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65

오늘의 쉼터 2014. 8. 27. 11:35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65 

 

 

당시, 어지간한 멋쟁이도 색안경은 끼고 다니지 않았다.

요즘처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철 선글라스를 애용하는 시절과는 전혀 달랐다.

장님이 검은 안경을 끼고 다니거나,

무대 위에서 스파이로 분장하는 배우가 이를 쓰고 나타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실제로 어느 등산객이 색안경을 끼고 지도를 펴서 길을 찾다가 어린 학생에 의해

신고되어 수상한 자로 몰린 일이 있었다.

물론 그 등산객의 혐의는 곧 풀렸지만,

이 학생은 당국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는 기사가 신문에 날 정도였다.

더군다나 주먹패가 색안경을 끼는 일은 없었다.

영화에 보면 외국의 갱들은 즐겨 이를 애용했지만,

우리 주먹패들은 그런 멋진 선글라스도 없었지만,

싸움에 거치적거리기 때문에 이를 쓰지 않았던 것이다.

유독 점백이만이 이를 끼고 다녔기 때문에 그의 상표처럼 되었고,

김동회가 이국 땅, 한밤중의 여관방에서 부딪쳤어도 대뜸 그를 알아볼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하긴 그가 점백이를 대뜸 알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두 사나이가 한번 크게 붙을 뻔한 일이 있었다.

점백이는 뫄관패에서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힘도 있고, 칼도 다룰 줄 알아 싸움 실력도 출중했지만,

눈의 검은 점이 암시하는 것처럼 성격도 음흉한 일면이 있어,

평소에는 잘 나타내지 않지만 한번 성깔이 나면 표독하고 잔인했다.

아마 그가 만주로 흘러들었을 때에는 필시 살인을 했거나

그 밖의 중대한 폭력 행위 따위에 몰렸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도박을 위해 팔려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만큼 유명한 노름꾼이었다.

화투놀이도 잘했지만, 특히 마작(麻雀)의 명수였다.

그의 마작 솜씨는 아무리 패를 엎어놓고 휘저어대도,

어떠한 패가 어느 쪽으로 몰려가고 있고,

어떤 패가 누구의 야마(무덤)로 갔는가 알아낼 수 있을 만큼의 기술이었다.

게다가 그 커다란 손으로 양쪽 손에 항상 두 개의 패를 숨겨 자유 자재로 움직여놓고

이용할 줄 아는 귀신 같은 재주를 갖고 있었다.

13장의 패를 갖고 맞추는 노름에 항상 4장의 패를 여분으로 갖고 놀 수 있으니,

그와 노름을 해서 당해 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속임수의 노름쟁이도 늘상 여분의 패를 갖고 노름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속임수를 쓰지 않더라도 기술이 출중한데 위험 부담을 안은 속임수를 남발하겠는가.

하지만 모든 도박이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한다.

운이 7이고, 기술이 3인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운이 닿지 않으면 잃는 수가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운이 닿지 않는 날, 잃게 되는 경우 비장의 속임수를 발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속임수에 도통한 도박꾼도 칼부림 정도의 위험은 각오해야만 한다.

발각되면 주먹다짐 정도가 아니라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극한 상황의 칼부림도 흔히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김동회와 점백이가 맞붙을 뻔한 경우도 바로 그것이었다.

 

요즘 우리 나라에서도 훌라짱이라고 해서 일부 마작이 성행되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은 당시의 도박과는 전혀 유가 다른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대륙에서는 물론 조선·일본에까지 뻗쳐 있던 마작 도박은 규모가 커서,

하룻밤에 집 한두 채가 오고갔고, 걸핏하면 칼부림이 나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칼부림은 대개 속임수가 발각되는 경우에 일어나게 마련이었다.

때문에 오락판이 아닌 대도박판에서는 아무리 속임수의 명수라도

섣불리 기술을 발휘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까지도 각오하는 위험 부담을 안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점백이는 이러한 속임수를 서슴지 않고 해냈다.

그만큼 발각되지 않을 만한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속임수는 예사로이 쓰지만,

도박판에서의 점백이는 참으로 신사다웠고 호기가 있었다.

돈을 따고 있을 때는 말할 것 없지만, 잃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도박꾼은 엄청나게 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데도,

평소에는 자장면 한 그릇에도 인색을 떠는 노랑이들인 것이다.

밤을 지새워 노름을 하며 구멍이 뚫린 듯 잃어가면서도,

밤참 한 그릇 사 먹는 것이 아까워 인색을 떠는 졸장부들인 것이다.

그러나 점백이는 그렇지가 않았다.

자기가 먹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색을 떠는 다른 노름꾼에게도 호기 있게 사 먹인다.

흔히 도박판에서는 ‘문지방 넘어갈 때 보자’는 말이 있다.

지금은 잃고 있어도, 문지방 넘어서며 돌아갈 때 딴 자가 진짜 딴 자란 뜻이다.

결국 문지방 넘어갈 때 보면, 판돈은 으레 점백이의 몫이었던 것이다.

이를 점백이 자신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호기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자신이 속이고 있다는 양심의 가책도 있고,

그런 만큼 ‘호구’가 되어주고 있는 상대가 고마워서 친절을 떠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던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어 그의 신기도 발각되는 수가 있다.

이런 경우 점백이는 이제껏의 신사다운 태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돌연 늑대처럼 돌변하는 것이었다.

“뭣이, 어쩌구 어째? 내가 패를 바꿔쳤다구? 봤냐, 봤어? 죽고 싶으면 봤다구 해.”

검은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그 점백이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상대방은 그 기분 나쁜 눈만 쳐다보고도 질려버리는 것이다.

물론, 잃은 돈도 아깝지만 죽는 것은 더 무서운 것이다.

“아니, 형님…… 왜 그러십니까? 제가 언제 뭐라 했습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마작 상에 들어붙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수법도 만인에게 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김동회와 정통으로 맞붙게 된 것이다.


하긴 김동회는 마작을 전혀 할 줄 몰랐다.

마작뿐만 아니라 화투놀이 따위의 도박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도박이 일확천금의 수단이 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설령 돈벌이가 된다 하더라도 남자 대장부가 취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달리도 돈벌이의 길은 얼마든지 있는데,

하필이면 담배 연기 자욱한 방에 웅크리고 앉아 밤을 지새우면서,

잘해야 남의 돈을 우려내는 일에 찬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얘기는 다소 옆길로 새지만,

그 점에서는 김두한도 마찬가지였다.

더러 친구들과 어울려 점심내기나 술내기 따위 내기 당구를 치는 일은 있었지만,

화투나 마작 등 도박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자기만 손을 대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부하들에게도 이를 하지 못하게 했다.

“아니, 사내 자식들이 오죽 할 일이 없으면 화투 장난을 해!

할 일이 없으면 ×××이나 치지!”

그는 부하들이 심심풀이 화투놀이를 하는 것만 보아도,

놀이판을 뒤엎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주먹패와 도박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직접 간접의 유대를 갖고 있었다.

주먹패 가운데에서도 직접 도박을 즐기는 자도 많았다.

김두한의 부하 가운데도 두목의 눈을 피해 가며 도박판에 끼어드는 자도 허다했다.

특히 김두한의 심복 중의 심복이라 할 김무옥은 도박의 명수였다.

결코 점백이의 실력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관록을 갖고 있었다.

김두한이 아직 전서울의 주먹계 두목의 자리에 오르기 이전,

지독한 열병을 앓은 일이 있었다.

옥인동(玉仁洞)에 있는 순화 병원(順和病院)에 며칠 입원했었던 것을 보면,

장티푸스쯤 되는 전염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때여서 치료비에도 곤란을 느꼈을 형편이었다.

그러자 김무옥은 두목의 치료비를 마련하겠다고 만주로 갔었다.

도박으로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어디 가서 어떤 방법으로 도박을 했는지 모르지만,

김무옥은 실제로 보름 만에 거짓말 보태 한 보따리의 돈 뭉치를 안고 돌아왔었다.

그 돈이 김두한의 치료비에 유용하게 쓰였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주먹패 가운데에서도 직접 도박을 즐기는 자가 있었지만,

주먹패가 노름판을 경비하는 책임자로 고용되기도 하고 노름꾼의 보디가드 노릇을 하는

경우도 많아, 간접적으로 유대 관계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하다 못해 대규모 노름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얻고,

이를 기습하여 판돈을 긁어오기도 하고, 개평을 뜯어오기도 했었으니까.

마작이나 도박을 할 줄도 모르면서 김동회가 점백이와 맞붙게 된 것도,

도박꾼의 보디가드 노릇을 하게 됨으로써였다.

김동회가 경영하는 우메하라 양복점의 단골손님 중에 양원순이란 양조장 주인이 있었다.

그는 양조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기 일원에 적지 않은 농토를 갖고 있는 소지주이기도 했다.

무골호인이었다.

이 무골호인이 그만 노름판에 끼어들었다가 점백이에 걸려 거덜이 나고 만 것이었다.

사흘의 낮과 밤을 통한 붙박이 마작판에서 양원순은 족히 양조장 하나를 몽땅 날리다시피 하였다.

“노름판에서 돈 떼인 것, 그거야 얼마가 됐든 나 좋아서 한 짓이니까

팔자 소관으로 돌려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분하단 말예요.

그 자식 뫄관패의 주먹패로, 유명한 사기 도박꾼이라지 뭐예요.

그런 놈에 걸려든 내가 멍청한 놈이긴 하지만 어디 분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양원순은 김동회 앞에서 넋두리처럼 장탄식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래, 얼마나 잃었소?”

대개의 협객 기질의 주먹패들이 그러한 것처럼 김동회도 동정심이 많았다.

약한 자 앞에서는 저절로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었다.

“집 한두 채 값을 몽땅 날렸지만,

그것보다 더 분한 것은 그놈에게 속았다는 거,

그게 더 분하단 말예요.

내게 그놈만한 힘만 있었더라면 당장 요절을 내주고 말았을 텐데…….”

“그 사기 도박꾼이 누구라 했지?”

“뫄관패의 점백이라구…….”

“점백이?”

언젠가 한번 들은 듯한 이름이었다.

김동회는 알 수 없는 호기심이 송알송알 일어서는 것이었다.

거기에 약자에 대한 의협심까지 겹쳐서 무엇인가 저질러보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흔히 주먹패들은 보통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을 중대하게 생각하고,

중대하게 생각하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일종의 비상식적인 일면이 있었다.

도박판에 사기 도박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도박판에 끼어들어 돈을 떼였다면 떼인 놈만 병신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할 자업자득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사고(思考)이며 상식인 것이다.

그러나 김동회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주먹패라면 어엿한 협객이다. 협객이,

주먹이 아닌 사기 도박으로 무골호인인 양원순의 돈을 우려먹다니.

양원순은 누구인가? 나의 오래된 단골손님이 아닌가.)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노름은 어디서 하지?”

“남양 여관, 깊숙한 안방에서…….”

“지금도 나 같은 얼간이의 돈을 우려내고 있을 거예요.”

“그럼, 우리 한번 가봅시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그의 짤막한 한마디는 결연한 결의가 있는 듯이 보였다.

그 표정만 보고서도, 양원순은 잃은 돈을 되찾기나 한 듯 기뻐했다.

“그저 점백이 그놈의 코만 납작하게 꺾어줘요.

잃은 돈 되찾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되찾을 수만 있다면 우메하라 상, 당신에게 몽땅 주어도 좋아요.”

이렇게 해서 김동회는 양원순을 따라 사설 도박판이라 할 남양 여관을 찾게 되었다.

과연 남양 여관 앞은 대규모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는 집앞답게 주먹깨나 씀직한

경비 청년이 망을 보고 서 있었다.

김동회와는 안면이 없는 놈들이었다.

그러나 단골손님인 양원순이 앞장섰기 때문인지 아무 탈 없이

여관 안방 깊숙이까지

무사 통과가 되었다. 열기 어린 도박판으로…….

매캐한 담배 연기가 꽉 들어차 있는,

네 칸이 실한 널찍한 안방에는 이미 노름꾼 무리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비밀스러운 사설 도박장이라 하지만,

노름판에는 으레 건달패들이 꾀어들게 마련이었다.

노름이 전문인 직업 도박꾼, 도박판 주인, 주인에게 고용된 데라꾼.

데라꾼은 판돈에서 일정액의 세금을 뜯어내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이 밖에도 판돈의 물주, 개평꾼이 요정 대기실의 기생들처럼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다.

마작판이 두 틀이나 돌고 있는데도 꾼이 남아돌아 한창 열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는

도박판 뒷전에서 물끄러미 구경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워낙 판이 커서인지, 마작판에 둘러앉아 있는 노름꾼 당사자도 그렇지만

뒷전에서 구경하는 패거리들의 표정도 자못 심각하고 진지하다.

그래도 이따금 우스갯소리를 던지며 여유를 보이는 것은 점백이 정도였다.

“양 선생, 어서 오시오.”

김동회가 양원순을 앞장세우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

유난히 반겨 맞는 것은 도박판 주인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양원순은 도박판에서 가장 환영받는 호구였으니까.

“양 선생, 출근이 늦으셨군요?

한판 뜰 생각이 있으시면 먼저 제 자리를 내어드릴까?”

양보하지 않는 자리를 자릿세를 받지 않고서 내주겠다고 생색을 내는 것은 점백이였다.

최근 들어 그의 돈을 너무 많이 우려먹어 미안한 느낌이 있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우선 이 호구를 마작판으로 끌어들여 놓고 보자는 속셈일 것이다.

“괜찮습니다. 좀 구경을 하다가 천천히 들어가죠.”

양원순은 이날따라 여유를 보였다.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지 점백이의 사기 도박의 현장을 붙잡아

한바탕 야료를 부리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등뒤에는 든든한 김동회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한 30분 기다렸을까,

마침내 한 판이 끝나 양원순이 끼어들게 되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유행하는 마작 훌라짱은 한 판 한 판마다에 승부를 내고

판돈이 오고가지만, 일제 시대의 그것은 혼(本)짱이어서 제대로 격식을 갖추어

동(東)·남(南)·서(西)·북(北)의 바람이 불어,

네 바람이 불고 나서야 한 짱이 끝나도록 되어 있었다.

때문에 한 짱이 끝나려면 보통 한두 시간이 걸렸다.

성미가 급한 현대인의 생리에는 맞지 않는 대륙적인 기풍이 있는 노름 방식이었으나,

그 대신 한 바가지에 30원씩 하는 판돈이, 한 판 끝나고 나면 두세 바가지를

단판에 잃고 따는 경우가 많아, 그만큼 스릴도 있고 흥미진진한 것일 수 있었다.

호구 양원순을 맞아들인 점백이는 예의 거무스름한 색안경 속에서

득의에 가득 찬 눈웃음을 짓고 있으면서도 처음에는 슬슬 잃는 체해 주었다.

요즘 같은 단판 승부가 아니고 네 바람이 다 불고 나서야 판돈이 오고 가기 때문에,

당장 잃었다고 해서 축이 나는 것은 아니다.

막판에 연짱(連짱)을 하면, 이제까지 잃은 것을 만회하고도 남는다.

드디어 점백이는 사기 도박꾼의 본령을 발휘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