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2) 형제 <6~1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2. 20:59

 

금병매 (2)

 

제1장 형제 6회

 

 

 

 제 아무리 칠척 거구의 장사이지만 무송은 호랑이를 때려잡고나니

 

온 몸이 맥을 못출 지경으로 일시에 피로가 엄습해왔다.

“이놈을 고개 밑까지 끌고 내려가야 할텐데 ..”

 

 

 

그러나 당장은 엄두를 낼 수가 없어서 좀 쉬려고 무송은 바위위에 올라가 다시 벌렁 드러누웠다.

이제 술기운도 말짱 몸에서 빠져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잠시 누워 쉬고 있는데,

어디선지 버스럭 버스럭 수풀을 헤치며 무엇이 기어나오는 듯한 기척이 들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약간 긴장을 하며 무송은 무거운 몸을 부스스 일으켰다.

또 호랑이였다.

수풀 속에서 이번에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어이쿠! 이제는 죽었구나”

무송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잘 보니 두 마리의 호랑이는 서서 걸어나오고 있었고, 한쪽 손에 창을 들고 있었다.

사람이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옷과 가면을 쓰고있는 것이었다.

사냥꾼인 듯 했다.

두 사람은 무송이 앉아있는 바위 앞으로 다가와서 덥석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정말 놀랐습니다.

혼자서 창이나 칼도 안 쓰시고 맨 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으시다니..

우리는 그 동안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지요. 도대체 어디사시는 뉘신지요?”

“양곡현이 내 고향이오. 성은 무씨, 이름은 송, 무송이라 하오”

그리고 무송은 되물었다.

“그런데 당신네 둘은 뭘 하는 사람이오? 사냥꾼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현지사(縣知事)님으로부터 명을 받아 호랑이를 잡으러 나와 있었지요.

그러나 호랑이에게 덤벼서 때려 잡을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러다가 벌써 일곱 명의 사냥꾼이 죽었거든요.

그래서 덫을 놓고 잡으려고 몇날 며칠을 숨어서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당신께서 고갯길을 걸어 올라오시더니 바위 위에 드러눕지 않겠어요.

저러다가 저 사람 오늘 호랑이 밥이 될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마침 호랑이가 나타났고,

그 사나운 호랑이를 놀랍게도 맨주먹으로 때려잡으셨지 뭡니까.

정말 우리는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요? 신기할 따름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좀 켕겼으나,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비니까 호랑이도 별것 아니지 뭐요.”

“현상이 걸린 호랑이를 때려잡았으니

이제 현청으로 가셔서 지사님을 만나 뵙고 상금도 타셔야지요.”

“그래볼까요. 헛헛허 ...”

무송은 호걸답게 껄껄 너털웃음을 웃었다.


 

형제 7회 

 

 

 죽어 늘어진 호랑이의 다리를 묶고,

 

긴 막대기를 그 사이에 질러서 두 사냥꾼이 둘러메었다.

 

무송이 유유히 앞장을 서고,

 

그 뒤를 호랑이를 멘 두 사냥꾼이 따르며 고갯길을 도로 내려간다.

고개 밑 마을에 이르자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남녀 노소할 것 없이 무슨 경사라도 난 듯,

 

혹은 희한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모여들었다.

 

그 사나운 식인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고,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그 주인공이 궁금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장(里長)이 나와서 무송을 맞아들였고,

호랑이는 그 집 마당에 갖다 부려졌다.

소식은 곧 현청에 전해졌고,

얼마 뒤에 관원 한 사람이 찾아와서 무송에게 어디 사는 누군지,

그리고 호랑이를 잡게 된 전후 사정을 물었다.

얘기를 듣고나자 관원은 눈이 휘둥그래지며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주위에 앉았던 마을 유지들도,

“천하 장사로구려”

“호걸이라도 이만저만한 호걸이 아니라니까”

“호걸일 뿐 아니라, 우리 고장의 큰 은인이지 뭔가”

저마다 한마디씩 감탄의 말을 지껄였다.

이미 날이 저물어서 무송은 그날 밤을 그 집에서 묵게 되었다.

사냥꾼들이 가지고 온 몇 가지 산짐승 고기를 비롯한 푸짐한 안주에

집에서 특별히 빚어 비장해 놓은 좋은 술을 실컷 대접받고 얼큰히 취한 무송은

코까지 호걸답게 드르릉 드르릉 요란하게 골면서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 무송은 붉은 비단으로 장식한 교자에 몸을 싣고 현청을 향해 마을을 떠났다.

물론 때려잡은 호랑이도 여러 명의 장정들이 들것에 싣고서 뒤따르고 있었다.

일행이 지나가는 길거리에는 구경꾼들이 몰려나와 환호성을 지르고 손뼉을 쳐대기도 하면서

온통 야단들이었다.

 무슨 큰 축제라도 벌어진 듯 했고,

개선장군(凱旋將軍)을 환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무송을 태운 교자와 호랑이를 실은 들것이 현청 정문을 들어서는 것을 현지사는

정청(政廳)에 앉아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교자와 들것은 정청 앞뜰에 와서 놓였고, 무송은 교자에서 내려섰다.

칠 척 거구의 젊은 거인(巨人)을 보자 지사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호랑이를 때려잡을만한 사내로구나 싶었던 것이다.

지사는 시중드는 관원을 시켜서 무송을 정청 위로 올라오도록 했다.

앞에 와서 큰절을 하고서 앉은 무송을 지사는 대견한 듯 바라보며 물었다.

“성명은 뭐며, 어디 사는 젊은인고?”

“무송이라하옵니다. 고향은 양곡현이고요.”


 

형제 8회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어디 한 번 얘기를 해보라구”

무송은 호랑이를 때려잡게 된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자세히 늘어놓았다.

얘기를 듣고 난 지사는 놀라움과 함께 흐믓한 표정을 지으며 새삼스럽게

무송의 거구를 바라보았다.

앉아 있는데도 그 무더기가 아마도 보통사람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과연 놀라운 일이로구려. 내 나이 오십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구”

그리고 지사는 관원을 시켜 주안상을 내오게 하여 손수 무송에게 술을 따라 주고서,

상금 삼 십냥을 내놓았다.

어제 호랑이를 때려잡았을 당시는 상금 삼 십냥은 내 것이다,

하고 환호성을 질렀던 무송이지만,

간밤에 마을에서 받은 풍성한 대접과 길거리에서의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영,

그리고 이렇게 지사 앞에 앉아서 칭송을 들으며 손수 따라주는 술잔까지 받고 보니

기분이 벙벙해질대로 벙벙해져 마치 자기가 무슨 영웅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어서

서슴없이 말했다.

“상금은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상금이 탐이 나서 호랑이를 때려잡은 게 결코 아닙니다.

사람을 수 없이 잡아먹은 고약한 놈이라는 말을 듣고서 그 놈이 나타나기만 하면

내 손으로 없애버려야겠다는 생각에 때려잡았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상금은 그 동안 호랑이를 잡으려다가 도리어 호랑이에게 잡혀먹힌

사냥꾼이 일곱 사람이나 된다는데, 그 유가족들의 생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지사는 거듭 감탄을 하여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힘만이 장사가 아니라, 마음씨도 비단 같구려. 놀랍고 기특한 일이로다.

 당장 그렇게 하도록 하지”

즉석에서 부하 관원에게 그 상금 삼 십냥을 무송의 뜻대로 죽은 사냥꾼

일곱 사람의 유가족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명했다.

그리고 지사는 묻는다.

“이제부터 그대는 어디로 갈 생각인가?”

“고향으로 갈까 하옵니다”

“양곡현으로 간다 그것이지?”

“예, 그렇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지사는 불쑥 말한다.

“어떤가? 이 곳 청하현에서 순포도두(巡捕都頭)를 할 생각은 없는가?

양곡현은 바로 이웃 고장이니,

언제든지 고향에 가고 싶으면 다녀올 수도 있는 일이고 ...”

그 말에 무송은 귀가 번쩍 뜨이는 듯 얼른 두 손을 바닥에 짚으며 머리를 깊이 숙인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제 있는 힘을 다해서 지사님을 위해 일하겠사옵니다.”

 

 

형제 9회 

 

 

 

  순포도두란 도둑을 잡고 불량배들을 다스리는, 말하자면 현청의 치안대장이었다.


뜻밖에 그런 큰 감투를 쓰게 된 무송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용꿈을 꾸어도 이만저만한 용꿈을 꾼 게 아니었다.

 

형을 만나보러 고향에 가려다가 호랑이를 때려 잡는 바람에 청하현의 순포도두가 되다니,

 

사람의 일이란 참 알 수 없는 묘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사는 담당 관원에게 명하여 그날 안으로 서류를 꾸미게 해서 무송을 정식으로

 

순포도두에 임명했다.

 

 


그러자 그 소식을 들은 현내의 부호(富豪)들이 너도나도 신임 순포도두인 무송을 집으로

초대해서 향연을 베풀어 축하해 주었다.

그 바람에 무송은 연삼일을 코가 약간 삐딱해질 지경으로 주흥(酒興)에 겨웠다.

살다가 이제야 비로소 때를 만났구나 싶었다.

하루 아침에 순포도두가 된 무송은 지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도 정말 몸을 아끼지 않고 현내에 들끓는 도둑들을

이 잡듯 모조리 잡아들이며, 불량배들을 싹 쓸어버려서 백성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태평한 청하현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했다.

그래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직접 자기가 진두지휘하리라 마음먹었다.

무송이 부하 포졸(捕卒) 두 명을 거느리고 첫 순찰을 나간 날이었다.

현청 소재지의 거리를 두루 돌아보고, 오정(午正) 이 되어 점심을 먹으려고

현청 쪽으로 유유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저만큼 멀리서 웬 난쟁이 한 사람이 물건을 팔려고 외치며 걸어오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 난쟁이 행상을 본 무송을 속으로 ‘이 곳에도 우리 형님 같은 사람이 있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형 무대가 이 곳 청하현으로 옮겨와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무송은 대수롭게 여기질 않고서

현청 쪽으로 거리를 꺾어져 돌아가고 있었다.

멀리서 무송 일행을 본 난쟁이 행상은 짧은 다리로 냅다 쪼르르 달려서 그들의 뒤를 쫓았다.

“여보시오! 나으릿님!”

큰소리로 외친다. 무송과 포졸 두 명은 거의 동시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무송을 보자 난쟁이는 눈이 휘둥그래지면서도 온 얼굴에 활짝 웃음을 떠올린다.

“아니, 송이 아니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아이구 형님이구려. 형님은 도대체 웬일로 여기에 ... ”

무송도 뜻밖에 난쟁이 행상이 다름아닌 형 무대라는 것을 알고는 웃음과 함께 입이 딱 벌어진다.

무대가 길바닥에 행상 보따리를 내려놓고 쪼르르 다가들자 무송은

그만 난쟁이 형을 번쩍 들어서 안으며,

“형님을 여기서 마나다니 ... ”

반가워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형제 10회  

 

 

 

 칠 척 거구의 무송이 삼 척도 채 못되는 형 무대를 어린 애 안 듯 들어올려서 한쪽 볼을

 

맞대기까지 하며 반가워하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우습고 재미있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두 포졸은 자기네 신임 순포도두 형제의 너무나 대조적인 외모에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슬그머니 외면을 하기도 했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서서

 

그 희극적인 장면을 재미좋다는 듯이 싱글거리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무송이 안아 올렸던 형을 도로 땅에 내려놓으며 두 부하에게 명했다.

“나는 오래간만에 형님을 만났으니 형님하고 점심을 같이 할까 한다.

너희들은 현청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대기하라”

“예, 그러지요”

두 포졸이 굽신 허리를 꺾고서 현청쪽으로 걸음을 떼어 놓자, 무송은 형에게 말한다.

“자, 형님. 어디 가서 점심이나 하면서 얘길 합시다”

“어디 가긴 ... 우리 집으로 가야지”

그러면서 무대는 행상 보따리를 들고 앞장을 선다.

무송은 얼른 형의 그 보따리를 자기가 받아 들고서 나란히 걷는다.

나란히 걸어가는 두 형제의 모습 역시 구경거리여서 행인들 뿐 아니라,

점포의 주인들도 내다보며 싱글벙글 웃음을 떠올린다.

무대는 천만 뜻밖에 이곳 청하현의 거리에서 만나게 된 동생,

 더구나 순포도두가 된 무송을 자랑스럽게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무대 역시 소문을 들어서 경양강 고개에서 호랑이를 때려잡은 호걸이

새로 현청의 순포도두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동생인 무송인 줄은 까맣게 몰랐다.

무대는 때때로 며칠 씩 집을 떠나 멀리 현내의 구석진 부락까지 돌면서 행상을 하는데,

그 소문을 어느 시골 마을에서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 두 포졸을 거느리고 거리를 지나가는 신임 순포도두를 보니까

먼발치에서였지만 칠 척 거구의 그 모습이 어쩐지 동생 같아서 혹시나 싶어 뒤를 쫒아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송이었던 것이다.

무대가 살림을 하고 있는 집은 자석가(紫石街)라는 곳에 있었다. 두 칸짜리 셋방이었다.

“형님, 형수씨랑 조카는 잘 있는지요?”

방에 들어가 앉은 무송은 불쑥 물었다.

“그 전의 네 형수는 죽었고, 새로 형수가 들어왔지”

무대는 좀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 그렇게 됐나요? 음 ... ”

무송은 약간 침통해지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