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72

오늘의 쉼터 2014. 8. 27. 12:34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72

 

 

도대체 어디서 김두한을 찾아낸단 말인가.

김동회는 막막했지만 우선 우미관 골목으로 찾아들었다.

아직 이른 시각이고, 날씨가 쌀쌀해진 때문인지 극장 앞은 한산했다.

개관 시간도 아직 멀어서 극장 문은 닫힌 채로 있었다.

닫혀진 극장 안을 기웃거려보았다.

혹시 심청이 눈에 띄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얼씬거리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았다.

가찌도끼 바로 걸음을 옮겼다.

바의 문도 굳게 닫힌 채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술을 파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주먹패들이 많이 꾀어들어 있을 시각이었다.

문을 두드려보았다.

한참 만에야 문이 열렸다.

“언제 돌아오셨죠?”

웨이터 상길이었다.

그는 김동회가 만주에 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김동회를 보자 반가워하기는 하면서도, 어딘가 경계하는 빛이었다.

하긴 때가 때인 만큼, 혼마찌깡패의 김동회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나, 김두한을 어떻게든지 만나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지?”

“저도 만나뵀으면 하는데 어디 계신지를 알아야죠.”

“심청이나 망치는?”

“말도 마세요. 경찰에 붙들려 가지 않았으면 병원에,

병원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피해 있겠죠.

관철동 골목 안에 초상이 났어요, 초상!”

마치 그것이 김동회의 탓이기나 한 것처럼 원망 섞인 말투였다.

“글쎄, 그래서 말야, 어떻게든 두한이를 만나야겠어. 난, 막 만주에서 돌아오는 길이거든…….”

“두한 형님이 어디 계신지 알게 되시면 저에게도 가르쳐주세요.

저도 형님이 뵙고 싶으니까요.”

더 이상 상길과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함구령이 내려 있음이 분명했다.

콱 막힌 녀석이니까 곧이곧대로, 알아도 입을 열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이다.

(정진영이라면 말이 통하겠지!)

그는 수표다리를 향해 갔다.

먼빛으로 바라보는 수표교 밑도 어쩐지 썰렁해 보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다리 밑의 양아치·딱부리·아가리·애꾸·쌍밤 등이

경찰에 일망타진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수표교 쪽으로 발을 옮기던 김동회는 그에 못 미쳐서 우뚝 멈추어 섰다.

바로 다리 앞 팥죽집의 문이 열리면서 팥죽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도 팥죽 할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김두한과 함께 자주 팥죽을 먹으러 다닌 일도 있었다.

알은체를 하며 다가설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할머니가 커다란 옹기 자배기를 머리에 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동회의 머리에 섬광처럼 와닿는 것이 있었다.

유난히 팥죽을 좋아하는 김두한이다.

필시 숨어서 팥죽을 주문한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보자!)

 

그 시절 팥죽은 서울 시민들이 매우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팥죽집이 여기저기에 많기도 했지만,

팥죽을 자배기나 동이에 이고 다니면서 파는 아낙네도 적지 않았다.

자기 집에서 직접 팥죽을 쑤어 내다 팔기도 했지만,

전문적인 팥죽집에서 받아다가 팔기도 했다.

수표교 앞 팥죽 할머니 집에서도 팥죽을 받아가는 아낙네가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직접 동이를 이고 팔러 다니지는 않았다.

앉아서 팔아도 손님이 많은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환갑이 지난 할머니가 힘에 부쳐서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직접 동이를 이고 나서다니,

필시 거기에는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었다.

(두한에게 가는 것이다.)

김동회는 직감했고, 그 직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사실 김두한은 수표교 싸움이 있은 직후,

경찰의 눈을 피해 정릉의 보국사로 숨어들었었다.

거기서 망치·김무옥·종로꼬마 등 심복들과 함께 상처의 치료를 겸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상처의 치료라야 지극히 원시적인 것이었다.

싸움에서 상처를 입은 주먹패들은 어지간해서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멍이 들면 쇠고기를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요즘의 파스처럼 상처 부위에 붙였다.

좀더 심해 응골이 들면,

좀 지저분한 얘기가 되지만 오래된 똥물을 고운 비단 보자기에 걸러서는 마시고,

목욕탕에 가서 흠뻑 땀을 뺐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말짱해지는 것이었다.

김두한도 수표교 싸움에서 적지 아니하게 맞은 모양이었다.

어깻죽지며 허벅지에 시퍼런 멍이 든 곳이 많았다.

누구 한 사람과 맞붙어 싸우다가 맞은 것은 아니었다.

싸울 때는 몰랐지만,

이 사람 저 사람이 내휘두른 몽둥이에 얻어맞아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역시 쇠고기를 얇게 썰어 붙였다.

그 약의 효험도 있었겠지만 워낙 젊은 몸이라 쉽게 멍이 사그라졌다.

몸의 상처가 아물자 이제는 좀이 쑤셔 못 견딜 일이었다.

젊은 혈기가 절간의 구석방에 처박혀 숨어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무엇보다, 먹고 싶은 것이 많아 못 견딜 일이었다.

술도 마시고 싶었지만 고기도 먹고 싶었고,

좋아하는 팥죽이며 호떡이 먹고 싶어 못 견뎠다.

절에 들어간 지 닷새 만에 기어이 보국사에서 내려왔다.

야음을 타서 종로로 숨어든 것이다.

그러나 평소의 아지트라 할 조양 여관으로는 갈 수가 없었다.

관수동 뒷골목에 있는 옥금(玉琴)이란 기생집으로 갔다.

옥금은 김무옥이 애지중지하는 애인이었다.

셋방살이의 비좁은 방에 덩치 큰 사나이들이 득실거리게 되었다.

그러나 옥금은 조금도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고

사내들의 시중을 들고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먹고 싶은 팥죽도 시켜오게 한 것이다.

김두한을 아들처럼 사랑하는 팥죽 할머니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의 안부를 무척이나 염려했던 노파였다.

노파가 직접 무거운 팥죽동이를 이고 나선 까닭이었다.

골목 안에 들어선 팥죽 할머니는 팥죽동이를 머리에 인 채

무엇을 인식해서인지 골목 안을 휘둘러보았다.

아마도 뒤따라오는 자가 없는가 조심하라는 다짐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아무도 뒤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할머니는 안심한 듯 대문을 흔들었다.

바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한 것처럼 대문이 안쪽에서 열렸다.

할머니가 무거운 몸가짐으로 허리를 낮추고는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골목 밖에서 골목 안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김동회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할머니와 거의 동시에 대문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어머나! 누구예욧!”

대문을 따주었던 옥금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도 머리에 인 팥죽동이를 떨어뜨릴 만큼 놀라서 흠칫거렸다.

순간 김동회는 할머니의 머리 위에서 팥죽동이를 재빨리 받아 안았다.

“원, 할머니두. 이 무거운 것을 진작 들어달라고 할 것이지.”

행랑채를 거친 김동회는 팥죽동이를 대신 안고는 성큼성큼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바깥에서 깜짝 놀라서 소리친 옥금의 목소리를 듣고 후닥닥 튀어 나온 것은 종로꼬마였다.

그의 오른손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너, 뭐야?”

종로꼬마는 언제라도 날아들 기세로 난입자에게 물었다.
대부분의 종로패들은 혼마찌깡패이면서도 김두한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동회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종로꼬마는 생면부지였다.

십팔계를 배우러 한동안 만주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계를 하면서도 당장 싸울 태세는 취하지 않았다.

상대가 팥죽동이를 안고 있는, 전혀 무방비 상태였으니까.

“보다시피 팥죽 배달을 왔수다.”

김동회는 작달막한 키에, 여드름이 덕지덕지한 종로꼬마를 애송이로 넘본 듯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팥죽동이를 쿵, 소리를 내며 마루 위에 내려놓았다.

방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던 망치가 깜짝 놀란 듯 김두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동회야!”

“뭐, 동회? 그가 언제 돌아왔지?”

김두한은 무겁게 엉덩이를 들고 일어섰다.

김동회가 어떻게 알고 여기를 찾아들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본패와 대결전을 벌인 끝에 경찰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는 지금,

때가 때인 만큼 하야시의 심복인 그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

조금 어리둥절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런 채로 김두한은 마루로 나가 김동회를 맞았다.

“아니, 동회 너 만주로 갔다더니 언제 돌아왔지?”

“오늘 새벽에.”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내가 경찰 끄나풀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게 서투를 수가 있냐?

 팥죽 할머니가 손수 팥죽동이를 이고 나오는 것을 보고

냄새를 맡고 따라왔더니 역시, 핫핫핫!”

김동회는 기분 좋게 너털거렸다.

 

“동회 너, 그러고 보니 냄새 한번 잘 맡는구나?

너 같은 사람이 경찰 끄나풀이 아니었던 것이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럼 우리에게서 무슨 냄새를 맡으려구 찾아왔지? 헛!”

김두한은 꽁지가 잘린 맥 빠진 웃음을 웃었다.

혼마찌깡의 심복으로서의 그가 아무래도 꺼림칙했던 것이다.

터놓고 반겨 맞을 수가 없었다.

이를 눈치 못 챌 김동회가 아니었다.

“내가 없었던 동안 좀 시끄러웠던 모양이지?

내가 있었던들 일이 그렇게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네가 있었다고 별수가 있었겠냐? 아, 하야시 그놈이 일부러 꾸민 일인데…….

정식으로 도전장을 보내놓고 날짜보다 빨리 쳐들어온 비겁한 놈들이란 말야.

일부러 일을 꾸미기 위해 너를 만주로 피해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르지.”

김두한은 빠듯하게 말했다.

아직도 김동회는 마루 아래에 서서 마루 위의 김두한·종로꼬마·망치·김무옥을

치켜 올려다보고 있었다.

김두한은 그를 반겨 맞을 채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두한아, 그건 오해야 오해.

나도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

정말 미안하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하야시 형님도 똑같은 마음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단 말야.”

“뭐라구?”

그러자, 뒤틀린 목소리로 받은 것은 김두한보다 종로꼬마였다.

상대가 혼마찌깡 패거리란 것을 안 그는 수틀리면 당장 마루 위에서 몸을 날려,

상대의 어깨를 타고 면상이라도 후려칠 기세였다.

그것을 김두한이 눈짓으로 제지했다.

“미안하게 생각하는 놈이, 싸움은 제놈이 먼저 걸어오고

우리 애들만 붙들어가도록 내버려두고 있단 말야?

아, 나를 이 지경으로 골방에 숨어 있도록 한단 말야?”

김두한도 새삼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그렇지 않아. 오늘 아침에도, 아니 지금 이 시간,

하야시 형님은 사건을 좋게 무마하기 위해 경찰서에 가 있단 말야.”

“병 주고 약 주겠다는 건가?”

김두한의 말투에는 여전히 모가 서 있었다.

“부아가 나게는 됐지만 자꾸 비뚤게만 나가지 말자.

두한이 너도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있어야 할 몸이 아니지 않냐?

서로 사건을 마무리짓는 길을 찾아야지, 안 그래?

우리, 같은 동갑내기 안동 김씨끼리의 신의를 믿어줘.”

(같은 안동 김씨? 아, 너는 우메하라 상이고,

난 김두한인데 무엇이 같은 안동 김씨란 말야?)

밸이 뒤틀려오는 그 기분 그대로라면 그렇게 내뱉고 싶었다.

그러나 김두한은 참았다.

하긴,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있어야 할 몸이 아닌 것이다.

사건을 빨리 무마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을 찾는 데에 김동회가 적격의 인물일 것 같았다.

“그래, 좋다. 안동 김씨끼리의 신의를 한번 믿어보지.

올라와서 함께 팥죽이라도 먹으면서 얘기해 보자구.”

김두한은 비로소 손을 내밀어 김동회를 맞아들였다.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 같았던 긴박한 분위기가 김두한이

김동회의 손을 마주 잡아 마루 위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일시에 누그러졌다.

뾰족하게 날이 섰던 종로꼬마의 눈도 누그러졌고,

자기네들 실수로 형사라도 잘못 불러들인 것이나 아닐까 하고 겁을 먹고

오들오들 떨고 있던 팥죽 할머니나 옥금의 표정도 누그러졌다.

“할머니, 거 빨리 팥죽 상이나 차려주슈.”

김두한이 할머니 쪽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상황이 좋은 쪽으로 급변하자 옥금이나 팥죽 할머니는

금세 얼굴이 희벙글해져서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김동회와 종로꼬마가 첫대면의 수인사를 하는 사이에 팥죽 상이 들어왔다.

먹새 좋은 장정들은 팥죽동이를 옆에 차고 앉아 옥금이 떠주는 팥죽 사발을

연신 비워 단숨에 팥죽동이를 빈 그릇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래, 만주에는 무엇 하러 갔었냐?”

어느 만큼 배가 차자 김두한이 불쑥 물었다.

그 간단한 물음에 김동회는 대답이 궁했다.

아편 밀수 때문에 갔었다고는 차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사를 하러.”

“장사? 무슨 장사?”

“가죽 장사. 조선에서는 귀한 쇠가죽을 사러 갔었지.”

“너, 재주 한번 용하구나. 그런데 가죽 장사 한번 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려?”

김동회는 또다시 대답이 궁해졌다.

마적단의 기습을 받아 아편을 빼앗겼었기 때문이라고도 차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 물건을 고르다 보니 우물우물하다가 좀 지체했을 뿐이지…….”

“만주 어디로 갔었지?”

“봉천.”

“봉천? 봉천이라면 우리 애들도 많이 가 있을 텐데?”

김두한은 심상하게 말했다.

그러나 김동회는 심상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대답이 궁해진 정도가 아니라, 가슴이 철렁했다.

김기환이나 쌍칼, 점백이를 만난 사실을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몰랐기 때문이다.

김기환이라고 하면 바로 김두한에게는 두목인 것이다.

지금 서울 일원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김두한의 세력이,

실추된 김기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몰랐기 때문이었다.

김기환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면 자신이 마적단에 당한 얘기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주먹패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였다.

이 시점에서 김기환의 얘기를 끄집어냄으로써 그를 자극할 필요도 없을 듯싶었고,

자신의 체면과도 관련되는 것이어서 김동회는 좀 우물거리다가 말머리를 돌리려고 애를 썼다.

“순전히 장삿속으로 간 것이어서 말야.

그건 그렇고, 두한아, 너, 우리 하야시 형님을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

그 말은 대단한 효험이 있었다.

당장 방 안의 분위기가 숙연해질 만큼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