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존경을 받다(7)
(1996)존경을 받다-13
‘사월이 가면’ 노래를 세 번 거꾸로 부르는 동안 김민정은 두 번 쌌다.
따라서 김민정으로서는 극락을 두 번 경험한 셈이었지만 노래 가사를 거꾸로,
그것도 세 번씩이나 부른 조철봉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인고의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래를 거꾸로 부른다고 해도 산몸이 왜 자극을 느끼지 못하겠는가?
그때마다 조철봉은 이를 악물고 집중한다.
그리고 소리쳐 노래 가사를 뱉는 매순간 인간의 희생정신을 체험한다.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방을 구하는 희생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하나는 열락에 들떠 마음껏 몸을 열어 환호하지만 다른 하나는 기를 쓰고
노래를 거꾸로 부른 것이다.
일이 끝났을 때 정신을 수습한 둘은 한정식당을 나왔다.
나오면서 손목시계를 보았더니 밤 10시 반이 되어 있었다.
“내가 데려다 주지.”
주차장 앞에 선 조철봉이 말하자 김민정이 웃음 띤 얼굴로 말한다.
“데려다 주시려면 택시 타고 가요.”
그러더니 덧붙인다.
“우리 집에 들러서 차도 한잔하시고.”
“집에 혼자야? 애는?”
“오늘 어머니하고 제 외삼촌한테 갔어요. 내일이 일요일이거든요.”
“그렇군.”
“가실래요? 집에 보내드릴게요.”
그 소리에 조철봉은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다가온 차를 보내고는 김민정과 택시를 탔다.
김민정의 아파트는 마포에 있었으므로 택시는 20분도 안 되어서 도착했다.
여의도의 대영호텔에서 한강다리만 건너면 되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입구에서 조철봉이 주춤대자 김민정이 풀썩 웃는다.
“우리 아파트는 현관에 경비가 없어요. 그러니까 걱정 말아요.”
과연 현관은 자동감시 장치만 되어 있었는 데다 비었다.
그러나 2층의 김민정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조철봉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음, 아담하군.”
아파트 안에 선 조철봉이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20평형대 아파트는 깨끗했고 잘 정돈되었다.
쓸데없는 치장이 없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조철봉 뒤로 다가온 김민정이 저고리를 벗겨주면서 말한다.
“제 친정어머니하고 애하고 셋이 살아요.
그런데 오늘은 어머니가 애 데리고 오빠 집에 놀러 가신 거죠.”
“잘됐군.”
“아깐 정말 좋았어요.”
그러고는 김민정이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목소리만 밖으로 나온다.
“처음 느꼈다면 믿지 않으실 거죠?”
“믿을게.”
“어쩜 그렇게 잘해요?”
“아깐 보통이었어.”
“그럼 더 좋아질 수도 있단 말이에요?”
“당연하지.”
그때 김민정이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조철봉은 숨을 들이켰다.
김민정은 헐렁한 원피스를 걸쳤는데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가슴의 젖꼭지가 보였고 그 아래쪽 검은 숲도 드러났다.
“으음, 섹시한데.”
조철봉이 감탄하자 김민정이 부끄러운 듯 몸을 비틀었다.
“사고 나서 오늘 처음 입었어요.”
“그 옷을 입으면 덤벼들지 않는 놈이 없겠다.”
“술 마실래요? 소주는 있어요.”
김민정이 묻자 조철봉은 쓴웃음을 짓는다.
“좋아, 안주는 간단하게.”
조철봉이 소파에 등을 붙이고는 김민정의 뒷모습을 향해 말한다.
“술 많이 마시면 실력이 제대로 안 나와.”
하지만 김민정이 오늘 만나려고 한 이유를 알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집에 따라온 목적이다.
(1997)존경을 받다-14
“그래, 날 보려고 한 이유는 뭐야?”
김민정이 소주병과 잔을 내려놓고 앞쪽 자리에 앉았을 때 조철봉이 물었다.
부드럽게 물었지만 김민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다 큰 사람이 놀라기는. 그래, 몇년 전에 아쉽게 그걸 못하고 헤어졌기 때문에
다시 만나려고 했다는 건 좀.”
조철봉이 낮고 부드럽게, 그러나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을 한다.
“이유가 약하잖아? 그렇다고 내가 누구처럼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말야.”
“돈이죠.”
불쑥 김민정이 말했으므로 술잔을 집던 조철봉이 주춤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민정이 비죽 웃는다.
“제가 아까 말했잖아요? 그때 돈 받고 감동했다고.”
“감동은 무슨.”
“달아오르게 만들어놓고 싫다고 하면 화를 내야 정상인데 저한테 돈까지 주셨잖아요?”
“지금도 돈 필요해?”
그러자 김민정이 다시 비죽 웃는다.
“돈이야 많으면 좋죠.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어요.”
“말해 봐. 그 어설픈 계획이라도.”
잔에 소주를 채운 조철봉이 한입에 삼켰을 때
김민정은 젓가락으로 멸치볶음 한개를 집어 내밀었다.
입을 벌려 멸치볶음을 받아먹은 조철봉의 가슴이 갑자기 쩌르르 울린다.
감동이다.
눈을 좁혀 뜬 조철봉이 멸치를 씹으면서 김민정을 보았다.
김민정은 무심한 얼굴로 술잔에 술을 따르는 중이다.
그러면 김민정의 감동도 지금 자신이 느낀 것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이란 톱니 바퀴가 맞물려 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또박또박 정해져 있지가 않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거기서 갖은 감동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멸치볶음 하나를 입에다 넣어 주었을 뿐인데도 가슴이 저리다니.
그때 김민정이 말한다.
“의원님이 되시고 나서 좀 행동에 제약을 받으실 것 같았죠.
전처럼 나이트나 카바레 다니시지 못할 것 아니에요?”
“그, 그건 그렇지.”
당연한 말이었지만 이제는 의원 체면상 금방 대답하기가 쑥스러워 조금 더듬었다.
그러자 김민정이 말을 잇는다.
“그래서 의원님하고 가끔 여기 우리집에서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으음.”
“비밀도 보장되고, 저는 저대로 또 그렇고.”
“저대로 또 그렇다니?”
“즐기는 거요, 어휴.”
그러더니 김민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다.
“그렇게 좋은지는 몰랐어요.
그런 줄 알았다면 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건데.”
“계속해봐.”
“말 다했어요.”
그러고는 김민정이 정색하더니 조철봉을 똑바로 본다.
“의원님 애인으로 삼으시면 어때요?
데이트는 여기서 하구요.
목숨을 걸고 비밀 보장은 해 드릴게요.”
차분한 표정이 되어서 말했지만 김민정의 말끝이 떨린다.
긴장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조철봉이 다시 술잔을 집어들고 물었다.
“여행사 다닌다면서?”
“애 교육 때문에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으음.”
조철봉은 심호흡을 한다.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조금 믿을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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