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2 개척(開拓)
(37) 2 개척(開拓)-17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을 때는 밤 10시 반이 돼 있었다.
서동수가 식사 초대를 했지만 윤달중이 재빠르게 계산을 해버린 바람에 얻어먹은 셈이 되었다.
“자, 그럼, 다음에는 술 한잔하십시다.” 식당 앞에서 벤츠에 오르기 전에 홍경일이 말했다. 홍경일의 시선이 옆에 선 화란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남자들끼리만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서동수도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그땐 제가 한잔 사지요.” 악수를 나눈 홍경일이 차에 오르다가 문득 화란에게 묻는다. 물론 중국어다.
“화란 씨, 내가 모셔다 드릴까?” “아뇨, 괜찮습니다.” 화란이 정중하게 사양하자 홍경일은 빙그레 웃었다. “과장이 이번 달분 결재한다고 했으니까 잘 부탁합니다.” 그러고는 차에 오른다. 벤츠의 꽁무니를 바라보고 선 화란은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한국어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둘의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보고 짐작은 했다.
서동수가 KO패를 당한 것이다.
홍경일이 수배자라면서 떠들었지만 분위기를 보면 압도당했다.
그때 서동수가 머리를 돌려 화란을 보았다.
“내일 동북건설 결재해서 부장한테 넘길 작정이야.” 이미 홍경일한테서 들었지만 화란은 정색한 채 머리만 끄덕였다.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거물이 돼 있구만, 저 인간이.” “…….” “백 과장이나 안 부장, 공장장이 당할 만도 하겠어.” 서동수가 발을 떼었으므로 화란도 잠자코 옆을 따른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서동수가 화란에게 물었다.
“집이 어디야?”
“여기서 택시로 15분 거리예요.” 지명(地名)을 말해도 알 리가 없는 터라 그렇게 말했더니 서동수가 다시 묻는다. “내 집은 여기서 멀어?” “택시로 10분쯤 걸리겠네요.” “그럼 나 데려다 주고 가라. 내가 택시비 줄게.” 머리를 끄덕인 화란이 마침 다가오는 빈 택시를 세우고 뒷좌석에 올랐다. 차가 출발했을 때 서동수가 의자에 등을 붙이며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이곳은 재미있는 땅이야, 특히 나나 홍경일이 같은 부류한테는 말야.” 긴장한 화란이 앞쪽만 보았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쓰레기가 쌓여 썩으면 좋은 비료가 되는 거야, 그러니까 잘 봐 두라고.” “그럼 홍 사장은 놔두실 건가요?” 화란이 묻자 서동수가 풀썩 웃었다. “그럼 어떻게 하겠나? 시 정부 고위층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는데 말야.”
“…….” “곧 공장 앞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홍 사장이 시 고위층한테 로비했기 때문이래, 그 말을 들은 공장장이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는 거야.”
“…….” “한국에서 수배자가 돼 있더라도 여기서 손만 쓰면 잡혀갈 염려가 없지, 아마 공안은 다 매수해 놓은 것 같아.”
택시가 아파트 앞에 멈춰 섰으므로 서동수가 100위안을 화란한테 건네주었다. “차비 내.” 택시에서 내린 서동수가 화란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는 몸을 돌린다. 어깨가 늘어져 있다.
박서현은 홈페이지가 있다.
회원수는 125명, 절반쯤은 친구지만 나머지는 같은 또래의 남녀. 음악 동호회 모임 성격이어서
클래식에서부터 재즈, 가요까지 꽤 폭넓은 음악이 수집되어 있다.
그러나 박서현은 홈페이지에 가족 이야기는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가끔 친구들이 너네 집 어때? 하고 물으면 응, 좋아. 하고 대답하는 걸로 끝이다.
서동수가 박서현의 홈페이지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다.
박서현이 컴퓨터를 켜놓은 채 동네가게를 가는 바람에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는 데다 바쁘기도 해서 잊고 있었다가 이제 칭다오에 온 후에 벌써 세 번째 들여다보고 있다.
박서현의 홈페이지에 들어선 순간 서동수의 가슴이 뛴다.
홍경일과 어설픈 저녁을 먹고 돌아와 씻고 나서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닷새 전에 박서현의 홈페이지에 신입회원으로 등록을 했는데 공장 직원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사용했다.
총무과장이어서 공장장을 포함한 한국인 사원 87명의 인적사항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방’에 들어갔더니 마침 주인인 박서현이 회원 ‘마리오’와 채팅 중이었다.
1:1 채팅이 아니었으므로 서동수는 채팅방에 들어갔다.
“어머, ‘베이스’님이 오셨네.” ‘카르멘’이 먼저 반겼다. ‘카르멘’은 박서현의 닉네임이다.
그 순간 심장이 찌르르 울리는 느낌이 든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지금까지 박서현한테서 이만큼 반갑게 왔느냐는 인사를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이구, 방해하는 것 아닙니까?” 하고 물었더니 대답은 ‘마리오’가 했다. “어서 오세요. 마침 잘 오셨습니다.” “왜요?” “다음 주말쯤 모이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미사리에서 한 방 쏠 테니까요.”
“아유, 난, 그때 출장인데.” 자판을 두드리면서 서동수가 욕을 했다. “시발놈아, 작업하려고 그러냐?” “베이스님은 어디 계시죠?” 그러자 박서현이 대답했다. “베이스님은 부산에 계세요.” 박서현은 주인이어서 회원 신상을 다 아는 것이다. 서동수는 부산에서 해산물 도매업을 하는 오연철로 되어 있다.
그때 마리오의 문자가 떴다.
“그럼 현재까지 7명이니까 회장까지 8명으로 갑시다.” “아유, 갑자기 마리오님이 서두르시는 바람에 정신을 못 차리겠네.” “글쎄 미사리에 있는 정글 카페에서 배창수 리사이틀 초대권이 10장 나왔다니까요. 그 카페 사장이 제 친구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 초대권이 장당 10만 원짜리란 말입니다.”
박서현은 가만있었고 그 ‘마리오’란 개새끼의 문자가 이어졌다. “회장님은 당근 오셔야 됩니다. 만일 회원이 열 명 이상이 된다면 내가 그 나머지 분들도 책임집니다.”
“담주 토요일이라고 하셨죠?” “예, 마담.” “후후후, 마담이라뇨?” “남편 모시고 오셔도 됩니다.” 그 순간 서동수는 숨을 멈췄다. 저절로 눈까지 부릅떠졌는데 그때 박서현의 문자가 주르르 떴다.
빨리 친다.
“그 사람은 그때쯤 출장 가 있을 거예요.” 그 순간 서동수가 자판을 두드렸고 문자가 떴다. “저런, 나하고 같네요.” “그러게요.” 박서현이 건성으로 대답하더니 마리오란 개새끼에게 말한다. “그럼 제가 가는 것으로 하죠. 시간과 장소는 다시 공지를 해야 되겠네요.” 서동수는 이제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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