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 조의원(6)
(1923)조의원-11
“아니.”
놀란 조철봉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의식 중에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까지 했다.
“누구시라고 했지요?”
엉겁결에 그렇게 되물었을 때 수화구에서 다시 목소리가 이어졌다.
“칭다오 영사관의 최순동 영사입니다. 의원님, 지금 칭다오에 계시지요?”
“아아.”
대답 안 할 수가 없었으므로 어중간하게 대답을 한 조철봉의 어깨가 늘어졌다.
꼭 누가 옆에서 보고 있는 느낌이 든 것이다.
이 상태라면 철봉이 일어날 것 같지가 않다.
아니, 영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에너지가 절반 이상 꺾였다.
의욕이 감소된 것이다.
그때 영사의 말이 이어졌다.
“오셨다는 연락을 받고 참고하실 자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산둥성의 교민과 투자업체 현황,
그리고 전망과 대책에다 조선족 동포 및 한족의 비자 발급 현황,
탈북자 현황까지 이틀만 시간을 주시면 보고드릴 수가 있습니다.”
“잠깐, 최순동 영사라고 하셨던가?”
“예, 최, 순, 동입니다.”
이건 방송국의 신참 현장 리포터가 방송국 이름은 0.1초 만에 말해놓고
제 이름은 한 자에 1초씩 걸려 말하는 것하고 똑같았지만 조철봉은 감동했다.
“으음, 최순동 영사, 고맙습니다.”
“의원님, 또 필요하신 자료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아니, 그것이면 됐는데. 내가 마악 전화하려고 했는데, 이것 참.”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오신 것을 뒤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아니, 뭐.”
“호텔을 체크해봤는데 안 계시기에 중국 공안에 문의했더니 해변 별장에 계시더군요.
불편한 점 있으시면 언제라도 이 전화로 연락해주십시오.”
눈을 치켜뜬 조철봉은 최 영사의 뒤쪽 말은 아예 듣지도 않았다.
중국 공안까지 여기에 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조철봉이 다시 머리를 들고 이번에는 천장 구석까지 훑어보았다.
그때 최 영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내일 오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의원님.”
“고맙습니다, 최 영사.”
전화기를 내려놓은 조철봉은 우두커니 제 사타구니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머리를 들고 또 응접실 구석구석을 살핀다.
그러고 나서 어깨가 땅에 닿을 것처럼 길고 굵은 한숨을 뱉더니 인터폰을 들었다.
“예, 사장님.”
금방 최갑중의 활기찬 목소리가 울렸으므로 조철봉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너, 올라와 봐.”
조철봉이 말하자 최갑중은 20초도 안 되어서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금전에 칭다오 영사관에서 전화가 왔어.”
하고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공안한테 물어서
지금 별장에 와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고 했을 때 최갑중의 얼굴도 굳어졌다.
“대단하군요.”
뭐가 대단한지는 말하지 않고 최갑중의 말이 이어졌다.
“이거 당장 소문이 나겠는데요?”
“좀 더 면밀하고 신중하게 준비한 후에 해야 되겠다.”
조철봉이 심각해진 얼굴로 최갑중을 본다.
“대통령이 겨우 카바레 문제를 해결해 줬는데 여기 소문이 나버리면 내가 염치가 없다.”
그러고는 조철봉이 다시 땅이 꺼질 것 같은 숨을 뱉었다.
“다음에 기회를 봐서.”
(1924)조의원-12
그날 저녁 7시경이 되었을 때 조철봉은 칭다오의 로얄 크라운호텔 양식당에서
최갑중과 둘이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별장을 나와 이곳으로 숙소를 옮긴 것이다.
별장을 나올 적에 최갑중은 여자들을 방안으로 들어가게 해서
조철봉의 속이 더 상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렇지만 여자를 안 보았다고 속이 얼마나 덜 상하겠는가?
조철봉의 지금 심정은 최갑중이 안다.
아마 피눈물을 흘리고 싶을 것이었다.
국회의원이 된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장을 나온 것은 최갑중이 생각해도 잘 한 일이다.
그때 스테이크를 껌처럼 씹고 있던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아무래도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뭐가 말입니까?”
대충 짐작이 되면서도 최갑중이 묻는다.
최갑중은 지금 스테이크를 가로 세로 각각 1㎝가 되도록 자르고 있다.
“정치인, 국회의원이 될 준비 말이야.”
마침내 씹던 것을 삼킨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국회의원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했어.”
“아니.”
포크를 내려놓은 최갑중이 정색했다.
“그럼 국회의원은 그것도 안 한단 말입니까? 형님은 너무 예민해지셨습니다.”
그러고는 최갑중이 식당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양식당 안에는 서양인 손님이 두 테이블뿐이었다.
“일 때문에 와서 잠깐 회포를 푸는 걸 뭐라고 하는 놈이 있다면
그놈이야말로 변태거나 고자일 겁니다.
세상을 그렇게 각박하게 살면 못쓴다구요.”
최갑중이 손까지 흔들면서 열변을 토했다.
“제가 신문을 보았더니 사르코지라는 프랑스 대통령은 여자 관계가 복잡한데도
잘만 나다니고 있더만요.
형님은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한국이 프랑스하고 같냐? 그리고….”
조철봉이 눈을 흘겼다.
“난 비례대표 34번 국회의원이고 그 양반은 대통령이여, 인마.”
“어쨌든 형님은 외교통상위 자료 수집하러 칭다오에 오신 겁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최갑중이 말을 잇는다.
“밤에 잠깐 회포를 푸시는 겁니다.”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호텔로 나온 것은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거처를 공개한 것이었다.
이곳으로 여자를 끌고 온다면 죽으려고 작정한 것이나 같다.
최갑중이 지그시 조철봉을 본다.
조철봉과 함께 십수년간 영욕의 세월을 보낸 동반자,
스스로 조철봉의 눈빛만 봐도 절반쯤은 속을 알 수 있다고 자부해온 심복, 최갑중이 말한다.
“형님, 제 방에서 하시지요.”
“뭘?”
했지만 조철봉은 대번에 최갑중의 의도를 파악한 후였다.
최갑중은 제 방으로 여자를 데려갈 테니 거기서 행사를 치르라는 것이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최갑중의 방은 바로 옆방이었으며 옆방으로 통하는 쪽문도 있다.
바로 이런 상황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쪽문이다.
그때 조철봉의 바지 주머니에 든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다시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 번호부터 본다.
133으로 나가는 중국 번호. 별로 좋은 예감이 안 들었지만 조철봉은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여보세요.”
“아, 조 의원님. 나, 김성산입니다.”
북한 천리마무역 대표이자 합작사업의 북한측 대표 김성산이다.
갑자기 웬일인가? 그때 김성산의 말이 이어졌다.
“숙소를 옮기셨다는데 잘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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