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74

오늘의 쉼터 2014. 8. 27. 12:37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74

 

 

“관수동의 은신처라? 헛!

숨어 지내는 김두한의 낯짝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보고 싶어졌어.

당장 가보도록 하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하야시였다.

김동회도 놀랐으나, 다무라도 놀랐고 오까무라도 놀랐다.

어지간한 일엔 직접 나서는 일이 드문 두목 하야시가

이처럼 서둘러대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술기운 탓인 것일까, 경솔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니, 놈의 은신처라고는 하지만 거기는 그의 소굴입니다.”

오까무라가 처남다운 염려로 말했다.

“호랑이 새끼를 얻으려면 호랑이 굴을 찾을밖에 없지.

좋은 일은 서두르라 했거든…….

아무 염려할 것 없어.

다무라 군이나 따라와 주지……. 우메하라,

너는 어차피 앞장서서 안내를 해야 하니 따라와 주고…….”

한번 단안을 내리면 망설이는 법이 없는 하야시였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옷도 갈아입지 않은 하오리 하까마 차림 그대로,

더구나 주기가 남아 있는 얼굴로 적진 깊숙이 찾아들다니!

관수동 은신처에는 김두한뿐만 아니라,

우락부락한 망치·김무옥·종로꼬마 등이 우글거리고 있고,

한 발짝만 문 밖으로 나서도 똘마니급 주먹패들이 바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혼마찌깡의 두목이라 하지만 주먹의 힘에서는

하야시가 김두한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부두목 다무라도 싸움이나 힘에서는

시쳇말로 별 볼일 없는 바지저고리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한가락 하는 것은 김동회뿐이었다.

하지만 김동회도 김두한이나

그 패거리를 상대로 싸울 마음은 추호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많은 무리를 상대로 견뎌낼 수 있겠다는 자신 같은 것은 더군다나 없었다.

이쯤 되면 이쪽은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두목은 무엇을 근거로,

무슨 힘에 의지해서 김두한을 먼저 찾아가겠다는 것일까.

그것이 야꾸자 특유의 담력이란 것일까.

김동회는 솔직히 두목의 배짱에 혀를 내휘두를 만큼 탄복했다.

(종로패 애들이 두목에게 손끝이라도 대봐라.

목숨을 걸고서라도 두목을 옹위할 것이다!)

김동회는 비장한 각오로 하야시의 뒤를 따라나섰다.

하지만 두목이 무슨 생각, 어떤 복안으로 김두한을 만나겠다는 것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답답한 것 이상으로 안타까웠다.

혼마찌깡 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검은 승용차에 올랐다.

하야시의 전용 자가용 차였다.

앞자리에 김동회가 올랐고, 뒷자리에 다무라와 하야시가 탔다.

혼마찌깡에서 관수동까지는 지금의 중부서 앞을 지나 수표교를 건너면

이내 닿을 수 있는, 엎드리면 코에 닿을 만큼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그러나 하야시는 그 혼마찌 경찰서 앞을 지나지 않고,

일부러 우회해서 반대편 방향으로 차를 몰게 하는 것이었다.

경찰의 감시를 따돌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경찰의 미행을 피해 일부러 종로 3정목으로

우회한 하야시의 승용차는 관수동 국일관 앞에서 멎었다.

“제가 먼저 내려 김두한에게 전갈을 하고 오죠.”

“뭐, 그럴 것 없어.”

하야시는 머뭇거릴 것 없이 김동회를 따라 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국일관 앞이며 관수동 골목 안 버스 터미널 근처에 흩어져 있던

종로패의 똘마니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을 기색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의 긴장을 묵살하듯이 하고,

하야시 일행의 세 사나이는 유유히 뒷골목 쪽으로 들어섰다.

깊지 않은 뒷골목 안, 예의 옥금의 집 대문 앞에 섰다.

김동회가 대문을 흔들었다.

골목 밖에서 골목 안을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문이 열린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였다.

대문은 역시 옥금이 따주었다.

이미 김동회의 얼굴에 익숙해진 옥금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에 선, 하오리 하까마 차림의 사나이에게

의아함을 느껴서인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를 못 본 체하고 김동회는 안으로 뛰어들었다.

“두한아, 두한아! 하야시 형님을 모시고 왔어.”

그는 커다랗게 소리를 쳤다.

그러나 안에서는 이내 대답이 없었다.

방 안에서는 김두한을 비롯한 굵직굵직한 사나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무엇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 하야시와의 회담 대책을 의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데 김동회가 나타난 것이다.

으레 그가 다시 나타나리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하야시 본인을 모시고 왔다는 말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내로라 하는 혼마찌깡의 두목이 제 발로 걸어 먼저 찾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뭐? 하야시가?”

김두한은 잘못 들은 것이나 아닌가 싶어 부하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하야시가 왔다는데?”

김무옥이 확인을 해주려는 것처럼 말하고는 방을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김두한이 이를 제지했다.

“가만있어! 하야시가 직접 나를 만나러 왔다면, 내가 직접 맞아야지.”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두한은 하야시와 초면은 아니었다.

아직 우미관의 매점원을 하던 시절,

두목 김기환과 함께 일본 요정에서 그를 만난 일이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일본패의 두목이라는 지체도 달라서 감히 상대를 하지 못하여,

따분해서 몸을 비비 틀듯 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꾸스이 사건 이후에도 술집에서 그와 잠깐 부딪친 일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랐다.

두목과 두목의 대등한 위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찾아온 상대편의 두목은 마땅히

두목인 김두한 자신이 친히 맞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는 방을 나갔다.

 

방을 나온 김두한은 너무나 놀라워서 몸이 굳어져 버리기나 한 것처럼

마루 위에 뻣뻣하게 서 있었다.

김동회가 하야시 형님을 모시고 왔다는 말을 방 안에서부터 들었지만,

어디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쯤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하야시는 다무라만을 대동하고 조용한 걸음걸이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었다.

얼굴에 화사한 미소까지 담고 있었다.

김두한은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하오리 하까마 차림의 사나이, 그는 어김없는 하야시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그는 일본옷 차림으로 나타났단 말인가.

이렇다 할 부하도 거느리지 않고,

종로패 주먹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소굴로 찾아든 하야시의

무모하다 할 정도의 대담성에 경탄을 한 것이다.

(역시, 대단한 놈이다!)

김두한은 실로 탄복을 하고 말았다.

탄복을 하면 이내 감격을 하고 마는, 아직은 그런 순진함도 있었다.

“오오!”

김두한은 허둥거리듯 하고 마루 아래로 뛰어내리면서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니, 정말 하야시 상 아냐! 하야시 상이 여길 다 찾아오다니!”

김두한은 김동회 쪽을 쳐다보며 물색없이 소리치기까지 했다.

“두한 아우님, 오래간만이오.”

그러자 하야시보다 한 걸음 앞서 앞으로 나서면서 손을 내민 것은 다무라였다.

김두한과 다무라는 구면이었다.

두세 차례 자리를 함께 하며 술을 마신 일도 있었다.

다무라는 같은 조선 사람이어서 말이 통해 좋았다.

김두한보다 나이도 사뭇 윗길이어서, 호형호제하며 터놓고 지냈다.

조선말을 모르는 하야시와 일본말을 모르는 김두한의 사이에서

통역을 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려니 했다.

그가 혼마찌깡의 부두목이라고는 하지만,

싸움이나 주먹의 힘에서는 보잘것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번 수표교 싸움에서도 증명된 일이었다.

그는 맨 앞줄에 앞장섰다가 막상 싸움이 붙으니까 제일 먼저 뒤꽁무니로 처졌다.

“오래간만일 것도 없죠. 지난번 수표교 위에서 형님의 얼굴을 보았으니까요.”

김두한은 일부러 빈정거리듯 말했다.

다무라는 씁쓰레하게 고소를 흘렸다.

“그런데 형님들이 날 찾아오시다니 웬일이시오?”

김두한은 다무라보다 하야시 쪽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해사한 얼굴의 말쑥한 ‘일본 신사’인 하야시는

인심 좋아 뵈는 야실거리는 듯한 미소를 연신 담고 있었다.

도저히 주먹계의 두목답지 않은 풍모라고나 할까.

“하야시 형님께서 두한 아우님과 직접 얘기를 나누고 싶다 하셔서 모시고 왔소.”

“좋소이다. 누추하지만 안으로 들어오시죠.”

몸을 돌린 마루 위에는 김무옥·망치·종로꼬마,

그 밖의 주먹패들이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숲 속의 거목처럼 버텨 서 있었다.

 

김두한이 안내를 하자,

하야시는 주저하지 않고 마루 위로 올라섰다.

종로꼬마만이 키가 작았을까,

마루 위의 사나이들은 우러러 쳐다볼 만큼 컸고, 바윗등처럼 늠름한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하야시는 조금도 억눌린 듯한 느낌이 없는 당당한 모습으로 마루 위로 올라섰다.

김두한은 하야시를 아랫목 쪽으로 모셔 앉혔다.

“도대체 날 찾아주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오.”

김두한도 그 앞에 마주 앉으며, 하야시 쪽보다 다무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하야시는 다무라의 통역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통역을 기다릴 필요가 없이,

그는 조선말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대답은 일본말이었던 것이다.

“지난번의 충돌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었소.

 내 본의는 아니었지만 미안하게 되었소. 진실로 사과하고 싶소.”

하야시는 맨바닥에 손바닥을 짚지도 않았고 고개를 낮게 숙이지도 않았지만,

정중하게 사과했다.

물론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그의 일본말을 김두한은 이해하지 못했다.

다무라가 재빨리 통역을 했다.

“그렇게 사과할 일을 무엇 때문에 했는지 난 모르겠단 말야. 허헛…….”

김두한은 웃었다.

통역을 통한 그의 말의 진의나 농도가 어느 만큼의 것인가

직접적으로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혼마찌깡 두목으로부터 사과를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말이오, 아우님! 우리 형님은 오늘도 경찰서에 가서 경찰 서장으로부터

아우님의 지명 수배를 풀 것과, 그 싸움으로 하여 체포된 전원을 석방하겠다는

확약을 받고 왔단 말이오.

지금쯤 아마 체포된 아이들이 풀려났을 것이오.”

다무라가 보충해서 말했다.

그러나 김두한은 믿을 수가 없었다.

석방된 부하를 만나본 것도 아니고,

지명 수배가 풀렸다는 아무런 확증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도대체 하야시가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믿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병 주고 약 준다더니……,

무엇 때문에 우리를 돕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구료.

믿을 수도 없고…….”

김두한의 대답에 하야시는 역시 통역을 기다리지 않고 또 말했다.

마치 조선말은 알아듣기만 하고 말할 줄은 모른다는 듯이.

“여기까지 찾아온 날 믿어주시오.

난 앞으로 종로를 결코 넘보지 않겠소!

결코 당신네들을 적대시하지 않을 거요.

나도 입에 발린 사과는 하고 싶지 않소.

나의 진정과 성의를 표시하기 위해, 음…….”

하야시는 잠시 생각하는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응, 그게 좋겠군…….

혼마찌 입구 중앙우편국 자전거 보관소의 관리권을 당신네들에게 양도하겠소.”

그 말이 다무라에 의해 통역도 되기 전에 방 안엔 동요의 빛이 흘렀다.

김두한 이외에는 통역 없이 그 말뜻을 알아들은 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혼마찌 입구, 중앙우편국 자전거 보관소의 관리권.

그것은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는 도깨비 방망이나 엄청난 보물 단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쏠쏠한 이권인 것에 틀림없었다.

당시, 서울의 주요 교통 수단은 전차였다.

더러 노선 버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극히 일부 지역 노선에 지나지 않았고,

역시 전차만이 서민들 교통 수단의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전차도 주요 간선 도로에만 뻗어 있어서,

서민들은 주로 걷거나 자전거를 많이 이용했다.

자전거를 많이 이용했다고는 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계층은 흔히 상인이거나 요즘 고급 승용차쯤 굴리는 계층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삼천리호’ 새 자전거를 타면, 만인이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아줄 것임을 확신하는 듯 자전거 페달을 힘있게 밟곤 했던 것이다.

그만큼 자전거가 귀했으며 그만큼 가난했던 것이다.

새 자전거를 갖고 있는 ‘특수층’은 자전거 바퀴에 하나가 모자라서

두 개씩 자물쇠를 잠가놓는 형편이었다.

자전거 도둑이 많아 아무 데나 함부로 세워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전거 보관소가 필요해진 이유다.

더구나 혼마찌와 같은 상업 지구 번화가에는 상인들이며 쇼핑객,

혼뿌라(혼마찌 산책객)로 붐비는 곳이었다.

이들은 입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 우편국 옆 보관소에 맡기고 혼마찌로 들어섰다.

혼마찌 거리는 자전거를 몰고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편국 북쪽, 지금의 중국 대사관 정문 앞 담벼락에는

많을 때는 100여 대가 넘는 자전거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한 번 맡기는 보관료가 5전,

1시간을 초과하면 시간마다 1전인가 2전의 할증료가 붙었다.

혼마찌 입구는 자전거 보관소로도 노른자위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자전거의 보관소 관리권을 하야시는 김두한패에게 양도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김두한패들이 동요한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이제까지 그 관리권은 혼마찌깡의 입김 아래 있는,

남대문 시장 주먹패의 보스 ‘호오따이’가 갖고 있었다.

호오따이란 일본말로 붕대(繃帶)란 뜻으로,

그는 싸울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항상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호오따이란 사나이에 대해서는 후에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아무튼 이 호오따이가 갖고 있는 관리권을 김두한에게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위계질서가 뚜렷한 일본패라고는 하지만,

모처럼 틀어쥐고 있는 이 이권을 호오따이가 순순히 물려줄 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혼마찌 입구의 이 자전거 보관소는 거기서 돈이 들어온다는

가치 이외에 보다 중대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종로패의 금단 지역(禁斷地域)이라 할 혼마찌나

남대문 시장 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거점이 되는 곳이었다.

이를 알고도 하야시는 양도하겠다는 것이다.

김두한은 다무라의 통역을 듣고 나서도 도무지 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