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3. 전향 (12)
(1910)전향-23
제가 걱정이 되는 것은.
비례대표를 신청하고 돌아온 최갑중이 조철봉과 둘이 되었을 때 말했다.
심각한 표정이다.
여자들입니다.
눈만 치켜뜬 조철봉을 외면한 채 최갑중이 말을 잇는다.
작심한 것 같다.
“당 심사위원들이나 고위층한테 투서나 직보가 들어가면 끝납니다.”
“뭐가?”
그렇게 물었던 조철봉이 정정했다.
“뭘 투서하고 직보한다고?”
“거시기.”
최갑중이 고인 침을 삼키고 나서 막 입을 벌렸을 때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하룻밤에 여섯 번 싸게 해줬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거 하면서 애국가 거꾸로 불렀다고?”
“거시기.”
“내가 여자한테 뭘 잘못했냐? 대라.”
하고 조철봉이 눈을 부릅떴으므로 최갑중은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조철봉이 손끝으로 최갑중의 코끝을 겨누고 다시 묻는다.
“너, 내가 난잡하다고 말하려는 거지?”
“그게, 형님.”
“내가 여자한테 사기친 적 있더냐? 응? 나쁜 여자 말고.”
“그건 없었죠.”
“내가 여자 만족시키지 않은 적 있냐?”
“잘은 모르지만 그건.”
“그런 적 없다.”
해놓고 조철봉이 또 묻는다.
“내가 여자한테 술값 내라고 한 적이 있더냐?”
“없었죠, 당연히.”
“나 때문에 가정이 파탄난 여자 있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난 상 받아야 되는 것 아냐?”
할 수 없이 최갑중은 입을 다물었고 조철봉도 조금 진정을 했다.
오늘 최갑중이 비례대표 신청을 하면서 알아 보았더니
한국당은 이번 총선에서 140석을 예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당 득표율로 예상한 비례대표 당선 순위는 20번까지였는데
현재 450여명이 신청을 했다.
20대1이 넘는다.
“그러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사무실 안에는 둘뿐이다.
“신청은 했지만 순위 결정이 될 때까지 가만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어?”
“그렇죠. 가만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뛰겠죠.”
“그래서 말인데.”
정색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우리는 순위 결정에 영향을 주는 실세하고 줄도 안 닿고
그렇다고 크게 내놓을 것도 없단 말씀야.
남북합작사업을 추진했다는 건 좀 약해. 그렇지?”
“그건 그렇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아마 300등쯤 될 거다.”
“그거야 어디.”
“그래서 말인데.”
이제는 조철봉이 목소리를 잔뜩 낮춘다.
“20등 안에 들어갈 만한 작자들 중에서 한 30억원쯤 받고 나한테 양보할 놈 없을까?
물론 그 작자가 날 저 대신으로 추천해 줘야겠지.”
놀란 최갑중이 입만 짝 벌렸지만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50억원까지도 돼. 내 50억원을 먹고 그 작자가 저보다 유능한 인물이라면서
나한테 그 순위를 양보하는 거야.
그럼 위에서도 납득하지 않을까?”
“형님, 그것이 어디.”
“두 놈을 먹여도 되겠다.
이건 선수들끼리 하는 거라 심판들은 몰라도 되는 거야.
당연히 몰라야지. 어때?”
했지만 최갑중은 입맛만 다셨다.
(1911)전향-24
한국당의 실세인 부대표 안상호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온 것은 총선 이주일쯤 전이었다.
한국당 당사로 찾아간 조철봉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조철봉은 지금까지 정치인들하고 논 적이 없는 것이다.
요즘 들어 겉으로는 제 성질이 정치인과 딱 맞느니 어쩌느니 해쌓지만 막상 부름을 받자
오금이 저려서 부대표실에 들어가기 전에 소변을 두 번이나 보았다.
안상호가 웃음 띤 얼굴로 맞는다.
“아, 어서오세요.”
부대표 안상호는 4선 의원으로 65세, 수전, 산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인물이었다.
지금까지 원내총무를 두 번, 대변인도 지냈으며 문공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안상호 옆에는 수석 부총무 이경필이 와 있었는데 조철봉도 언론에서 자주 봐서 낯이 익었다.
셋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을 때 안상호가 서류를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고 나서 묻는다.
“추천인이나 기타 조건은 다 갖추셨군요.
그런데 정치 경험은 전혀 없으시네요.”
“그, 그렇습니다.”
조철봉이 똑바로 안상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정치는 안 했습니다.”
“하긴 정치인이 따로 있나요?”
하고 이경필이 분위기를 살렸지만 조철봉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안상호가 다시 묻는다.
“뭐, 의례적이지만 신청서에 쓰신 말씀 외에 의원이 되시려는
목적이나 포부를 말씀해 보실랍니까?”
“예.”
하고 나서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그 순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긴장감, 이런 위축감은 생전 처음이다.
안상호는 물론이고 이경필의 눈빛, 태도, 말이 보통내기들이 아니다.
사기꾼은 사기꾼을 알아보는 법이다.
조철봉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
앞에 앉은 상대가 사기꾼인지 아닌지는 대번에 맞혀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머리가 띵할 뿐이다. 마치 바둑 아마 9급이 프로 9단을 만난 것 같다.
왜 이럴까? 위축감이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이 강한 포스는 과연 무엇인가?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를 악물었다가 푼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돈을 좀 벌고 나니까 봉사를 하고 싶더만요.
국가를 위한 봉사 말씀입니다.”
저도 모르게 제 입으로 술술 뱉어지는 말을 듣고 조철봉의 머리끝이 쭈뼛거렸다.
조철봉의 말이 이어진다.
“그런데 좀 생색을 내고 싶었지요.
국회의원이 되어서 이곳저곳에다 기부를 하고 뭘 세우고
그러면 좀 얼굴이 서지 않겠습니까?”
안상호와 이경필이 눈도 깜박이지 않고 조철봉을 본다.
대꾸도 하지 않았으므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제가 며칠 전에 제 재산을 정리해 봤더니 1조쯤 되었습니다.
솔직히 세금도 다 냈지만 편법, 불법, 탈법 등 갖가지 방법으로 모은 재산이죠.
그런데 이제 그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단 말씀입니다.”
조철봉은 이제 슬슬 긴장감이 풀려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말도 잘 나온다.
안상호와 이경필은 여전히 시선만 주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진다.
“한국당이 제 체질에 맞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한국당이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한국당 발전을 위해서 투자해도 되겠습니다.”
이제는 정신을 차린 조철봉이 미끼를 내놓은 셈이다.
그리고 이 제의는 불법이 아니다.
그때 안상호가 입을 열었다.
“잘 알았습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철봉도 긴 숨을 뱉었다.
할 말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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