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85

오늘의 쉼터 2014. 8. 27. 12:49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85 

 

 

“기회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는 왔습니다.

하야시가 풀이 죽어 있을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도대체 하야시란 놈은 조센진이라지 않습니까?

그런 센진에게 우리 일본인의 명당자리를 내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우리 일본인이 센진에게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죠.

일본인의 수치란 말예요!”

“그렇고말고요. 하야시가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조선 건달을 몇몇 거느리고 있을 뿐, 대수로운 존재가 아니란 말예요.”

다께다의 수뇌급 막료라 할 오이데(大井手)와 스기우라(杉浦)가 번갈아 한 말이었다.

오이데는 순전히 노가다판에서 자라온 기질 사나운 맹자였고,

스기우라는 중학교 5학년(당시는 중학교가 5년제였다)을 8년 만에 졸업했다는

망나니 싸움꾼으로, 혼마찌패에서 건너온,

일본패 안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주먹이었다.

다께다는 점점 귀가 엷어졌다. 솔깃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야시의 뒤에는 경찰이 있어! 그는 도야마 미쓰루 옹의 직계라지 않는가!”

다께다는 입에 달다고 해서 꿀꺽 삼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경찰도 두렵지만, 도야마 미쓰루라고 하면,

말만 들어도 등이 오싹해질 형편인 것이다.

“경찰이나 도야마계라 해서,

조센진과 얘기가 통하는데 우리라고 해서 통하지 않을 까닭이 있습니까?

하야시 하나만 제거하면 혼마찌깡 대부분의 일본애들도 우리를 따라올 거란 말예요!”

“그렇죠! 조센진 밑에 있는 것을 굴욕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하긴 그렇다. 일본인 야꾸자가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 와서,

조선인의 지배 아래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다께다도 마침내 마음이 동했다.

“해봐! 너희들끼리 잘 해보란 말야!”

이렇게 해서 오이데와 스기우라,

다께다구미의 거물 건달이 혼마찌깡에 도전을 하고 나선 것이다.

혼마찌깡 출신의 스기우라가 중심이 되어

우선 혼마찌깡의 일본 건달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종로패에 맥을 못 추는 하야시 밑에서 뭣을 하려는 거야!

같은 일본인인 다께다 상 그늘로 넘어와야 해. 좋은 일 많이 있을 테니까…….”

스기우라의 감언이설에 실제로 동하는 자가 생겼다.

그가 이끄는 대로 하나둘 다께다구미로 넘어가는 자가 생겼다.

그러나 혼마찌깡 아이들에게도 의리 있는 자가 있었다.

아니, 어느 의미에서는 종로패보다도 더 의리를 앞세우는

위계질서가 철저한 조직이기도 했다.

스기우라가 이끄는 대로 호락호락 넘어갈 무리들만도 아니었다.

다께다구미의 음모가 혼마찌깡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야시는 열화와 같이 노했다.

자신을 배반한 스기우라도 괘씸했지만,

다께다가 철천지 원수처럼 미웠다.

하지만 김두한패에게 참패를 당한 후,

현실적으로 다께다구미를 뒤엎을 힘이 없었다.

그것이 김두한의 힘을 요청한 까닭이었지만…….

 

한편 오이데를 중심으로 한 다께다구미 패거리들은

혼마찌깡의 외곽 지대라 할 남대문 시장 언저리를 들랑거리며 집적거렸다.

원래 주먹패들은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엄중하게 지키며,

반면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를 침범하는 한 이것은 곧 도전인 것이며, 싸움의 불씨가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나와바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해서 출입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지역에 작당해서 몰려가 행패를 부리거나,

그 지역의 점포나 음식점에 가서 금품을 요구하거나 향연을 강요하는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번화가의 점포, 극장가, 음식점 등에는 으레 그러한 잡당들이 꾀어들게 마련이기 때문에,

주인을 대신해서 그들을 막아주고 쫓아주는 것이 그 지역 담당의 주먹패들인 것이다.

그 보호의 대가로 상인들은 담당 주먹패들에게 정식으로 상납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께다구미의 왈패들이 경계선을 넘어 남대문 시장 쪽으로 넘어와서 시비를 걸고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공연한 트집을 잡고 상인들에게 금품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남대문 시장 쪽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중앙물산의 다나까 사장은 난처했다.

그 자신, 일본 주먹패인 우에스끼와 조선인 주먹패인 호오따이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그 힘만으로는 막강한 다께다구미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혼마찌깡에 원조를 청하게 되었다 함은 이미 밝힌 대로다.

그러나 혼마찌깡의 하야시 자신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예의 수표교 싸움의 참패로 병력이 큰 손실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었다.

거기에 하야시 자신이 다께다구미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터였다.

이에 대해서도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오죽하면 수표교 싸움 사건을 무마해 주는 대가로 중앙우편국 자전거 보관소의

관리권까지 넘겨주면서 다께다구미의 세력을 꺾어달라고 김두한에게 당부했겠는가.

하야시는 김두한에게 원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겠다고 다나까 사장에게 충고해 주었을 뿐이다.

이때까지 자신이 고용하고 있는, 호오따이가 관장하고 있던 중앙우편국 자전거 보관소의

관리권을 종로패에게 넘겨주는 것에 순순히 응한 것도 이런 상담 과정에서 이루어진 묵계였다.

하지만 다나까는 그동안 아무런 거래가 없었던 김두한에게 어떻게 원조를 부탁할 것인가,

이것도 미상불 골칫거리였다.

그런 터에 김두한 자신이 제 발로 남대문 시장까지 찾아와준 것이다.

그저 소문만으로는 무시무시한 불한당의 두목으로만 알았던 김두한은 뜻밖으로 이해가 빠른,

일본 표현 그대로 앗사리(성격이 분명하고 깨끗하다)한 사나이였다.

선불 500원과 매달 상납금을 바치겠다는 조건으로 다께다구미를 처치하겠다고

청부를 맡고 나선 것이다.

결국 다께다구미를 때려부순 것은 하야시와 다나까의 사주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다께다는 하야시가 붙인 싸움을 하야시에게 청해서 중재를 요청해 오다니.

또 도대체 다께다는 무엇이 두려워서 무슨 생각으로,

어떠한 조건의 중재를 요청해 왔단 말인가.

김두한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다께다가 무엇 때문에 무슨 조건의 중재를 요구하는 것일까?”

그는 멀거니 김동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화해를 하자는 거겠지.”

“화해? 화해를 하려면, 제 발로 걸어와서 할 것이지…….”

“하도 혼이 나 무서워서 하지 못하는 거겠지.”

“머저리 같은 놈! 하기야,

화해를 하려면 하야시가 먼저 해야겠지만 말이지, 헛헛.

하지만 너의 오야붕, 보통 머리가 아니구나.

병 주고 약 주고, 장구 치고 북 치고, 그 장단에 놀아난 나도 머저리일지 모르지만…….

정말 머리가 좋다더니, 보통 머리가 아냐…… 보통이 아냐…….”

김두한은 혀를 휘휘 내둘러 보였다.

싸움은 제가 시켜놓고,

그 중재역을 맡고 나선 솜씨에 놀란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다께다는 혼마찌깡의 세력을 꺾으려고 도전장을 낸 바로

그 하야시에게 어떻게 중재역을 맡아달라고 요청을 한 것일까.

도대체 그 싸움이 하야시의 사주에 의한 청부 싸움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야 까맣게 모르고 있을 테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다께다가 어리석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혼마찌깡을 꺾겠다고…….”

김두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 다께다가 만나자면 만나겠어?”
 
“못 만날 것도 없지!”

“그럼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할까?”

 
“어디면 좋겠어?”

“그건 두한이 네가 정해. 어차피 승리자는 너고,

백기를 들고 나온 것은 다께다니까.”

“뭐, 오늘도 좋고, 내일도 좋아.”

“그럼 오늘로 하지. 좋은 일은 빠를수록 좋으니까. 그럼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다방원(茶芳園)이면 어떨까?”

“다방원? 다방원이라 해서 안 될 까닭은 없지.”

“그럼, 다방원으로 정해. 시간은 오늘 저녁 7시로 하고.”

미리 짜놓은 각본을 읽어 내려가듯이 대화는 척척 진행되었다.

“누구 누구 나가나?”

“그건 가서 다께다와 의논해 보지.”

 
“누가 가서?”

“누가 가긴 누가 가? 내가 가지.”

“네가? 동회 넌, 정말 홍길동이구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헛헛.”

김두한은 너털거렸다.

그러면서도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져 가고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김동회는 그저 씩 웃으면서 이제 더 나눌 말이 없다는 듯이 휙 돌아서 나가는 것이었다.

“내 곧 다녀올게…….”

김두한은 김동회가 나간 다음에도 어리벙벙해서 앉아 있었다.

하지만 어느 구름장에서 비가 올지 모른다 하지 않았는가.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럼, 다께다는 주먹계의 라이벌 관계에 있는 하야시에게

어떻게 해서 김두한과의 중재를 요청하게 되었을까.

사실 다께다도 노가다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온 왈패의 두목이기는 했다.

토목 건축업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아편 밀수 사업으로도 한밑천 잡았으며,

중국인 촌을 중심으로 세력을 잡은 야꾸자패로 성장하자 우쭐해진 것이다.

부하들이며, 혼마찌깡에 불평이나 앙심을 품은 자들로부터 부추김을 받고,

혼마찌며 아사히마찌를 넘보게는 되었으나, 기실 그는 주먹의 실력은 보잘것이 없었다.

금력과 서대문 경찰서의 비호 아래 큰 세력이며,

그것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다 할 수 있었다.

힘도 없이 허우대 하나로 버텨왔을 뿐, 특히 그의 간은 콩알만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일본패로서, 속사정이나 내막을 훤히 알고 있는

하야시나 남대문 시장의 다나까에게나 집적거릴 수 있었지,

감히 조선의 왈패인 종로패에게는 대항할 마음을 추호도 갖고 있지 않았다.

손바닥만한 장안이라,

길 하나만 건너면 혼마찌패·남대문패·종로패와 접촉하게 되어 있었다.

태평로 하나만 넘으면 종로패가 장악하고 있는 무교동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종로패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망나니들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종로 쪽으로의 나와바리는 침범치 않았다.

그 자신뿐 아니라 부하들에게도 엄명했다.

만부득이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서 술을 마시게 되는 때도 혼마찌나 아사히마찌라면 모를까,

종로 쪽으로는 발을 뻗지 못하게 했다.

그만큼 다께다는 김두한패에게 애초부터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처럼 조심하고 그처럼 경원해 온 종로패가,

이렇다 할 원한을 산 일이 없는 듯싶은데 무슨 억하심정에서인지 벼락처럼 쳐들어온 것이다.

과연 종로패는 소문처럼 무서웠다.

아니, 소문 이상으로 무서웠다.

어깨를 문어 다리처럼 흐느적거리며 들어섰던 고로스께의 칼솜씨도 끔찍했지만,

그 말투부터가 징그럽도록 무서웠다.

여드름이 덕지덕지한 꼬마 녀석은 너무 작아서,

한번 움켜쥐면 빈 성냥갑처럼 박살을 낼 수 있을 것 같았건만

움켜잡히긴커녕 제비처럼 민첩했다.

그의 작은 몸집에 무슨 힘, 무슨 기술이 있어서인지,

그의 손과 발이 스쳤다 하면 영락없이 꽈당꽈당 쓰러졌다.

스스로 ‘긴또깡’이라 자칭한 김두한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인상이었다.

얼굴이 얽은 데다가 여드름까지 나서 두툴두툴한 것이,

나쓰미깡(여름 밀감)의 껍질만 같다.

뱀눈 같은 작은 눈에서는 파란 불이 이는 것 같았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쇠붙이가 갈라지는 소리 같았다.

게다가 그 괴력은 무엇인가,

몰려든 일본패들을 마치 옷에 묻은 쐐기풀을 털어내듯 뜯어 내팽개치지 않았는가.

오죽 무서웠으면 다께다구미의 선봉장이라 할 오이데가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하고 말았을까.

그런데 바로 그 김두한패가 다시 쳐들어오겠다고 공언을 한 것이다.

다께다는 소름이 끼칠 만큼 두려웠다.

다케다는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았다.

그것 이상으로 종로패의 강력함을 절감한 것이다.

(김두한패가 다시 쳐들어오면 어쩐다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경찰에 의뢰해서 경비를 강화하는 것밖에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의 일이지, 항구적인 대책이 될 성싶지도 않았다.

그 보다는 김두한에게 직접 손을 써서 화해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나서서 김두한과 협상을 한단 말인가.

그것은 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다.

그러던 터에 마침 좋은 계기가 생겼다.

다께다는 종로꼬마가 던진 전화기에 머리를 다쳐,

길 건너 메이지의 사사끼 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유혈이 있었지만 큰 상처는 아니었다.

상처 부위도 크지 않아 붕대를 감는 대신 커다란 거즈에 반창고를 붙였다.

막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올 때였다.

혼마찌깡의 다니구찌와 맞닥뜨린 것이다.

혼마찌깡에서 거물 취급을 받는 다니구찌와는 고향이 같은 후꾸오까(福岡)라는 인연도 있어,

혼마찌깡패 내에서는 비교적 말이 통하는 사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다니구찌가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면서 물었다.

“응, 좀…….”

다께다는 무안을 당한 것처럼 지레 얼굴이 붉어졌다.

“종로패가 난동을 부렸다구요?”

다니구찌는 눈치를 살피듯이 물었다.

그야, 밤도 아닌 낮에 일어난 소동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바닥에 소문이 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하지만 사건 내용을 훤히 알고 있는 다니구찌에게, 다께다는 입맛이 썼다.

그러나 김두한패에게 당한 것은 혼마찌깡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피장파장한 처지에 좀 뻔뻔스러워져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굉장한 놈들이어서 말요.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 쳐들어왔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단 말요.”

“워낙 질이 고약한 놈들이니까요.”

“그러게도 말요. 또다시 쳐들어오겠다더군.”

“처치 곤란한 놈들이어서……. 난처한 일이겠군요.”

“시국이 시국인데, 일일이 경찰에 부탁할 수도 없고, 무슨 길이 없을까?”

“글쎄요.”

다니구찌는 능청스럽게 다께다를 훑어보았다.

사실 다니구찌는 사건의 자초지종을 훤히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께다 자신이 얻어터져 사사끼 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물론 그곳이 혼마찌깡의 나와바리 내의 일이니까.

이를 알고, 일부러 다께다의 눈치를 살피러 나온 것이었다.

물론 두목 하야시의 분부였다.

“힘을 모아서 역습으로 김두한패에 보복을 하든가……,

아니면 차라리 우리 아니끼에게 의논을 하는 편이 좋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