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3) 형제 <11~1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2. 21:15

금병매 (3)

 

 

제1장 형제 11회 

 

 

 옆방 문이 열리면서 계집아이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 삼촌 오셨네”

 

 

 

 

무송의 질녀인 영아(迎兒)였다. 올해 열두살이다.

“많이 컸구나 엄마가 돌아가셔서 어쩌지?”

삼촌의 말에 영아는 조금 슬픈 표정을 짓는 듯하다가 두 눈을 반짝 치뜨며 대답한다.

“새엄마가 있는걸요 뭐”

“응, 그래. 새엄마를 잘 따라야지. 새엄마가 좋은 모양이지?”

“좋기도 하지만 싫기도 해요.

나를 때리지 않고 먹을 것을 잘 주고, 머리도 빗어주어서 좋아요.

그런데 새엄마는 만날 화장을 하고서 집을 나한테 보라 하고 이웃에 놀러만 간단 말이에요.

그점이 싫어요.”

맹랑한 계집아이다. 무송은 허허허 ... 웃는다.

그러자 무대는 약간 볼멘 소리로 영아를 꾸짖듯이 이른다.

“야 이것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가서 엄마나 불러와. 삼촌 왔다고 ...”

영아는 발딱 일어나 후닥닥 밖으로 뛰어나간다.

곧 영아의 뒤를 따라 새엄마인 반금련(潘金蓮)이 나타났다.

방으로 들어서는 그녀를 힐끗 바라본 무송은 속으로 하하! 싶었다.

약간 놀라는 기색이다.

얼른 보기에 스무살쯤 된 것 같고,

얼굴도 꽤나 반반하게 생긴데다가 어딘지 모르게 요염한 기색이 훅 풍기는 듯한

그런 여자가 아닌가.

 볼품없는 난쟁이인 형이 어떻게 해서 저런 젊고 화사하기까지 한 여자를 후처(後妻)로

맞아들일 수 있었는지 얼른 잘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녀가 윗목에 자리를 잡고 앉자, 무대가 소개를 한다.

먼저 무송에게 새 형수를 소개하고, 그리고 자기 처에게 말한다.

“내가 말했던 하나뿐인 그 친동생이여, 그런데 말이지

이번에 경양강 고개에서 호랑이를 때려잡은 게 이제 보이까 바로 이 동생이지 뭔가”

“어머나, 그래요?”

금련의 초승달처럼 가느다란 두 눈이 반짝 놀라는 빛을 띠며 휘둥그래진다.

그녀는 얼른 묻는다.

“그럼 이 도련님이 바로 순포도두가 됐겠네요?”

“그렇지. 호랑이를 때려잡은 공으로 우리 현의 순포도두가 됐지.”

“아이고 그렇구나!”

소문에 호랑이를 때려잡은 호걸이 현청의 순포도구가 됐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다름아닌 시동생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앉아있는 무더기부터가 난쟁이인 형과는 대조적으로 거창해서

속으로 친형제간인데 참 신기하기도 하다고 여기던 그녀는 입까지 딱 벌어지며

놀랍고 반가워서 어쩔줄을 모른다.

 

 

 

형제 12회 

 

 

 “자, 형수씨 인사 받아요”

무송은 빙그레 웃으며 두 손을 방바닥에 짚고 머리를 숙이려 했다.

그러자 금련이 당황하여 만류를 하며 오히려 자기가 큰절을 하려고 일어선다.

 

 

“그러면 안돼요. 형수가 시동생한테 큰절을 하는 법이 있나요?”

“아이고 그렇지만 순포도두님인데 ... ”

그러자 무대가 말한다.

“둘이 똑같이 절을 하면 되지 뭐”

그말에 무송과 금련은 똑같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교환했다.

그리고 금련은,

“아이고, 얼른 점심을 새로 지어야지. 잠깐만 기다려요. 도련님”

고운 눈매로 생글 웃어 보이며 부엌으로 갔다.

금련이 점심을 지으려 부엌으로 가자,

영아가 재빨리 차를 두 잔 차판에 담아들고 와서 아버지와 삼촌 가운데에 놓으며 권한다.

“삼촌 차 좀 드세요”

“응, 그래. 영아 참 영리해졌구나”

“뭐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영아는 히힉 웃으며 방을 나갔다.

차를 마시며 무송이 좀 낮은 목소리로 형에게 묻는다.

“어디서 저런 젊은 새 형수를 얻었나요?”

“네 본래 형수가 죽자,

한동안 영아하고 둘이 살았었다.

장대인(張大人)이라는 분 집 문간채에서 ... 그집은 큰 부잣집인데,

 네 새형수 반금련이는 그 장대인의 시중을 드는 하녀였어.

장대인이 어찌나 귀여워했는지 하녀라기보다 수양딸 같았지.

그런데 장대인 그분이 병들어 죽자,

그 부인인 여씨(余氏)가 고맙게도 금련이를 나한테 주더라니까”

무대는 동생에게 가만가만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얘기가 좀 달랐다.

반금련이 남의 집에 팔려간 것은 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어린 딸 금련이를

왕초선(王招宣)의 집에 돈을 받고 팔았다.

초선이란 고급 무관직(武官職)의 하나였다.

금련이는 어렸을 때부터 귀엽게 생기고,

특히 전족(纏足)을 한 발이 작고 예쁘장해서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마치 인형 같았다.

그래서 왕초선 내외는 금련이를 친딸처럼 키우며 음곡(音曲)을 가르치고,

그림과 자수(刺繡)에도 손을 대게 했으며,

화장하는 법과 옷매무새를 곱게 가꾸는 법까지 익히게 했다.

금련이는 본시 영리한 계집아이였기 때문에 열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그림과 자수에 제법 솜씨를 나타냈을 뿐 아니라,

피리를 불고 비파(琵琶)까지 타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왕초선이 죽자,

친어머니가 데려다가 이번에는 큰 부자인 장대인의 집에다가 딸을 다시 팔았다.

그때 금련이는 열여섯 살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아홉 살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았다.

바야흐로 익어들어가려는 풋과일 같은 그런 싱싱하고 야들야들한

처녀 티가 내비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형제 13회 

 

 

반금련과 동갑인 백옥련(白玉蓮)이라는 처녀도 장대인의 집에 함께 팔려왔다.

장대인은 육십을 넘었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그러나 부인인 여씨가 어찌나 질투심이 강하고 기질이 센 여잔지

 

장대인은 공처가가 되어 큰 부자이면서도 소실 하나 거느리질 못했다.

 

하루는 마누라 앞에서 자식 없는 신세 한탄을 했더니,

 

그럼 자식 삼아 계집애를 두엇 사들이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장대인은 귀가 번쩍 뜨였다.

 

집안에 하녀라고는 모조리 나이가 많고 못생긴 여자만 두어오던 마누라가

 

이게 어찌된 일이냐 싶었다.

 

여씨는 육십 고개를 넘어 늙어가는 영감이 측은하기도 하고,

 

이제는 넘볼 기력도 없으려니 싶어서 마지막으로 선심을 쓴 셈이었다.

 

그래서 반반하게 생긴 두 계집애를 사들여 영감의 시중을 들게 했다.

 

금련과 옥련은 한방에서 기거했다.

여씨는 그 둘에게는 집안일은 일체 시키질 않고,

오직 영감의 곁에서 시중만을 들면서 금련은 비파를,

옥련은 거문고를 가지고 늙은이를 즐겁게 해주도록 하였다.

옥련은 광대의 딸이었기 때문에 거문고를 잘 탔다.

그런데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옥련은 가엾게도 병에 걸려 죽고 말아,

금련이 혼자서 장대인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속으로 은근히 금련이를 탐내고 있던 장대인은 마침내 기회가 왔다 싶었다.

그래서 어느 비 내리는 날 밤을 택하여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장대인은 혼자 자고 있는

금련의 방으로 슬그머니 침입했다.

놀라 비명을 지르려는 금련을 잘 달래어 영감은 겁을 집어먹고 굳어만 드는 열여덟 살짜리

피둥피둥한 숫처녀의 몸을 슬금슬금 솜씨있게 어루만져 열어젖히고서 깨끗이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자란 한 번 무너지고 나면 다음부터는 나긋나긋한 법이다.

금련이 역시 마찬가지여서, 장대인은 마음만 내키면 심야에 그녀의 방으로 찾아들곤 했다.

비록 영감이기는 했지만,

남자의 살맛을 알게 된 금련은 그때까지 몸속에 다소곳이 깃들여있던 육욕(肉慾)이

고개를 쳐들어 이제 밤이면 장대인을 은근히 기다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제발로 영감의 방을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장대인은 육십을 넘겼으나 온갖 보약과 몸에 이롭다는 음식을 장복하는 터이라 혈색이 좋고,

정력도 사십대의 장년(壯年)과 비길 만 했다.

그러나 싱싱하고 야들야들한 열여덟 살짜리 몸뚱어리를 곧잘 상대하게 되자

차츰 안색이 나빠지고, 기력이 쇠진해 갔다.

한약을 달여 먹곤 했으나, 한동안 회복되었다가는 다시 내리막이었다.

이듬해에는 몸져눕기에 이르렀다.

여씨가 눈치를 못 챌 턱이 없었다.

금련이를 불러앉혀 놓고 닥달을 해서 자백을 받은 여씨는

크게 화가 치솟아 손수 계집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고,

사내종으로 하여금 볼기짝을 치도록 했다.

 

 

 

형제 14회 

 

 

 마누라에게 금련이가 매를 맞았다는 얘기를 들은 장대인은

 

그녀를 소실로 삼을 생각이었으나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병이 나아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도 이제는 마누라의 감시가 심할 뿐 아니라,

 

금련이도 겁에 질려 몸을 사리는 터이라 도저히 다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울화통도 터지고 해서 장대인은 생각한 끝에 문간채에서 살고 있는 무대에게

 

금련이를 시집보내기로 했다.

 

그 말을 듣자 여씨는 앓는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해 하였고,

 

집안의 하인들도 무대가 좀 모자라는 듯하면서도 무척 착한데다가 상처를 해서

 

홀아비가 되어 있는 터이라,

 

그것 참 잘된 일이라고 모두가 좋아했다.

 

 

 

간단한 혼례식까지 올려서 장대인은 금련이를 무대에게 출가시켰다.

그러나 영감에게는 꿍꿍이속이 있었던 것이다.

금련이가 남의 아내가 되었으니 이제 마누라도 마음을 놓을 것이고,

 또 무대는 노상 장사 보따리를 들고 바깥으로 나돌뿐 아니라,

때로는 며칠씩 집을 비우고 멀리 행상을 떠나기도 하는 터이라,

금련이와의 밀회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실제로 장대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금련이를 찾아가 범했다.

그것이 낮이기도 했고, 밤이기도 했다.

금련이 역시 남의 아내가 된 몸이면서도 그럴 때마다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기꺼이 영감을 받아들였고,

그런 기회가 자주 오기를 내심 애타게 바라기까지 했다.

일이 오래 계속되면 언젠가는 탄로가 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장대인이 미리 손을 쓰듯 무대에게 곧잘 장사 밑천을 대주었고,

집세도 받지 않고서 공짜로 살도록 해놓았기 때문에 무대는

영감과 아내와의 부정(不貞)을 목격하고도 오히려 민망스럽고 난처한 듯

얼른 자기 쪽에서 못 본체 돌아서서 피해 버리는 것이었다.

약간 모자라는 사람답다고나 할까.

어쨌든 무대로서는 영감이 금련이를 자기에게 시집 보내준 것만도 고맙기 짝이 없는 일인데,

집세도 안 받을 뿐 아니라 곧잘 돈까지 주곤 해서 그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처럼 금련이의 몸뚱어리를 즐기다가 장대인은 결국 몸져눕더니

이번에는 병이 깊게 뿌리박힌 듯 끝내 일어나질 못하고 저승으로 가고 말았다.

영감이 죽자,

여씨는 그 까닭이 금련이란 년에게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어 분에 못 이겨

그들 부부를 집에서 내쫓고 말았다.

그래서 무대는 아내와 영아를 데리고 지금 살고 있는 두 칸짜리 셋방으로 옮겼던 것이다.

금련이 점심상을 차려들고 들어오면서 무송에게 물었다.

“도련님, 술을 좀 받아 올까요?”

무송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형수씨. 지금 근무중인데 술은 안됩니다.

 저녁에 다시 올테니까 그때 술을 주세요”

 

 

 

형제 15회 

 

 그날 저녁, 무송은 다시 형네 집을 찾아갔다.

 점심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식사겸 술상이 차려져 나왔다.

제법 상이 풍성했다.

무송과 무대는 마주앉아 술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반금련도 곁에 앉아서 작부처럼 술 시중을 들었다.

 

 

“형수씨도 한잔 하시지요”

무송이 인사치레로 말하자,

금련은 대뜸 가느다란 두 눈에 생글 웃음을 띤다.

“도련님이 주신다면 마셔야지요. 순포도두님이신데 ... ”

“허허허 ... 그럼 잔 받으세요”

무송은 어디까지나 새형수에 대한 인사로서 잔을 건네고, 술을 따라 주었다.

그 잔을 금련은 조금 수줍은 체하면서 서슴없이 입으로 가져가 홀짝홀짝 마신다.

무대는 술이 그다지 센 편이 아니어서 몇 잔 마시고는 식사를 했다.

그러나 무송은 식사 같은 것은 뒷전이었다.

계속 잔을 비웠다.

금련은 속으로 약간 놀라면서도 몹시 좋은 듯 조금 발그레해진 얼굴에 환한 웃음을 떠올린다.

“도련님, 술이 아주 센 모양이죠?”

“예, 나는 밥보다 술을 더 좋아해요”

무송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잠시후, 술병이 바닥이 나자,

금련이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이 가서 술을 더 받아와야겠어요.

도련님이 술을 식사보다 더 좋아한다니까 실컷 대접해야죠”

“응, 알았어”

식사를 마치고 불그레해진 얼굴로 앉아있던 무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빈 술병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무대는 서른이 훨씬 넘은 터이지만,

 열 몇 살이나 아래인 금련의 말에 언제나 고분고분 따랐다.

자기 같은 난쟁이에겐 너무나 과분한 젊고 고운 여자이기 때문에

혹시나 자기를 버리고 어디로 달아나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남편이 술을 받으러 나가자,

금련은 눈매에 살짝 요염한 빛까지 띠면서 물었다.

“도련님, 지금 나이가 몇이나 됐어요?”

“얼마나 돼 보입니까?”

“글쎄요 ... 스물너댓 되어 보이네요”

“그렇게 젊어 보여요?”

“그럼 더 됐나요?”

“올해 스물여덟입니다”

“어머나, 그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니까요”

금련은 일부러 더 호들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형수씨는 몇 살이나 됐나요?”

“몇이나 돼 보여요? 한 번 알아맞혀 봐요”

“열여덟 살쯤 돼 보이는데요”

무송이 빙그레 웃는다.

스무살쯤 되어 보이는데도 술기운도 있고 해서 장난삼아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다.