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82

오늘의 쉼터 2014. 8. 27. 12:45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82 

 

 

무엇보다 김무옥이 입원해 있는 동안 금문루에 함께 있었던 중국 여자가 자주 병원에 왔다.

이 여자뿐만 아니라 그녀보다는 나이가 몇 살 더 들어 보이는,

조선말과 일본말이 제법 유창한 여자와 중국 남자도 이따금 병원을 찾아왔다.

이들이 문병을 올 때면, 과일이며 중국의 마른 음식 등을 잔뜩 들고 왔다.

이들 중국인들이 김무옥과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금문루 현장에 있었던 여자가 아닌,

그녀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들어 보이는 여자가 좋게 말해서 김무옥의 애인이라는 것이었다.

금문루에 있었던 젊은 여자는 그 여자와 성이 다른, 이를테면 교제 동생이라 했다.

한자음(漢字音)으로 어떻게 쓰는지는 몰랐지만,

차인친이라 부르는 김무옥의 중국인 애인은 늘씬한 키에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었다.

당시만 해도, 젊은 중국 여자들 가운데 전족한 여자가 많았는데, 차인친은 전족을 하지 않았다.

발이 큰 건장한 모습에 아오자이 차림의 늘씬한 매무새로 허벅지를 살랑거리고

나타나면 누구나 한 번 치켜 쳐다보지 않을 수 없을 만한 미인이었다.

이러한 미인이 어떻게 보잘것없는 조선인 건달패의 애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실인즉, 차인친은 주로 거물급 일본인만을 상대하는 고급 창녀였다.

아무리 일본인만을 상대한다고는 하지만,

예외가 있을 수 있어 때로는 조선인도, 같은 중국 사람도 받아들이곤 했다.

하지만 이 경우도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고 돈푼깨나 있는 남자들만 상대했다.

이 중국인 촌에는 차인친과 같은 여자들이 서너 명이 있었고,

금문루의 싸움 현장에 있었던 여자도 결국은 이런 부류에 속해 있는 여자였던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이런 고급 매춘부가 돈도 없고 지체도 없는

김무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김무옥은 자기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밝히기를 꺼렸지만

거기에도 까닭이 있었던 듯싶다.

사실 차인친은 고급 매춘부 노릇을 하는 이외에 중국인 촌에 따르게 마련인

아편 밀매업의 큰손이었고, 몇몇의 아편 운반꾼이며 정보원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아마 김무옥도 어떤 루트의 아편 운반 책임자였을지도 모른다.

그 대가로 적당한 보수 이외에 그녀의 허연 속살을 더듬을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김무옥의 여자 편에서도 탐을 낼 만큼 젊고 건강하고 씩씩한 사나이였으니까.

이야 어찌 됐든, 김무옥이 한사코 입을 봉했으므로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었지만

차인친은 그의 애인으로 통했고, 그것은 건달패들에게 많은 부러움까지 샀다.

김무옥은 아무튼 넉 달 동안의 입원 끝에 퇴원을 했다.

그동안의 입원비는 김두한이 거의 전담하다시피 한 것이다.

이후 그는 김두한의 오른팔 격인 심복이자 친구가 되었는데,

이제 차인친을 이용할 수 있는 진가를 보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굳이 차인친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김무옥 자신의 말 그대로, 중국인 촌 사정에 그는 빠삭했던

(사정에 훤하다는 전라도 사투리) 것이다.

특히 아편 밀매 루트에 사정이 밝았다.

언젠가의 일이다.

중국인 촌 아편 밀수 조직에 일본 헌병이 가담하고 있었다.

고(伍長: 하사급) 계급의 하사관이었다.

그는 아편 밀매의 운반책이었다.

처음에는 사복을 하고 다녔다.

은박지나 기름 종이에 싼 빨랫비누 두 개만한 덩어리를 목침 모양의 상자에 담고,

한꺼번에 네다섯 개씩 운반했다.

그것이 어떠한 경로에서인지 종로패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어떠한 경로를 통한 것인가는 불문가지한 일이었다.

종로꼬마나 다루마찌 등 종로패에게 번갈아 기습을 당하여

물건을 빼앗기기 몇 차례에 이르렀다.

그는 운반 방법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담하게 헌병 정복 차림을 한 것이다.

당시, 일본 헌병은 장교나 하사관이나 모두 허리에 커다란 군도(軍刀)를 차고 다녔다.

그는 그 긴 칼의 칼날을 없애고, 칼자루만 남게 하고는 칼집 속에 아편을 가루로 만들어

가득 채운 뒤, 그것이 군도인 양 몰래 운반하고 다녔다.

교묘하기 이를 데 없는 방법이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교묘한 방법도 이내 종로패에 알려지고 말았다.

그 정보가 어떻게 해서 새어 나왔고 어떻게 종로패에 알려졌는가,

그것도 물으나마나 한 일이었다.

물론 이 방법으로 몇 번 운반에 성공은 했겠으나, 결국 들통이 나고 만 것이다.

밤에만 몰래 운반을 한 헌병은 남대문 염천교 근처에서 잠복중에 있던

종로꼬마·다람쥐·다루마찌 일당에게 포위되었다.

“조용히 칼을 푸는 것이 좋을걸.”

일본말이 통하는 다람쥐가 헌병을 가로막고 말했다.

“뭐라고? 베어버릴 테다.”

헌병은 칼자루를 움켜쥐고, 칼을 뽑아들 시늉을 했다.

그러나 그 칼이 알맹이가 빈 것이라는 것을 훤히 알고 있는 종로패들이었다.

칼집 안에는 아편 가루가 가득히 채워져 있을 것이었다.

“뽑을 테면 뽑아봐.”

다람쥐가 대꾸했으나,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종로꼬마의 작지만 민첩한 몸이 허공으로 떴다.

검은 물체가 하늘로 솟구쳤는가 싶더니,

보다 큰 검은 물체가 어디를 어떻게 걷어차였는지

‘윽!’ 외마디소리와 함께 뒤로 나자빠졌다.

다루마찌가 잽싸게 달려들어 군도를 끌러냈다.

무장 해제와 함께 거뜬히 물건을 강탈할 수 있었다.

빼앗은 아편은 회현동에 사는 어느 일본 상인에게 팔아 활동비로 사용했는데,

장물아비인 일본 상인들은 그런 아편을 다시 제조하여 다른 루트를 통해

중국인 촌이나 일본인 애용자에게 넘겨 팔곤 했다.

물건을 빼앗긴 헌병은 헌병의 신분으로 아편 밀매 조직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

탄로날까 두려워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이처럼 종로패에서는 한때 아편의 운반책인 일본 헌병을 습격하여 짭짤한 재미를 보았었다.

그것이 김무옥이 정보를 제공했었기 때문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김두한이 중국인 촌을 지배하고 있는 다까끼구미나 다께다구미에 대한 작전권을

김무옥에게 일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당시 아편은 중국인들만 애용했던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나 조선 사람들 중에서도 즐겨 복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긴, 아편만한 양약(良藥)은 세상에 드물 것이다.

그것이 습관성·중독성만 없으면 말이다.

이른바 위경련, 토사곽란으로 죽을 듯이 뒹굴다가도 눈곱만큼의

아편만 복용해도 거짓말처럼 깨끗이 낫게 된다던가.

뿐만이 아니다. 이를 먹어보거나 냄새를 맡아본 일조차 없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를 한번 먹고, 아니면 빨고 성행위를 하면

자유자재로 자기 자신을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요지경인지 무아경인지 그야말로 말할 나위 없는 황홀경에 빠져든다던가.

그러나 그것은 이에 입을 댄 처음의 몇 차례뿐,

계속해서 먹거나 냄새 맡거나 주사를 맞지 않으면

사지가 뒤틀리는 고통을 겪게 될뿐더러,

그저 습관성·중독성만 가져다 주어 마침내는 얼굴이 꺼멓게 타고

 피골이 상접하여 끝내 죽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시적인 호기심이나 유혹에 빠져 이에 손을 대는 자가 많았고,

심지어 나라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조선의 인텔리조차 이 길에 잘못 들어

패가망신하는 자가 많았던 것이다.

조선총독부에서는 아편의 밀재배나 아편의 밀거래를 단속은 했다.

그러면서도 은연중 이를 눈감았던 것은,

중국이나 조선의 인텔리층을 패가망신케 하려는 음흉한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농촌에서 반공공연하게 아편 재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홍콩(香港) 등지로부터 아편이 공공연하게 밀수입되는 것을 묵인한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편이 홍콩에서 들어올 때는 흔히 가루로 된 것이었다.

나무 상자로 된 곽에는 빨간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아편 가루는 빳빳한 종이, 기름종이, 은박지의 세 겹으로 싸여 있었다.

일본놈들은 중국인에게, 그리고 조선 사람에게 이 독가루를 뿌린 것이었다.

그것을 총독부나 헌병대의 묵인 아래, 주로 일본 주먹패들이 관장해 온 것이다.

그 일본 주먹패가 다름 아닌 중국인 촌을 장악하고 있는

다까끼구미와 다께다구미였던 것이다.

“뭐라고? 다까끼구미·다께다구미 그놈들이?”

김두한은 김무옥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놈들을 습격할 수 있는 구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이로 해서 말썽이 나도 뒤는 혼마찌깡의 하야시가 봐주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었다.

이른 시간에 이미 거나하게 취한 종로패는 벌써 행동을 개시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김두한을 비롯한 20명도 넘는 건장한 주먹패들이,

아마존 강가의 스멀거리는 악어 떼들처럼 어슬렁거리며 우미관 골목을 빠져나갔다.

서두르지 않는 그 어슬렁거리는 듯한 걸음걸이와 거동에는 비장미가 있었다.

아무리 싸움을 밥 먹듯 하는 그들이지만, 한바탕 싸우러 나설 때는 언제나 긴장했다.

싸움 자체가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언제나 싸우고 나서의 결과가 고약했기 때문이다.

특히 싸움이 일본놈들을 상대로 할 때면,

언제나 경찰이 말썽을 일으켰다.

때문에 일본놈을 습격할 때는 언제나 쥐도 새도 모르는

후이우찌(기습)를 원칙으로 했다.

하지만 이번 싸움에는 경찰이 뒤를 봐줄 것이라는

혼마찌깡과의 신사 협정이 맺어져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대오를 이루고 거리를 행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나나 둘, 더러는 삼삼오오로 흩어져서 중국인 촌으로 향해 가는 것이었다.

집결 장소는 덕수궁 정문 앞으로 되어 있었다.

다께다구미의 사무실이 바로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도로 폭의 확장으로 없어졌지만,

신촌 쪽으로 향해 가는 대로 모퉁이 2층 건물이 다께다구미의 사무실이었다.

종로패가 덕수궁 정문 앞에 집결했을 때는 그 총세가 30명도 넘어 있었다.

두목 김두한을 비롯한 수뇌급 주먹패들이 우르르 나서는 것을 보고,

어떤 명령이나 지시를 받지 않고도 낌새만으로 눈치를 채고

거리의 똘마니들이 따라나섰기 때문이었다.

30명도 넘는 주먹패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면,

사무실을 쑥밭으로 만들 정도가 아니라,

2층 건물을 단숨에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목만 집중시킬 뿐 무모한 짓이다.

한 마리 닭을 잡는데 도끼까지 휘둘러댈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까짓 다께다구미를 쓸어버리는 데에

두목 이하 전종로패의 주력이 집중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멀리 가까이, 다께다구미의 사무실을 이중삼중으로 포위하고,

돌격대 몇몇만이 우선 쳐들어가기로 했다.

물론 건물을 포위하고 있는 남은 세력들도 여차하면 돌격대에 가담할 것이었다.

돌격 대장은 지명할 것도 없이 자진해서 나선 종로꼬마가 맡았다.

종로꼬마가 나머지 대원을 지명했다.

“너, 너.”

그는 앞에 선 몇 명을 그저 턱으로만 가리켰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가 종로꼬마 자신이 수족으로 부리는 심복들이었다.

심청·다루마찌·번개라는 별명의 만석이,

그리고 일본에서 살인을 하고 쫓겨 왔다는,

 칼자국을 S자형으로만 남긴다는 칼잡이 곤또 용호가 이들이었다.

종로꼬마를 선두로 한 5명이 민첩하게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제기랄! 까짓, 200원 도로 토해 내겠다니까!”

망치가 김두한을 바라보며 억울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종로꼬마를 위시한 5명이 다께다구미의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아래층도 그러했지만 사장실이 있다는 2층의 넓은 사무실도

썰렁하게 느껴질 정도로 한산했다.

여자 사무원과 역시 사무원 차림의 젊은 사나이가 띄엄띄엄 흩어져 앉아 있을 뿐이었다.

종로꼬마는 좀 맥 빠진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사무원 하나가 또렷또렷한 말로 물었다.

물론 일본말이었다.

종로꼬마는 이에 대답할 말을 알고 있지 못했다.

더러 일본말을 알아들을 줄은 알았지만,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종로꼬마가 알아들을 수 없는 유창한 일본말로 대꾸한 것은

일본 야꾸자에서 살인을 하고 쫓겨 온 곤또 용호였다.

“너 같은 계집애에겐 용무가 없어. 다께다 군을 불러줘.”

여사무원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사장실의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이미 사무실 내의 내부 구조를 알고 있었던 종로꼬마는

여사무원이 쳐다본 사장실의 방문을 발길로 차고 뛰어들었다.

방 안의 사람들이 이 난입자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뛰어든 종로꼬마도 후딱 놀라고 말았다.

넓은 사장실, 장탁자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양복 차림의 정장한 사람도 있었지만, 일본옷 차림도 눈에 띄었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전형적인 일본 노가다의 작업복 차림의 모습도 보였다.

아마도 무엇인가 그들대로의 회의를 열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야?”

“누구야?”

성급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제일 먼저 뛰어든 종로꼬마는 즉석에서 대답할 말을 갖고 있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역시 일본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곤또 용호가 대신 나섰다.

“나, 아사꾸사(淺草: 도꾜의 환락가)의 곤또라고 하는데…… 들어 본 일이 없었는지?

없었다면 불행한 일이지. 나, 좀 심술스러운……, 질이 좋지 않은 사내여서 말야…….”

일본 야꾸자 특유의 입술 끝으로만 말하는 것 같은, 유들유들한 말투였다.

게다가, 어깨를 뼈가 없는 문어 다리처럼 흐느적거리며 흔들어댔다.

방 안의 사람들은 완전히 기가 질려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살펴가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보아하니, 몸은 단단해 보였지만 키가 짤막한 사나이와 힘이라고는

전혀 있어 보이지 않는 사나이긴 했다.

하지만 이들이 퇴로를 차단하듯 출입구를 가로막고 버텨 서서,

그 많은 좌중을 무시하듯 느물거리고 있는 대담성에 압도를 당한 것이다.

게다가 두 사나이 이외에도 어른거리는 모습이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패거리들이 몰려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놈들은 완전히 독 안에 든 쥐의 꼴이 되었다.

“그래서 무엇을 요구하려는 건가?”

그래도 안쪽에 앉은 제법 덩치 큰 사나이가 탁자 위에 손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그런 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