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68. 조의원(4)

오늘의 쉼터 2014. 10. 8. 09:27

668. 조의원(4)

 

(1919)조의원-7 

 

 
 
대통령의 한 말씀이 이토록 큰 감동을 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조철봉이다.
 
조철봉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이나 케네디의 유명한 연설쯤은 알고 있는 위인이다.
 
그런데 오늘 대통령의 말씀은 그보다 몇백배 나았다.
 
링컨이 10명, 케네디가 50명 살아 돌아와서 말해 준다고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조철봉에게 한 말씀은 그야말로 천상의 소리 같았다.
 
대통령은 조철봉의 인사를 받더니 이랬다.
 
물론 조철봉 옆에는 기저귀를 찬 이은지가 떨며 서 있었고 당대표에다 청와대 실장,
 
수석들까지 다 모여서 듣고 있었다.

“아이고, 조 의원, 내가 진즉 뵈었다면 카바레 데려다 달라고 했을 텐데.”

그 순간 주위의 인물들은 왁자하게 웃었으며 웃지 않은 위인은 딱 둘,
 
조철봉은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이를 악물었으며 이은지는 긴장해서 못 들었다.
 
그것뿐이다.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조철봉과 악수를 하고 나서 몸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 순간 조철봉이 주르르 눈물을 쏟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눈물을 쏟고 난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옆에 선 이은지의 손을 쥐고 자리로 다가가면서 조철봉은 이제 이것으로 카바레건이
 
날아간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조철봉은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극성스러웠던 여성 단체 서너 곳이 성명 발표를 했지만 아무도 기사화하지 않았고 곧 묻힌 것이다.

“대통령께서 농담으로 사건을 덮어주신 것이지요.”

이번에 보좌관이 된 기자 출신 김경준이 말했다.
 
김경준도 언론이 이제 카바레 사건을 더 이상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의원회관은 정리가 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조철봉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는데
 
방 안에는 최갑중까지 셋이 모였다. 김경준이 말을 잇는다.

“곧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경준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떠올랐다.

“그게 정치권의 생리니까요.”

김경준은 40대 중반으로 옷차림이 깔끔했고 용모도 단정했다.
 
조철봉이 보기에는 정치가 어울리지 않을 사람 같았는데 본인 희망은 국회의원이라고 했다.
 
그때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가 울렸으므로 김경준이 먼저 전화기를 쥐었다.

“아, 네, 네, 잠깐만요.”

하더니 김경준이 송화구를 손바닥으로 막고 조철봉을 보았다.
 
웃음 띤 얼굴이다.

“임기택 의원 보좌관인데요,
 
임 의원이 내일쯤 시간을 낼 수 있으시냐는데요.”

“어떡하면 좋지?”

조철봉이 정색하고 묻자 김경준이 머리를 저었다.

“다음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지요.”

“그러지.”

조철봉의 대답을 들은 김경준이 전화기를 다시 귀에 붙이더니 몇마디 더 하고는 통화를 끝냈다.

“그것 참, 상황이 싹 변하는군.”

최갑중이 감탄한 표정으로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김경준이 조철봉을 보았다.

“의원님, 정치인의 한마디는 의미심장합니다.”

정색한 표정이었으므로 조철봉이 저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였다.

“으음, 의미심장이라.”

최갑중도 여전히 감탄한 표정으로 다시 혼잣소리처럼 말을 잇는다.

“의미가 심장에 있다는 말이로군. 명언이네.”

그러자 김경준이 여전히 굳은 얼굴로 조철봉에게 말한다.

“대통령께서 불쑥 말씀을 뱉으셨을 리가 없습니다.
 
앞뒤를 다 재봐야 합니다.”
 
 
(1920)조의원-8
 
 
 
“내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할 일은.”

엄숙한 표정이 된 조철봉이 손에 쥔 복사지를 보면서 말을 잇는다.

“첫째, 납북자·탈북자를 조속히 귀국시키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거야.
 
그러려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추진하는 것이 낫겠나를 당신들이 연구해줘야겠어.”

사무실의 앞쪽 소파에는 최갑중, 김경준, 그리고 비서관 박동일까지 셋이 나란히 앉았는데
 
조철봉 의원의 핵심 참모들이었다.
 
역시 긴장한 그들을 향해 조철봉이 말했다.

“국가 예산부터 바라지 않겠어.
 
예산 안 따도 돼. 내 재산을 기금으로 만들어 쓸 테니까,
 
내가 이렇게 쓰려고 돈 모은 거야.”

그러고는 셋을 둘러본 조철봉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국회의원만큼 돈 쓰고 생색내는 자리가 어딨어?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최갑중이 제일 먼저 나섰다.

“무조건 제 돈 쓰겠다는 국회의원도 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그런 말씀 안 하시는 게 낫습니다.”

김경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박동일의 눈이 치켜 떠지더니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웃음을 참는 것이다. 아직 30대 중반으로 젊어서 억제가 안 되는 것 같다.
 
조철봉이 최갑중을 흘겨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

“내가 외통위 소속이니까 대북 협상관계, 현재까지의 추진 현황,
 
전망에 대한 자료를 모아 주도록. 개원하기 전에 공부하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정색한 김경준이 머리를 끄덕였다.

“곧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김경준과 박동일이 방을 나갔으므로 둘이 남았다.

“의원님, 요즘 너무 열심이신 것 같은데요.
 
낮에는 공부하시고 저녁에는 꼭 헬스에 가시더군요.”

최갑중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더구나 헬스에서 복싱하고 유도까지 하신다면서요?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우리 한국당이 단상을 점거할 경우에는 내가 제일 먼저 발을 디딜 거다.”

“예?”

“아니, 그건 그렇고.”

정색한 조철봉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긴 숨을 뱉는다.

“다른 건 다 참고 버티겠는데 그건 어렵단 말야.”

그 순간 최갑중이 눈을 치켜떴다.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최갑중이 묻는다.

“거시기 말입니까?”

“그래, 거시기.”

“그거 대통령이 카바레 사건을 겨우 무마시켜 주셨는데 또.”

“그럴 수가 있나?”

최갑중에게 눈을 흘겨보인 조철봉이 목소리를 낮췄다.

“외국에서 놀고 오면 안 될까?”

“외국요?”

“그래, 미안하니까 내 사비로 슬쩍 나갔다가 오는 거다. 그럼 되지 않을까?”

“으음.”

낮게 신음한 최갑중이 조철봉을 본다.
 
마치 열흘쯤 굶은 인간을 보는 것 같은 측은한 표정이 되어 있다.

“하긴 좀 되셨네요, 그죠?”

“그래, 영일 엄마는 이제 임신 4개월이야. 무리하면 안 되거든.”

이은주는 소원했던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최갑중이 이윽고 긴 숨을 뱉었다.

“너무 오래 참으시면 병나죠, 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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