리차가 든 잔을 내려놓으며 신영선이 웃는다.

“어때요? 분위기가?”

“당신 같은데.”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한다.

 

맞다.

아직 신영선이 어떤 여자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겉 분위기와 집 분위기는 비슷했다.

군더더기 없고, 깔끔, 해박한 지식 그리고 과감한 처신. 왜 ‘과감’이란 수사를 앞에 붙였는고 하니

 

조철봉을 집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과감한 처신 아닌가?

 

조철봉에게는 다 주겠다는 표시나 같다.

 

보리차를 한모금 삼켰을 때 신영선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벽에 등을 붙이고 나란히 앉는다.

 

그러고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켜면서 한마디 한다.

“뉴스는 봐야죠.”

그 순간 화면에 처음 보는 사내의 얼굴이 비치더니 열심히 말한다.

“남북 관계는 앞으로 급진전될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에 대비한 준비를 지금부터 철저히 해야 됩니다.”

아래쪽 자막에 대한대학 교수 겸 통일연구원자문위원이라고 적혀 있다.

 

이름은 김태동. 다시 사내가 말을 이으려고 할 때 신영선이 리모컨을 눌러 화면을 껐다.

“조의원님은 당분간 언론에 노출되지 않으시는 편이 나아요.”

신영선이 두 다리를 오므리고 무릎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면서 말한다.

 

나란히 놓인 두발의 가지런한 발가락이 눈에 띄었다.

 

맨발이었고 자연 그대로의 발톱이 보기 좋게 펼쳐져 있다.

 

발에서 시선을 뗀 조철봉이 머리를 들고 신영선을 보았다.

“그래서 날 집으로 불러들인 거요?”

“맞아요.”

눈웃음을 친 신영선이 그대로 조철봉의 시선을 맞받는다.

“조의원님을 아끼고 싶었죠.”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어색해.”

정색한 조철봉이 똑바로 신영선을 본다.

“이 집에 남자 초대한 건 내가 처음이지? 그렇지 않아?”

조철봉이 자연스럽게 반말로 묻자 신영선이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처음이야.”

시선을 그대로 받은 채 신영선도 말을 놓는다.

 

조철봉이 다시 묻는다.

“내 이용가치가 많을 거 같어?”

“무한대야.”

이제는 신영선도 정색한다.

 

눈을 서너번 깜박였지만 여전히 시선을 준 채 신영선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아끼고 싶었어. 낭비되는 걸 막고 싶었어.”

“내 로비스트가 될 거야?”

“아니.”

머리를 저은 신영선의 얼굴에 다시 희미한 웃음기가 떠올랐다.

“당분간은 내가 조언자가 될게. 매니저라고 해도 돼.”

“돈 안 받고?”

“지금은 돈 필요 없어.”

“그럼.”

길게 숨을 뱉고난 조철봉이 신영선을 똑바로 본다.

“우리 관계는? 내가 지금 뜨거워져 있는 거 누님은 알지?” 

 

(2009)거인 탄생-2

 

 

“참을 수 없어?”

바로 신영선이 그렇게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잠자코 시선만 주었다.

 

참을 수 없다고 한다면 신영선은 승낙해줄 것이었다.

 

눈에 그렇게 쓰여 있다.

 

신영선의 진갈색 눈동자 안에 박혀진 제 얼굴을 보면서 조철봉은 고민했다.

 

참겠다고 하는 것도 위선이다.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신영선도 그렇게는 물었지만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때 조철봉은 제 입에서 뿜어져 나온 제 목소리를 듣는다.

 

인간은 머리가 결정을 하기 전에 먼저 말이나 손발이 움직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참지 뭐.”

그러고는 조철봉이 심호흡을 한다.

“누님한테 내가 인내심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은가봐.

 

말이 먼저 그렇게 튀어나온 걸 보니까 말야.”

“섹스는 즐기기 위해서 해온 거야?”

신영선이 진지하게 물었기 때문에 조철봉도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냐. 난 그 반대야. 여자가 절정에 오를 때까지 참고 참고 또 참는 거야.

 

그러고 나서 여자가 까무러쳤을 때 내가 뭔가 이루었구나.

 

또는 저 여자가 나로 인해서 홍콩에 갔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거지.

 

그것으로 만족하는 거야.”

신영선은 시선만 주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진다.

“내 섹스는 인내의 연속이라고. 여자가 하룻밤에 여덟 번 쌀 때까지 계속 참은 적이 있어.

 

그게 내 기록이야.”

“……”

“의사 친구가 있어서 내 증세를 물어보았더니

 

그 망할 자식은 내 말을 믿지를 않았어.

 

어떤 미친놈이 비싸게 돈 들여서 여자 꼬셔갖고 저는 안 싸고

 

여자만 홍콩 가게 만들어 놓느냐는 거지.”

“……”

“하지만.”

신영선에게 시선을 준 채 조철봉이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한다.

“그게 사실인 걸 어떡해?

 

난 여자가 만족해야 비로소 내 가치를 느껴.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까?”

했지만 신영선이 가만있었으므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난 가끔 혼자서 딸딸이를 쳐. 딸딸이가 뭔지 알지?”

신영선이 가만있는 것도 안다는 표시일 것이다.

 

한 모금 보리차를 삼킨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딸딸이 칠 때는 30초면 싸. 하지만 여자하고 할 때는 애국가를 거꾸로 4절까지

 

10번 부를 때까지도 안 싸지. 그거 시간 되게 걸린다구.

 

거꾸로 부르면 속도가 느려져서 말야.

 

내 최고 기록은 한번 넣고 두 시간 반이었지 아마?

 

더 길게 할 수 있었는데, 여자가 기절을 해 버려서.”

“불쌍해.”

불쑥 신영선이 말했기 때문에 조철봉은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눈썹을 좁히고 신영선을 본다.

“뭐라고 했지?”

“불쌍하다고 했어.”

“응? 내가 왜?”

 

그래놓고 조철봉이 피식 웃었다.

“그런 얘기 처음 듣는다.”

“이야기 듣다가 문득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이유는 나도 몰라.”

그러더니 신영선이 손을 조철봉의 무릎 위에 놓았다.

“한번 할래?”

똑바로 시선을 준 신영선이 마치 고스톱 한번 치자는 것처럼 묻는다.

 

조철봉은 가만있었고 신영선이 다시 말했다.

“나하고는 그냥 싸봐. 참지 말고 30초 안에 싸도 돼. 그냥 내뿜어 보라구.”

이것도 마치 그냥 고 하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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