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4) 형제 <16~2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2. 21:32

 

금병매 (4)

 

 

 

제1장 형제 16회 

 

 

 

 “어머, 열여덟 살쯤 돼 보여요? 호호호 ... ”

금련은 수줍은 듯이 한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웃는다.

 

 

 

 

“그럼 그보다 더 됐단 말입니까?”

무송은 시치미를 뚝 떼고 묻는다.

“더 됐지요. 지금 열여덟 살 같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열여덟 살 때는 숫처녀였다니까요. 히히히 ... ”

“그래요? 그럼 올해 몇인데요?”

“여자 나이를 정확하게 알려고 하는 것은 실례에요. 알겠어요? 도련님”

“그런가요? 허허허 ... 형수씨니까 알려고 그러는 거죠”

“형수도 여자는 여자잖아요.

그러니까 그저 열여덟 살 보다는 많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어요”

그러면서 금련은 무송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이모저모 뜯어보듯 바라본다.

매우 남자답게 생긴 얼굴이다.

코도 우뚝하고, 입술도 두툼하며,

위로 치솟은 눈과 시커먼 눈썹 ...

남편과 친형제간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대조적일 수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런 남자와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은 하늘이 나에게 진짜 배필은

이 사람이라고 보낸 것이나 아닐는지.

그렇다면 어떻게든지 이 남자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

제멋대로 이런 생각을 하다가 금련은 불쑥 입을 연다.

“도련님, 어디다가 숙소를 정했어요?”

“현청 바로 앞에다가요. 멀면 불편하니까”

“밥이나 빨래는 누가 해주는데요? 혹시 여자라도 있나요?

아직 장가는 안 갔다고 들었는데 ... “

“맞아요. 아직 미혼입니다.

 내 밑에 있는 포졸 두 명이 맡아서 해주고 있어요”

“그렇다면 도련님, 우리 집으로 오도록 해요.

형제 좋다는 게 뭐예요.

장가도 안 간 동생을 따로 살게 할 수가 있나요?

같이 살아야지. 우리 집으로 오면 내가 식사랑 빨래는 말할 것도 없고,

온갖 뒷바라지를 잘 해줄 것이니까요”

젊고 아리따운 새형수의 그 말에 무송은 약간 기분이 얼떨떨해져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 형수가 뒷바라질 해주는 게 싫은 모양이죠?”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 폐가 될 것 같아서 ... ”

“하하하 ... 폐가 되다니요. 형제간에도 그런 말을 쓰는 건가요?”

“그리고 저 ... 여기는 현청에서 멀기도 하고,

또 방도 두 개 뿐인데 나까지 오면 좁고 불편해서 어떻게 할라고요?”

“그런 걱정은 말아요.

도련님이 온다면 당장 현청 근처의 큰 집으로 옮길 거니까요.

나한테 금붙이가 꽤 있단 말이예요”

 

 

 

형제 17회 

 

 

 

 그렇게 말해도 무송의 입에서 흔쾌한 대답이 나오질 않자,

 

금련은 마지막으로 하소연하듯 말한다.



“도련님을 굳이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살자는 것은 형제간의 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가 남들에게 너무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어서 그래요.

 

형님이 난쟁이인데다가 행상을 하기 때문에 모두가 우습게 여기고 깔본단 말이에요.

 

순포도두가 된 동생과 같이 살게 되면 어느 누가 감히 우릴 업신여기겠어요.

 

 안그래요? 그래서 더욱 도련님하고 같이 살고 싶은 거에요”

 

 

 

그 말에 무송은 어떤 의분 같은 것을 느끼며 서슴없이 대답한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같이 살도록 하지요”

금련은 온 얼굴에 활짝 웃음이 피어오른다.

그러고 있는데, 술을 받아가지고 무대가 돌아왔다.

금련은 얼른 술병을 받아 무송의 잔에 가득 술을 따라 주고는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도련님이 우리하고 같이 살기로 했어요”

“뭐? 같이 살아?”

무대는 난데없는 말에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빙그레 웃음을 떠올린다.

“같이 살면 좋지. 그런데 방이 두 개 뿐이라 영아하고 한방을 써야 될 것 아닌가.

좁아서 불편할건데, 어쩌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내가 가지고 있는 금붙이를 팔면 큰 집을 얻을 수가 있어요”

“그래? 당신한테 그렇게 많은 금붙이가 있었어?”

무대는 놀랍기도 하고 좋기도 한 듯 눈이 휘둥그래진다.

금련은 장대인이 희롱한 대가로 때때로 한 개씩 선물로 사준

반지니 팔찌니 귀고리 따위 온갖  장신용(裝身用) 금붙이를 조그만 보물 상자에 넣어

남편도 모르게 장롱 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보물 상자를 꺼내어 그 안에 담긴 금붙이를 삼분의 이 가량이나 팔아가지고

현청 근처인 현서가(縣西街)에 이층짜리 집을 얻었다.

 

 

 

 

형제 18회 

 

 

무송과 한집에서 살게 되자

 

금련은 하루에도 몇 차례나 경대 앞에 앉았고, 화장은 날로 짙어 갔다.

 

옷도 그전과는 달리 집안에서도 늘 화사한 나들이옷을 꺼내어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특기(特技)라고 할 수 있는 비파를 혼자서 타며

 

마치 사춘기의 계집애로 되돌아가기라도 한 듯 감미로운 연가(戀歌)를

 

 간드러지게 불러 보기도 했다.

아침에 무송이 일어나 이층에서 내려오면 금련은 재빨리 세숫물을 떠다가

 

그 앞에 놓았고, 낯을 씻는 동안 수건을 들고 서 있다가 건네주곤 했다.

 

그리고 밥상도 따로 차려서 손수 이층으로 들고 올라갔다.

 

말할 것도 없이 반찬도 늘 갖가지로 맛깔스럽게 하려고 애를 썼다.

 

 

 

한 번은 무대가 아내에게 볼멘 소리를 했다.

자기는 헌신짝처럼 아무렇게나 뒷전으로 젖혀놓고서

동생만 지나치게 위하는 게 슬그머니 비위에 거슬렸던 것이다.

“무송을 너무 상전 모시듯 그러지 말어”

“어머나, 당신 그게 무슨 소리에요” 형수가 시동생 위해 주는 것도 뭐 잘못인가요?“

“잘못이라기 보다도 ... ”

“그럼 뭐예요?”

“좀 지나치다 그거여”

“지나치다니 뭐가 지나쳐요? 도련님은 당신 같은 난쟁이 행상하고는 달라요.

순포도두란 말이에요. 순포도두, 알겠어요? 호랑이 때려잡은 호걸이라고요”

무대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그만 목이 찔끔 움츠러들고 만다.

언제나 그는 아내 앞에 그런 식이다.

‘난쟁이 행상’ 이라는 말만 나오면 기가 팍 꺾여 버리는 것이다.

무송 역시 새형수가 자기에게 지나치게 친절을 베푸는 것 같아

형 보기에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손수 밥상을 이층으로 들고 올라오기까지 하는 형수가

힘겨워 보이기도 해서 한 번은 이런 제의를 했다.

“형수씨, 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모두 같이 식사를 해도록 해요. 그게 좋겠어요”

“안돼요. 도련님. 도련님은 순포도두신데 혼자서 밥상을 받아야지요.

그리고 도련님은 출근 시간이 일정하지만, 형님은 새벽에 행상을 나설 때도 있고,

 점심 때가 다돼서 나갈 때도 있으니까 식사를 모두 같이 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그런 염려는 조금도 말아요”

“형수씨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래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내 밑에 있는 포졸 한 명을 아침저녁으로 집에 와서 일을 거들도록 하면 ...

무거운 밥상 같은 것은 그가 나르도록 하고 ...”

“싫어요. 도련님은 내 마음을 몰라주셔. 난 도련님이 좋아서 이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금련은 눈을 살짝 곱게 흘긴다.

그리고 그곳으로 이사를 했고, 무송도 그 집으로 옮겨왔다.

금련은 꿍꿍이속이 있는 터이라,

자기네 세 식구는 아래층에서 기거하고, 이층은 무송 혼자서 쓰도록 했다.

비록 자기의 금붙이가 삼분의 이 가량이나 축나기는 했지만, 금련은 이제 살맛이 났다.

우선 이층짜리 큰 집에 살게 된 것부터가 기분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남자다운 남자인 시동생 무송과 한집에 살게 된 게 더 없이 기뻤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도 절로 콧대가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비록 남편은 볼품없는 난쟁이이고 여전히 행상을 하고 있지만,

시동생이 순포도두가 아닌가.

순포도두와 한집에 같이 살고 있는 그 형수를 그 누가 감히 얕잡아 보겠는가 말이다.

 

 

 

형제 19회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송과 한집에 살게 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도 반금련은 도무지 무송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쳐볼

 

적당한 기회가 와주지 않아 안타까웠다.  

 

생각한 나머지 그녀는 기회를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 밤, 잠자리 속에서 금련은 남편에게 바싹 다가들어

 

가슴패기를 슬슬 어루만지며 어린애가 투정을 하듯 반말로 지껄였다.

 

 

“당신 혹시 요새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여? 왜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무대는 난데없는 아내의 말에 약간 어리둥절한다.

“그럼 어째서 요새는 꿀을 사다주지 않는거야?

토종꿀 말이야. 토졸꿀이 떨어진 지 오래 됐다는 거 몰라?”

“벌써 다 먹었나?”

“벌써라니, 흥! 사다준 지가 언젠데?

그렇게 나한테 무관심한 걸 보면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단 말이야.

 내가 토종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당신 알고 있잖아.

 요새는 그걸 안 먹으니까 피부가 윤기를 잃어가는 것 같지 뭐야”

“사다주지, 사다주고말고. 당신 피부가 윤기를 잃으면 큰일이지. 허허허 ... ”

“내일 당장 사다줘”

“그러지”

“황아촌(黃阿村)꿀이라야 돼. 다른데 것은 싫어.

황아촌 토종꿀이 제일 내 입맛에 맞고, 피부에도 좋단 말이야”

“알았어. 그럼 내일 갔다가 모레 돌아올 수 밖에 없지. 멀어서 당일치기는 안되니까”

“모레 안 돌아와도 상관없어.

며칠이 걸리더라도 좋으니까 꼭 진짜 산중 바위 틈에서 뜬 토종꿀을 구해다 줘야 돼”

“알았다니까. 걱정 말어”

이튿날 무대는 멀리 황아촌쪽으로 행상을 떠났다.

그날 저녁, 금련은 푸짐한 안주와 술을 마련해 놓고 무송의 귀가를 기다렸다.

오늘 밤이야 말로 절호의 기회이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무송을 자기 남자로 만들어 버리면 된다고 단단히 마음을 다져먹었다.

기다리면 사람이 오질 않는 법이다.

참 묘한 일이다.

어두워진 바깥을 안타깝게 내다보곤 하는데,

기다리는 남자는 오질 않고, 희끗희끗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첫눈이었다.

누구에게나 반가운 첫눈도 금련은 못마땅한 듯 중얼거린다.

“지랄같이 벌써 무슨 눈이야”

하품이 나올 시각이 되어도 무송이 돌아오질 않자,

그녀의 입에서 절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거지. 남의 속도 모르고”

호랑이도 자기 말을 하면 나타난다는 속담이 틀린 말이 아니다.

금련이 혼자서 투덜거리고 있는데,

무송이 눈을 뒤집어 쓰고 저벅저벅 돌아왔다.

 

 

형제 20회 

 

 

 

 “첫눈이 오네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투덜거리던 금련의 입에서 금세 상냥한 말이 흘러나온다.

 

 

“어떤 부잣집에서 초대가 있어서 거기 갔다오느라고 ... ”

“그럼 저녁은 필요 없겠네요?”

“예”

술이 꽤나 거나해진 무송은 털모자를 벗어 눈을 털었다.

그러자 금련은 그 모자를 자기가 받으려 했다.

“괜찮아요”

무송은 약간 귀찮은 듯한 그런 표정을 지으며 얼른 신을 벗고 자기 방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뭐 저런 남자가 다 있어. 흥! 아무리 그래도 오늘밤은 안될걸.

 내가 너를 기어이 녹여 버리고 말 것이니까. 두고 보라구”

금련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계단을 오르고 있는 무송의 뒷모습을 향해 야릇한 웃음을 띤 그런 눈으로 힐끗 한 번 흘겨준다.

그리고 문 단속을 한 다음 술과 안주를 차려 들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화로에 불이 꽤나 달아서 방안은 알맞게 훈훈했다.

의자를 화로가에 갖다놓고 앉아서 몸을 녹이고 있던 무송은 금련이 술상을 들고 들어오자 묻는다.

“형님은요? 벌써 주무시요?”

“형님은 오늘 멀리 황아촌이라는 곳에 갔어요.

거기 친구가 있는데, 오늘이 뭐 친구 생일이라나요.

그 곳에서 자고 내일 돌아올 거에요”

금련은 혀 끝에서 굴러 나오는 대로 지껄인다.

“이 추운데 멀리까지 ... ”

“글쎄 말이에요.

내가 추우니까 가지말라고 해도 친한 친군데 안 가면 안된다면서 기어이 떠나지 뭐예요.

못말린다니까요.

 자, 형님 걱정은 그만두고, 오늘밤 첫눈도 내리고 하니까 둘이서 술이나 한잔 해요.

내가 일부러 술안주를 장만해 놓고서 도련님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눈이 빠질 뻔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금련이 들고 올라온 푸짐한 안주와 술병, 술잔, 젓가락 따위를 탁자 위에 옮겨놓자,

무송은 절로 싱그레 웃음이 떠오른다.

두주불사의 술고래인지라 술이라면 언제나 헤벌레 입이 벌어지는 것이다.

“자, 잔을 들어요. 내가 술을 따라 드릴테니까”

무송과 탁자에 마주앉자, 금련은 초승달 같은 두 눈에 살짝 미소를 띠며 술병을 집어 든다.

무송이 잔을 들자, 금련은 두 손으로 술병을 기울여 잔에 찰찰 넘치도록 술을 따라 준다.

그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무송은 좀 쑥스러운 듯 힐끗 금련을 바라본다.

형수와 단둘이 마주앉아 한밤중에 술을 마시게 되니 어쩐지 멋쩍은 모양이다.

“쭉 들고 나도 한잔 줘야지요”

금련은 고운 눈매로 무송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