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84

오늘의 쉼터 2014. 8. 27. 12:48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84 

 

 

그동안, 다께다구미 사무실 안에서는 여전히 혈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종로꼬마는 어쩔 수 없이 수세에 몰릴밖에 없었다.

아무리 싸움에 이력이 나 있는 그들이라 하지만, 우선 수적으로 힘이 달렸다.

다루마찌가 2층에서 빠져나간 다음 종로패는 단 4명뿐이었다.

쓰러뜨리고 넘어뜨리고, 마구 휘갈겨 일본패의 부상자가 바닥을 메웠어도

어디서 오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계단 위로 기어 올라왔다.

요즘의 표현대로 하면 ‘인해전술’이었다.

종로꼬마는 싸우고 또 싸워 스스로 지쳐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주먹이 번개같다고 해서 번개란 별명까지 얻은 만석이

쇠 막대로 어깨를 얻어맞고 나가떨어졌고,

싸움에는 역시 한 수 아래인 심청은 몇 놈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바람에

견디다 못해 밑에 깔리고 말았다.

종로꼬마와 곤또 용호만이 서로 등을 맞대고 서서 무수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종로꼬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그러나 상대가 눈치채지 않도록

가볍게 연 입술로만 내뿜으면서, 그 독특한 스타일인 중국무법 십팔계의 방어 비법으로

두 주먹을 꼬나 들고 있었다.

종로꼬마와 등을 맞대고 선 곤또 용호도 한쪽 손에 단도를 움켜쥐고

꾸부정하게 허리를 낮추고는, 어느 때라도 찌를 자세로 두 팔을 휘이휘이 내젓고 있었다.

등을 맞대고 선 둘은 완전한 수세였지만 거기에 빈틈이라고는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일본패들은 둘을 포위하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다가들지를 못했다.

언제 그 작은 몸집이 튀어 올라 걷어찰지 몰랐고,

또 언제 그 능숙한 칼잡이의 칼날이 번뜩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더 다가서고 더 물러설 수도 없는 비좁은 장소에서 몸보다 호흡이 일진일퇴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구 치고 때리는 백병전보다 더 무겁고 처절한 긴박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때였다.

아래쪽에서 쇳소리가 섞인 노호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 긴또깡이닷! 선뜻 비키지 못해!”

물론 조선말로 소리쳤다.

일본놈들이 알아들으라고 소리친 것이 아니었다.

종로꼬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김두한이 소리친 것이다.

과연 그 효과는 컸다.

종로꼬마와 곤또 용호는 안심되는 것 이상으로 용기가 치솟았다.

반면 일본패들은 ‘긴또깡’이란 한마디에 벌써 주눅이 들고 말았다.

긴박감으로 충일해 있던 방 안이 일순 술렁이는 것 같았다.

그 틈을 놓칠 종로꼬마가 아니었다.

휙 뛰어오른 종로꼬마의 두 발은 허공을 가르면서,

둘러싼 상대의 누구라 할 것 없이 걷어찼다.

걷어찼다기보다 걷어 올렸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지 모른다.

뛰어오른 몸이 허공에서 수평을 이루었다기보다,

 순간적으로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머리가 바닥에 닿을 듯이 하고 걷어차 올렸으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면서 오뚝이처럼 발딱 서서

다음 먹이를 향해 시퍼런 눈알을 번뜩이는 것이었다.

 

거기에 아래층으로부터는 김두한을 필두로 한 종로 패거리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이제는 일본패가 아래위에서 협공을 당하는 꼴이 되었다.

단숨에 2층으로 뛰어오른 김두한과 망치 등의 패거리들은 일본패를 때리고 치는 것이라기보다,

달라붙어 있는 물체를 하나씩 떼어놓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덜미를 틀어쥐고 내동댕이를 쳤다.

종로꼬마와 곤또 용호를 포위하고 있던 일본패들은 도망칠 길도 잃고 안쪽으로 쏠려 들어갔다.

어느 놈 하나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는 자가 없는 듯했다.

몸집이 작은 종로꼬마나 곤또 용호에 비해 월등하게 거대한 모습의 김두한을 바라보며

완전히 전의를 잃고 있었다.

그 너절한 모습의 일본패를 바라보며 김두한도 싸울 마음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2층까지 뛰어오른 기세로 한마디 쏘아붙였다.

“나, 잇뽕 긴또깡이다. 누구든 맞상대할 놈이 있으면 나와봐.”

그의 작은 눈이 일본패의 면면을 두루 훑어보았다.

그러자 김두한의 조선말을 누가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앞으로 나서는 자가 있었다.

“마잇다(항복했소). 용서해 주시오.”

그자는 맨바닥에 무릎까지 꿇는 것이었다.

약자에게 강하게 굴고,

강자에게 비굴한 일본인의 습성을 그대로 드러낸 모습이라고나 할까.

김두한은 맨바닥에 꿇어앉은 자를 오히려 연민의 마음을 갖고 내려다보았다.

이처럼 비굴하고 무기력한 자와 싸우고 있다는 것에 맥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동시에 이러한 놈들에게 조선인들이 갖은 수모와 함께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게, 너무나 서글프게 느껴졌다.

“박사, 수고했어. 심청이가 다친 모양인데,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 봐.”

김두한은 꿇어앉아 있는 자 옆에 나둥그러져 있는 심청을 발견하고는 종로꼬마에게 일렀다.

종로꼬마는 이제 싸움이 끝난 것을 알았다.

더 이상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심청이나,

 어깨뼈가 으스러진 듯 고통을 호소하며 신음하는 번개 만석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똘마니 아이들에게 심청과 만석을 부축하여 들쳐 업게 했다.

그리고 2층에서 내려왔다.

종로꼬마가 사라진 다음,

김두한도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상대로부터 항복을 받아놓았는데, 남은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억울하면 언제든지 싸워줄 테니까 종로로 찾아와보란 말야.”

김두한은 곤또 용호로 하여금 자신의 뜻을 전달케 했다.

그리고 막 돌아서려 할 때였다.

“형님, 형님. 빨리 피하세요. 경찰이 몰려오고 있어요.”

아래층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쳤다.

“비겁한 놈들, 경찰을 불렀군.

우리는 우선 철수하겠어. 하지만 다시 찾아올 거란 말야.”

곤또 용호가 안쪽의 일본패를 향해 무서운 눈으로 노려본 다음

김두한과 그 패거리들은 철수를 했다. 아니, 뺑소니를 치기 시작했다.

종로 패거리들은 좁은 계단 아래로 뒹굴듯이 뛰어내렸다.

건물 밖으로 나온 김두한은 좌우 양쪽의 길을 둘러보았다.

경찰은 아직 닥쳐들고 있지 않았으나, 멀리서 호루라기의 경적 소리가 들렸다.

경적 소리는 점점 가까워왔다.

잠시 후, 멀리 수산 시장 쪽에서 검은 제복의 순사들이 연신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서대문 경찰서 쪽에서 풀려 나온 모양이었다.

“귀찮군, 튀어!”

김두한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듯 곁에 있는 김무옥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빨리 흩어져!”

김무옥이 소리를 질렀다.

종로패들이 메뚜기 떼처럼 흩어졌다.

잠시 후, 종로패들은 그 일대 노상에서 일제히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그것은 갯벌에서 노닐고 있던 게 떼들이 인기척 하나로

일제히 구멍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것과도 같았다.

그들은 싸울 때도 번개처럼 민첩했지만, 도망을 치는 데도 그만큼 날쌨던 것이다.

그제야 김두한은 서서히 경성부청(서울시청)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좌우에 김무옥과 망치가 따랐다.

김두한이라고 해서 경찰이 두렵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두려운 것 이상으로 성가신 존재였다.

붙잡히면 귀찮아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허겁지겁 도망을 치지 않았다.

부하 아이들에게 허둥거리며 도망가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경찰의 마음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은 싸움 현장에 달려오고는 있었으나,

싸움패를 해산시키려는 속셈일 뿐,

이들을 붙잡아갈 마음이 없다는 것을 읽은 것이다.

그들이 체포할 뜻이 있다면 구태여 멀리서부터

경적 소리를 울려대며 달려올 것이 없지 않은가.

사람이 호랑이를 두려워하지만,

호랑이 편에서는 사람이 또한 두려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먹패들이 경찰을 두려워하지만,

경찰 편에서도 주먹패들이 또한 두려운 것이었다.

붙잡아도, 사상범을 체포한 것만큼 큰 공도 되지 않으며,

체포를 하고 난 뒤가 또한 성가신 것이다.

언제 어느 때 감쪽같은 보복의 손길이 뻗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도둑은 붙잡는 쪽보다도 쫓는 쪽이 현명한 것이라고,

경찰은 도둑이 튀도록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경찰이 싸움 현장으로 달려왔을 때는 종로패들이 완전히 모습을 감춘

다음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순사들은 다 타고 난 다음의 화재 현장을 점검하는 소방수처럼

다께다구미 사무실 안을 둘러볼 뿐이었다.

“아니, 어떤 놈들의 소행이오?”

“이처럼 큰 싸움이 붙었는데,

이곳 교번소(交番所: 파출소)에서는 무엇들을 하고 있었단 말야?”

순사들은 엉망으로 파괴된 건물 안과 여기저기 시체처럼 나둥그러져 있거나

피를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부상자를 바라보면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투정을 부리며 혀를 찰 뿐이었다.

“어떤 놈들의 소행인지, 철저한 조사를 하겠소!”

얻어터져 우거지상이 된 다께다에게 경찰 간부 하나가 마지못해 한마디를 뇌까렸다.


김두한과 그 패거리들은 무사히 종로로 철수했다.

그러나 만약에 대비해서 함께 몰려 있지는 않았다.

아지트인 조양 여관이나 가찌도끼 바로도 가지 않았다.

그는 거처를 파도다 공원 뒤 낙원 여관으로 옮겼다.

여차하면 파고다 공원의 돌담을 뛰어넘어 숨기도 쉽고

튀기도 쉬워 자주 이용하는 여관이었다.

동행은 김무옥과 망치뿐이었다.

종로꼬마는 싸움에서 다친 심청과 번개 만석을 보살피느라 따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밤,

경찰은 종로패를 뒤쫓지 않았을뿐더러 검거의 손길을 뻗친 듯한

증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놈들의 소행인가 뒷조사를 철저히 하겠다고 경찰 간부 하나가 다께다 앞에서

흰소리를 쳤지만, 그것은 당장 눈앞에서의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누구의 소행이었는지를 알려고 들었다면, 그것은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이미 얼굴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김두한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다께다구미의 사무실로 나타나서 ‘긴또깡’이라고 호통까지 쳤었다.

김두한뿐이 아니었다.

곤또 용호도 아사꾸사의 칼잡이 곤또라고 자칭하고 나서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경찰은 수사나 검거의 손길을 뻗치지 않은 것이다.

정말로 혼마찌깡의 하야시가 뒤로 손을 써서 사건을 무마한 것일까.

아니면 다께다도 명색이 야꾸자인지라,

그들 세계의 불문율을 지켜, 고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일까.

김두한 일당의 신분이 훤히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잠잠했던 것이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종로는 평온했다.

김두한은 낮이면 평소와 다름없이 관철동 골목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김두한은 경찰이 손을 뻗쳐오지 않는다 해서 마음이 홀가분할 것이 없었다.

다께다구미를 때려부순 것만으로 목적이 달성된 것이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혼마찌패나 남대문 시장패와의 약속은 그것이 아니었다.

다께다패가 혼마찌나 남대문 시장에 얼씬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그 세력을 꺾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경찰의 개입으로 하여 중도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죽이려면 철저히 죽여야지 설 죽이면 안 된다.

다께다도 명색이 야꾸자가 아닌가.

언제 어느 때 어떤 방법으로 보복을 가해 올지 모른다.

다께다로부터 확실한 다짐을 받아두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다시 쳐들어갈 수밖에 없겠어…….”

김두한은 속마음을 김무옥에게 털어 보였다.

“혼이 난 다께다가 당분간은 쪽을 못 쓸 거야.

하지만 너무 혼이 났으니까 자체적으로 경비를 더욱 강화하고 있을 테고,

경찰에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테니까,

당분간은 무턱대고 쳐들어가는 것이 곤란할 거야.

내가 나가서 사정을 살펴보고 오지.”

중국인 거리에 사정이 밝은 김무옥이 정보를 얻으러 나간 다음이었다.


김무옥이 밖으로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새벽에 삼청 공원으로 함께 운동을 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

도중에서 볼일이 있다며 갈렸던 망치가 뜻밖에도 혼마찌깡의 김동회와 함께

여관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김두한은 몇몇 부하만을 거느리고 아직도 아지트인 조양 여관으로 돌아가지 않고,

잠은 낙원 여관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어젯밤부터 얼마나 찾아다녔는 줄 아냐? 두한아, 너 무엇 때문에 여기서 묵고 있지?”

김동회는 들어서면서부터 벙싯벙싯 웃고는 있었으나,

생각 탓인지 눈매가 냉소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물결쳤다.

아직껏 피신해 있는 것을 빈정거리고 있는 것일까.

“무옥이를 못 봤냐?”

“아니.”

“방금 나갔는데, 그사이 길이 어긋난 모양이지?”

김두한은 스스로 말하면서,

김동회와의 대화에서 주제를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은 그의 출현이 어느 때 없이 껄끄럽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필시 그가 완벽하게 성공을 거두지 못한 다께다 사무실 습격 사건을

따지러 온 것이려니 생각했던 것이다.

“이번에 너, 정말 수고했어!”

마루 위로 올라서며 말하는 그의 말투도 평소와는 같지 않은

고자세인 것만 같아 비위에 거슬렸다.

“왜, 너의 오야붕이 뭐라 하던?”

김두한의 대꾸도 자연 퉁명스러운 것이 되었다.

“응, 아주 고마워하고 있어.

아, 글쎄 다께다가 너와의 중재를 하필이면 하야시 형님에게 부탁을 해왔으니까.”

“뭐라구?”

김두한은 막혔던 귀가 번쩍 트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도 되지 않았고, 납득도 할 수 없었다.

김두한이 다께다구미를 습격한 것은 사실 하야시의 사주에 의한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김두한과의 중재나 화해를 하야시에게 요청했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 내용인즉 이러했다.

기실, 다께다는 다께다구미를 이끌어온 두령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노가다 출신의 토목 건축업자에 지나지 않았다.

뿌리부터, 주먹패인 야꾸자일 수가 없었다.

하긴, 그의 부하 중에도 힘깨나 쓰는 우락부락한 놈들이 적지 않았다.

총독부나 중앙 관서의 공사를 많이 따게 되어 부를 이룩해 가자,

본격적인 주먹패들이 그 밑으로 기어들어 그 세력은 점점 커갔다.

특히 혼마찌깡에 불만을 품은 건달들이 꾀어든 것이다.

세력이 어지간히 커지자, 다께다의 콧대는 점점 높아갔다.

부하들이 부추기기도 했겠지만,

일본인 상업구의 중심지라 할 혼마찌나 아사히마찌 일대가 탐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 터에, 하야시는 종로패와의 수표교 싸움에서 참패를 보아 크게 망신을 당한 것이다.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은 당연한 순서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