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존경을받다(12)
(2006)존경을받다-23
납북자와 국군포로 827명이 송환되었을 때 한국은 떠들썩했다.
TV 방송은 모두 특집으로 827명이 평양을 출발할 때부터 방송을 했는데
3사를 합친 최대 시청률은 한때 95%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TV 100대 중 95대가 송환 장면을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송환 장면은 세계 각국의 TV 화면으로도 생중계 되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군포로 507명, 납북자 320명이다.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아나운서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렸으며
울먹이는 자도 있었다.
열정에 북받쳤기 때문일 것이다.
조철봉은 장한평 아파트단지 뒤쪽의 허름한 식당에 앉아 있었는데
눈에는 짙은색 선글라스를 끼었다.
거기에 화려한 무늬의 남방셔츠 위에다 밝은색 양복을 걸쳐서 근처에
여러 개 모여 있는 성인 나이트의 단골 제비 같은 분위기였다.
식당 안에는 오전 11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국밥 안주에 소주를 시켜놓고
TV를 보는 군상들이 10여명이나 되었다.
그때 아나운서가 소리쳐 말한다.
중년 사내가 마이크를 쥐려고 하자 서둘러 뺏기지 않으려는 듯이 팔을 움츠렸다.
곧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모셔보겠습니다.”
리모컨이 누구 손에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결승전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분위기로 소리쳤다.
식당 안의 손님들은 버스 대열을 본다.
조철봉도 소주잔을 들고 시선을 들었다.
그때 식당 안으로 여자가 들어섰다.
눈에 띄는 미인, 그러나 수수한 원피스 차림에 손에는 시장 바구니를 들었고
샌들 차림이다. 여자에게 잠깐 식당 안의 시선이 모였다가 여자가 조철봉 앞으로
다가가 앉자 다시 TV로 옮겨진다.
여자가 조철봉의 앞에 놓인 국밥과 소주병을 보더니 벙긋 웃는다.
흰 이가 드러났고 편한 인상이 된다. 신영선이다.
그때 뒤에서 사내 하나가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도 저런 그림에 속아 넘어가는 병신들이 있을까?”
시늉을 하면서 웃는다.
저런 그림에 속아 넘어갈 병신들이 있겠느냐고 하잖아요?” |
(2007)존경을받다-24
좁은 일차선 도로의 좌우는 상가였다.
오가는 행인들이 많았고 고만고만한 점포들이 늘어서서 마치 시장통 같았다.
“이 길 끝에 20평짜리 연립주택이 있어요. 저는 그곳에서 7년째 살아요.”
신영선이 눈으로 앞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곳은 서민층의 주거지여서 ‘타임’ 사장 신영선의 거처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오늘, 하필 국군포로, 납북자 송환이 이루어지는 날,
신영선은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그것도 어제 아침에야 연락을 해왔기 때문에 조철봉은 한동안 고민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BSK방송국과 출연하기로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철봉은 숙고 끝에 결정을 했다.
신영선과 만나기로 한 것이다. BSK는 펄쩍 뛰었고 방송국 사장까지 나서서
만류했지만 조철봉의 혈압 때문에 안정을 취해야만 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
겨우 납득했다.
지금 BSK에서는 조철봉 대신 대타로 기용된 수석부총무 이경필이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떠들고 있을 것이었다.
다른 방송국인 TSU에서 기용한 안상호와 동격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파를 헤치며 걷던 둘은 다시 상점 앞에서 멈췄다.
TV 가게였는데 군중들이 TV를 보려고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조철봉과 신영선은 군중들 틈으로 TV를 보았다.
볼륨을 최대로 높여서 소리가 가게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렇게 송환된 소감을 말해주시지요.”
개성에서 버스 대열이 멈췄을 때 버스로 다가간 리포터가 국군포로로 보이는
노인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말한다.
그러자 노인이 눈을 껌벅이며 묻는다.
“선생은 뉘시오?”
“예, BSK의 리포터 윤명규입니다.”
윤, 명, 규의 이름 사이를 각각 1초는 띄워서 불렀으므로 듣던 군중들 서너명이
혀를 두드리거나 투덜거렸다.
그때 리포터가 다시 묻는다.
“누구 덕분에 이렇게 귀국하게 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다 윤 선생 같은 분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리포터 윤명규가 두 눈을 치켜떴고 목소리는 떨렸다.
“여러분, 국군포로 이아무개씨는 저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이, 저거 돌려!”
누군가가 소리쳤지만 안에서는 못 들었는지 방송이 계속된다.
“오늘 같은 역사적인 날에 리포터인 제가 참가한 것도 영광입니다.”
“아이고 시바, 못 봐주겠네.”
그러고는 사내 하나가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가더니 곧 화면이 바꿔졌다.
이번에는 버스를 멀리서 찍은 장면이 나온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조철봉이 영웅여.
조철봉이 이 자리에 나와야 하는데 어느 방송국에도 나오지 않았구먼.”
그러자 누군가가 말을 받는다.
“맞아. 대신 조철봉 덕분에 옆에 기어들어서 생색을 낸 놈들이 다 제 공인 것처럼
나와서 요설을 뱉고 있어.”
“조철봉 그 사람, 겸손하고 인간이 되었구먼 그래.”
“이번 일만 봐도 그래. 다 제가 해놓고 싹 빠진 것 봐.
그리고 저런 얼뜨기들을 보라고.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 말야.”
마침 화면에는 이경필이 나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말하는 중이었다.
옆에 서 있던 신영선이 옆구리를 찔렀으므로 조철봉은 외면한 채 군중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다시 상가 길을 걸으면서 옆에 붙어선 신영선이 묻는다.
“어때요? 나하고 만난 거 잘하신 거죠?”
조철봉은 조금 전부터 감동하고 있었으므로 머리만 끄덕였다.
다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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