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6) 제2장 색한서문경<1~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3. 11:24

 

금병매 (6)

 

 

제2장 색한서문경 1회 

 

 

 

 무송이 형네 집에서 나온 지 십 여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지사가 순포도두인 무송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무송은 무슨 일인자 하고 궁금히 여기며 지사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청하현의 지사는 부임해온 지 이년이 넘어 있었다.

 

그 동안 지사는 적지 않은 돈을 긁어모았다.

 

지사의 임기는 삼년으로 되어 있었다.

 

삼년을 채우고 나면 수도인 동경(東京)으로 가서 천자(天子)를 배알하게 되어 있었다.

 

그 때 거액의 돈을 상납하지 않으면 다시 관직을 누리기가 어렵게 마련이다.

 

그래서 지사는 긁어모은 돈을 미리 동경에 있는 친척집으로 가져가

 

그곳에 보관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동경까지 돈을 무사히 운반해 가는 일이었다.

 

도적의 무리가 횡행하는 세상이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사의 머리에 문득 떠오른 것이 무송이었다.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호걸이니 그에게 그 일을 맡기면 무사히 잘 해낼 것 같았다.

그래서 무송을 불렀던 것이다.

무송을 가까이 앞에 앉히고서 지사는 나직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순포도두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그러는데 ... ”

“무슨 부탁이신지,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드리고 말고요.

어서 말씀해 보시지요”

“다름이 아니라, 저 ... 내 가까운 친척 한 분이 지금 동경에서 관직에 있는데,

주면(朱勔)이라는 분이지. 전전태위(殿前太尉)로 계신다니까”

“전전태위라고요?”

무송의 눈이 약간 휘둥그래진다.

전전태위라면 근위부(近衛部)의 장관으로, 무관으로서는 최고위직인 것이다.

“그분에게 자네가 심부름을 좀 가주었으면 해서 ... ”

“그러지요. 그거야 뭐 어려운 일입니까”

“오랫동안 소식을 못 전했기 때문에 문안 겸 선물이라도 좀 보낼까 하는데,

중도에 무사할까 그게 걱정이거든. 도적의 무리들이 들끓고 있으니 말일세.

그러나 자네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 ”

“염려 놓으십시오.

제가 오늘 이렇게 순포도두라는 분에 넘치는 직위에 올라있는 것도

모두가 지사님의 특별하신 은덕 때문이 아닙니까.

지사님의 분부시라면 무슨 일을 못하며, 어딘들 못 가겠습니까.

더구나 동경은 아직 제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수도입니다.

수도구경도 할 수 있으니 저로서는 더없이 기쁜 임무입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더욱 좋은 일이지.

일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면 상을 후하게 내릴 생각이네”

“고맙습니다, 지사님. 그럼 언제 출발을 할까요?”

“빠를수록 좋지. 내일 출발했으면 좋겠는데 ... 어떤가?”

“예, 그러지요. 염려 놓으십시오”

 

색한서문경 2회 

 

 

 

 지사의 분부를 받아 동경으로 심부름을 떠나게 된 무송은

 

형을 한 번 만나 인사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번 길이 무사할지 어떨지도 알 수가 없으며,

 

무사히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하더라도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

 

 긴 나그네길이 될 터이니 말이다.

그리고 형네 집을 나온 뒤로 아직 한번도 형을 만나질 못한 것이다.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만나면 아무래도 거처를 옮긴 까닭을 얘기해야 될 터인데,

 

형수의 유혹을 뿌리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난처하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무엇하고 해서 차일피일 끌어오다가

 

어느덧 십 여일이 지났던 것이다.

 

 

무송은 자기가 형네 집을 찾아갈까하다가 그 여우같은 형수와 대면하기가

역겹고 싫어서 부하 포졸 하나를 시켜 형을 자기 숙소로 오도록 했다.

술과 안주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무대가 들어왔다.

“형님, 오래간만입니다”

그러나 무대는 아무 말도 없이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동생을 멀뚱히 쳐다보기만 한다.

“자, 이리 앉으세요”

의자를 권하면서, 무송은 자기가 아무상의도 없이 거처를 옮긴 일을

형이 몹시 섭섭해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형에게 술을 권하고서 무송이 말했다.

“형님이 집을 비운 사이에 숙소를 옮겨 미안하게 됐습니다.

여러 모로 불편해서 그렇게 했으니 양해해 주세요”

“양해를 하라고?”

무대가 똑바로 쏘아보며 불쑥 내뱉는다.

“형님이 섭섭하게 생각할 줄 알았습니다만 도리가 없었지요”

“도리가 없다니, 어째서 도리가 없었다는 거여?”

무송은 난처했다.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사실대로 털어놓아야 될 계제였다.

그러나 차마 그래서는 안된다 싶어 술잔을 들어 꿀컥꿀컥 마시고는

안주를 입에 넣어 우물우물 씹기만 했다.

가만히 동생을 노려보듯 지켜보고 있던 무대가 다시 불숙 내쏜다.

“니가 그럴 수가 있어?”

“ ..... ”

“형수한테 시동생이 그럴 수가 있느냐 말이여?”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형님”

무송은 두 눈이 휘둥그래진다.

오해를 해도 엉뚱한 오해를 하고 있구나 싶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시치미 때지 말어. 내가 다 알고 있단 말이여.

형수를 어째 볼려고 수작을 걸었다면서? 시동생이 형수한테 그러는 법도 세상에 있나?”

“헛헛허 ... ”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무송은 그만 웃음을 터뜨려 버린다.


 

색한서문경 3회 

 

 

 

 “형님, 누가 그런 말을 해요? 형수가 그러던가요?”

“그래, 너의 형수가 그러더라. 그런 시동생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그래서 나가라고 내쫓았다던데 ... ”

 

 

 

 

“헛헛허 ... ”

무송은 또 한번 웃고나서 싹 표정을 바꾸어 벌컥 화를 내며 말한다.

“형님, 정신 차리세요! 여편네 말이면 다 말이라고 곧이 듣나요?

그 여자는 내가 보건대 여우라구요. 여우. 사람을 홀리는 암여우라니까요”

“뭐라고? 암여우?”

이번에는 무대가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암여우가 지껄이는 말을 그대로 곧이 듣다니 ... 형님,

그 여우가 한 말은 정반댑니다. 알겠어요?”

“그럼 네 형수가 너를 ... ”

“그렇단 말입니다. 자기가 시동생을 유혹해 놓고서

어디서 그따위 정반대 소리를 함부로 나불거린단 말입니까.

 하늘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죠”

“음!”

“형님도 생각해 보세요. 내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인가요?

형님은 나를 잘 알잖아요.

나는 술 마시고 주먹을 휘두르는 일은 있어도 그따위 돼먹지 않은 짓은 안한단 말입니다.

어디 여자가 없어서 하필 형수한테 손을 댄단 말입니까”

“그러면 그렇지. 나도 설마 네가 그럴 리야, 했다니까”

무대는 그제야 잘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도저히 더 한집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서 숙소를 이곳으로 옮긴 겁니다”

“알았다니까. 내가 너한테 오히려 미안하게 됐다”

“형님이 미안할 게 뭐 있습니까. 자 술이나 한 잔 더 받으세요”

무송은 쭉 잔을 비워서 형에게 건넸다.

그리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추어 화제를 바꾸었다.

“오늘 저녁 이렇게 형님을 오시라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일 내가 동경으로 먼길을 떠납니다. 지사님의 분부를 받았지요.

그래서 형님에게 소식을 알리고 작별 인사나 드릴려고요.

집으로 찾아갈까 하다가 어쩐지 기분이 내키지 않아서 ... ”

“알겠다. 잘했어. 그런데 동경에 갔다 언제쯤 돌아오는데?”

“글쎄요. 가봐야 알겠지만, 빨라도 몇 달은 걸릴 것 같습니다.

워낙 먼 길이라서요.

그래서 형님에게 당부를 드리는데,

내가 없는 동안 아무쪼록 집안 단속을 잘해야 될 겁니다.

 마음을 높으면 안돼요. 해지기 전에 일찍 귀가를 하도록 하고,

특히 멀리 행상을 떠나 밤으로 집을 비우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할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음! 알겠다니까”

무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색한서문경 4회 

 

 

 

 동생과 작별을 하고 무대가 집에 돌아가자,

 

금련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앉으며 묻는다.

“무엇 때문에 만나자는 거예요? 그 자식이”

 

 

동생을 함부로, 그 자식 이라고 부르는 게 못마땅하고,

또 금련의 속이 뻔히 들여다보여서 무대는 몹시 기분이 언짢았다.

그러나 볼멘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안 들려요? 묻는데 왜 대답이 없어요? 무슨 말을 하더냐니까!”

금련은 냅다 쏘아붙이듯 목청을 높인다.

그제야 무대는 마지 못하는 듯 입을 연다.

“동생이 내일 동경으로 떠난다지 뭐여. 지사님 심부름으로”

“그래요? 그거 잘됐네. 아이 속이 시원해.

동경에 갔다가 안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런 자식은 꼴도 보기 싫다니까”

무대는 곧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애써 눌러 삼켰다.

무송이 단단히 당부를 했던 것이다.

집에 알리지는 말라고 말이다.

싸우게 되면 자기 체면이 말이 아니니,

지나간 일은 없었던 걸로 하고서 앞으로 불미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을 하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무대는 입을 꾹 다물고 침상으로 가서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다른 말은 없었나요?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는 격으로, 금련이 헬끗 돌아보며 묻는다.

“다른 무슨 말?”

“글쎄, 다른 얘기는 없었느냐 그 말이에요”

“......”

“왜 대답이 없죠? 혹시 내 말을 엉뚱하게 하지 않았나 싶어서....그 자식이”

술기운이 올라 제법 얼굴이 불그레해진 무대는 참는데도 한도가 있었는지

그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아 버린다.

“그 자식, 그 자식 그러지 말어. 듣기 싫단 말이여.

시동생을 그 자식이라고 부르는 형수가 도대체 어디 있어”

“어머 저 양반 봐. 왜 저러지? 뭘 잘못 먹었나?

아니, 시동생도 시동생다워야 말이지,

행실이 그 따위로 돼먹지 않은 자식을 자식이라 그러지, 그럼 뭐라 그럴까요?”

“돼먹지 않기는 누가 돼먹지 않았다는 거여? 돼먹지 않은 게 도대체 어느 쪽인데?

“뭣이 어째요? 아니 그럼,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뭐야? 응?”

무대는 더 상대를 하다가는 본전도 못 찾겠다 싶어 이불을 얼굴까지 푹 뒤집어써 버린다.

금련이 냅다 달려들어 이불을 훌렁 걷어붙인다.

그리고 삿대질을 하며 마구 어거지로 악다구니를 써댄다.

그야 말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옆방에서 자던 영아가 놀라 뛰어 일어나서 빼꼼히 방문을 열어본다.

 

 

색한서문경 5회 

 

 

 

 현지사의 분부를 받아 먼 나그네길에 오른 무송은 겨울이 다 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동경에 무사히 닿았는지, 아니면 중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어느덧 춘삼월(春三月). 화사한 봄빛이 산야(山野)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대는 동생의 당부를 명심해서 하룻밤도 집을 비우는 일이 없었고,

해가 지기 전에 행상을 마치고 일찍 귀가하곤 했다.

집에 돌아오면 무대는 걸어놓은 발을 거두어들이고, 문을 닫기 일쑤였다.

 아직 해도 지지 않았는데 서둘러 문단속을 하는 남편이 못마땅해서 금련은 투덜거렸으나,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 그녀 스스로 무대가 돌아올 시각이 되면 아예 발을 거두기에 이르렀다.

어느 화창한 봄날 오후였다.

발 그늘에 앉아 수박씨나 까먹으며 지나가는 남정네들을 구경하고 있던 금련은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날이 설핏해 오자,

“돌아올 때가 됐구나. 오늘도 또 재미없고 지겨운 하루가 가는군”

혼자 중얼거리면서 장대를 가지고 나와 발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때마침 한 가닥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발의 한쪽 자락이 펄럭펄럭 나부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때 그곳을 지나가는 남자가 한 사람 있었다.

두건(頭巾)을 쓴 이십대 중반의 남자였다.

바람에 나부낀 발 자락이 그만 그 남자의 두건을 탁 쳐서 땅에 떨어뜨려 버렸다.

“어머, 이 일을 어쩌나!”

깜짝 놀란 금련이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두건을 주워든 남자는 화가 치민 얼굴로 금련을 돌아본다.

큰 소리로 꾸짖으려던 남자는 금련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만 일그러진 얼굴이 활짝 펴지며 빙그레 웃음이 떠오른다.

뜻밖에 보기 드문 미녀가 두 손을 모아 쥐고 머리까지 숙이며

 미안한 기색을 두 눈에 담뿍 담고 있질 않는가.

“죄송해서 어쩌죠! 난데없이 바람이 불어와서 그만....”

금련이 사과를 하자, 남자는 점잖게 말한다.

“괜찮아요. 바람 때문에 그런 건데요 뭐.

아주머니가 미안해 할 건 하나도 없어요.

사과를 하려면 바람이 해야죠. 안 그래요?”

“호호호.....”

금련은 그만 까르르 애교 있게 웃는다.

남자도 빙그레 웃으며 두건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서 도로 머리에 쓴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여 금련에게 눈인사를 던지고는 걸음을 떼놓는다.

입은 옷으로 보나 쓴 두건으로 보나 부자 티가 주르르 흐르는 남자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금련은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다.

남자도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본다.

시선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살짝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