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65. 조의원(1)

오늘의 쉼터 2014. 10. 8. 09:25

665. 조의원(1)

 

 

(1913)조의원-1 

 

 

 

 

“조 의원님.”

명단이 발표된 직후에 최갑중이 전화를 걸어오더니 그렇게 불렀다.
 
재빠른 놈이다. 방송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고 화면에 한국당 비례대표 34번 조철봉의
 
이름이 떠있는 상태, 목이 멘 최갑중은 말도 잘 못한다.

“조 의원님, 축하합니다.”

“고맙다.”

밤 12시반, 집안은 조용했다.
 
11시가 되었을 때 이은지에게 자라고 침실로 보내놓고 조철봉은
 
지금까지 응접실에 혼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최갑중이 말을 잇는다.

“이건 기적입니다. 조 의원님.”

“자꾸 의원, 의원 해쌓지 마라. 한약방 같다.”

“정말 축하합니다. 의원님, 의원님은 정말 선명지견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뭐? 선명 뭐라고?”

했다가 정신이 사나워진 조철봉이 핸드폰을 고쳐 쥐었다.
 
최갑중은 흥분하거나 그 반대로 점잖을 뺄 때 말도 안되는 문자를 쓴다.
 
지금은 전자일 것이다.

“너, 세금 안낸 것 없지?”

조철봉이 묻자 최갑중은 퍼뜩 정신이 난 것 같았다.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예. 다 냈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엊그제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뭐? 엊그제? 인마, 그 말 한 적이 언젠데.”

조철봉이 눈을 부릅떴다가 어깨를 늘어 뜨렸다.
 
마치 간발의 차이로 장애물을 피해 간 운전사 같았다.

“예. 어쨌든, 놔 두려다가 그냥 냈는데 이거, 정말로.”

최갑중도 이제 생각하니 식은땀이 나는 모양이었다.
 
말까지 더듬는다. 재산 신고를 빼먹고, 탈세를 해서 장관 자리를 잃은 거물들의
 
이야기가 며칠 전까지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었다.
 
그것을 남의 이야기로 알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엊그제야 다 완납한 것이다.
 
만일 오늘이나 내일 냈다고 해도 치명타를 받을 것이었다.

“너, 다른 거 확실하게 체크해, 알았어?”

조철봉이 소리치듯 말하자 최갑중도 다시 긴장했다.

“예, 의원님.”

이제 의원님 소리가 한의원이나 청소년 선도의원 같은 분위기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조철봉도 동네 파출소에서 위임한 청소년 선도의원에다
 
구의 부녀회에서 부탁하는 바람에 좋은책 읽기 후원회의 의원도 겸하고 있다.
 
그렇지만 파출소나 부녀회를 거의 가지 않기 때문에 의원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한국 사람은 보편적으로 직위, 이른바 감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는 조철봉이 친구하고 카페에서 술을 마시다가 옆좌석에 앉은 대여섯명의
 
남자 손님이 서로 ‘김 검사’ ‘최 검사’ ‘박 검사’하고 불러대는 것을 듣고는
 
 기가 죽었다.
 
검사 영감들이었다.
 
친구하고 말도 크게 못하고 술을 마신 조철봉이 그 검사 일행이 나간 후에
 
주인한테 물었다.

“여긴 검사들 단골인 모양여?”

“그래요.”

쌍꺼풀 수술을 거칠게 한 주인여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저기 옆 건물 우방섬유의 품질관리 검사원들이죠.”

그런데 이제는 조철봉이 진짜 의원이 된 것이다.
 
의원 중에 국회의원이 제일이 아닌가?
 
최갑중과 통화를 끝낸 후부터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한번도 얼굴을 보지도 못한 놈에서부터
 
사이가 나빴던 친척까지,
 
그리고 새벽 1시쯤에는 베이징의 김성산까지 축하 전화를 해왔다.
 
정말 국회의원은 대단한 자리인 것 같다.

 

 

(1914)조의원-2 

 

 

조철봉 스스로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표현했지만 전과는 없다.
 
전과란 바로 이전에 죄를 범하여 재판에 의해 확정된 형벌의 전력이다.
 
조철봉은 재판정에 선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전과 면에서는 깨끗하다.
 
이번에 비례대표 신청을 한 것도 주변이 깨끗했기 때문이다.
 
최갑중이 안될 줄 알고 늑장을 부린 바람에 큰일 날 뻔했지만 세금도 다 냈다.
 
조철봉이 누구인가?
 
앞뒤 다 재고 사기를 쳐온 인간 아닌가?
 
혹여 비례대표 신청자 신분인데도 언론사에서 물어볼까봐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달달 외워놓았다.
 
정치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로서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여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고 나와 있었다.
 
좀 길었지만 다 외웠다.
 
그리고 비례대표로 기적적 당선을 하고 나서는 바로 본인의 정치인으로서의
 
자세를 글로 작성한 다음에 또 달달 외워두었다.

국회의원 월급을 알아보았더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별로 머리 쓰는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많았으므로 만족했다.
 
그리고 특전이 무지하게 많았다.
 
그것만 찾아보는 데도 반나절이 걸렸고 그 반나절 동안 내내 행복했다.
 
특히 공항에서 VIP 라운지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도 VIP 라운지를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할 때
 
방으로 최갑중이 들어왔다.
 
비례대표가 된 지 나흘째가 되는 날 오후였다.
 
당선증을 받은 후에 당대표하고 거물들께 인사를 드렸으며
 
사진을 여러 방 찍고 났더니 사흘째가 되는 날부터 한가해졌다.
 
어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시작해야 될 텐데 국회가 개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날 국회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의원님, 상임위원회는 건설교통위원회로 가도록 하시죠.”

최갑중이 정색하고 말하더니 앞쪽 자리에 앉았다.
 
눈만 껌벅이는 조철봉을 향해 최갑중이 목소리를 낮췄다.

“거기가 젤 나을 것 같습니다.”

“뭐가?”

“이거 말입니다.”

하고 최갑중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제가 19개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체크해봤는데
 
거기가 국물이 젤 많을 것 같습니다.”

“…….”

“로비를 해 보시지요.”

“누구한테?”

“그건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의원 보좌관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처럼 최갑중이
 
의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좀 쓰면 되겠지요. 쓴 것의 몇십배는 뽑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순간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인간의 천성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철봉이 누구보다도 잘 안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도둑놈은 도둑놈이다.
 
이것을 비약해서 한번 배신한 놈은 계속해서 배신을 때린다고도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인간이 천성을 바꾼다는 것은 어지간한 의지 없이는 안될 것이었다.
 
쉽게 돈을 버는 데 익숙해진 놈들은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금 최갑중이 그런 것이다.
 
최갑중은 조철봉의 분신 같은 최측근이다.

그런데도 최갑중은 조철봉이 어떤 작정을 하고 국회의원이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너 앞으로 그런 짓거리하려면 나하고 오늘부터 인연 끝내자. 이 도둑놈아.”

최갑중한테는 이런 식의 처리가 어울린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667. 조의원(3)  (0) 2014.10.08
666. 조의원(2)  (0) 2014.10.08
664. 전향 (13)   (0) 2014.10.05
663. 전향 (12)   (0) 2014.10.05
662. 전향 (11)   (0) 2014.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