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62. 전향 (11)

오늘의 쉼터 2014. 10. 5. 13:30

662. 전향 (11) 

 

(1908)전향-21

 

 

 

“에?”

하고 최갑중이 눈을 치켜떴으므로 조철봉은 입맛을 다셨다.

 

“예?”도 아니고 “에?” 한 것이다.

 

그냥 놀란 것이 아니라 어이가 없을 만큼 놀랍다는 표현 같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요?”

그렇게 최갑중이 다시 물었을 때 조철봉은 앞에 놓인 재떨이를

 

놈의 얼굴에다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눌러 참았다.

 

방금 최갑중에게 국회의원을 한번 하면 어떻겠느냐고 아주 정색을 하면서 물어보았던 것이다.

 

조철봉이 눈만 부릅뜨고 있는 것을 보자

 

최갑중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것 같다.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 비례대표겠지요?”

“그렇지.”

욕이 이어지려는 걸 겨우 참고 조철봉이 대답한다.

 

최갑중이 다시 물었다.

“물론 여당이겠지요?”

“물론자는 빼, 짜샤.”

“여당 맞지요?”

“맞다.”

“여당 실권자 중 아는 분 있습니까?”

“너도 알다시피 내가 누굴 아냐?”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 그럽니까?”

“총선이 두 달 남았으니까 지금부터 나서도 늦지 않어.”

“도대체.”

해놓고 최갑중이 마치 뱀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조철봉도 뱀이 쥐를 보는 시선을 만들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은 왜 하시게 된 겁니까? 난데없이요.”

“도대체, 갑자기, 난데없이, 생각을 한 게 아녀. 이 자식아.”

“정치가 얼마나 골치 아픈지 아십니까? 그거 보통 사람은 못한다고요.”

“잘 아네.”

정색한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넌 내 보좌관으로 가는 거다.”

“형님.”

최갑중도 정색했다.

“돈만 있으면 다 하는 게 아닙니다. 전하고는 달라졌다고요.”

“넌 나를 뭘로 봐?”

조철봉이 눈을 부릅떴으므로 최갑중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정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겨.”

목소리를 높인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정치는 화합, 융통성, 그리고 국리민복이다.”

“국리민복이 뭔데요?”

불쑥 최갑중이 묻자 조철봉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까 잠자코 들어.”

“예, 듣지요.”

“나한테는 정치가 맞는 것 같다.”

“왜요?”

“왜요라니?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내 체질에 정치인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지 않으냐?”

“에?”

또 “에”를 했으므로 조철봉의 이맛살이 다시 구겨졌다.

 

조철봉이 잇새로 말한다.

“잘 생각해봐, 인마.”

“예.”

“내가 말 뒤집는 거 선수다. 알지?”

“예.”

“그것도 감쪽같이. 지금 정치인들 보면 너무 순진해. 난 더 잘할 수 있어.”

“뭘요?”

“속이는 거.”

정색하고 말한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떴다.

“청문회 같은 데서 사람 불러다놓고 땍땍거리는 거, 난 더 잘할 수 있어.”

“에?”

다시 최갑중이 “에?”했지만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멋있었어. 명패 집어던지는 거.” 

 

 

 

 

(1909)전향-22

 

 

 

조철봉은 한번 작심을 하면 한다.

 

사기는 임기응변이나 뻔뻔함, 또는 치밀함만으로는 완벽하지 못하다.

 

끈기와 집념도 갖춰야 한다. 따라서 자신이 지금까지 닦아온

 

그 모든 수련은 정치인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가만 보면 정치는 사기와 일맥상통했다.

 

뻔한 거짓말을 해놓고 민심을 얻어 죄를 안 받는 꼴을 보면 사기꾼보다 윗길이었지만

 

그 수단이 유치했다.

 

정치인이 돼 보겠다고 작심을 하고 나자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우러났다.

 

조철봉이 그날 저녁에 만난 사람은 국정원의 이강준 정보실장이다.

 

카바레에서 같이 논 사이기도 했지만 이강준만큼 상의하기에 적당한 인물도 드물었다.

“국회의원요?”

최갑중보다는 못했지만 조철봉의 말을 듣고 난 이강준의 반응도 컸다.

 

그러나 금방 시치미를 떼더니 조철봉을 지그시 본다.

 

조철봉도 시선을 맞받았을 때 이강준이 차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역구로 나가시려고요?”

“아닙니다. 비례대표로.”

“아아.”

머리를 끄덕인 이강준의 표정이 더 진지해졌다.

“어느 당으로 가실 계획입니까?”

“한국당이죠.”

이강준의 머리가 다시 끄덕여졌다.

 

한국당은 여당이며 이른바 보수정당이다.

 

조철봉은 진보 성향의 야당과는 애당초 맞지가 않는다.

 

지금까지 조철봉은 딱히 좌나 우에 관심이 없었지만 사안별로는 사고가 분명했다.

예를 든다면 얼굴도 모르는 북쪽 동포에다 퍼줄 세금을 아직도 굶고 있는

 

우리 남한 사람들한테 나눠줘야 한다고 믿었다.

 

옆집에서 밤중에 벽에다 못 박는다고 고소를 하는 세상인데 북한군한테 들어가는지

 

어쩐지도 확인 안 하고 퍼주는 자들이 이상했다.

 

제 돈이라면 절대로 안 그럴 것이었다.

 

퍼주고 대접을 제대로 받는다면 또 모른다.

 

온갖 수모를 당하고 빼앗기듯 주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나무라면 그럼 전쟁하잔 말이냐?

 

하고 어떤 국회의원놈은 협박까지 했다.

 

그래서 조철봉은 한 10년 가깝게 정치관계 기사나 방송은 거의 읽지도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때 이강준이 머리를 들고 말했다.

“하긴 조 사장님이 정치인에 어울리실지도 모르겠네요.”

처음 듣는 긍정적인 반응이었으므로 조철봉의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다음 말을 기다린다.

“남북합자사업을 추진한 경력도 인정받으실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렇습니까?”

심호흡을 하고 난 조철봉이 이강준을 똑바로 보았다.

“그럼 제가 누구를 만나면 되겠습니까?

 

다리를 놓아 주신다면 신세 잊지 않겠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봉투를 내밀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강준 같은 인간한테 그랬다가는 큰일 난다.

 

돈을 먹여도 사람 가려서 먹여야 하며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는

 

보장까지 해줘야 진정한 뇌물이 된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이강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제가 어디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죠.”

“그래도 흐름은 파악하고 계실 것이 아닙니까?

 

하다못해 추천해줄 사람이라도 알려 주시지요.”

“요즘은 전과 다릅니다.”

정색한 이강준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을 잇는다.

“먼저 비례대표 신청을 해보시지요.

 

곧 비례대표 모집을 한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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