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64

오늘의 쉼터 2014. 8. 27. 11:34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64 

 

 

양복 차림의 조선 청년 둘과, 중국옷이지만 너절하지 않은 새것으로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국 상인 넷, 도합 6명이 원탁(圓卓)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았다.

하나둘 요리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맥주컵을 높이 쳐들고 축배나 다름없는 건배를 했다.

“아 뭐, 얘기는 이미 다 들었으니까. 어디 물건부터 봅시다.”

가운데 앉은 중후한 신사처럼 느껴지는 상인이 말했다.

어딘가 서두르는 것 같은 인상이었지만,

서둘러야 할 입장은 그들보다 김동회 자기 자신이 아닌가.

김동회는 의심할 것도 없이 일곱 덩어리의 아편 모두를 식탁 위에 내놓았다.

“이 가운데 아무것이나 골라 품질을 살펴보시오.

잡티라고는 전혀 섞이지 않은 진짜 생아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오.”

김동회가 자신만만하게 설명했고, 사소리도 득의에 찬 얼굴로 설명했다.

그러자 앞서의 신사풍의 사나이가 아편 덩어리 하나를 집어들더니

성냥알만큼을 떼어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작은 접시에 물을 붓고 아편을 타서 개고는 혀끝을 갖다 대어 맛을 보는 것이었다.

김동회는 나무랄 데 없는 진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느긋한 표정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진품이 확인되었을 것이니, 남은 것은 정당한 흥정뿐이었다.

김동회는 상대의 입만을 주시했다.

(얼마를 받고 싶소?)

그런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그러나 맛을 보고 난 중국인은 자칫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수상하오. 이건 분명 가짜요.”

사나이는 선언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가짜라니, 당치도 않소.

이건, 시골 각지의 생산지에서 직접 채취한 진짜 중의 진짜란 말요.”

사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하며 소리쳤다.

“가짜라니! 당신네들 농담하는 거요? 싸게 흥정하려고 트집을 잡는 거 아니오?”

김동회도 소리쳐 말했으나 사소리가 통역을 하려니 자연 김이 샐밖에 없었다.

그러자 네 명의 중국인, 아니 뙈놈들이 무엇인가 일제히 소리쳤다.

“가짜다.”

“가짜다.”

“이건 가짜란 말요!”

일제히 합창하듯이 말했다.

음흉한 중국놈들의 일이니까 흥정을 유리하게 하려는 수작이려니 하고,

김동회는 그다지 그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모처럼 얻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설득하고 달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흥정을 성립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신네들, 그렇게 어거지를 쓰지 마시오.

물건을 보면 알 일이지. 아, 맛까지 보고 가짜라니,

당신네들 아편 전문업자라면서 진품이 어떤 것인가도 모른단 말이오?”

김동회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고,

어린애를 달래듯이, 아니 애원을 하듯이 호소했다.

사소리가 갑갑하게 손짓 발짓 해가면서 통역을 하는 것이 못 견디게 지루했다.

그 찰나였다.

 

김동회와 사소리의 양옆에 앉아 있던 중국놈들이 느닷없이 벌떡 일어난 것과 함께

이들의 안면을 향해 무엇인가를 휙, 뿌려댄 것이다.

순간, 김동회는 얼굴 전체에 불이 붙은 듯한 환각을 느꼈다.

그뿐, 얼굴에 뿌려진 것이 가루인가 액체인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이쿠!”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적거리듯 무릎을 꿇고 엎어졌다.

맵고 아프고 쓰라려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고춧가루인 것인가, 청산가리인 것인가,

아니면 다른 약물인 것인가,

짐작도 되지 않았고 그러할 겨를도 없었다.

그 경황 속에서 놈들이 후닥닥 튀는 소리가 들렸다.

김동회는 허우적거리듯 눈을 비비면서 가까스로 일어나 간신히 눈을 떠보았다.

도저히 열리지 않는 눈으로나마 놈들이 아편 덩어리를 2층에서

아래쪽으로 향해 내던지는 것이, 뜨물 속을 들여다보듯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 도둑놈들아!”

포효하듯이 소리쳐 보았으나, 이미 때는 늦은 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기력을 다해 무릎걸음으로 기어서,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려는 놈의 다리 하나를 움켜잡을 수가 있었다.

완력에 관한 한 놈들에게 질 수 없는 김동회였다.

더구나 그는 유도로 단련된 기술이 있는 것이다.

한번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잡아끌었다.

잡힌 중국놈은 발버둥질치며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다리가 풀릴 리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쇠망치와 같은 강력한 힘이 김동회의 머리를 강타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한 놈이 식탁 위의 맥주병으로 그의 머리를 후려갈긴 것이다.

김동회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사이, 발이 풀리자 놈들이 후닥닥 도망친 것은 물론이다.

이들이 상담을 벌인 지 30분도 안 됐을 때였다.

아래층에서 일을 보고 있던 중국집 주인이 허겁지겁 위층으로 올라왔다.

위층에서 손님들이, 그것도 중국 손님들만이 허겁지겁 도망쳐 내빼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 줄 감지하고 뛰어 올라온 것이다.

김동회는 머리에서 피를 쏟으며 실신해 쓰러져 있었고,

사소리는 짐승과 같은 신음 소리를 내면서 눈도 못 뜨고

엉금엉금 입구를 찾아 버둥거리고 있었다.

중국집 주인의 도움으로 얼굴에 뿌려진 약물을 씻어냈다.

김동회의 터진 머리도 물로 씻어냈다.

김동회는 간신히 제정신이 들었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아픔과 쓰라림, 머리의 통증,

그러나 그보다도 더한 아픔과 쓰라림이 가슴에 복받쳤다.

“실수, 실수, 이러한 실수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회한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동시에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안 떠난다! 봉천을 안 떠난다! 내 뼈다귀가 가루가 되어도

놈들을 붙잡아 놈들의 뼈를 가루로 만들 때까지는 봉천을 안 떠난다!”

눈을 뜨지 못해 꽉 감은 그의 얼굴은 그저 복수에 이글거리는 한 마리 악귀 같았다.
 

그 중국인 일당은 석탑 근처며 가스가마찌 야시장 일대를 배회하는

마적단 무리들이란 것을 중국집 주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들은 김동회와 사소리가 시장 바닥을 헤매면서 아편의 판로를 찾아다닌 것을 알고,

처음부터 이들을 노려 치밀하게 세워진 계략 아래 물건을 탈취해 간 것이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당하다니!

물건을 찾고 복수를 하기 전에는 서울로 돌아갈 수 없다.

무슨 면목으로 두목을 만나볼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은 물건도 빼앗기고, 시켜놓은 채 입에도 대지 않은

음식과 술값까지도 치르고 나서야 중국집을 나왔다.

김동회의 머리에서는 아직도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물건을 빼앗긴 것도 큰 낭패였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답답했던 것은 중국집 음식값을 치른 것을

마지막으로 가져간 여비가 한푼도 남지 않고 동이 난 사실이었다.

병원으로 갈 수도 없었고, 하숙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하숙집에 통사정을 하면, 며칠쯤 먹여주고 재워줄는지도 모르지만,

이 언저리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물건을 다시 찾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기어이 복수를 해야 한다.

조선의 야꾸자가 만주의 마적에게 당하고 물러설 수는 없는 것이다.


이들은 석탑으로 가는 다리 밑 한 귀퉁이의 모래밭에 노숙을 하기로 했다.

겨울을 재촉하는 북국의 바람이 모질고 사나웠다.

바람을 피할 만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노숙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잠깐 기다려! 바람막이라도 어떻게 마련해 올게.”

사소리가 기진해 쓰러져 있는 김동회를 혼자 남겨놓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김동회는 그 경황 속에서도 혼수 상태에 빠진 것처럼 잠을 잤다.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깨어났을 때 사소리는 돌아와 있었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10여 장도 넘는 부대로 다리 밑에 간이 천막을 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돈을 주고 사온 것이 아님은 물론이었다.

훔쳐온 것이다.

도둑질에 관한 한, 사소리는 이미 이력이 나 있는 솜씨꾼인 것이다.

천막을 치고 난 다음, 사소리는 남은 헝겊 부대를 다리 밑 구정물에 적시고 있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김동회는 알지 못했다.

“어지간하면 좀 따라와주어야겠어!”

김동회는 비틀거리면서도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스가마찌 야시장과 조금 떨어져 있는 중국 음식점 앞이었다.

중국집 앞은 유리로 된 진열장이 있었다.

그 안에는 돼지 족발이며 오리고기·오리알·호빵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인적이 드문 야반인 것이다.

사소리는 재빨리 진열대 앞으로 다가가서,

물에 젖은 헝겊 부대를 유리창에 척 붙였다.

그리고 주먹으로 유리창을 부쉈다.

유리창은 소리도 없이 깨어졌다.

그 구멍에 손을 넣고, 쌓아놓은 음식을 훑듯 끄집어내 부대 안에 쓸어 담았다.

며칠 분의 음식은 거뜬히 장만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원수, 마적단을 찾아내는 일뿐이었다.

물건을 빼앗긴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이들은 물건을 되찾기 위해

미루미루깡깡의 술집 주변과 쇼뜰마찌의 도깨비 시장,

가스가마찌의 야시장을 샅샅이 뒤지며 다녔다.

사소리가 물건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면,

김동회는 범인을 잡는 데 눈이 뒤집혀 있었다.

주먹패다운 오기와 복수에의 집념이었다.

그러나 범인들이 나 잡아잡수 하고 거리를 쏘다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쯤 아편을 처분한 두둑한 밑천으로 깊숙한 안방에 들어앉아

흥청망청 놀아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헛간과 같은 다리 밑 움막에서 잠을 자야만 하니,

그 건장한 몸도 지쳐서 축이 나기 시작했다.

중국 음식점의 유리창을 깨고 음식을 훔쳐 먹는 것도 몇 번뿐의 일이지,

시장 안에 소문이 나서 경비가 강화되어 그짓도 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흘, 나흘, 닷새가 지났다. 이제 더 이상은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물건을 찾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물건 찾는 것은 포기할망정, 범인을 찾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일단 장기전을 각오하고, 역 근처의 하숙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서울에 전보를 쳐서

돈이 올 때까지만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주인은 사소리가 이 집의 단골이며,

같은 아편 밀수단의 점조직에 가담하고 있는 처지여서, 순순히 응해 주었다.

서울로 전보를 치는 비용까지 대주었다.

그러나 어디로 전보를 친단 말인가.

만주에까지 세력권을 뻗치고 있는 두목 하야시에게 기별을 하면,

나중에 어떤 견책이 내릴지는 모르지만, 우선은 구원의 손을 뻗칠 것이다.

그러나 차마 두목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사소리를 보호하여 물건을 안전하게 전달하라는 임무를 띠고 있는 그가 물건도 빼앗기고,

놈들의 기습을 받고 오히려 쓰러져버렸으니,

자존심과 체면상 차마 알릴 수 없었다.

자신이 경영하는 우메하라 양복점의 이노마에게 전보를 쳤다.

여인숙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 지도 사흘이 지났다.

낮에는 여전히 시내를 헤매며 범인을 찾아다니고, 밤늦게서야 돌아왔다.

몇 잔의 독주를 들이켜고야 곤한 잠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날도 피곤에 지쳐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발길로 옆구리를 걷어차는 듯한 감각에 번뜩 잠에서 깨어났다.

10명도 넘게 함께 쓰러져 자는 방 안에, 깨어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소리를 비롯한 낯 모를 여행자들이 모두 정신 없이 자고 있었다.

꿈을 꾼 것이었다.

그 사건 이후 너무 상심하여 꿈속에서조차 가위에 눌렸었던 모양이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

그러는데 아래층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주로 조선 사람만이 들어 있는 여인숙에서 조선말을 듣게 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촉각이 예민하게 곤두섰다.


“야, 너 죽지 못해 환장했냐?”

“듣기 싫어! 나 이래 봬두 가오(체면)가 있는 놈이란 말야.

그따위 놈에게 기 죽고 싶지두 않구. 둔(돈) 몇 푼에 허리 굽힐 놈이 아니란 말야.”

“잘 논다, 잘 놀아.”

“아하하하.”

떠들썩한 소리.

이것이 서로 싸우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김동회는 직감했다.

이들은 지금 흥분해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보기 좋게 한탕을 하고, 기고만장해 있는 것이다.

김동회는 아직껏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여기가 봉천이 아닌 서울의 한복판 같은 착각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거칠고 빠르면서도 나긋나긋한 일면이 있는 서울 사투리.

더구나 서울의 주먹패들만이 사용하는 독특한 억양의 말투와 용어들.

너무나, 너무나 귀에 익었던 것이다.

그는 몸을 일으켜 엉금엉금 기어가서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

2층으로 된 방이라 하지만,

일어서면 천장이 머리에 닿을 만큼 순전히 잠만 자기 위해 만들어진 방인 것이다.

아래층과 위층은 나무 사다리로 층계가 되어 있고,

위층에서는 아래층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고개만 내밀고 엎드려서 아래층을 내려다본 순간,

김동회는 소스라치듯 놀랐다.

어두컴컴한 방 한구석에서 한 사람을 중심으로 삥 둘러앉아

수북이 쌓인 돈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었다.

돈을 한 장 한 장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뭉치 두 뭉치 하고,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둘러앉은 모두의 시선이 돈 다발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까짓 돈 따위에는 아랑곳없다는 듯 벽에 기대어 두 다리를 쭉 뻗고 싸움하듯

입씨름을 하고 있던 두 녀석들도, 수북이 쌓여가는 돈 뭉치를 보자

탐이 나는지 저절로 시선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김동회가 소스라치듯 놀란 것은 그 돈 뭉치 때문이 아니었다.

한 사나이를 에워싸고 둘러앉은 패거리들의 얼굴이었다.

그 가운데는 중국옷 차림의, 어김없는 중국인 같은 얼굴도 섞여 있었지만,

언제나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니 실제로 만나보았던 얼굴이었던 것이다.

특히 그 한복판에 앉아 있는 커다란 몸집의 사나이.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도 장님처럼 거무스름한 색안경을 끼고 있는 사나이.

그가 서울 뫄관패의 점박이라는 것은 한눈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뫄관패의 점박이.

점박이라기보다 점백이라 불리는 그는 좌우 양쪽 눈 흰자위에 쌀알만한

커다란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콧날이 준수하게 뻗고 허우대는 멀쩡했지만 양쪽 눈의 검은 점이 흠이었다.

검은 점이 박힌 눈을 부릅뜨면 상대방이 저절로 기분이 나빠질 만큼

음흉스럽게 느껴지는 일면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낮이고 밤이고, 거무스름한 색안경을 끼고 다녔다.

김동회가 첫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도,

밤에 끼고 있는 검은 안경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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