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9)존경을받다(9)
(2000)존경을받다-17 |
정치인들에게 남북관계는 가장 매력 있는 사안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는 언제나 언론에서 크게 취급해주었기 때문에 유혹이 크다.
조국과 국민을 아무리 위한다 해도 보이지 않고 보도되지도 않는
선행(?)을 하는 인간은 많지 않다.
하물며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게는 무리한 요구가 된다.
자잘한 입법안 만들어내려고 노심초사하면서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것보다
남북관계에서 한 방 터뜨리면 당장에 유명인사다.
지금 조철봉이 그 꼴이다.
비례대표 꼴찌로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가 영웅이 되어 있지 않은가?
모두 북한 지도자의 조종을 받았지만 그게 또 무슨 대수인가?
지금은 지도자 동지하고 악수 한번 한 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세상이다.
유세진과 이야기를 마쳤을 때 이대동이 벨을 누르면서 말한다.
“자, 이제는 분위기 좀 바꿉시다.”
조철봉은 이번에 납북자,
국군포로가 입국한 후 대통령의 밀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유세진도 홀가분해졌는지 표정이 밝다.
그때 칸막이 문이 젖혀지더니 마담과 함께 아가씨 셋이 들어선다.
“여어, 많이 기다렸지? 어서 들어와.”
하면서 이대동이 수선을 떠는 것은 아가씨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어색한 분위기를 덮으려는 배려다.
조철봉은 마담의 지시로 옆에 앉는 아가씨를 보았다.
미인이다.
생머리에 화장도 안 했지만 아직도 나무에 달린 복숭아 같다.
다 익은 복숭아,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아가씨가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양현수입니다.”
“응, 반갑다.”
했을 때 마담이 양현수 옆에 앉더니 조철봉에게 인사를 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전 신영선이라고 합니다.”
“신 마담은 날리는 로비스트지.”
하고 이대동이 소개를 한다.
이대동은 이미 파트너의 허리를 감아 안고 있다.
“굵직한 것은 신 마담을 통해서 성사가 된단 말이오,
다만 신 마담의 약점은 남북관계에 약하다는 것이지.”
그리고는 이대동이 흐흐흐 웃었다.
“그래서 조 의원이 오신다고 하니까 반색을 하더구먼.”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면서도 신영선이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본다.
“정말 뵙고 싶었어요. 조 의원님.”
“알고 계시지? 조 의원이 대물이라는 거.”
다시 이대동이 나서자 신영선이 활짝 웃는다.
“말씀 들었어요.”
“아마 299명 의원 중 제일일 걸?”
“영광입니다.”
신영선이 조철봉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이면서 말한다.
“옆에 앉은 미스 양은 직장 다니는데 신분 확실하고 뒤탈 없습니다. 즐겁게 노세요.”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좌중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방을 나간다.
산뜻한 퇴장이다. 그때 유세진이 투덜거렸다.
“조 의원한테만 뒤탈 없다고 해주는군. 그럼 난 뭐야?”
“아따, 실장님은 좀 참으쇼.”
했지만 유세진도 이미 파트너 허리를 끌어안고 있다. 방 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이대동은 배실배실 웃는 파트너의 귀에 대고 속삭였으며 유세진은 파트너의 젖가슴부터
노골적으로 내려다본다.
“저기, 제 할아버지가 중국에 계세요.”
갑자기 양현수가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2001)존경을받다-18
“그럼 조선족 동포란 말인가?”
그래서 조철봉이 불쑥 그렇게 되물었을 때 양현수는 머리를 저었다.
“북한에서 탈출하셨다구요.”
“아아.”
낮게 감탄한 조철봉이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위기는 더 달아올라서 이쪽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양현수가 말을 이었다.
“3년 전에 탈북하셨는데 아직 중국에 계세요.”
“왜 한국으로 모셔오지 못한 거야?”
조철봉이 묻자 양현수는 쓴웃음을 짓는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중국에 탈북자가 몇명이나 되는지 모르시죠?”
“글쎄.”
정색한 조철봉이 양현수를 똑바로 본다.
5000이라는 소문도 있고 10만이 넘는다는 말도 있었다.
누가 그 통계를 내겠는가?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적극적으로 탈북자를 받아들인다면 그 통계가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재국인 중국 정부의 눈치까지 봐야할 한국대사관 입장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때 양현수가 입을 연다.
“할아버지는 6·25때 납북되었는데 제 아버지는 그때 어머니 배속에 계셨죠.
그래서 할아버지는 사진으로만 봬왔다는군요.”
“그랬겠다.”
“아버지하고 큰아버지 두 분이 중국으로 두 번이나 가서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북한에서 결혼한 할머니에다 두 자식부부,
손주 네명까지 데리고 중국으로 탈출하신 거죠.”
“저런.”
입맛을 다신 조철봉을 향해 양현수가 말을 잇는다.
“한국 할머니는 살아계세요. 재혼도 안하시고 세 자식을 잘 키우셨죠.
고모 한분이 또 계시거든요.”
“으음, 그래서.”
“한국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북한에서 재혼한 할머니까지 데리고 나왔다니까
만나지 않겠다고 하세요. 그래서 전화통화도 하지 않으셨어요.”
“이해가 간다.”
“두 아들만 중국에 들어가 할아버지를 만나고 오신 거죠.
고모도 할아버지 만나기 싫다고 하세요.”
“딸은 대개 어머니 편이지.”
“어떡하면 좋죠?”
“응?”
조철봉이 양현수를 보았다.
살다보면 별상황을 다 겪지만 이런 경우는 어느 한쪽 입장만 편들 수가 없는 것이다.
납북되어 끌려간 할아버지는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 되었을 가능성이
한국 할머니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절을 하면서 기다린 할머니 입장이 되면 또 다르지 않겠는가?
길게 숨을 뱉은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그럼 네 할아버지는 중국에서 3년째 기다리고 계시는구만, 그렇지?”
“한국으로 오려면 태국이나 제3국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연로하신데다 식구가 모두 열명이거든요? 움직이기도 힘들어요.”
“그렇겠다.”
“한달에 여기서 큰아버지하고 아버지가 할머니 모르게 1000불씩 보내드리는 걸로
생활하고 계세요.”
“그만해도 다행이다.”
마침내 조철봉이 그렇게 말해버렸다.
그보다 더 기구한 삶도 비일비재한 것이다.
중국인에게 씨받이로 팔려가 일가족의 성적 노리개가 된 경우도 있지 않은가?
그것도, 겨우 일부분만 보도되었을뿐 더 지독한 경우도 많을 것이었다.
조철봉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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